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44화 (644/1,007)

31권 3화

"후우."

김대중 대통령과 통화를 마치고 안드로이드폰을 내려놓은 유재원의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했다.

이인재와 달리 김대중 대통령은 차원이 다른 거인이었기에, 말하기 전 단어 선택 하나에도 고심해야 해서 프로그래밍을 하루 종일 한 것처럼 피로함이 몰려왔다.

그렇지만 결과는 괜찮았다.

김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재 발 방지 약속, 군대 개혁을 위한 특별 위원회 설치를 약속받았다.

통일국민당 단독으로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보다는 민주당과 함께 설치해 개혁 입법까지 이뤄낸다면 과거처럼 흐지부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십 조가 걸렸으니 하고 싶어 도 못 하겠지?"

만에 하나 또 그렇게 망할 경우, 유재원은 실망감에 ID 그룹과 본인 의 납세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거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웬만한 재벌도 쉽게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재벌 기업들이 내는 세금도 제법 거대했지만, 사실 재벌들이 국가로 부터 받는 혜택도 상당했기 때문이 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였으니 일 방적으로 파탄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재원은 다르다.

일단 유재원이 내는 세금의 규모 가 달랐으니 말이다.

법인세부터 개인 소득세까지. 역 대 납세 신기록은 모두 유재원이 새로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 ID 테크놀로지 상장으로 얻 은 소득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금 받자마자 소득세부터 내 버린 건 오직 유재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었다.

이를 다르게 본다면 기업과 본인 의 납세 정책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도 유재원이 유일했다.

"아직 부족해."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 후폭풍 이었지만, 유재원은 다시금 안드로 이드폰을 들었다.

주소록에서 이번에 선택된 이름 은 블라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었다.

-오, 유 회장. 오랜만이군. 요즘 자네 이야기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 던데 무슨 일인가?

오랜만의 통화였음에도 푸틴은 유재원을 반갑게 맞이했다.

자주 만나진 않아도, 러시아에 파견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푸틴과 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던 유재원 이었고, 푸틴 역시 이를 잊지 않고 있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오호, 부탁이라. 나와 유 회장 이 친분을 쌓은 지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오늘에서야 처음 들어보는 단어로군. 그래? 무슨 부탁인가?

"나로호 공동 개발에 북한이 적 극적으로 나서 줬으면 해서요."

북한의 독자 우주 개발 사업인 광명성 계획에는 당연하게도 러시 아의 기술 지원이 바탕에 있었다.

옆에서 부추긴 건 중국이지만, 우주 개발에 있어 러시아만큼 뛰어 난 나라는 미국뿐이었으니 말이다.

-겨우 그건가?

푸틴은 실망하는 투였다. 유재원 에게 그간 받은 건 무척이나 많은 데 아직 한 번도 갚아 준 적은 없 었다. 마음의 빚을 덜 좋은 기회였 는데, 생각보다 부탁의 크기가 작 은 것이다.

"그걸로 충분해요. 남북 관계가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게 저에겐 무엇보다 큰 이익이니까요. 더구나 북한이 조용해야 기부 물품 빼돌린 자들을 처벌할 때 엉뚱한 말이 나오는 걸 미연에 차단할 수 있고요."

군 개혁을 하려고 할 때마다 북 한과의 긴장 상태를 핑계로 빠져나 갔던 게 기존의 패턴이었다.

-그렇군. 알겠네. 한 번 알아보 도록 하지.

푸틴이 알아보겠다 하면 끝난 것 이나 다름이 없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뻗대 주었으 면 하는 중국이 불만이겠지만, 러 시아가 한다는데 막을 수야 없을 것이다.

다음 날부터, 군대는 난리가 났 다.

국민 여론이 폭발하는 와중에 어 설픈 자체 감찰로 무마하려던 것은 간단히 쓸려 갔다.

국회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군개혁특위가 만들어졌고, 여야 의 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단순히 이름 만 올린 게 아니라, 현판식을 하자마자 사건의 발단이 된 230연대를 시 작으로 최전방 부대 시찰을 실시했 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의 시작에 지 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환과 장애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현장 점검에 나섰을 때에는 군 관계자들은 경악 하다 못해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곧이어 유재원 이름을 시작으로 온갖 시민 단체들의 고소가 쏟아졌 다.

세탁기 하나를 빼돌려 중고품 나 라에 판 것으로 시작된 일은 한국 군 전체를 휘몰아쳤다.

8월의 무더움도 한풀 꺾인 9월에 접어들었을 때.

"별들이 내린다, 샤랄랄라!"

유재원은 최근 한국발 뉴스를 볼 때마다 어떤 노래가 떠올랐다. 그 리고 그 구절을 제멋대로 바꾸어불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국발 뉴 스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건 별들 이 우수수 떨어지는 뉴스였으니 말 이다.

-국방부는 ID 일렉트로닉스의 기 부 물품을 관사로 빼돌려 문제가 되 었던 박하일 소장의 파면을 결정했 습니다. 관사에 설치된 냉장고만 12 대, 세탁기는 3대, 보르도 TV는 6 대에 이르러 충격을 안겨 주었던 박 하일 소장의 비위행위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국군개혁특위의 조사로 더욱 많은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관사 관리병들에게 말도 할 수 없 는 갑질을 해 온 것입니다. 폭언과 폭행은 물론 썩은 음식물을 관사 관리병에게 주는 등, 비인간적 행 위가 극에 달했고 복종하지 않는다 며 마음에 들지 않는 관사 관리병 을 GOP로 보내는 등 인권 의식은 최악이었습니다.

-이러한 박하일 소장을 국방부는 이등병 강등 후, 파면이라는 국방 부 자체적으로 내릴 수 있는 최대 의 처벌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으로 박하일 소장의 조치는 끝이 아닙니다. 유재원 회장을 시작으로 국군개혁위, 관사 관리병 출신 예 비역들이 박하일 소장을 고소했기 에 험난한 길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박하일 소장.

이 사람이 바로 중고품 나라에 클라세 세탁기를 올린 장본인이었 다. 그걸 보고 뚜껑이 열린 장택수 중위가 유재원에게 다이렉트 톡톡 을 보냈고, 유재원은 물론 티파니 까지 마찬가지로 뚜껑이 열려 한국 군을 뒤집어엎게 만든 사람이다.

보통 이런 장성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로 똥별이 있었다.

국가 안보라는 대의보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별을 달고 있는 장성들이었다. 그런 똥별 중에서도 박하일 소장은 최강이었다.

국군개혁위 위원들은 물론 김대 중 대통령까지, 박하일 소장의 관 사를 방문해 보고는 입이 떡 벌어 졌으니 말이다.

소장 관사라고 하면 크다고는 할 수 없다. 대장 관사 정도 되어야 크다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데, 그 소장 관사에 냉장고만 12대를 설치해 놓았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 를 업소용 냉장고가 3대에 일반 냉 장고가 9대나 된다.

세탁기도 3대나 되었고, TV도 거실과 방마다 하나씩 다 있었다.

문제는 세탁기와 TV가 모두 유 재원의 기부품이었다는 것이다. 만 약 유재원이 기부 물품에 냉장고까 지 추가했더라면 일반 냉장고 9대 도 모두 기부품으로 바꿔치기 되었 을 것이다.

박하일 소장은 원래 쓰던 세탁기 를 기부품으로 들어온 것과 바꿔치기했고,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 던 모양인지, 몇 대를 중고품 나라 에 올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건 관사 관리병에 대한 대우였다.

유재원의 기억에서 갑질이란 단 어는 2002년도에는 아예 없었다. 갑질이라는 게 뭔지 인지조차 못 하고 있던 것이기에 단어도 만들어 지지 않았다.

그런데 박하일 소장에 의해 인권 이 유린된 관사 관리병을 보니 갑 질이라는 단어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뉴스가 처음 터졌을 때, 박하일 소장은 그야말로 언론은 물론 한국 사람 모두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했 다.

그에 따라 국방부의 조치도 번개 처럼 빠르게 떨어져 이등병 강등 후 파면이라는 최강의 엄벌이 내려 졌다.

-또한, 국방부는 박하일 소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벌을 물어 직속 상관 유도일 제5군단장에게는 1계급 강등과 감봉 6개월 조치를, 서남신 제3야전군사령관에게 감봉 6개월의 징계를 결정했습니다.

박하일 소장은 혼자 가지 않았 다.

그의 직속 상관들에게도 골고루 한 방씩 먹이며 7} 버렸다.

군단장이라면 별 세 개의 중장이 었고, 야전군사령관이라면 별 네 개 의 대장이었다. 이런 사람들까지도 지휘 감독의 책임을 물어 엄벌이 내려졌다.

당사자들에겐 꽤나 큰 타격이었 지만, 인터넷에서는 계급 강등과 감봉이 뭐냐며 약하다는 의견도 많았 다.

그만큼 국민감정이 최악이었고, 대통령과 국회에도 이들을 비호하 는 사람들이 없었다.

더구나 해외에서까지 기부품 횡 령 사태의 향방을 지켜보고 있었으 니, 국방부는 본인들이 내릴 수 있 는 최대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 었다.

"아, 고소하네."

유재원은 보르도 TV를 보며 깨 소금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로 입에 뭘 넣고 있는 것도 아닌데, 참깨로 만든 강정을 한 움 큼 먹은 것처럼 고소했다. 아니, 실 제로 참깨 강정을 먹어도 이렇게나 고소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야. 탈탈 털어 버릴 거야."

반면 유재원 바로 옆에서 함께 TV를 보던 티파니는 날을 더 세웠 다.

이등병 강등과 파면 정도로는 성 에 차지 않은 것이다.

일반인이 된 박하일 소장을 유재원의 이름을 빌려 민사와 형사 모 두 소송을 건 장본인이 티파니였다.

김&정 법무 법인으로부터 소송 준비에 대해 틈틈이 보고 받는 중 이었는데, 역시 티파니라 할 만큼 단호한 엄벌을 주문했다.

"그럼. 나도 이거 하나로 멈출 생각은 없어."

유재원도 마찬가지다.

박하일 소장 하나 치웠다고 한국 군의 오랜 병폐들이 다 사라질까?

절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를 이용해 국 군 전체를 개혁하는 동력으로 삼아 야 한다.

사실 지금은 다 숨을 죽이고 있 어서 그렇지, 박하일 소장 비슷한 똥별들은 군대 내에 널렸으니 말이 다.

"아주 그냥 박살을 내 버릴 거 야."

즉흥적으로 기부를 결정한 것이 한국군 개혁이라는 일로 커질 줄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너무도 잘된 일이었다.

유재원 역시나 바싹 조인 고삐를 아직은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비슷한 시각.

청와대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국 방부 장관의 독대가 진행 중이었다.

대통령이 누군가와 독대를 한다 는 건 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그렇기에 김대중 대통 령은 청와대 입성 후 최소화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 지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책임을 지고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심길준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들 지 못했다.

유재원이 예상했던 것처럼 박하일 소장을 시작으로 비위행위들을 조사 하기 시작해 보니, 고구마 줄기 하 나에 고구마가 주렁주렁 딸려 오는 것처럼 비리에 비리들이 물고 물리 면서 딸려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보시오, 심 장관. 시작을 했으 면 끝을 봐야 하는 거 아니오?"

김대중 대통령은 간단하게 심길 준 국방부 장관의 사의를 반려했다.

정치 10단 김대중 대통령은 심길 준 장관이 진짜 사의를 표시한 이 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 말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진짜는 바로 청 문회였다.

국군개혁위원회가 박하일 소장 문제, 공관병 문제, 군 의문사 문제 등등 그동안 가려져 있던 군의 종합적 문제를 가지고 청문회 개최를 예고했다.

거기에 불려가서 국회의원들에게 시달릴 사람이 바로 심길준 국방부 장관이었다.

물론 심길준 혼자만 불리는 게 아니라 국방부의 주요 관료들, 그 리고 일선 장성들까지 곡소리가 요 란하게 날 것임을 예고했다.

여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이었기에 방어는 충분히 가능했지만, 연정 중 인 통일국민당은 무척이나 날을 세 우는 중이었다.

통일국민당도 상당수 의석을 가 지고 있었고, 이번 일은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통일국민당의 막후 실 세인 유재원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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