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68화 (668/1,007)

32권 2화

유재원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기업가였지만, 베일에 가려진 게 너무도 많았다. 연예인처럼 늘 TV 앞에 등장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인천 국제공항에서부터 촬영되는 모든 상황은 특종이었다.

더욱이 상상하지 못했던 그림도 나왔다.

유재원 부부가 거실로 들어섰을 때, 장인 장모님도 마중을 나오셨 다. 장모님 품 안에 디디도 안겨 있었는데,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디디가 야웅 소리를 내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장모님 품에서 풀쩍 뛰어내려 가까 이 다가왔다.

그 모습에 유재원도 무릎을 굽혀 디디에게 반가움을 표시했는데, 고 양이 디디는 도도한 걸음걸이로 유 재원을 슥 지나쳐 티파니에게 다가 가 몸을 비볐다.

집에 있을 때 디디의 밥을 챙겨 주고, 털도 빗겨 준 사람은 유재원 이었는데, 두 달 정도 얼굴을 못 봤다고 이런 대접이라니.

유재원은 퍽이나 당황했지만, 임 명한 PD는 재미있는 그림을 건졌 다고 그저 좋았을 뿐이다. 게다가 디디라는 고양이는 생각 이상으로 귀여웠다.

다음 날.

새벽부터 임명한 PD를 비롯한 촬영팀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유재원의 모든 일상을 찍기 위해선, 유재원보다 더 일찍 일을 시작 해야 하는 게 바로 촬영팀이었으니 말이다.

"하암, 피트니스 룸이 어디였더 라'?"

유재원은 오래전부터 아침 운동 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도 예 외는 아니라고 했으니 먼저 가서 촬영 세팅을 해 놔야 했다.

세팅 작업을 넉넉하게 할 수 있 을 만큼 일찍 일어나긴 했는데, 문 제는 피트니스 룸이 어디였는지 기 억이 가물가물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택의 규모가 한국의 일반 재벌들과는 차원이 달 랐던 탓이다.

원반형 UFO가 샌프란시스코만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반쯤 걸쳐서 착륙한 모습이 유재원의 저택 모양 이다.

유재원과 티파니의 주 거주 공간 은 아늑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적 당한 규모였지만,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룸과 각종 편의 시설, 보안 시설과 보안 요원들을 위한 공간이 다 따로 마련되어서 상당한 넓이를 자랑했다.

어제 저택에 도착했을 때, 다들 떡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 위해 힘 이 들었을 정도다. 단적으로 18명 이나 되는 촬영팀에게도 2인 1실의 숙소가 배정되었는데, 웬만한 호텔 보다 훨씬 시설이 좋았다.

더욱이 해안가 저택으로 가는 길 목부터 유재원 회장의 사유지였다. 기암괴석과 나무들로 조경을 해 놓 았는데, 그 자체로 산림욕장이었다.

"김 작가님? 피트니스 룸이 어디 죠?"

잠깐 딴생각에 빠졌던 임명한 PD가 작가를 불렀다.

이 대목에서 살짝 닭살이 돋는 임명한 PD였다. 위계질서가 엄한 한국의 방송계와 달리 상호 존대가 원칙인 ID 그룹이었고, ID 미디어 그룹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11월 입사를 마치고, 한 달 간 ID 그룹의 기업 문화에 대해 오 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가장 집중된 것이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방 법이었다.

기존 방송국에서 하듯 해 버리면 징계 위원회에 부쳐지는 거로 끝이 아니라 감봉이나 보직 해임, 심하 면 해고까지도 이어쩔 수 있다고 했다.

임명한 PD는 고지된 조항들을 보고 방송계에 대해 완전 무지한 사람이 작성했구나 싶었다. 아무리 봐도 이렇게 해서는 방송이 안 만 들어질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래 도 일단은 시킨 대로 따를 작정이 었다.

"네, 이쪽으로 오세요."

다행히 김 작가는 피트니스 룸의 위치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서 쭉 걸으니 피트니스 룸이 나왔다.

"이게 룸이야?"

20명이 동시에 뛰어도 될 만한 헬스장을 보고 룸이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더욱이 한쪽 벽은 통짜 유리인 덕에 샌프란시스코만 이 훤히 보였다.

샌프란시스코만에 펼쳐지는 장엄 한 금빛 일출도 환상적이었고, 이 를 배경으로 턱걸이를 하고 있는 유재원의 모습도 멋졌다.

펑퍼짐한 바지와 달리 상의는 착 붙는 러닝을 입었는데, 떡 벌어진 어깨와 잔근육들이 움직이며 만들 어내는 모습은 그리스의 대리석 조 각상 부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억! 회장님! 야야! 빨리들 찍어 요!"

임명한 PD는 넋을 놓고 있던 촬 영팀을 닦달했다. 더욱이 유재원 회장도 촬영팀을 확인했지만 중간 에 멈추진 않았다. 덕분에 그 예술 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 었다.

유재원은 촬영팀이 피트니스 룸 에 들어오기 전부터 떠들썩한 소리 를 들었다. 그렇지만 평소 행하던 루틴이 있었기에 굳이 멈추지 않고 계속 운동을 수행했을 뿐이다.

'이거 대박이다! 꼭 터진다!'

어제부터 된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임명한 PD였다.

베일에 가려진 유재원 회장의 일 상도 일상이지만, 그 속에 가려져 있던 것이 이렇게나 멋진 그림이라 는 건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테니 말이다.

덕분에 임명한 PD의 촉은 더욱 예민해졌다.

ID 그룹의 정식 스케줄에서 보여 줄 전문적인 모습은 분명 한국의 재벌들과는 완전히 다를 것만 같았 다.

놀랍게도 임명한 PD의 기대감은 적중했다.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시각으로 오후 5 시.

한국 시각 오전 10시, KT 의 DNS 서버가 다운되는 것을 시작으 로 이름이 알려진 인터넷 사이트나 온라인 게임 등이 속속 접속 불능 에 빠졌다.

사상 최악의 인터넷 대란의 시작 이었다.

"15, 자 하나만 더! 오늘 과거의 벽을 넘어 보는 겁니다!"

"문제없습니다!"

과거의 벽을 넘어 보자며 모티브 를 강하게 주는 이는 온몸이 근육 으로 되어 있는 남자였고, 문제없 다면서 허세를 부리는 이는 유재원 이었다.

턱걸이 중이었던 유재원은 혼자 가 아니라 바로 옆에 개인 트레이 너와 함께 있었던 것이었다.

"어어? 15! 15! 문제없으시다면 서, 왜 몸은 그 자리인 거죠?"

곧 이어진 트레이너의 외침이었 다.

15란 숫자는 그대로였고, 모티브 주입인지 비꼼인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말도 이어졌다.

"아니, 그 자리라니요? 선생님, 카운트 방법을 까먹으신 거 아니 죠?"

용을 쓰면서 할 말은 하는 유재 원이었다.

"정자세로 올라가지 못하면 노카 운트!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운동 이 아닙니다! 한국에 계실 때 운동빼먹은 거 아니죠?"

"당연히!"

"그럼 못할 리가 없습니다! 제가 짠 프로그램을 꾸준히 수행했다면 이맘때쯤에 16개를 할 수 있습니 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턱걸이 15 개 가지고 개인 트레이너와 아웅다 웅하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유재 원이 하는 턱걸이는 완벽한 FM이 었다. 학교 체력장 때 대충 내려왔 다가 다시 올라가기만 하면 카운트 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려왔을 땐 완전히 팔을 펼치 고, 올라갈 때는 반동도 없이 오로 지 팔힘으로만 올라가야 했으니 15 개는 상당한 숫자였다.

"크압!"

이상한 기합과 함께 유재원의 몸 뚱이가 다시금 상승했다. 펌핑 된 근육들이 잔뜩 부풀었고 팔뚝에는 힘줄도 솟았다.

임명한 PD나 촬영팀, 작가진 사 이에 긴장감이 일어날 정도였다.

"십…… 육!"

마침내 근육질 개인 트레이너의 입에서 16이란 숫자가 나왔다. 16 이란 숫자를 들은 유재원은 그저 됐다는 표정으로 봉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거의 6개월 만에 한계 돌파였다. 기분 좋은 일이지만, 너무 힘들어 서 즐거운 표정은 한참 뒤에나 올 라왔다.

"아침부터 너무 힘을 쓰시는 거 아닌가요?"

유재원의 아침 운동이 끝나고 나 자, 임명한 PD가 기다렸다는 듯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큐멘터리라면 PD가 카메라 앞 에 나올 일이 없을 테지만, 관찰 예능이었기에 얼마든 가능했다.

"오늘은 좀 힘들었지만, 평소에 도 비슷한 강도로 했기에 큰 문제 는 아닙니다."

"큰 문제 아니라고 하시는데, 손 이 너무 떨리는 거 아닌가요?"

"오랜만에 한계 돌파로 생긴 영 광의 상처일 뿐이죠!"

유재원은 예능 프로그램의 톤에 맞춰 허세도 피웠다.

쇼맨십은 어려서부터 다져진 것 이라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임 명한 PD 역시나 아침부터 그림이 잘 나온 것에 대해 만족했고, 더는 캐물어 보지 않았다.

이후 아침에 빠질 수 없는 아침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어? 한국식 식단이네요?"

"결혼 전에도 늘 아침은 한국식 이었습니다. 토스트보다는 쌀밥이 죠!"

유재원의 말에 티파니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티파니도 구운 베이컨에 달걀부 침, 식빵 한 조각 먹는 미국식 아 침보다는 한국식 밥상에 완전히 적 응해 버렸다.

이처럼 한식으로 차려진 아침을 먹는 건 평소와 똑같았지만, 장소 만 살짝 달랐다. 원래대로라면 유 재원과 티파니의 아늑한 개인 생활 공간에 차려졌을 테지만, 촬영 중 이었기에 커다란 식탁이 있는 식당 에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아침밥을 다 먹고 나서는 다시 양치질하고, 잠깐의 여유 시 간이 생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바로 출근길에 올라야 했을 텐데, 유재원이나 티파니나 출근 시간은 여유로운 사람들이었기에 여유가 넘쳤다.

그러다가 티파니가 먼저 일어나 출근했고, 다음이 유재원의 차례였 다.

"평소라면 서재에서 업무를 봤을 텐데, 오늘은 본사와 게임 스튜디 오 한 곳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본사라면 당연히 실리콘 밸리 남 쪽의 코요테 시티에 있는 ID 테크 놀로지 본사였고, 게임 스튜디오라 는 곳은 파이어피스트 게임즈 제2 스튜디오였다. 유재원은 따로인 것 처럼 말했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으니 많이 이동할 필요 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죠? 헬리콥터 정원 은 4명인데."

퇴근길 못지않게 밀리는 실리콘 밸리의 출근 시간에도 여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헬리콥터 덕이었다.

사실 헬리콥터는 출퇴근용이 아 니라 만약을 대비해 들여놓은 예비 수단이었다. 유재원 혹은 티파니, 그것도 아니라면 이곳 저택에 근무 하는 누군가에게 응급 상황이 생기 면 바로 이송할 수 있도록 말이다.

워낙 도시와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차나 배로 오가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헬기가 답이었 다. 헬기 조종 면허도 간단히 해결 되었다. 경호원 중 헬기 조종 면허 가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대원을 계속 헬기 옆 에 대기시켜 놓을 수는 없으니, 연 차와 신용도가 많이 쌓인 대원들 몇을 뽑아 헬기 조종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 물론 면허 를 따면 월급에 특별 수당을 추가 해 주었다.

헬리콥터라는 소리에 임명한 PD 의 입이 다시 크게 벌어졌다.

유재원과 티파니가 한식으로 아 침을 먹는 그림도 대단히 특색이 있는 모습이었지만,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건 세계 최고 부자의 부자 다운 모습이었다.

헬기로 출근이라니, 너무도 근사 한 그림이었다.

임명한 PD는 PD의 권한으로 유 재원과 함께 헬기에 탈 3명을 골랐 다. 의외인 것은 본인은 빼고 카메 라맨 둘과 메인 작가를 태웠다.

카메라맨은 다양한 각도에서 촬 영을 하고, 작가는 유재원과 이야 기를 하면서 인터뷰도 따고 프로그 램 구성에 쓸 아이템도 만들어 보 라는 의도였다.

마치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대인 의 풍모를 보여주는 임명한 PD였 지만, 좁고 높은 곳에 대한 공포증 을 숨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회사엔 별일 없죠?"

"그럼요!"

유재원의 일상적인 물음에, 앨런 의 일상적인 대답이었다.

ID 테크놀로지가 현재 수행하는 프로젝트도 많았고, 출시 중인 상 품도 많았다. 조직도 방대해서 미 국과 한국 통틀어 고용된 이들만 만 단위를 훌쩍 넘어섰다.

ID 일렉트로닉스가 출범하면서 모바일 AP 관련 팀이 따로 떨어져 나갔음에도 이런 숫자였다.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지만, 웬 만한 일들은 모두 앨런 선에서 처 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문제없 다는 앨런 사장의 보고가 과장은 아니었다.

다만 앨런 사장은 유재원을 따라다니는 카메라와 촬영팀 모습에 살 짝 경직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중에 자동차를 타고 코요테 시티의 ID 테크놀로지 본사에 도착 한 촬영팀이 추가되었던 탓이다.

오직 유재원에게만 포커스가 맞 춰진 상태였기에 앨런 사장에게 카 메라맨이 배정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나 많은 카메라가 집중된 건 처음이기에 어색했던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금방 분 위기에 적응하는 앨런 사장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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