31권 2화
안타까운 점이라면 새로운 라인 업이 발매되었음에도, 보도되는 비 중이 확 줄었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 S2가 가격 하나 빼고 는 워낙 잘 나온 탓도 있었지만, 유재원의 기부 관련 뉴스가 스노우 볼로 굴려지며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어떤 엉터리 인터넷 언 론에서는 911 기부까지도 걸고넘어 지려고 했다. 911 테러에 당한 피 해자들을 위해 수많은 기부금이 모 였다.
유재원의 경우 기부금 단체가 아 니라 ID 파운데이션을 통해 피해자 들을 1 : 1로 직접 지원하는 형식을 선택했다.
집단으로 모집한 기부금은 규모 는 크지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 들에게까지 잘 전달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탓이다.
그래서 1 : 1로 직접 지원을 선택 했다. 그런데 인터넷 언론은 과연 이러한 형식의 기부가 잘 작동되었 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식으로 기 사 방향을 잡으면서, 혹시 이것 역시 말뿐인 기부였나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군 기부에 대한 건 가만히 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반박은 즉각적이었다. 구조 작업 중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할 때 뿜어 진 막대한 먼지를 마셔서 폐가 망 가진 이들이 상당수였고, 이들을 일선에서 지원하고 있던 곳이 바로 ID 파운데이션이었다.
미국 정부도 깜빡 잊고 있던 이 들이었는데, ID 파운데이션이 아니 었다면 막대한 병원비에 파산했을 수도 있었다.
피해자분들은 기꺼이 메이저 언 론 앞에 나와 인터넷 기사에 반박 했고, 네티즌들이 몰려들어 사이트 를 마비시키는 것으로 논란은 끝났 다.
그렇게 시끄러운 소란 속에서 IDDC 2002는 4일 차가 되었고, 모두가 기다린 ID 엔터테인먼트의 발표가 시작되려고 했다.
게이머들에겐 그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린 축제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상 많은 나라 중에 딱 한 나라만 그 축제를 즐길 수가 없었다.
한국이었다.
이제껏 한국 군대에서는 많은 비 리가 터졌다. 그리고 대부분 유야 무야 덮였다. 끼리끼리 너무도 잘 엮여 있는 탓에 하나를 캐내기 시 작하면 고구마 줄기 나오듯 주렁주 렁 딸려 나왔던 탓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문제 제기 자체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터졌고, 그 크기도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국회와 청와대는 물론, 국민들까 지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정작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는 겨 우 세탁기 하나, TV 하나 삥땅 쳤 다고 한국은 물론 미국까지 들고일 어날 일이었나 하며 애써 자신들의 비위를 과소평가했고, 달아오른 여 론이 얼른 식기만을 바랐다.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본인들이 처 한 상황을 과소평가하는 건 비상식 적이었다. 그러나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장택수 중위가 속한 대대나 그가 있는 독립중대에 상급부대 감찰이 나왔다는 소리에 당사자들은 순간 발이 저렸지만, 생각보다 감찰의 강도는 강하지 않았다.
기부받은 가전제품이 왜 대대장 의 관사에 있는지 물은 정도였다.
더욱이 대대장에게 아부도 잘했 던 장택수 중위의 중대장은 말 돌리기에도 천재였다.
지하수가 말라 세탁기를 쓰지 못 하기에, 수돗물이 나오는 대대장 관사에 두고 세탁물을 받아 빨아 주려고 했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횡 령이라는 핵심을 잘 피했다.
사단에서 나온 감찰 담당자 역시 중대장의 변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서에도 그대로 받아 적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부대 내 부조리나 가혹 행위 따위가 없는지 조사하는 걸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것도 함정 이었다.
'게임기 이용에 순번을 정해 놓 고 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쪽지를 보고 선임들이 게임기를 독점해서 후임들은 손만 빨고 구경만 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 문제로 삼은 것이다.
그 쪽지가 나온 소대가 장택수 중위가 맡은 소대였기에 장택수 중 위까지 걸고넘어졌다.
어떻게 봐도 이번 감찰은 장택수 중위를 겨냥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장택수 중위가 ID 그룹에 세탁기 횡령을 일러바친 사람임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움직임이다. 다 행히 그건 아니었다.
다만 주변에서의 소문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사단에서 자체적으 로 분위기를 잡고자 나온 것이었다.
장택수 중위도 분위기를 잡는 데 시범 케이스로 걸린 것이지, 유재 원에게 DM을 보냈다고 밝혀져 찍 힌 건 아니었다.
이처럼 사회에서는 기부품 횡령 스캔들로 펄펄 끓기 시작했는데 정작 군대에 있는 사람들의 체감이 다른 건, 군대가 사회와 완벽하게 격리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은 70만에 달하는 규모도 규모지만, 안보라는 국가 안위의 핵심을 지키는 조직이 기에 대우도 늘 특별했다.
더욱이 장택수 중위가 속한 사단 의 경우 전방 철책 사단으로서 독 립성이 보장이 되는 환경이었다.
거기에서는 사단장이 왕이었고, 연대장이나 대대장은 영주와도 같 았다.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라 이들이 가진 권력도 그와 같았다.
대대장이나 중대장은 이번 건을 적당히 무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세탁기 횡령보다 훨씬 큰 사건도 얼마든지 묻었으니, 이번에 도 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이번 사태에는 유재원과 ID 그룹 그리고 티파니가 있었으니 말이다.
IDDC 2002가 막바지에 이르렀 을 때.
-티파니 유, 이번 기부 물품 횡 령 사건으로 남편의 실망감과 좌절 감 매우 컸다.
-기부와 세금에 대해 다시 생각 해 보는 시간.
-직접 나설 수 없는 남편을 대신 해서 당사자 직접 고소 고려!
-다만 이번 일은 매우 특수한 케 이스, 기부 자체에 대한 실망감으 로 번지지는 말았으면.
티파니의 인터뷰가 NBC 방송국 에 떴다. 이를 시작으로 타임워너 넥스트컴과 ID 그룹이 영향력을 발 휘하는 매체에 이번 기부 물품 삥 땅 사건의 전모들이 자세히 공개되 었다.
유재원의 즉흥적인 기부, 그에 따른 부작용 등등.
그녀의 이모들로 인해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여론의 관심 을 끌었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제 대로 된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 다.
특히 티파니의 NBC 뉴스의 인 터뷰는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재원과 달리 텔레비전에는 거 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티파니 가 직접 나왔다. 그 자체로 큰 뉴 스였다.
특히 직접 고소한다는 건 상당한 임팩트를 선사했다.
NBC에서는 단지 고려할 거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한국의 대형 법률 사무 소인 김&정 법무 법인을 통해 실 제 고소가 이뤄졌다.
김&정 법무 법인은 ID 그룹의 사회적 나눔 중 하나로 탄생한 법 무 법인이었고, 법률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법무 법인을 구성하는 변호사 사단은 그야말로 휘황찬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 법무 법 인에 속한 이들의 평균 몸값은 한 국 변호사 사회에서 상위 10% 내 에 들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김&정 법무 법인의 1대 대표였던 김창완 판사는 사법 권력의 떠오르고 있는 신성 공수처의 초대 청장으로 영전했다.
그리고 문제의 판사와 검사들을 솎아내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무 시무시했다.
웬만한 범죄를 저질러도 기소조 차 되지 않았던 검사, 그리고 판사 들이 특별 재판부에 기소되었고 징 역형 이상의 유죄가 나오면 파면되 었다.
벌써 수십 명의 목이 날아갔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었고, 검사 와 판사들은 자신들만의 벽을 높이 세우고 그 안에 고여 있었으니 당 연하다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사법시험에 통과한 이들 이 꿈꾸는 최종 테크에서 김&정 법무 법인의 존재감이란 더더욱 커 졌다.
그만큼 몸집을 불린 김&정 법무 법인은 점차 커다란 사건도 수임하 게 되었는데, 이번 군부대 기부 물 품 삥땅 사건은 역대 사건 중에서 도 제일 큼직한 사안이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아내인 티파니가 깔아 준 판에 유재원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 다.
띵
유재원은 한국 시간을 표시한 시 계를 보고 본인의 스마트폰을 들었 다. 막 상자에서 나온 새로운 물품 인 것처럼 번쩍거리는 스마트폰은 당연하게도 이번 IDDC 2002에서 출시한 안드로이드 S2 최상위 모델 이었다.
발표와 판매 시점에 조금 차이가 있는 경쟁사와는 달리 ID 그룹은 모든 제품이 IDDC에서의 공개와 함께 시장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 었다.
아쉽게도 세계 모든 나라가 가능 한 건 아니었다. 행정 처리가 늦고, 각종 인증 등의 검사를 받아야 할 게 많은 나라일수록 후순위로 밀리 긴 했으니 말이다.
대신 미국과 한국은 무조건 IDDC 에서의 발표와 함께 손쉽게 구매가 가능했다.
유재원도 특별한 스페셜 제품이 아닌, 근처 ID 플래그십 센터에서 손수 구매한 안드로이드 S2로 업그 레이드를 한 것이다.
기존 스마트폰에 있던 주소록, 문자 대화는 물론 애플리케이션 데 이터, 각종 설정을 원클릭으로 옮 길 수 있는 스위칭 유틸리티로 기 기변경도 쉬웠다.
-예, 회장님! 이 의원입니다.
아쉽게도 새로운 안드로이드 S2 로 제일 먼저 전화를 건 상대는 통 일국민당 대표 이인재였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네, 이 의원님, 안녕하세요. 늦 게나마 지방 선거 승리에 축하드립 니다."
-아이구,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 다. 제가 좀 힘을 쓴다고 되는 일 이겠습니까. 이게 다 고 전명헌 대 통령님이 닦아 놓으신 기반이 워낙 탄탄하고, 회장님께서도 도움을 주 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역시 이 대표는 정치적 수완은 확실히 있는 인물이었다.
시작부터 전명헌이다. 유재원이 전명헌을 존경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발언이었다. 동시에 본인은 전명헌의 유지와 유 재원의 영향력을 잊지 않고 있다고 상대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래 봐야 유재원은 이인재 라는 정치인에 대한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호감도에는 전혀 변 화가 없었다.
"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 이네요. 그나저나 국군의 기부 물 품 횡령 사건에 대해서 들으셨죠?"
-예,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저도 처음에 보고 받고 경악을 금치 못 했습니다. 회장님께서 숭고한 뜻으 로 사병들에게 보급하신 기부 물품 을 빼돌리다니요! 게다가 회장님께 서 납부하던 세금 중 얼마나 많은 돈이 국방 예산으로 들어갔는데, 아 직도 노후 시설 타령이나 하고 말이 지요!
이 대표는 마치 본인이 기부한 물품이 빼돌려진 사람처럼 분노했 다.
음성 통화라서 진짜 화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목소리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대표의 태도를 보니 말이 무척이나 잘 통할 것 같 았다.
"진정하시고요. 제가 바라는 건 단순히 당사자만 몇 명 처리하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대충 넘어가면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거 아닌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악순환의 고리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네. 그래서 말인데, 군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특별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봐요. 할 수 있다면 내년 대선까지 이슈로 끌고 가는 것도 좋죠."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 다! 국군개혁특위를 바로 만들겠습 니다!
이 대표는 눈치도 빨랐다.
유재원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 하게 이해했다.
"예, 이 대표님만 믿을게요."
이인재 대표에게 본인의 의지를 확실하게 전달한 유재원은 곧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안드로이드폰 을 내려놓진 않았다.
"후우,"
전화 걸기에 앞서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유재원은 주소록에 저 장된 인물 중에 선뜻 손이 가지 않 았던 이름을 골랐다.
현 대한민국 대통령인 김대중 대 통령의 전화번호였다.
이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 자체가 손에 꼽을 만큼, 아주 개인적인 전화번호였다. 유재원도 예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독대가 없었더라면 몰랐을 번호였다. 그때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했었는데, 실 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에, 유 회장입니까?
"네, 대통령님."
다행히 전화번호는 틀림없는 김대 중 대통령의 것이었고, 통화도 정상 적으로 연결되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