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89화 (689/1,007)

32권 23화

"오오!"

ID나 애플 어느 한쪽에 팬심이 쏠리지 않은 토마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키지의 봉인을 제거하 고 박스를 열었을 때, 터져 나오는 감탄을 막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 행사장에서 직관으로 봤 을 때도 대단했지만, 직접 손에 쥔 느낌은 차원이 달랐다.

루비 레드!

너무 붉기만 하면 촌스러워지지 만, 이 녀석은 너무도 고급스러웠 다. 진짜 루비라는 보석을 녹여다케이스로 만든 것 같았다.

"패키지는 간단하군."

반면 패키지는 너무 간소했다.

보석이 들어 있으니, 보석함처럼 꾸미면 좋았을 텐데, 무광 아이보 리 색상의 종이 케이스에 안드로이 드 S3라는 모델명이 전부였다. 대 신 S3 본체에 대한 완성도는 역대 최대급이라 할 수 있었다.

컬러도 예술적이었지만, 부품과 부품 사이의 접합부의 단차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이 안에 담긴 내용물 이겠지만."

언박싱용 사진을 모두 찍은 토마 스는 바로 다음 순서로 기기 변경 을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특히 같은 안 드로이드 스마트폰이면 USB 케이 블 하나로 빠르고 간편하게 모든 데이터를 옮길 수 있었다.

데이터가 옮겨지기까지 걸린 시 간은 5분 남짓. 데이터 전송은 아 무런 에러도 없이 순식간에 끝났다.

"마지막으로 유심 교체."

여기서 작은 장애물이 나왔다.

내부 구조가 크게 달라진 모양인 지, 기존의 유심 카드가 맞지 않는 것이다. 설명서를 읽어 보니 그냥 주변부 플라스틱을 잘라내면 된다 고 되어 있었다. 동봉된 펀칭 도구 도 있었고, 사용 설명서도 그림으 로 있었다.

펀칭기로 일반 유심 카드를 나노 유심으로 만든 다음 삽입하는 것으 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토마스는 설레는 가슴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특유의 맑 은 종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부팅이 된 S3는 예의 안드로이드 로봇이 나타났다.

보통은 귀여운 안드로이드 로봇 이 열심히 달려서 부팅을 마무리하 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열심히 달 리던 안드로이드 로봇이 허공에 홀 로그램 인벤토리를 만들더니 큼지 막한 안경을 꺼내 썼다.

그러다가 거울을 꺼내 안경이 어 울리는지 살펴보더니, 토마스를 향해 몸을 돌리며 고개를 숙여 인사 했다.

-AI 아이즈에 토마스 님의 얼굴 을 등록하시겠습니까?

급기야 안드로이드 로봇이 말까 지 했다. 물론 녹음된 문구였고, 토 마스라는 유심에 저장된 이름을 읽 어 줄 때는 TTS(Text-to-Speech) 프로그램의 느낌이 다분했다. 그렇 지만 몰입해 있는 토마스에겐 아무 런 위화감이 없었다.

-승낙하신다면 고개를 끄덕여 주 시고, 거절하신다면 저어 주세요.

-이러한 페이스 제스처는 AI 아 이즈의 등록 없이도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오! 처음부터 신기술이군!"

뭐든 리뷰 페이지에 쓸 이야기로 생각이 이어지는 토마스였다. 그야 말로 길 가다 1달러짜리 지폐를 주 운 기분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예 혹은 아니오 선택을 하는 경 우를 무수히 보게 된다.

손이 좀 작은 토마스였기에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가 그 런 선택 창이 뜨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젠 간단히 고 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것으로 선택 창을 제어할 수 있다니 너무도 편 해질 것 같았다.

하여튼, AI 아이즈 사용을 위해 얼굴 등록은 리뷰어로서 당연한 일 이었기에, 토마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자 안드로이드 로봇이 화면 에 네모난 창을 띄웠다. ID톡의 스 마일 아이콘 얼굴이었다. 놀랍게도 스마일 아이콘의 얼굴은 토마스가 전면 카메라에 얼굴을 비춘 각도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이며 움직였 다.

민얼굴이 그대로 카메라에 찍혀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부끄러워하 거나 아예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아바타였다.

"이것도 좋군!"

본인 얼굴에 그다지 자신감이 없 는 토마스에겐 딱 안성맞춤인 기술 이고 배려였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을 찍으려다가 카메라 전환 버튼을 잘못 눌러 본인 얼굴이 크게 나올 때면 얼마나 놀라는지 모른다.

ID톡의 스마일 얼굴이 대신 화면 에 나오니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페이스 키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야각 없이 모든 각도의 얼굴을 비추니 0%에서 시작하던 진행률이 100%를 찍었다.

마지막으로 만에 하나 페이스 키 가 깨졌을 때, 복구를 위한 핀 번 호를 설정하자 AI 아이즈 사용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페이스 키를 사용할 수 있는 건가?"

토마스는 곧장 스마트폰 보안 방 식을 핀 넘버에서 페이스 키로 바 꾼 다음, 화면을 끄고 다시 켰다.

"오호!"

유재원 회장이 시범을 보인 그대 로였다.

안드로이드 S3를 들고 얼굴을 비 추자 바로 잠금이 풀리며 홈 화면 이 나타났다. 혹시나 아무 얼굴이 나 다 풀리는 거 아닌가 싶어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시 시도해 보는 토마스였다. 그러자 이번엔 잠금 화면이 계속되었다.

징 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진동 도 일어났다. 곧이어 얼굴을 인식 할 수 없다는 문구, 암호로 잠금 해제를 하려면 화면을 터치하라는 문구가 동시에 떴다.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자 바로 잠금이 해제되었다.

"와우!"

제대로 된 리뷰를 쓰려면 앞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계속해 봐야겠지 만, 첫인상은 완벽했다. 곧이어 토 마스는 이번 안드로이드 S3의 핵심 기능인 AI 아이즈 앱을 실행했다.

토마스에게 첫인상은 그야말로 만족스러웠다. 899달러가 전혀 아 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 리뷰의 핵심은 AI 아이즈였 다.

-AI 아이즈를 처음 실행했습니 다. 개인 정보 이용에 대한 동의가 필요합니다.

-개인 정보 이용 계약서를 끝까 지 보시고, 이에 동의한다면 고개 를 끄덕여 주세요. 개인 정보 이용 에 동의해 주신다면 AI 아이즈의 지능이 향상될 뿐만이 아니라, 지능 향상에 기여해 주신 만큼, N포 인트를 배당해 드립니다.

"배당? 뭔가 중요한 것 같지만, 지금은 리뷰가 먼저니, 동의!"

마음이 급한 토마스는 급히 고개 를 끄덕이며 AI 아이즈 구동을 마 쳤다.

과연 몇 달 전 예능 프로그램에 서 보여준 것만큼 놀라운 퍼포먼스 를 발휘해 줄지 검증할 테스트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최대한 빨리 분석해 프리뷰는 2 시간 내로 올리고, 심층 리뷰는 내일 저녁에 끝내는 것이 토마스의 목표였다.

토마스는 바쁘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시간 싸움이었기 때문 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하드웨어 리뷰어 라는 직업을 가진 경쟁자들이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 기에, 안드로이드 S3를 조작하는 손놀림이 한층 빨라졌다.

다음 날.

전 세계 IT인들의 축제 IDDC가 한창 열리고 있는 그때, 샌프란시 스코만 너머의 리치먼드에 자리한 셰브롱 본사의 최상층 이사회실에 는 얼음장과 같은 분위기가 펼쳐지 고 있었다.

프레더릭이 소집한 임시 이사회 때문이었다.

이사회에 올라온 안건은 단 하

나, 티파니 유의 등기 이사 선임이 었다.

티파니를 셰브롱의 등기 이사에 올린다니.

그 소식에 한 번만 더 기적을 보 여 달라고 했는데 이건 뭐지? 하고 의문을 표시하는 건 유재원이었다.

설마 이제 셰브롱의 후계자 레이 스가 끝났나? 티파니가 새로운 후 계자인가? 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건 티파니의 이모들, 그리고 이모 들에게 줄을 섰던 임원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모들과 그쪽 라인은 이사회 소집과 안건이 발표되었 을 때부터 서로 몇 번씩이나 미팅 을 하며 절대 반대를 다짐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이나 이모들이나 모두 헛다리였다.

프레더릭이 유재원에게 부탁한 상황에서 달라진 건 없었고, 티파 니를 후계자로 공인한 것도 아직 아니었다.

단지 티파니가 러시아에서 터트 린 대박에 맞춰 상을 주는 것일 뿐 이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 확실 한 프레더릭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면, 티파니가 대박을 터트린 다음엔 늘 상이 있었다.

텍사스 23번 유정이 터졌을 때 는, 티파니의 사업체 T&U 리서치 를 거금을 들여 인수해 주었고, 티 파니에게 셰브롱의 팀장 자리도 마 련해 주었다. 수평굴착기법을 완성 해 셰일 가스 개발에 성공했을 때 엔 미래전략실 프론트매니저로 승 진시켜 주었다.

그렇게 따지면 이르쿠츠크 유전 에 대한 포상은 조금 늦은 편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천연가스와 질 좋은 원유가 터져 나온 건 100일 전이었으니 말이다. 뭔가 대단한 포상을 준비하나 싶었는데, 그게 등기 이사였다.

티파니의 이모들은 깜짝 놀라 기 절할 정도였지만, 프레더릭은 절대 과한 포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적 매장량만 300억 배럴이 넘는 유전을 찾아낸 것이다.

경제적 매장량 계산도 보수적인 숫자였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 훨 씬 더 보수적인 계산법으로 200억 배럴이라고 하고, 러시아와의 분배 비율이 5 : 5가 되었으니 셰브롱은 100억 배럴을 확보했다.

현재 유가는 1배럴당 68달러.

이라크 내전으로 연초에 비해 3 배나 오른 고유가 상태다. 하여튼 현재의 유가를 바탕으로 이르쿠츠 크의 가치를 계산하면 6,800억 달 러가 된다.

티파니의 등기 이사 등극이 당연 해 보였고, 티파니의 이모들이 후계자가 확정되었다고 착각할 만큼 엄청난 액수가 튀어나온다.

실제로 셰브롱의 주가는 3번째 랠리를 시작하며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600억 달 러 수준이었던 시가 총액은 지금 2 천을 넘어 3천억 달러 후반대를 바 라보고 있을 정도다.

석유 업계 부동의 1위였던 엑손 모빌과 불과 100억 달러 정도도 차 이가 나지 않을 만큼 근접한 것이 다. 실제로 석유 기업의 가치 평가에 가장 큰 요소인 확보한 유전의 규모에서 셰브롱은 불과 몇 년 사 이에 엑손모빌의 뒤를 바싹 쫓았다.

덕분에 올해 초부터 주식 시장에 서 셰브롱의 주식은 씨가 마르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이르쿠츠크 유 전이 터지기 하루 전부터 랠리가 시작되었다. 남다른 정보력을 가진 월 스트리트에서는 유전이 터지기 직전부터 매수세가 붙었다.

사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파는 사람은 없으니 아주 적은 거래량만 으로도 셰브롱의 주가는 하늘을 찌를 듯 상승했다.

이러한 기세가 연말까지 이어진 다면 4천억 달러를 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엑 손모빌의 주가 총액을 뛰어넘는 액 수였고, 이는 곧 석유 업계 1위에 셰브롱이 등극한다는 의미였다.

같은 시각.

"검찰에서 널 찾아? 왜? 청와대라도 해킹했어?"

-아니! 난 해킹에 관심 없는데! 설사 한다고 해도 한국처럼 시시한 곳은 안 해!

티파니가 셰브롱 이사회의 호출 로 본사에 갔을 때, 유재원은 영식 이와 면담 중이었다. 영식이의 요 청으로 이뤄진 면담이지만, 직접 얼굴을 보면서 하는 건 아니었다. ID톡의 화상 미팅을 통해 이뤄지는 대화였다.

" 진짜?"

-응! 진짜야!

하여튼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지 만, 영식이는 아닐 것이다. 영식이 수준에 청와대 따위는 성에 차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검찰에서 왜 널 찾을 까?"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보이스 피싱 아니야?"

-보이스 피싱?

보이스 피싱이 아직 대중화된 범 죄는 아니었기에, 영식이는 영 모 르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보이스 피싱이 대중화되는 건 2006년도 경으로, 지금은 알음알음 퍼져 가는 단계였 다.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이 른 보급, 액티브X가 이뤄지는 오픈 뱅킹으로 은행에 가지 않고도 쉽게 돈을 받고 송금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러니 보이스 피싱도 충분히 가 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검찰청 수사관이라고 한 사람이 내이름을 정확히 알고 물어봤다고 하 셨는데?

"그러니까 보이스 피싱이지."

- 그런가?

"너 파란이란 한국 포털 사이트 에 가입한 적 있어?"

-파란? 음, 아마 한 거 같은데.

유재원은 영식이의 대답에 심증 을 굳혔다.

회귀로 압도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