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697화 (697/1,007)

33권 6화

"아이고, 회장님!"

영식이의 어머님은 유재원의 모 습에 어쩔 줄을 몰랐다.

지금은 ID 그룹 회장이 아니라 친구 어머니를 뵈러 왔다고 해도 영식이 어머님의 몸에 밴 태도가 달라지진 않았다. 호칭부터가 회장 님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영식이도 함께 왔으면 좋았 을 텐데, 일이 먼저라고 하면서 정 식으로 휴가를 받으면 한국에 가겠 다고 해서 유재원과 선물만 왔다.

물론 선물은 유재원이 따로 준비한 것도 있지만, 영식이가 준비한 것도 있었다.

"보이스 피싱 관련한 건 이제 안 심하셔도 돼요."

"그렇지 않아도, 영식이가 회장 님이 잘 처리해 주셨다고 연락을 해 줬어요."

유재원이 일부러 영식이 어머니 를 찾은 건 보이스 피싱 때문이었 다.

그 전화를 받은 건 한 달도 더 된 일이었지만, 아직까지도 어머니 께서 불안해한다는 영식이의 말을 들었었다.

다행히 유재원이 직접 찾아와 잘 처리되었다고 하니 진심으로 안도 하시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추가적인 조 치도 했다.

영식이 어머니의 스마트폰에 안 티 피싱 앱을 설치해 준 것이었다.

안티 피싱은 영식이가 만들기 시 작한 앱이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 도 완성이 되어 테스트 중이었다.

영식이가 안티 피싱을 만든 계기가 본인과 어머니처럼 애꿎은 피해 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구동이 되는 앱이 나 왔으니 영식이의 어머니 스마트폰 에 제일 먼저 설치되는 건 자연스 러운 일이었다.

다음날.

유재원은 덕진리를 나와 대전으 로 내려갔다.

이번 방한의 가장 큰 목적이 바 로 대전의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연구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90나노 공정의 완성!

유재원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리 사 수 박사팀은 원래 목표였던 100 나노를 넘어서 90나노까지 단번에 뛰어올랐다.

120나노 공정과 비교해서 정밀도 는 25%가 증가하는 것인데, 실질 적인 퍼포먼스 향상은 3, 40%에 이르렀다.

회로도의 집적률이 높아지면서

보다 적은 전력으로 높은 작동 속 도를 뿜어낼 수 있다.

여기에 같은 면적에 보다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해서 칩의 종합 성능을 최대한 높일 수 있었다.

대신 회로의 설계를 효율적으로 해야 하는데, 단순히 기존의 회로 도를 그대로 축소해 만들기만 하면 제대로 된 성능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행히라면 리사 수 박사의 설계 능력은 당대 최고였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잠재력이 있던 인재였다.

그런데 유재원과 만나 최신의 기 술과 노하우를 습득했고, ID 일렉 트로닉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잠 재력이 개화하면서 2020년쯤에나 나올 능력이 지금 터지는 중이었다.

"이게 M5AI인가요?"

유재원은 리사 수 박사가 전해 준 칩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패키징이 끝난 칩의 모양은 예술 적이었다.

윗면은 크롬으로 씌워져서 광택 이 번쩍거렸고, 레이저 각인으로 ID 그룹의 로고가 작게 들어가 있 다. 대신 M5AI라는 칩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다.

바닥면에는 은구슬 같은 납이 촘 촘하게 박혀 있었다. CPU와 보드 를 이어주는 데이터버스의 폭이 커 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바일 애플리케 이션 프로세서는 CDMA모뎀에 GPU까지 통합된 칩이기에 전송되는 데 이터도 많아져서 데이터버스의 설 계도 복잡해졌고, 그 결과로 CPU 바닥면의 구조가 훨씬 복잡해졌다.

"옙! A스텝이지만 기존의 M4보 다 36%나 향상된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90나노 공정의 힘 이죠!"

리사 수 박사의 말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은 유재원이다. ID 일렉트로닉스의 장 비가 세계 초일류 수준이긴 했지만, 이만큼 빠르게 작동 가능한 칩을 뽑아낼 수 있었던 건 리사 수 박사 가 이끄는 반도체 팀의 능력 덕이 었다.

다만 유재원은 A스텝이라는 소 리에 수율 같은 건 물어보지 않았 다.

회사마다 의미는 다 다르겠지만 ID 테크놀로지에서 A스텝은 30% 이하 수율이 나오는 단계를 의미했 기 때문이다. B는 50%이고 C는 70% 였다.

B스텝은 되어야 양산 체제에 들어가고, C 스텝에서부터는 제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M4A1 의 경우에는 D 스텝으로 90% 이상의 수율을 안정적으로 유 지하고 있다.

재미있는 건 M5의 네이밍에 붙 은 AI라는 접미사였다.

칩에 부가 기능이 추가되거나 설 계 변경이 있을 때 붙는 게 보통이 다.

M4에 인공지능 연산 가속을 위 한 텐서 코어를 추가했다고 M4A1 라고 명명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발 생했다.

유재원은 FPS게임의 기본 무기로 주어지는 M4A1 을 연상하면서 붙 인 이름인데, 개발자나 사용자들에 겐 인공지능의 약어인 AI로 읽혔던 것이다.

M5의 경우 텐서 코어 유닛이 M4 대비 4배 증가한 16개를 탑재 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AI 관련 앱의 처리 속도가 10배는 빨라졌 다. 페이스 키나 AI 아이즈의 문자 변환, 이미지 정의 등등의 속도가 한층 빨라진 것이다.

현재 전 세계의 이슈에서 최대 화두는 인공지능이었으니 M5의 성 능 향상은 충분히 자랑할 만한 기 술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AI라는 접미사 가 자연스럽게 붙은 상태로 출시가 되는 것이었다.

M5AI칩이 탑재될 차기 안드로 이드 스마트폰은 전작보다 훨씬 나 아진 성능을 보여줄 거라 기대할 수 있다.

"회장님께서 보고 싶은 건 이것 이겠죠?"

리사 수 박사는 M5AI칩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고서 새로운 칩을 꺼 냈다.

M5AI보다 훨씬 큰 패키지였다.

M5AI가 500원짜리 동전 크기였 다면, 지금 리사 수 박사가 내보인 칩은 명함 정도의 크기였고, 패키 지 윗면에 노출된 다이의 경우에도 엄지손톱보다 컸다.

바로 90나노 공정으로 찍어낸 차 세대 GPU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는 데, 바로 ATI의 라데온과 엔비디아 의 지포스였기 때문이다.

두 칩을 바라보는 유재원의 눈빛 은 타오를 듯 뜨거웠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유재원의 눈 빛에 리사 수 박사나 그녀의 연구 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재원이 티파니나 가족들처럼 사랑하는 사 람들에게만 보여주는 그 눈빛이었 으니 말이다.

평소의 유재원은 젊은 나이에 ID 그룹이란 거대 기업을 일으킨 압도 적인 아우라가 뿜어지는 존재였지 만, 지금은 영락없는 컴퓨터에 푹 빠진 너드의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도체 같은 부 품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극소수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리사 수 박사나 여기 있는 연구원들이 그런 유재원을 이 상하게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녀와 연구팀 역시나 반도체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칩은 G80, ATI의 칩은 R520입니다."

리사 수 박사의 설명이다.

전문가답게 모델명으로만 불렀다. G80이라는 건 지포스 8800GTX로 발매된 칩이었고, R520이라는 건 라데온 X1800XT로 출시된 칩이었 다.

이 중에서 유재원의 눈길이 먼저 간 건 G80 이었다.

회귀 전 8800GTX를 시작으로 사골의 사골의 사골까지 끓여냈던 명품 모델이었고, 동시에 엑스박스 의 GPU로 유력한 후보 칩 셋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사골이라는 말은 설계가 너무 좋아서 단순히 공정을 업그레 이드한다거나, 약간의 수정만 거친 제품을 새로운 모델인 것처럼 몇 번이나 출시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나 우려먹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큰 반발도 없었으니, 얼마나 기본 설계가 잘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성능은요?"

"회장님께서 늘 말씀하셨죠? 100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직접 확인해 보시라고 미 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리사 수 박사는 너무도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단상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벗겨냈다.

그러자 부팅이 다 끝난 뉴에그 2 대가 유재원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것도 2003년형 최신 버전이다.

사실 IDDC 2003에서 안드로이 드 S3와 AI 아이즈 때문에 뒷전으 로 밀려난 컴퓨터 사업부였지만, 매년 꾸준히 신모델을 내는 게 i웍 스와 뉴에그 시리즈였다.

성능은 1년마다, 디자인은 2년 주기로 크게 업그레이드되는데, 어 쩌다 보니 i웍스는 짝수 년에 뉴에 그는 홀수 년에 메이저 업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가칭 엑스박스2 스펙에 맞춰 놓 았습니다."

역시나 센스 좋은 리사 수 박사 는 유재원이 원하는 걸 딱 준비했 다.

헥사코어 CPU에 8800GTX 혹은 X1800XT, 4GB 메모리면 엑스박 스2의 성능을 얼추 달성한 것이니말이다.

"그런데 헥사코어 CPU는 어디서 구하셨어요?"

"서버용 CPU라고 샘플로 보내온 옥타(8)코어 제품을 바이오스 상에 서 6코어로 만들었지요."

리사 수 박사의 설명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AMD와 인텔의 신제품을 제일 먼저 받아보는 회사가 바로 ID 그 룹이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최적화 문제도 있지만, 데이터센터와 기계학 습용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매년 어마어마한 숫자의 제품을 사 들이고 있는 게 ID 그룹이었으니 말이다.

ID 그룹의 전략에 따라 두 회사 의 매출이 좌우되기에 최상급 파트 너십 대우를 몇 년 전부터 해 주고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엑스박스1의 누적 판매량은 5천 만 대 이상. 엑스박스2의 판매량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되니정식 부품으로 채택만 되면, 수천 만 개의 판매량은 기본 확보다.

그러니 비장의 무기로 완성한 서 버용 하이엔드 모델이라도 보내서 견적을 맞춰 보려는 것이었다.

"좋아요!"

유재원은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 다.

내 컴퓨터의 시스템 관리자도 띄 워져 있어서 컴퓨터의 스펙이 일목 요연하게 보였다.

리사 수 박사의 말대로 엑스박스2의 스펙에 최대한 근접하게 세팅 된 뉴에그였다.

곧장 유재원은 벤치마크 프로그 램으로 널리 쓰이는 둠3를 실행했 다.

출시된 지 좀 시간이 지난 게임 이긴 해도 HD 텍스처 팩과 고해상 도 옵션 등을 추가하면서 그래픽의 퀄리티도 한층 상승했다.

게다가 멀티 플레이의 경우엔 지 금도 동시 접속자가 10만 명 이상 을 늘 유지하고 있는 인기 게임이 었다.

둠3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자 하 드 디스크가 그르륵 소리를 내면서 로딩이 시작되었다.

"음!"

현존 최고 사양이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최대의 단점은 바로 하드 디스크였다.

컴퓨터 부품 중에 유일하게 아날 로그 기술이 남아 있는 게 하드 디 스크였다. 모터를 돌려서 디스크의 데이터를 읽어오니 속도가 너무 느 렸다.

당연히 해답도 알고 있는 유재원이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로 저장 소를 구성하면 그륵그륵 하는 하드 디스크 로딩 소리를 들을 일이 없 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은 유재원처럼 돈 걱 정하지 않는 사람도 비싸다고 느낄 만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기에 유재 원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 다.

그러는 사이 로딩도 다 끝났고, 모니터 화면엔 둠3의 벤치마크 시 나리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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