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13화
볼트 사장의 말에 멈춰 서 있던 F2의 시동이 자동으로 켜졌다.
100% 전기자동차인 만큼, 시동 이 켜졌다고 요란한 엔진 소리가 나는 건 아니었다.
대신 시동이 켜지는 순간 브레이 크등부터 좌우 방향 지시등, 헤드 램프까지 모두 불이 들어오면서 상 태 확인이 이어졌고, 부르룽 하는 인위적인 엔진 소리가 나는 것으로 표시가 되었다.
각 부위에 장착된 센서들이 모두 정상임을 나타내자, F2는 부드럽게 가속을 시작했다.
여유롭게 달린다 싶던 F2의 속력 은 순식간에 80km/h를 넘어섰다. 전기자동차의 강점이 순간 최대 토 크까지 오르는 데 조금의 시차도 없다는 점이었다.
F2와 횡단보도 사이의 거리가 100m가 남았을 때, 마네킹을 실은 판자가 움직였다. 사람이 직접 횡 단보도를 걸을 수 없으니 생각해낸 고육지책이 었다.
F2의 인공지능 자율 주행은 그런 마네킹을 보고 최상급 주의 요소인사람이 주행 경로에 근접했다는 걸 인지하고 속도를 줄였다.
그러다 주행 경로와 겹쳐지자 아 예 주행을 정지했다. 둘 사이의 거 리는 20m로 안전하다 못해 너무 여유로울 지경이다.
"브레이크가 정상인 상황에서는 이처럼 안전하게 멈춰 서지요. 그 러면 철도 기관사의 딜레마 상황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보겠습니다. F2, 제자리로 복귀."
볼트 사장의 말에 F2는 차체를 돌려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왔다.
"먼길 오신 자동차 엔지니어분 들, 작업 부탁드립니다."
곧이어 자동차 전문가들로 보이 는 이들이 라이트닝 볼트사 엔지니 어들과 함께 F2에 접근했다. 이번 필드 테스트의 공증을 위해서 초빙 한 외부의 자동차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할 일은 바로 F2의 브레 이크를 일시적으로 고장내 놓는 것 이었다.
라이트닝 볼트사의 엔지니어가 손을 보면 뭐라고 말이 나올 것 같 아서 볼트 사장은 외부 전문가를 데려왔다. 그들은 F2의 브레이크 계통과 직결된 전기 유압기로 들어 가는 전원 커넥터를 뽑는 것으로 간단히 브레이크를 망가뜨렸다.
그 모습을 취재진이 열심히 촬영 했다. 곧이어 준비가 끝났다는 신 호에 볼트 사장이 다시 시동어를 외쳤다.
"F2, 주행 시작!"
그러나 이변이 일어났다.
시동이 켜지면서 인위적 엔진 소 리가 났고 브레이크등을 시작으로 센서 점검이 되다가 경고음과 함께 멈춘 것이다. 브레이크 유압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체크하고 띵 하는 경고음이 계속 이어졌다.
"보시다시피 우리 F2는 브레이크 가 고장이 났을 시 이렇게 자율 주 행 자체가 멈춰집니다."
브레이크 유압기가 끊어졌을 때 나오는 F2 의 반응을 이미 알고 있 었던 볼트 사장이나 관계자들은 평 온한 얼굴이었지만, 취재진 증 상 당수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기 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즉, 브레이크가 고장난 F2가 사고를 낼 일 자체가 없는 겁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주행 중 브레 이크가 고장나는 경우를 가정해야 하니, 디버깅 모드로 진입해 브레 이크 상태 점검을 패스로 놓고 진 행하겠습니다. 그러면 인공지능 자 율 주행은 유압기가 작동하지 않는 브레이크라도 정상으로 인지하고 주행을 할 겁니다."
마치 취재진을 얄밉게 놀리는 투 로 말하는 볼트 사장이었다.
준비 시간은 더 길어졌다. 메인 컴퓨터에 접속해 디버깅 모드로 진입하고, 설정값을 바꾸는 건 말로 는 쉽지만 어려운 작업이었던 탓이 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볼트 사장은 다시금 시동어를 외쳤다.
디버깅 모드에서 세팅값이 달라 지자 브레이크 유압기 전원이 빠진 상태임에도 F2는 출발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300m 앞의 횡단보 도로 향했다.
충돌까지 100m가 남았을 때, F2 로부터 기이잉 하는 특이한 소리와 함께 속도가 빠르게 줄었다. 브레 이크 유압기가 작동하지 않아서 정 상적인 브레이크를 잡을 수 없다는 걸 파악한 F2의 인공지능 자율 주 행 프로그램이, 새로운 방법으로 속도를 줄인 것이다.
바로 전기자동차의 엔진인 전기 모터에 역토크를 거는 것이었다.
전기 모터에 전기를 넣으면 회전 력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가속도를 만들어내는데, 거꾸로 전기 모터에 토크를 넣으면 전기가 생산된다.
보통은 자동차 속도를 줄이거나, 브레이크를 잡을 때 이를 이용해 배터리의 충전량을 보존하는데, 지 금 F2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비상사 태라는 걸 감지하고 더욱 강한 역 토크를 만들어내 자동차를 안전하 게 정지시켰다.
볼트 사장은 자랑스럽게 취재진 을 돌아봤다. 하지만 취재진 중에 납득한 표정을 지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취재진 상당수는 좀더 스펙터클 한 화면을 기대하고 있었던 탓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로 가 보겠습니다. 역토크도 이용할 수 없는 상 황이라는 걸 가정한 최악의 상황이 지요."
이에 부응해 볼트 사장은 새로운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세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드디어 취재진들이 기대한 그림이 나왔다. 디버깅 모드에서 역토크를 사용하 는 것까지 차단되자 F2는 가드레일 과 콘크리트벽, 심지어 전봇대를 이용해 속도를 줄이도록 애를 썼다.
심지어 곡예 운전 비슷한 묘기를 부리며 가까스로 마네킹을 피해 가기도 했다.
시범을 보일 때마다 F2는 크게 파손되어 교체되었는데, 그렇게 넝 마가 된 차량은 실험이 끝날 때까 지 다섯 대에 달했다.
양산차도 아니고 사람이 직접 조 립해야 하는 차량이니 한 대의 가 격은 10만 달러를 훌쩍 넘었던 터 라, 50만 달러를 꼴아박은 것이다. 그것도 정식 안전 인가를 받기 위 한 시험도 아니고, 단순히 취재진 대상 시범에서 말이다.
ID 그룹의 막강한 자본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취재진에게 선사한 임팩트 는 엄청났다. 비록 운전자도 없이 혼자 움직이는 F2지만 운전자와 보 행자 모두를 살리려는 그 의지가 확실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취재진의 기사를 통해 대중에게 전해졌다.
딜레마가 왜 딜레마인가.
그것은 무얼 선택하든 명확한 답 이 되지 못하기에 딜레마였다. 하 지만 F2라면 안전할 거 같다는 인 상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게 유재원의 논문 발표였다.
'기계 학습을 이용한 인공신경망 구성과 인공지능에 대하여'라는 이 름의 논문은 F2의 이슈가 잠잠해질 5월 말쯤 스탠퍼드 전자학회를 통 해 발표되었다.
이라크에서 내전 속보가 한참 전 해지던 그때, 유재원의 논문 발표 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답보 상태였던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 일대 혁명의 시작점이었다.
#401. 역사에 기초하여
F2의 시연회는 엄청난 임팩트를 자아냈다.
터미네이터니, 주인을 죽이는 로 봇이라느니 하는 말은 쏙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취재팀을 위한 실 험은 넥스트컴에서 인터넷 스트리 밍으로 실시간 전송되었기 때문이 다. F2에 몰린 관심을 보여주는 것 처럼 접속자 숫자는 100만을 훌쩍 넘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숫자였 다.
스트리밍이라는 건 오래된 기술 이었지만, 그만큼 다루기 힘든 기 술이기도 했다. 단순한 라디오 스 트리밍이라면 몇만의 동시 접속자 를 쉽게 감당할 수 있었지만, 동영 상은 서버에 큰 부하를 준다.
ID 그룹이 아닌 다른 인터넷 회 사들의 동영상 스트리밍의 경우엔 몇만 명만 동시 접속해도 버벅거리 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넥스트컴의 동영상은 분산처리가 너무도 잘 된 덕에 100만 명이 수백만으로 바뀌어도 문제 없 었다.
그렇게 F2의 시연을 실시간으로 봤던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까지도 구하 기 위한 인공지능의 헌신을 두 눈 으로 똑똑히 보았다.
덕분에 어떻게 해서든 F2와 인공 지능의 흠집을 찾아 과장되게 기사 를 쓰려던 매스컴에서 먼저 몸을 사려야 했다.
인터넷으로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속도보다, 네티즌들이 만든 게 시물이 퍼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반대의 기사가 나오면 다운 버튼 폭격이었다.
다운 버튼은 몇 달 전에 넥스트 컴 뉴스페이지에 도입된 새로운 정 책이었는데, 기자나 언론사에 부여 되는 패널티는 아니다.
단지 넥스트컴 뉴스페이지 1면에 서 해당 기사가 내려지는 것뿐이다. 더욱이 넥스트컴 뉴스페이지에서 삭제되는 것도 아니고, 섹션을 찾아가면 보인다.
대신 넥스트컴 뉴스페이지 1면에 있는 기사와 섹션으로 내려가 찾아 야 하는 기사의 클릭 수 차이는 어 마어마하다.
1면에서 클릭 수를 잘 받은 기사 의 고료는 수천만 원 혹은 수억에 달할 만큼 막대한 수익이 나오지만, 섹션 페이지로 내려간 기사는 많아 야 몇백만 원, 적으면 몇만 원대로 확 줄어드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재원의 논문은 결정적이 었다.
유재원으로서는 두 번째 내는 논 문이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부족해 권위 있는 저널에 실린 건 아니었 다. 그저 스탠퍼드 대학교의 전자 학과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하 는 전자학회에 낸 것이었다.
심지어 박사 학위자가 낸 것도 아니고, 그저 대학교 졸업생이 낸 논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임팩트는 그 어떤 박사 학위 논문보다 강력 했다.
현재 최고의 관심을 받는 인공지 능의 핵심 알고리즘에 대한 논문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단순히 이론적인 토대를 만드는 논문이 아니라, AI 아이즈 와 F2, 그리고 넥스트컴을 통해서 막강한 성능이 검증된 인공지능 골 드의 알고리즘이었다.
스탠퍼드 전자학회는 몰려드는 전화와 이메일로 단숨에 폭주 상태 에 돌입했다. 당연히 이들의 연락 은 모두 유재원이 발표한 논문 전 체를 입수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습 니다!
그러한 문의에 대해 스탠퍼드 전 자학회 측의 반응은 어느 순간부터 고정되었다.
인터넷에 업로드했으니 알아서 받으라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스탠 퍼드 인터넷 시스템으로 몰린 트래 픽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숫자를 자랑했다.
더욱이 논문을 받으려면 스탠퍼 드 인터넷 학술 커뮤니티에 가입이 되어 있어야 했다.
덕분에 유재원의 논문을 정식 경 로로 입수한 사람들은 시도한 사람들에 비해 그 숫자가 매우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팩트는 F2 의 시연보다 강력했다.
정교한 수식과 소스 코드가 그대 로 들어 있는 유재원의 논문은 수 많은 학자들, 연구원들에 의해 글 자 하나까지도 분석에 들어갔다.
반박과 비평을 해 보려는 시도였 다.
유재원이 가진 위상이 거대한 만 큼, 혹시나 논문에서 결점을 찾아 낸다면 쏟아지는 명예는 어마어마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논문이 발표되고 며칠, 몇 주가 지났음에도 오류를 찾아내 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오히려 반대로 논문을 기초로 아 주 기본적인 기계 학습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팀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논문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재현이었으니, 유재원의 논문이 진 짜라는 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인공지능 연구에 혁명이 일어났 다는 스탠퍼드 학과장의 말은 절대허풍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하나둘 기계 학습을 시작하는 팀들이 나오면서 유재원 에 대한 관심은 다시금 폭증했다.
특히나 리얼카메라에서 92년부터 기계 학습 시스템을 가동했다는 것 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학자들의 경우엔 유재원을 학술 대회에 초빙해 논문에 대한 직접 설명을 듣고 질의응답도 하고 싶다 며 초청장을 보냈다.
안타깝게도 유재원은 참 바쁜 몸 인지라, 초청장은 모두 거절했다.
그렇지만 초청장을 보낸 학회나 학자들은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실 망감을 보인 이들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에서 최신의 신기술을 이렇게 정교한 논문으로 만들어 발표한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학회는 신기술로부터 점차 뒤떨어 진다는 위기감, 아니 공포심이 있었 는데, 유재원의 논문 발표로 인해 그것들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고마움을 느낀 학자들은 일반 대 중이 갖고 있었던 인공지능에 대한 불안감을 본인들이 나서서 해소하 기 위해 움직였다.
덕분에 인공지능 골드는 스카이 넷의 전신이 아니냐는 사람들 사이 의 루머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소 되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