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권 24화
파란이란 포털 사이트는 요즘 한 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문제의 사이 트였다.
긍정적인 이슈가 아니라 매우 부 정적인 이슈였다. 바로 개인 정보 유출 때문이다.
IT 기술의 빠른 발전에 맞춰서 강력한 개인 정보 보호법도 일찍 만들어졌고, 유재원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설계하면서 인터넷으로 사업자들이 개인 정보를 수집할 이 유를 원초적으로 삭제했다.
인터넷 사업자가 서비스 가입자의 개인 정보를 한데 모으는 게 아 니라, 개인 정보를 안드로이드 운 영체제의 보안 영역에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 제와 인터넷 서버 사이의 통신을 통해 사용하게끔 했다.
이를 무시하고 억지로 서버에 개 인 정보를 수집하는 사이트들도 있 긴 한데, 그런 회사들이 소수였다.
게다가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패널티가 너무 강력해서 웬만해선 그런 식으로 사이트를 만들지도 않 았다.
단적으로 연초에 한국에서 터진 KT 인터넷 대란의 여파 중 하나가 개인 정보 유출이었다. KT란 회사 는 명색이 공기업이면서 표준을 잘 따르지도 않았다.
그런 KT의 자회사 중에는 '파란' 이라는 포털 사이트도 있었다. 포 털 사이트의 시조이자 공룡인 넥스 트컴에 밀리고, 토종 후발 주자인 다움에도 밀려 점유율 3등 수준에 머무는 사이트지만, 그래도 가입자 는 200만을 넘긴 대형 사이트였다.
그런 파란이란 포털 사이트는
KT 인터넷 대란에 직격탄을 당했 다.
인터넷 대란의 원인은 DNS 서 버 다운으로 인한 URL 접속 불가 였다. 그런데 파란 측에서는 문제 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접속이 불 가능해진 것을 해결하겠다고, 서버 세팅을 이것저것 만져 보다가 보안 세팅까지도 건드리게 된 것이다.
온라인 상태에서 보안 세팅을 건 드리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 인데, 무조건 살려내라는 상부의 닦달에 서버 관리자도 두 손 두 발든 것이다.
그렇게 초강수를 쓰고 무사히 복 구가 되었으면 다행인데, 머피의 법칙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또 최악 의 상황이 터졌다.
일찌감치 인터넷 대란의 문제를 파악한 해커들이 있었고 여기저기 다 찔러 보다가 파란이 걸려든 것 이다.
파란의 서버를 공격해 데이터베 이스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고, 데이터도 훔쳐갔다. 그런데 그렇게 탈취된 데이터에는 파란에 가입한 회원들의 개인 정보도 있었다.
주민등록번호는 기본! 일부 유료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의 경우 결제 에 사용한 통장 번호 혹은 카드 번 호까지 탈탈 털렸다.
개인 정보를 서버에 보관할 것이 라면, 적어도 암호화를 해 놓아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200만 가입자들의 주민 번호는 이제 공공 재나 다름 없게 변했다.
당연히 가입자들은 파란에 대해 집단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가 본데?
유재원의 설명에 영식이도 보이 스 피싱 쪽으로 생각이 굳어졌다.
파란 사이트 가입자들이 털린 개 인 정보를 보이스 피싱 업체가 습 득했다면, 어제 영식이네처럼 식겁 한 전화가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 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건 있으 니, 일단 법무팀에 연락을 해 놓을 게. 한번 알아보라고."
웅, 고마워.
영식이를 안심시킨 유재원은 ID 톡에서 한국의 법무팀장을 선택해메시지를 보냈다. 영식이에게 일어 난 일에 대해 설명하고, 실제 검찰 에서 영식이를 찾았는지 알아봐 달 라는 내용이었다.
"티파니는 잘하고 있으려나?"
영식이와의 화상 미팅을 마친 유 재원은 자연스럽게 티파니가 걱정 되었다.
이모들의 등쌀이라고 해 봤자 티 파니를 위축시킬 만한 힘도 없었고, 이사회의 껄끄러운 양반들 역시 프 레더릭에게는 감히 맞설 생각도 못 하는 사람들이다.
유재원이 걱정하는 건 그저 그 자리에 함께할 불편한 사람들 때문 이지, 티파니가 등기 이사에 오르 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음, 셰브롱 역사상 최연소 등기 이사이려나?"
한국의 로열패밀리였다면, 시작 부터 임원을 한다든가 초특급 승진 으로 이사를 다는 건 식은 죽 먹기 였을 테지만, 프레더릭의 셰브롱은 능력제였다. 로열패밀리라도 본인의 능력을 증명해야 합당한 자리가 생 겨난다.
이러한 풍조는 프레더릭만 그런 게 아니라 셰브롱 전체를 관통하는 기업 문화였다. 그렇기에 이번에 티파니가 등기 이사가 된다면 셰브 롱 역사상 20대 등기 이사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에 걸맞은 선물을 준 비해야겠네."
유재원은 컴퓨터를 켰다.
티파니에게 안성맞춤인 선물을 찾 기 위함이었다.
아직 IDDC 행사가 끝난 건 아 닌데도 여유롭기 그지없는 유재원이다. 그렇다고 방심을 하는 건 절 대 아니다. 그만큼 IDDC에 대한 준비도 철저했고, 자신감도 넘친다 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유재원이 메인 스테이지에 서서 발표하는 건 어제 안드로이드 S3로 끝이었다.
오늘은 이찬수 사장이 ID 오피스 03 for AI 아이즈를 발표할 예정이 었다. 작년 IDDC 2002에서 ID 오 피스 파트는 큰 혁신을 보여주진 못했다.
대신 칼을 갈고 나온 지금에는 AI 아이즈와 결합되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리얼카메라에서 보여준 AI 아이 즈를 통한 이미지 문서 변환은 기 본이고, 丁프의 반대인 음성인식 필 기도 가능해졌다.
안드로이드 S3와 결합한 상태에 서 말을 하면, 그 말을 바로 텍스 트 문구로 변환해 주는 기능이었다. 또박또박 말해야 높은 인식률을 보 이지만, 일상 대화에서의 인식률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음성 인식 필기의 응용법도 상당 했다. 단적으로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각종 영상물에서 나오는 대화를 빠르게 기록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건 없었다.
여기에 기초적인 번역 기능도 제 공되는데, 전문 번역사의 번역에 비하면 퀄리티는 많이 떨어진다. 대신 사전 기능은 무척이나 쓸모가 있었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혁신이라 할 수 있는데, 덕분에 과금 체계가 조 금 달라졌다.
구독제!
12만 원짜리 패키지를 하나 사면 평생을 쓸 수 있었던 전과 달리, ID 오피스03 for AI 아이즈는 월간 혹은 연간 구독권을 사는 방식이다.
패키지로 팔면 간편한데, 기술적 문제나 법적 문제로 인해서 패키지 상품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자 인식이나 음성 인식, 심지어 페이스 제스처 모두 인공지능 골드의 능력으로 발 휘되는 기능이었다.
골드의 기능은 날로 고도화 될 테고, 골드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처음 가격으로 무한정 이 용할 수 있다면 ID 그룹에는 엄청 난 손해였다. 더욱이 개인 정보 정 책이나 인공지능 정책은 각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해당 나라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인공지능을 배척하여 인공지능 서 포트를 하지 못하게 되면 ID 그룹 의 귀책 사유가 될 가능성이 컸다. 회귀 전에 실제로 중국에서 미국산 인공지능 서비스가 퇴출당한 사건 이 있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오피스03 for Al 아이즈는 구독 형태로 서비스되었다. 대신 그 가격은 매 우 저렴했다. 개인용 기준 개당 1 천 원, 4가지 프로그램 모두를 동 시에 구독하면 3,300원이라는 엄청 나게 저렴한 가격이다.
다만 기업의 경우에는 0이 하나 더 붙게 된다. 영리 활동의 도구로 쓰이는 만큼, 염가에 제공해 줄 이 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유재원은 아주 약간 불안 했다.
과연 시장에서 구독 정책을 가지고 무슨 평가를 내릴지는 유재원도 짐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유재원이 성공을 확신하는 건 내일 있을 ID 엔터테인먼트의 발표였다. 작년부터 열심히 준비했 던 초대작들이 발표되는 날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건 판타지 유니버스-레전드 리그였 다.
유재원도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레전드 리그만 생각하면 마음이 든 든해졌다.
"티파니는 잘 하고 있겠지?"
덕분에 유재원은 IDDC 걱정 대 신 티파니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 다.
비슷한 시각.
티파니는 평온한 표정으로 셰브 롱의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유재원의 걱정이 하늘에 닿아서 그 런 것은 아니었다.
이사회 회의가 막 시작될 때만
해도 가시방석과 같은 분위기였지 만, 프레더릭의 발언 한 번으로 모 두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나의 편애 때문에 셰브롱 역사 상 최초의 20대 등기 이사가 탄생 할 거라고?"
시작부터 프레더릭은 불편한 심 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모들이야 후계자 레이스가 걸려 있으니 반발 할 수도 있었다. 프레더릭의 심기 가 더 나빠진 건 거기에 부화뇌동 하는 이사들 때문이었다.
"훗, 내 결정은 역사에 기초하여 내려진 판단이다. 20대 등기 이사 는 없었다고? 당연하지. 124년 역 사에 이만한 공을 20대에 세운 사 람은 이제껏 없었으니 말이다. 우 리 셰브롱이 하루하루 써 내려간 역사를 책으로 엮는다면 백과사전 두께는 가뿐히 넘어갈 것이다. 그 런데 이 역사를 종이 한 장 분량으 로 줄인다면, 거기에 들어갈 문장 은 하나하나가 연대기 수준으로 대 단한 일만 남을 것이다. 여기 앉아 있는 이들 중에 그 연대기에 기록 될 만한 일을 해낸 사람이 있나?"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에서는 작게만 보였던 프레더릭의 존재감이 지 금은 너무도 압도적이었다.
"텍사스 유전, 셰일 가스, 이르쿠 츠크 유전. 우리 셰브롱만의 역사 가 아니라 석유 업계 전체의 연대 기에도 들어갈 일대의 사건이다. 이렇게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인재에 게 이사 자리 하나를 내주는 게 그 렇게 부당한가?"
프레더릭은 사자 같은 눈빛으로 이사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 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감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티파니의 이모들까지도 말 이다.
그걸로 이사회는 끝이었다.
티파니는 셰브롱의 최연소 등기 이사에 선임되었다.
셰브롱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 었다.
#402. 게임 전쟁
-티파니 유, 셰브롱 역사상 최연 소 등기 이사!
-셰브롱 이사회, 오로지 실력으 로만 평가한 것!
티파니의 등기 이사 선임 소식은 그날로 특종이 되어서 각종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심지어 그녀의 이모들이 영향력 을 끼칠 수 있는 워싱턴 포스트와 타임즈에도 큼지막하게 떴다. 의외 인 것은 부정적인 기사는 거의 찾 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워싱턴 포스트와 타임즈도 마찬 가지였다.
우호적인 기사, 혹은 아주 건조 하게 팩트만 전하는 기사들이 대부 분이었다. 이제는 이모들도 티파니 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건 인정한 것 같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고 한다.
티파니의 말을 들어보니 등기 이 사 선임을 결정하는 이사회에서 이모들은 끝까지 반대했단다. 그러다 가 프레더릭에게 한 소리 크게 듣 고는 찌그러졌다.
후환이 두렵지 않느냐는 말이었 다.
후계자 레이스가 끝난 건 아니지 만, 가장 앞서 있는 건 티파니였다. 만약 티파니가 셰브롱의 차기 주인 이 된다면 그 이후의 뒷감당을 할 수 있느냐는 프레더릭의 말에 이모 들이나, 이사회의 반대파 위원들이 모두 입을 닫았다.
1년 전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이젠 가능성이 넘치다 못해 가장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반대파가 정리되자 이후 부터는 일사천리였단다. 덕분에 유 재원은 비장의 무기인 셰브롱의 지 분을 써 보지도 못했다.
티파니가 셰브롱을 승계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을 때부터, 유재원은 ID 인베스트먼트의 빈센 트 사장에게 셰브롱의 지분을 분산 해서 사들이라고 했다.
대주주 등극 시 공시를 해야 하 는데, 이는 상대편에게 정보를 줄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모은 게 12%였다. 목표는 17%였는데, 셰브롱의 주가 가 너무 빨리 오른 탓에 목표 달성 이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셰브롱 지분 확보는 성 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티파니를 돕는 데 쓰진 못했지 만, 셰브롱의 주가 상승으로 얻은 이익도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단적으로 현재 셰브롱 투자 수익 률은 무려 800%를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셰브롱의 주식을 ID 인베스트먼트가 대량 매수할 때 의 평균 주가는 45달러 정도였는 데, 최근에는 390달러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주식 시장은 티파니의 등기 이사 선임 소식에 바로 반응했다. 주가 의 상승으로 말이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