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권 9화
넥스트 뮤직 어워드.
넥스트 뮤직이 한 해를 결산하면 서 준비한 시상식의 이름이었다.
이름은 간단했지만, 실제 준비되고 있던 행사의 규모는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단순히 한국의 음원 시장만 결산 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음원 시장 을 결산하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상의 기준이 되는 나라 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의 아티스트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이 말인즉, 2003년을 빛낸 세계적 인 가수들도 시상 리스트에 있고, 이 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작업 도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넥스트 뮤직 어워드의 수 상자 명단에 올라 접촉한 아티스트 중에는 영광이라면서 한국에 가서 상을 받겠다고 한 아티스트도 상당 수 있었다.
에미넴이나 제니퍼 로페즈, 50센 트, 비욘세 등등이 긍정적인 답신을 보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넥스트 뮤 직은 로컬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커버할 수 있는 세계적 사이트였기 때문이다.
넥스트 뮤직은 몇 년 전까지만 해 도 빌보드 차트와 동급이었다.
그러다가 ID 그룹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발표하고, 애플사가 아이 폰을 발표한 다음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이 억 단위를 넘어섰을 때부 터 빌보드 차트 이상으로 치고 올라 왔다.
스마트폰에서 음악을 듣는 방식은 이제 넥스트 뮤직 앱을 켜고 클릭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90년대처럼 MP3 파일을 일일이 컴퓨터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긴 다음 플레이어 앱으로 듣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대다수는 그냥 넥스트 뮤 직에서 들었다.
그러니 세계적 아티스트들도 넥스 트 뮤직에서 시상식을 연다고 하니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아티스트들과 아 이돌을 소외시킬 생각도 없었다. 글 로벌 부분 시상과 함께 한국 차트 시상도 동시에 할 계획이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글로벌 시상식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업계 관계자들이 보내는 시 선은 따갑단다.
"뭐, 업계로부터 미움받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유재원은 ID 미디어 그룹의 왓슨 사장이 보낸 보고서를 읽고 즉각 반 응을 보였다. 짜증은 덤이다.
야심 차게 출발한 ID 미디어 그룹 은 순항 중이었다.
케이블 방송국 3개는 각자의 영역 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고, 그에 따라 케이블 방송에 가입하는 사람들에겐 기본 제공되는 채널에 무조건 있어 야 하는 방송국이 되었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만큼 ID 미 디어 그룹은 업계의 공공의 적으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업계에서 ID 미디어 그룹 을 미워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 다.
바로 방송가의 관행을 따르지 않 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번 넥스트 뮤직 어워 드의 중계는 tvM에서 맡기로 했다.
그러면서 상을 받을 가수들과 접 촉하면서 세트 리스트를 짜기 시작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 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연예 기획사나 아티스트들은 늘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 존재들이었다.
이들로부터 나오는 사소한 가십성 기사라도 클릭 숫자가 보장되는 콘 텐츠였으니 말이다.
넥스트 뮤직 어워드라는 행사가 올해 말에 서울 혹석동의 ID 디지털 미디어센터에서 열린다는 소식도 속 보로 떴다.
그렇지만 네티즌이 이보다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로 연예인들의 몸값 이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들이 튀어 나왔으니 말이다.
해외에서 오는 가수들의 행사비는 기본이 억 단위였다.
초대형 신인 비욘세는 3억, 에미 넴은 5억이었고, 최고 몸값은 인 더 클럽이란 노래로 올해 빌보드 차트 를 휩쓴 래퍼 50센트로 행사비만 8 억이었다.
한국 아티스트 역시 최고 대우였다. 신인 아이돌 그룹인 TVXQ의 경우에는 6천만 원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금액은 시상과는 별개로 넥스트 뮤직 어워드에서 무대를 해 주기만 하면 주어지는 행사비였다.
TVXQ가 ID 그룹의 자회사인 드 림 엔터테인먼트라고 퍼주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2003년 한국 가요계를 휩쓴 빅마 마나 휘성, 이효리와 같은 다른 기획 사의 중견 가수들의 행사비는 이보 다 훨씬 많았다.
덕분에 다른 방송국 관계자들은 이런 소리나 하고 있었다.
-신생 방송국이 전통과 명성을 돈 으로 사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였다.
방송계의 악습 중 하나가 비현실 적인 출연료였다.
음악 방송 하나에 출연하려면 그 날 스케줄 중에 반나절은 비워야 하 는 게 가요계의 현실이었다.
게다가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모 두 가수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찮은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출연료는 10, 20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멤버 수가 많은 아이돌 그룹의 경우 밥값 도 나오지 않는 액수다.
반면 엠넷23의 음악 방송인 뮤직 카운트다운의 출연료는 최소 100만 원에서 시작했다.
신인 남자 솔로 가수 기준이었고, 멤버 수가 많은 아이돌 그룹의 경우 출연료는 더 올라간다.
물론 그래 봤자 지방 자치 단체나 대기업 주최 행사만큼 많이 받는 건 아니지만, 음악 방송 나온다고 자기 돈까지 써야 하는 일은 없었다.
이걸 두고 다른 방송국에서 불편 하게 생각했다.
본인들 방송국의 시스템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ID 미디어 그룹이 돈 많은 모회사를 믿 고 방송국 물을 흐린다고 말이다.
그러다가 이번 넥스트 뮤직 어워 드로 인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었 다.
연말 가요대상은 공중파 방송국 3 사가 다들 치르는 커다란 무대였다.
한 해를 결산한다며 크고 화려하 게 치르지만, 본질은 평소의 음악 방 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송국은 그저 무대만 제공하고 거기를 꾸미는 것은 가수와 소속사 의 몫이었다.
ID 미디어 그룹은 그저 출연료 현 실화를 했던 것뿐이지만, 방송국 입 장에선 이제껏 잘 굴러왔던 일에 긁 어 부스럼을 만드는 행태로만 보였 다.
그러니 돈으로 전통과 명성을 사 려고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더욱이 왓슨 사장의 보고서에는 방송국들이 말로만 투덜거리는 게 아니라, 집단 행동도 보이려고 한다 고 되어 있었다.
넥스트 뮤직 어워드가 열리는 날 로 가요대전 일정을 옮기는 걸 심각 하게 고려하고 있단다.
"이럴 때, 더 과감해야겠지."
유재원은 지고 들어갈 생각이 조 금도 없었다.
전통과 명성을 돈으로 사려 한다고?
오히려 엿가락처럼 오락가락하는 기준으로 상을 나눠 줘서 매년 연말 만 되면 되풀이되는 논란이 나오는 게 공중파 방송국의 시상식이었다.
회차가 오래 쌓였다뿐이지, 권위는 전혀 없는 시상식이다.
게다가 방송국이라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 출연료를 후려치는 걸 타파 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지, 그나마 정 상인 ID 미디어 그룹을 찍어 누르는 게 정상은 아니었다.
유재원은 바로 왓슨 사장에게 보낼 공식 문건을 작성했다.
주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추진하 라는 내용이었고, 구체적으로는 넥스 트 뮤직 어워드를 더욱 크고 화려하 게 준비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꼭 연말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 명 시했다.
공중파 방송국들과 싸움을 한다고 ID 미디어 그룹이 밀릴 거라고는 전 혀 생각하지 않는 유재원이었다.
다만 고래 싸움에 끼어 등이 터지 는 새우들처럼, 그 싸움에 휘말린 가 수들이 애꿎은 피해를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중파에선 감히 보여줄 수 없는 크고 화려한 무대를 먼저 선보여 시 청자들의 눈높이를 하늘 높이 끌어 올린다면, 나중에 치를 가요대전은 시시해질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유재원은 왓슨 사장에게 추가적인 지시를 내렸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중계권을 확보하라는 지시였다.
한국에서 EPL에 대한 관심은 아직 폭발적이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만큼, 한국 출신 선수가 뛰는 경우는 없었기 때 문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마니아층에서 만 즐기는 리그였다.
회귀 전에도 박지성 선수가 맨체 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고 나서부 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 루트가 조금 달라졌다.
유재원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한 덕이었다. 02-03 시즌이 끝나면 박지성 선수와 안정환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예정 이었으니 말이다.
마음 같아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를 인수했던 때에 바로 구단주의 권 능으로 낙하산을 태워 주고 싶었지 만, 결국 현실로는 이뤄지지 못했다.
두 선수 모두 EPL에 적응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박지성 선수는 히딩크 감 독과 함께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 번으로 가서 경험치를 모았고, 안정 환 선수의 경우엔 영국 2부 축구 리그인 EFL 챔피언십 소속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 임대되어 뛰는 중이었 다.
2002 남북 월드컵이 끝나고 활발 하게 진행된 해외 진출의 대표적 사 례였는데, 역시나 해외에서 뛰기 시 작하자 기량 향상이 눈에 보일 정도 였다.
이 정도면 퍼거슨 감독의 눈에도 들 수 있다고 확신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두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 이티드에 이적한다면 EPL에 대한 관 심도 폭발할 것이기에 미리 중계권을 선점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가져온 EPL 경기들을 온 게임넷에 편성하라고 지시했다.
온게임넷의 주요 시청층은 10?30 대의 젊은이들!
그야말로 EPL 주요 시청 계층과 딱 겹치고 있다. 유재원처럼 게임도 좋아하고 유럽 축구도 좋아하는 사 람들은 무척이나 많았으니 말이다.
비록 온게임넷이 e스포츠를 중점 적으로 중계하고 게임 관련 예능도 많이 만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비는 시간은 있었다.
e스포츠 전용이 아닌, e스포츠는 기본이고 EPL과 같은 리그도 중계함 으로써 종합 스포츠 채널로 거듭나 는 게 유재원이 그리는 큰 그림이었 다.
"그러면 MLB도 중계할까?"
박찬호 선수 덕에 MLB 중계권의 가격은 상당히 상승한 상태이지만, 못 가져올 이유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ID 그룹의 총수익은 스마트폰 시장의 약진으로 인해 큰 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도 대박이 터져서 돈이 샘물이 펑펑 터 지는 것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돈에 취해 있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게 훨씬 바람 직한 일 아니겠는가.
온게임넷을 단순한 e스포츠 중계 채널에서 대한민국의 대표 스포츠 채널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EPL과 MLB의 중계권에 투자하는 건 무리 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바람직한 돈질이다.
"휴! 끝났나?"
한국의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 는데, 생각지도 못한 방송국의 딴죽 에 엑스박스2 프로젝트의 흐름이 끊 겼던 유재원은 작성된 문서를 검토 했다.
터지면 효과가 엄청날 다이너마이 트가 가득한 문서를 보며 만족한 미 소를 지은 유재원은 ID 미디어 그룹 의 왓슨 사장에게 발송했다.
그리고서 똑같은 내용의 전자 문 서 사본을 만들어 비서실 그리고 전 략기획실에도 발송했다.
넥스트 뮤직 어워드 준비나 EPL 과 MLB의 중계권 인수에는 제법 큰 예산과 협상력이 필요하니 왓슨 사 장을 지원할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 었다.
ID 미디어 그룹의 일을 끝낸 유재 원은 잠깐 기지개를 켠 다음, 원래의 일로 돌아갔다.
엑스박스2를 위한 프로그래밍 작 업이 었다.
시간은 상대적이었다.
누군가에겐 느리게 흘렀을 시간이 유재원에겐 총알처럼 빠르게 흘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 던 2003년이 다 지나고, 2004년이 찾아왔다.
새해와 함께 혹한이 찾아왔음에도 유재원은 그 추위를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바빴다.
안드로이드사와 ID 테크놀로지 처 럼 기업 공개로 상장된 회사들의 경 우 연말 결산과 함께 이사회 보고도 해야 했다.
주주 총회는 사장에게 위임해도 이사회 정도는 직접 챙겨야 앞날이 편안하니 말이다.
그나마 타임워너 넥스트컴은 명목 적으로 레밍턴이 총회장인지라 짐 하나는 넘길 수 있었다.
물론 연말 결산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