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14화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등등 IT 관련 학회에서 유재원의 이름을 애 타게 찾을 때, 주인공인 유재원은 한국에 있었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이 된 노 무현 당선자의 취임식에 초청을 받 은 덕이었다. 아쉽게도 티파니는 출장 스케줄이 있어서 한국에는 유 재원 혼자 입국했다. 티파니가 얼 마나 아쉬워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꽃이 피 고 새싹이 돋는 따듯한 5월의 날씨 였지만, 티파니가 이번에 출장을 가게 된 곳은 5월에도 얼음이 얼어 있는 동토의 땅 시베리아였던 탓이 다.
"다음엔 나도 같이 갈게."
아쉬워하는 티파니에게 유재원은 다음번엔 같이 가겠다는 위로를 했 다.
사실 티파니의 시베리아 출장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셰브롱의 미래전략실 프론트매니 저라는 직함을 가진 티파니의 시베 리아 공식 방문이라면 당연히 뻔한 일 아니겠는가.
예전 푸틴 대통령이 유재원과의 친분을 위해 시베리아의 특정 지역 탐사, 개발권을 T&U 리서치에 팔 았던 적이 있었다. 그 가격은 헐값 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 지만 업계에서의 반응은 그다지 긍 정적이진 않았다.
자원의 보고 시베리아라고는 했 지만, 몇 번을 검사해도 나오지 않 는 지역이 있었고, T&U 리서치가 손에 넣은 탐사 지역 역시 그렇게 구분되던 지역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탐사 활동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사이에 911 테러가 일어났고, 셰브롱의 후계 구도에도 격변이 일어나며 티파니가 다시금 셰브롱에 복귀했다. 그러면서 T&U 리서치 역시 셰브롱에 인수되었다.
당연하게도 시베리아 탐사, 개발 권 역시 셰브롱의 자산이 되었다. 이후 시베리아 탐사에 대한 관심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탐사팀의 활 동은 계속되었다.
셰브롱의 공식 지원이 아닌, 티 파니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활동 자금 덕이었다. T&U 리서치에 대한 티파니의 마음은 각별했다.
T&U 리서치를 통해 23번 유정 에서 검은 기름이 뿜어져 나왔을 때의 그 짜릿함은 절대 잊을 수 없 는 일이었다. 더욱이 T&U 리서치 의 조직은 미래전략실의 하위조직 으로 그대로 들어온 것이기에 운영 비 문제만 해결된다면 얼마든지 개 인적인 판단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엊그제, 세상이 인공지능 이슈에 정신이 없을 때, 시베리아 탐사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터졌다는 연락이었다.
시추기로부터 검은 황금이 솟구 쳤다는 보고에 셰브롱이 뒤집어지 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프레더릭 테일러 2세, 현 셰브롱의 오너도 오랜 칩거를 깨고 다시 등장했을 정도다. 시베리아로 급하게 떠나는 티파니에게 함께 가자는 연락이었 다.
프레더릭이 나섬으로써 셰브롱의 임직원들도 대거 동행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러시아 측에서 준비하는 의전의 규모도 커졌다. 푸틴이 직접 나설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러시아의 2인자인 메드베데프 총리 가 나서는 규모로 커졌다.
셰브롱 내에서는 티파니가 또 한 건 올렸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검 은 황금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도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텍사스 23 번 유정을 시작으로 셰일 가스 개 발에도 성공했던 티파니였다. 하나 하나 엄청난 대박이었는데, 이번에 는 역대 최강이라는 말이 나오는 정도다.
실제로 유재원이 찍어 준 지역은 시베리아에서 터진 유전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경제적 채산성이 있는 매장량만 300억 배럴 이상이었고, 전체 매장 량은 1,000억 배럴이니 세계 최대 의 유전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유전인 가와르 유전에 비견될 정도였다.
이라크 내전으로 원유 가격이 치 솟고 있는 가운데,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은 그저 부 럽게만 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티파니와 프레더릭 그리 고 셰브롱의 임원들이 시베리아로 급하게 떠나는 날, 유재원은 한국 에 들어왔고, 대통령 취임식의 VIP 자리에 앉아 있는 중이었다.
"따듯해서 좋네."
역사적 자리에 앉아 있는 유재원 이지만, 부담감은 전혀 없는 얼굴 이었다.
원래 한국의 대선 일정이었다면, 취임식은 한겨울 찬바람이 쌩쌩 부 는 날 치러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명헌 전 대통령의 서 거로 인해 일정이 앞당겨지면서 5 월에 취임식을 하게 되었다. 덕분 에 유재원은 가벼운 원단의 정장을 입었지만, 한기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도 따사로운 햇빛 덕 에 슬슬 졸음이 몰려올 정도였다. 만약 이 자리에서 잠깐 졸기라도 하면 평생에 남을 흑역사 하나를 만드는 것이기에, 유재원은 졸음을 가볍게 물리쳤다.
-선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 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 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 및 민 족 문화 창달에 노력하고 대통령으 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합니다. 대통령 노 무현.
선서를 마친 노무현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는 유재원은 이번 17대 대선에 대해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17대 대선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인제가 이인제 했고, 전재 준이 전재준 했던 선거였다. 주인 공은 노무현이었지만, 주인공 이상 가는 존재감을 자랑했던 게 두 사 람이었으니 말이다.
경선 패배 후 탈당, 신당 창당 후 대통령 선거 참여라는 희대의 루트를 탄 이인제도 대단했고, 단 일화 합의 후에 여론 조사에서 석 패, 노무현 단일화로 합의를 이루 었는데 선거 하루 전날 단일화 파 기를 선언한 전재준도 대단했다.
눈이 돌아간 이인제라면 몰라도 전재준이라면 유재원이 컨트롤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덕 분에 전재준은 유감없는 트롤력을 선보였고 그것이 결국 제 발목을 잡아 버렸다.
다행히라면 그렇게 나가떨어진 이인제와 전재준은 모두 정계 은퇴 를 선언하고 물러났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에게 아직 염치라는 게 남 아 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회 귀 전 21세기 중반이라면 대선에 패하고도 욕심이 남아서 곧바로 당 대표로 복귀하는 게 기본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정계 은퇴라는 건 잠정적이 었고, 언제고 다시 돌아올 테지만 당분간 조용할 것임은 틀림없다.
이인제와 전재준이란 거물이 사 라진 통일국민당에는 타격일 거라 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 지만 의외로 통일국민당에는 큰 혼 란이 없었다.
새로운 구심점이 생겨나고 있었 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까지는 10개월 정 도 남아 있었으니 여유롭기도 했고, 새로운 구심점도 나름 강력했다.
김&정 법무 법인의 대표 정병우 변호사였다.
통일국민당은 전재준의 은퇴와 함께 비상 대책 위원회가 꾸려졌고, 비상 대책 위원장으로 정병우 변호 사를 영입했다.
통일국민당의 영입이 의원들의 생각이었다면, 정병우 변호사의 통 일국민당 입당은 유재원의 허락을 받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쁠 게 없었기 때 문이다.
김&정 법무 법인이라 하면 서민과 중소기업이 법원이나 검찰을 찾 게 될 때 필수적으로 선택하는 가 장 든든한 친구였다. 상류층이나 대기업에 비해 법률 서비스의 사각 지대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김&정 법무 법인을 찾았다.
지금도 인권 변호사들이 제법 활 동 중이지만, 규모가 크고 체계적 으로 움직이는 김&정 법무 법인만 큼 효과적인 곳은 없었다.
당연히 대중적인 이미지도 아주 좋았다. 그런 김&정 법무 법인의 정병우가 통일국민당에 입당하는 것만으로도 통일국민당의 지지율은 3%나 올랐다.
회귀 전 정병우란 사람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잘 아는 유재원에게 는 여러모로 시사점을 안겨 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정병우가 그때는 2016년 겨울,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국정농단 사태의 주역 중 하나였다면, 지금 은 인권 변호사로서 우뚝 섰다.
물론 재야의 인권 변호사가 아니 라, 법조인들 모두가 선망하는 김& 정 법무 법인의 대표로서의 입지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인상도 완전히 달라졌 다.
김&정 법무 법인의 대표를 10년 넘게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덕이 쌓인 것인지, 회귀 전의 그 띠꺼운 얼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언뜻 보면 부처님 같아 보일 정도로 온 화한 인상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정병우 변호사는 서는 자리가 달 라지니 생각도 달라진다는 말의 가 장 확실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어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 가 있겠습니다.
유재원이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 이에, 대통령 취임식에서 제일 중 요한 대목이 시작되었다.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 처음 선 자리에서 나오는 발언은 앞으로 4 년간의 국정에 대해 미리 볼 수 있 는 청사진이나 마찬가지였다.
미리 예습(?)을 해 놓은 유재원 은 과연 본인이 알고 있는 것과 얼 마나 달라졌을지, 기대를 하며 노 무현 대통령의 입을 주목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시작은 똑같네."
유재원은 21세기 중반까지의 굵 직한 이벤트들을 머릿속에 넣고 다 니는 사람이었다. 대부분 IT 분야 첨단 기술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한국의 대통령 취임사 정도는 함께 기억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 서두는 유재원의 기억과 100% 일치했다.
그렇지만 곧 바뀐 부분이 나타나 기 시작했다.
-아울러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전임 대통 령 여러분, 미국 리버만 부통령, 김 영남 상임위원회 위원장님을 비롯 한 세계 각국의 경축 사절과 유재 원 회장을 비롯한 내외 귀빈 여러 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취임식에 참석한 귀빈들께 감사 의 인사를 드리는 대목부터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참석 인사의 면면이 크게 달라 졌으니 말이다.
원래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가장 큰 거물 인사는 고이 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였다. 그 런데 이번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외무대신을 보내는 것으로 끝 이었다.
이유는 바로 유재원이 참석한다 는 소리 때문이었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20년으 로 늘려 버린 제2차 경제 위기 때 문에 아직도 불황이었다. 오죽하면 IMF를 맞았다가 회복한 한국의 경 제 성장률이 더 높은 지경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은 반 도체와 LCD에 선점적인 투자를 한 덕에 전 세계를 강타한 IT 혁명의 바람을 탈 수 있었다.
특히 반도체 분야의 성과는 대단 했는데, 원래 강점이던 메모리 분 야는 물론이고 이제는 비메모리 분 야에서도 큰 성과가 나고 있었다.
바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 세서와 CCD에서였다. 유재원이 모 바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완전무료로 공개했고, 전 세계 가전, 통 신 업체는 모바일 안드로이드 호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여기에 필요한 게 바로 M시리즈 프로세서였다. ARM과는 완전히 다 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바일 프로 세서였기에, 호환 CPU를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즉, M시리즈의 독점인데, 각 전 자 업체에서는 최소 100만 개, 많 게는 천만 개 단위로 구매했다. 물 론 천만 단위로 주문서를 넣은 곳은 중국 업체였다.
최신형 M4가 아닌 M3 프로세 서였는데,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 한 보급형 기기를 만들기 위해서 대량 주문으로 가격 할인을 최대한 노린 것이었다. 원래 저렴한 M3 칩에 대량 주문 할인으로 더 저렴 해졌으니, 중국 시장에 딱이다.
이처럼 ID 일렉트로닉스의 대전 공장은 오로지 M시리즈를 만드는 것으로만 벅찰 지경이고, 메모리 반도체는 일성에서 받아낸 수원 공 장에서 전담하는 중이다.
덕분에 한국의 반도체 사업이 ID 일렉트로닉스 하나에 너무 편중되 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지만, 비메모리칩 분야는 꿈도 꾸지 못했 던 과거에 비하면 몇 배는 나았다.
비단 반도체뿐만이 아니라 LCD 시장에서도 한국은 훨훨 나는 중이 었다. LCD의 경우엔 금성전자 역 시 미리 투자를 해 놓은 덕에, 디스 플레이의 대세가 브라운관에서 LCD 로 변하는 그 파도를 제대로 탈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은 IT 혁명에서 거의
밀려난 상태였다.
반도체와 LCD의 원조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있었음에도 보수적 투자로 인해 밀려나고 말았다. 그 원조 기술이라는 것도 이제는 최신 기술에 밀려 구식이 되었으니 말이 다.
그나마 아직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는 건 2차 전지 기술이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내장형 2차 건전지는 산요 전기의 것이었는데,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덕분에 모바일 안드로이 드 호환 제품의 개발 바람 역시 산 요 전기에게도 닿았고, 전 세계에 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산요 전기 역시 깊게 들 어가면 최대 주주는 신일본투자은 행이었고, 신일본투자은행은 ID 인 베스트먼트의 자회사였다.
그러니 산요는 일본 회사가 아니 라 유재원의 회사였지만, 일본은 의도적으로 그 이야기는 쏙 빼고, 자랑스러운 일본 기업으로 꼽았다.
이처럼 궁지에 몰린 일본의 언론 들은 제2차 경제 위기의 주범 중하나로 ID 인베스트먼트, 그리고 오너인 유재원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따지고 본다면 일본의 자랑이었 던 장인 정신의 신화가 고베 강철 스캔들로 붕괴했고, 그에 따른 여 파로 시작된 것이 경제 위기였으며, 유재원이나 조지 소로스나 쓰러지 는 일본 경제에 가속도를 붙인 것 뿐이었다.
나중엔 전 세계 투기 자본들이 다 몰려들어 양털 깎듯 일본이 쌓 아 올린 경제적 성과들을 강탈했다.
일본을 이끄는 정치인들이나 경 제인들은 본인들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적을 만들었고, 제일 만만한 유재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앞장선 이들이 일본의 자 민당 정치인이었으니, 자민당 총리 인 고이즈미 총리가 참석을 취소하 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직 정신 못 차린 거지."
그런 일본에 대해서 유재원은 정 신 못 차렸다는 문장으로 요약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