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권 5화
유재원과 티파니가 셰일 가스 시 범 채굴 성공을 기념하는 둘만의 파티에 돌입했을 때, 캘리포니아의 주도 로스앤젤레스 의 동남쪽 어바인에 자리한 블리자 드 엔터테인먼트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IDDC 2002라는 빅 이벤트를 성 공적으로 치른 덕에 휴가라는 달콤 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IDDC 2002에서 블리자드가 발표 한 건 혈투의 전장이란 소규모 확장 팩이었다. 불타는 성전이라는 대규모 확장팩을 만드는 중이었지만, 아 직은 개발이 한참 남았다.
대규모 확장팩을 발매하기 전까 지, 하루하루 무섭게 콘텐츠를 소 모하고 있는 골수 와우저들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게 혈투의 전장이었 다. 고난도 인스턴트 던전과 만렙 유저들이 서로의 전투 실력을 겨룰 PVP 투기장이 메인이었다.
시스템과 게이머가 겨루는 게 아 니라, 게이머와 게이머가 겨루는 것이기에 리소스 규모는 작아도 콘텐츠 소모를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중요한 건 투기장의 보상 그리고 직업별 밸런스를 잡는 게 관건이라 는 걸 블리자드 측에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출시 전에도 비 공개 베타테스터를 돌리면서 가장 최적의 값을 찾았다.
물론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고, 회장인 유재원의 조언대로 인터넷 커뮤니티 모니터링을 통해 게이머 들의 반응을 보며 밸런스 패치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시급한 일을 모두 끝낸 덕에 마이크 사장은 본인의 집에서 한가롭게 휴가라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다만 휴가라고 해서 컴퓨터 앞을 떠나진 않았다.
본인부터 게이머였기에, 휴가를 받고 나서 하는 것 역시 게임이었 다. 그리고 그 게임들은 당연하게 도 ID 엔터테인먼트가 IDDC 2002 에서 발표했던 게임이 주류였다.
IDDC 2002에서 출시된 게임은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혈투의 전장뿐만이 아니었다. 스팀 이란 ESD를 맡은 것으로 유명한 밸 브사에서도 게임을 출시했으니 하프 라이프 2와 카운터스트라이크 2였 다.
둠에 이어 FPS의 신기원을 열었 다고 평가 받는 하프라이프는 이후 의 FPS 게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인칭 시점에서 화면 속 모든 NPC와 대화를 하고 각종 오브젝트 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인터렉티 브한 진행으로 몰입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덕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하프라이프 2는 한층 더 진일보한 그래픽으로 게임 성을 한 차원 더 높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었다.
게임 판매보다 게임 엔진 판매의 비중이 한층 커진 ID 소프트웨어는 사업의 포트폴리오마저 바꾼 상태 였다. 덕분에 IDDC 2002에서 ID 소프트웨어가 발표한 건 신작 게임 이 아니라 ID 테크엔진 4였다.
그런 ID 테크엔진 4가 최초로 적용된 게임이 바로 하프라이프 2 였다.
다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하프라이프 2가 ID 테크엔진 4 로 제작되면서 회귀 전 밸브사의 명품 게임 엔진인 소스 엔진은 이 번 생에선 영영 사라졌으니 말이다.
대신 ID 테크엔진 4는 이전과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그래픽을 선사 했다.
오죽하면 마이크 사장도 맛만 살 짝 볼까 실행했다가 저도 모르게 막판까지 가 버렸을 정도다. 전체 플레이 타임이 12시간이나 되는 터라 이틀에 걸쳐 나눠서 해야 했지 만, 하프라이프 2를 플레이한 것에 후회는 절대 없다.
재미있는 건 엔딩에서 후속작에 대한 노골적인 어필이 있었다는 점 이다. 3탄은 무조건 나온다는 메시 지가 노골적이었다.
유재원의 지시에 따른 결정이었 다.
회귀 전 밸브는 3이 없는 회사로 유명했다. 하프라이프는 물론 다른 게임들도 3탄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꼴을 볼 수 없었던 유재원이 3탄에서 확실히 시리즈의 대단원을 내라고 주문했다.
덕분에 하프라이프 2의 엔딩에 3 탄을 기대하라는 메시지가 확실히 담길 수 있었다.
"흐음, 오늘은 이걸 해 볼까?"
하프라이프 2의 엔딩을 음미하던 마이크 사장은 마우스를 움직여 다 음 재물을 선택했다.
마우스 커서가 멈춰선 곳에 자리 한 아이콘은 판타지 유니버스-시공 의 폭풍이었다.
"여력만 있었으면 우리가 만들었 을 텐데."
어떻게 보면 재활용 로고인 것 같기도 한 시공의 폭풍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며 게임을 실행한 마이 크 사장은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것이 판타지 유니버스 라는 게임은 마이크 사장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게임이었기 때문이 다. 세계관이 다른 각종 콘텐츠들 의 대표 캐릭터들이 다 모여 요절 복통 난장판을 만드는 게임이라니.
시공의 폭풍에 휘말린 캐릭터들은 게임 한정이 아니었다.
마블과 DC의 히어로들뿐만이 아 니라 드래곤볼이라는 끝판왕까지도 참전했다. 여기에 블리자드사의 대 표 콘텐츠인 워크래프트, 스타크래 프트, 디아블로의 주인공과 악역들 이 참여한 게 오히려 영광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캐릭터들의 라이선스를 받아오는 것만 해도 돈이 많다고 해서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유재원이 아 니면 만들 수 없는 게임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다만 마이크 사장은 과연 재미가 보장될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마이크 사장 혼자만의 우려는 아 니었다. 유명세 넘치는 캐릭터들이 라고 해서 재미를 보장하는 건 아 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신생 제작사를 만들어 게임을 만들 거라는 발표에 걱정하는 게이머들이 많았다.
더구나 원래 발매 일정은 11월의 추수 감사절 시즌이었는데, 판타지 유니버스-시공의 폭풍은 IDDC 2002에서 정식 발표되었다.
전체 개발 시간을 보면 1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게임을 직접 개발해 본 마이크 사장은 파이어 피스트라는 신생 개 발사가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1년 조금 넘는 빠듯한 시간에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완성된 게임을 보고 그 의문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카툰 렌더링 게임 하면 제일 먼 저 떠올랐던 건 워크래프트였다.
연말 게임 시상식에서 미술상을 휩쓸었을 만큼 아름다운 카툰풍 그 래픽을 자랑했던 워크래프트였고, 그것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와 서 완성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판타지 유니버스를 보고 그 자존심에 살짝 금이 갔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 남다른 애 정이 있는 마이크 사장이 보기에도 차이가 심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 프트가 SD라면 판타지 유니버스는 HD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 정 도다.
그렇지만 마이크 사장이 너무 상 심할 필요는 없다. 출시 시기가 2 년이 넘게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IT 분야에서 '년' 단위의 차이는 다 른 분야에서의 몇 세대 차이와 맞 먹는 정도의 차이였다.
더욱이 마이크 사장도 치트 키라 인정한 유재원 회장이 직접 참여해 만들었으니, 괜한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게임은 훌륭했다.
-READY!
-5, 4, 3, 2, 1. START!
단적으로 방금 접속한 마이크 사 장이 카트레이싱에서 빠른 매칭을 누르자마자 바로 방이 잡히며 게임 이 시작되었을 만큼, 판타지 유니 버스에 접속한 게이머들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배우기 쉽고, 조작도 간편하고, 재미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게임 한 판을 플레이하는 데 짧으면 5분 길어도 10분이면 끝이기에 누구나 간편히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캐릭터만 내세우는 게 임이 아니었다.
제일 인기 있는 카트레이싱만 해 도 달린다는 쾌감이 너무도 강렬했 다.
속도감과 조작감은 전문 레이싱 게임보다 좋을 정도였다. 여기에 선택한 캐릭터마다 보유한 특성이 나 고유 기술을 게임 속에서도 그 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폭발 적 인기의 비결이었다.
마이크 사장이 시작한 카트레이 싱도 2바퀴 혹은 3바퀴만 돌면 끝 나는 스피디한 게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8명의 플레이 어가 고른 캐릭터들이 온갖 기술과 아이템을 써 가면서 1등을 위해 내 달렸다.
- 에네르기파!
1위로 달리는 마이크 사장을 저 격한다고 2등으로 달리던 손오공이 에네르기파라는 드래곤볼의 대표 기 술을 썼다. 맞으면 스턴에 걸려 꼼 짝없이 뒤로 밀려나지만, 논타겟팅 기술이라 사용이 제법 어려운 기술 이다.
그런데 발매된 지 며칠이나 지났 다고, 지금은 고속으로 달리면서도 때려 맞추는 게이머가 많았다.
지금도 그랬다.
꼼짝없이 맞을 타이밍이었다. 그 러나 마이크 사장은 여유가 넘쳤다.
"반사."
마이크 사장이 고른 캡틴 아메리 카라는 캐릭터의 대표 스킬은 방패 다. 타이밍에 맞게 방패 버튼을 누 르면 에네르기파라도 튕겨냈다. 그 타이밍을 맞추는 게 캐릭터 숙련도 와 직결이었는데, 마이크 사장은 완벽했다.
게임을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플레이하는 것에도 소질이 있는 마 이크 사장이었다.
캡틴의 방패 스킬은 방패를 드는 각도에 따라 상대의 기술을 튕겨내 는 방향도 달라진다.
손오공에게 에네르기파를 그대로 돌려준 다음 유유히 1등으로 결승 선을 넘어갔다.
즐겁게 카트레이싱을 마친 마이 크 사장은 이번엔 커스텀 게임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로비 화면의 구 성이 달라지며 화면 가득히 수많은 방제와 아이콘들이 나타났다.
"게다가 게임 에디터라는 비장의 무기도 있고."
원래는 개발용이었던 맵 에디터 를 게임에 포함한 건 블리자드의 전통이었다.
개발자들보다 더 번득이는 아이 디어가 있다면 게이머가 직접 지도 를 만들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워크래프트 때부터 시작한 정책 인데, 스타크래프트에 와서 제대로 터졌다.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중에는 프로 리그 정식 경기용 지도보다 더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것도 많았다.
판타지 유니버스에는 맵 에디터 보다 더 강력한 게임 에디터가 있 었다. 단순히 지도를 만드는 정도 가 아니라 게임 전체를 뜯어고칠 수 있는 데이터였다.
게다가 사용자가 직접 만든 리소 스를 가져다 쓸 수도 있었다.
이처럼 강력한 게임 에디터에 걸 린 제약은 일반적인 법률과 커뮤니 티 가이드에 대한 준수뿐이었다.
"응? 이건 스타크래프트에서 봤 던 맵인데?"
커스텀 게임을 둘러보던 마이크 사장에게 익숙한 글자들이 눈에 들 어왔다.
Aeon of Strife, 영원한 투쟁이라 는 커스텀 맵이었다.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맵이었는데, 판타지 유니버스에도 같은 이름으로 등록된 것이다.
마이크 사장은 뭐에 홀린 사람처 럼 바로 Aeon of Strife를 선택했고 매칭 버튼을 꾹 눌렀다.
판타지 유니버스의 인기를 매칭 속도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번에도 매칭 버튼을 누른 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바로 방이 잡혔다.
-AOS 처음 하는 사람?
-어려울 거 하나 없음, 마음에 드는 캐릭터 골라서 라인 따라 움 직이다가 상대편 만나면 스킬만 잘 때려 넣으면 이김!
-쫄병들은 컴퓨터가 알아서 움직 이니까 본인 캐릭터만 잘 조종하면 되-그걸 누가 모름? 말이 쉬워도 조작은 어려워서 그렇지!
방이 잡히자 채팅창이 시끄러워 졌다. 마음 가볍게 즐기는 게임을 하려고 해도 게임을 하다 보면 저 도 모르게 이기려고 하게 되는 마 성의 게임이 바로 Aeon of Strife였 다.
"호오, 판타지 유니버스의 맵도 Aeon of Strife의 제작자가 만든 것이군."
Aeon of Strife에 제법 익숙한 마이크 사장은 채팅에 참여하지 않 고, 게임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 며 맵의 정보 탭 항목을 살폈다.
거기에서 제작자 항목에 박힌 Aeon64라는 닉네임을 보고 스타크 래프트에서 보던 것과 똑같다는 걸 바로 알아보았다.
어떻게 거대한 게임사 사장이 유 즈맵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냐 하면, 본인이 만든 게임이 좋아서 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재원 의 권고 때문이었다. 유즈맵에 블 리자드의 미래가 있으니 틈틈이 살 펴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유재원의 조언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기에 마이크 사장 은 아무리 바쁜 때라 해도 스타크 래프트나 워크래프트의 유즈맵은 한 번씩 돌렸다.
그런 마이크 사장이 몇 달 전부 터 유즈맵 인기 맵 차트 상위권에 오른 Aeon of Strife도 플레이해 보 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