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권 10화
PC 시장의 성장률이 작년보다는 내려오긴 했지만, 안드로이드사의 운영체제와 각종 소프트웨어의 매 출액은 탄탄했으니 말이다.
ID 테크놀로지의 경우엔 실적이 대폭발했다. 반도체 사업부의 공장 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M시리즈 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 체 그리고 GPU들을 찍어냈다.
생산량이 곧 매출액인 상황이었다. 여기에 가전 부문도 브랜드 리디자 인을 통해 새롭게 바뀌면서 한국 내 수 시장 장악은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서도 통하기 시작했다.
LCD-TV의 경우 세계에서 팔리 는 평판 TV 중 ID 테크놀로지의 보 르도 TV가 40% 이상을 점유할 만 큼 압도적이었다.
더욱이 2등이나 3등 업체의 평판 TV도 ID 디스플레이의 모듈을 가져 다 썼으니 ID 그룹의 이익은 더 늘 어났다.
여기에 연말 시상식도 있었다.
12월 중순, 서울 흑석동 ID 디지 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1회 넥스 트 뮤직 어워드는 이제껏 한국서 치른 그 어떤 행사보다 화려했다.
내한한 스타들의 면면도 이제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수준이었다.
tvM은 물론이고 미국 공중파인 NBC와 타임플렉스를 통해서 전 세 계에 중계되었고, 시청자 숫자도 엄 청났다.
거기에서 유재원은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가수 시상을 맡았다. 공교롭 게도 두 상의 주인공은 한 사람, 비 욘세였다.
2003년이 총알처럼 지나고, 유재 원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엑스박스2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무려 ID 그룹의 회장이 직접 이끄 는 프로젝트였기에, 모든 것은 순조 로웠다.
CPU부터 GPU는 물론이고 더욱 사실적인 포스 피드백 기술이 적용 된 패드까지. 주요 부품들의 양산은 문제없었다.
설혹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빠르게 수정되면서 예정된 일정에서 벗어나 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 더 흘렀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IDDC 2004와 함께 전 세계 게이 머들이 손꼽아 기다린 엑스박스2가 런칭되었다.
동시에 문제의 런칭 타이틀 더 퍼 시픽도 배포가 시작됐다.
ID 그룹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 는 IDDC는 해가 지날수록 그 규 모가 커졌다.
처음엔 그저 완제품 컴퓨터와 새로운 운영체제가 발표되는 정도였 지만, ID 그룹의 규모가 커짐에 따 라, 매년 주요 테마가 달라졌다.
작년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주인공이었다 면, 올해에는 누가 뭐라 해도 엑스 박스2가 주인공이었다.
전 세계 게이머들의 시선이 모두 샌프란시스코에 모였고, 모두의 기 대 속에서 엑스박스2가 발매되었 다.
가격은 499달러.
전작이 299달러였으니, 단번에 200달러가 상승한 가격이었다.
일각에서는 비싸다는 말이 나왔 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결코 비 싼 건 아니라는 말이 나왔다.
엑스박스2의 성능은 유재원 회장 이 공인했던 그 이상이었으니 말이 다.
당연히 행사장은 물론이고 ID 플 래그십 스토어, 그리고 전자기기 쇼핑몰에서는 엑스박스2를 구하기 위한 긴 줄이 만들어졌다.
-5번 고객님!
- 넵!
"이제 2명!"
길버트는 본인 앞에 남은 둘을 보며 설렘이 솟구쳤다.
바로 엑스박스2를 사기 위해 ID 플래그십 스토어에 늘어선 줄이었 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옛 기억들 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유재원의 잘생긴 얼 굴이 떠올랐다.
유재원과의 동창이라는 인연은 길버트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놓는 사건이었다.
스탠퍼드 시절부터 남다른 모습 을 보인 유재원을 옆에서 지켜보며 동경하게 되었고, 이후 길버트는 본인의 관심사 말고는 신경 쓰지 않았던 너드 성향에서 탈피하면서 사람이 달라졌다.
대학교 졸업 후의 진로 역시 ID 그룹 입사로 일찌감치 정했고, 실제로 이루었다.
ID 그룹에 입사한 뒤로도 길버트 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사교성이 떨어진다고 걱정하셨던 부모님의 우려와 달리 길버트는 ID 테크놀로지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팀장이 되어 승승장구 하는 중이었다.
그런 길버트지만, 예전과 달라지 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바로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입사 후, 지금까지 무조건 사용 해야 하는 연차 휴가 때 말고는 쉬어 본 적이 없었던 길버트였다.
집에 있는 것보다는 회사에 나와 본인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 는 게 훨씬 좋았으니 말이다.
AI 아이즈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끝나고서 강제로 휴가가 주어졌을 때도 딱히 재미있게 써 본 기억은 없었다.
그런 길버트가 이번엔 무려 일주 일짜리 휴가를 냈다. 이례적인 일 이었다.
바로 곧 길버트의 품에 안길 물 건 때문이다.
엑스박스2!
게임을 좋아하는 길버트는 엑스 박스는 물론이고 플레이스테이션2, 심지어 닌텐도64와 같은 기기를 모 두 갖춰 놓고 있었다.
당연히 차세대 비디오게임기에 대한 관심도 최대치였다.
덕분에 길버트가 휴가를 내놓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줄을 서는 것이 었다.
사실 유재원과의 친분을 이용한 다면 남들보다 먼저 엑스박스2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길버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진성 중 진성 게이머였던 길버트 였기에, 집 근처의 ID 플래그십 센 터에서 줄을 서는 것부터가 엑스박 스2를 맞이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 이었다.
다만 모든 게임기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건 아니었다.
오직 엑스박스 시리즈에만 하는 특별한 의식이었다.
놀랍게도 길버트처럼 유난스러운 사람들은 더 있었다.
심지어 길버트가 1등도 아니었 다. 그나마 10등 안에는 들긴 했지 만, 길버트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동질감이 진하게 느 껴지기도 했지만, 그저 모르는 척 했다.
다행히 엑스박스2의 생산량은 충 분했는지, ID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아예 전용 매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매대 옆으로는 엑스박스2가 벽을 이루고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8번 고객님!
"네네!"
8번이란 소리에 길버트는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스페셜 오더 영수증입니 다."
그러면서 길버트는 플래그십 스 토어 유니폼을 입은 직원에게 프린 터로 출력한 영수증을 내밀었다.
그러자 직원은 길버트가 제시한 영수증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찍었 다. 영수증에 있는 QR코드를 AI 아이즈로 읽은 것이다.
"네, 스페셜 오더 확인되었습니 다."
곧이어 직원은 하얀 벽처럼 쌓여 있는 엑스박스2 대신에 안쪽 창고 에서 2배는 더 커 보이는 엑스박스 2를 꺼내 왔다.
길버트가 스페셜 오더로 주문한 콜렉터 에디션이었다.
나전 칠기로 검게 광택을 낸 본 체에 전복 껍데기를 이용한 자개로 ID 로고와 엑스박스2 문양이 들어 가 있는 콜렉터 에디션이었다.
그냥 겉모습만 다른 게 아니라, 패드도 2개가 들어 있었고, 하드 디스크의 용량도 480기가바이트로 기본형의 6배에 달한다.
기본으로 주어지는 게임도 더 퍼 시픽뿐만이 아니라 헤일로2와 피파 2004가 추가되었고, 스팀에서 사용 할 수 있는 N페이 포인트도 200포 인트까지 주어진다.
그만큼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데, 길버트가 주문한 것은 1,800달러에 달했다.
기본형이 499달러였으니 거의 4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지만, 이것 역시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여기 플래그십 센터에서 는 처음 나가는 모양인지, 모두의 시선이 길버트에게로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하얀색을 베이스 로 형광 녹색을 쓴 기본형 패키지 와는 다르게, 검은색에 금색이 들 어간 콜렉터 에디션은 한눈에 봐도 유난히 튀어 보였다.
길버트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 며 플래그십 센터를 나섰다.
그리곤 주차장에 주차된 포르쉐 911 터보의 조수석 문을 열고 엑스 박스2 콜렉터 에디션을 고이 내려놨다. 심지어 안전벨트까지 채웠다.
참고로 포르쉐 911 터보는 AI 아이즈 런칭 대박으로 나온 보너스 였다. 컴퓨터와 게임에만 푹 빠진 길버트가 본인 돈으로 이런 자동차 를 살 일은 없으니 말이다.
차를 받은 지는 8개월이 넘었지 만, 조수석에 누군가를 태워 본 적 은 없었다.
대신 지금처럼 전자기기를 내려 놓은 적은 많았다.
바로 운전석으로 돌아온 길버트 는 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기다리고 기다려 엑스박스2를 수 령했으니 진정한 휴가는 이제부터 였다.
"역시, 예술이네!"
길버트는 검은색 광택을 뽐내는 엑스박스2의 본체에 감탄했다.
엑스박스2의 실물은 작년 IDDC 2003에서 한눈에 반했던 그 모습보 다 더 완성도가 높아진 모습이었다.
그때에도 한눈에 반해 버렸지만, 지금 상자에서 나온 엑스박스2는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거실에서 텔레비전 옆에 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컴퓨터광인 길버트의 집이었으 니, 거실에는 전자기기가 가득 있 을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 다.
길버트의 집은 실리콘 밸리에서 도 알아주는 부촌인 올드 팔로알토 의 저택이었다.
길버트의 재산 중에 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2층집으로 19세기 말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벽돌집이 었다.
인테리어도 그에 맞춰 고풍스럽 게 되어 있었기에, 길버트는 입주 할 때 몸만 덜렁 와도 되었을 정도 다.
이후 길버트가 살기 시작하면서 집안의 여러 곳이 바뀌긴 했지만, 거실만큼은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저 보르도 HDTV 정도가 추가 된 가전제품이었는데, 와인잔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제품이라 그런 지 고풍스러운 거실과 잘 어울렸다.
이번에 새롭게 거실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엑스박스2 역시 마찬가지 였다.
사실 길버트의 원래 성격이라면 이런 집을 구매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유재원과 ID톡을 할 때, 실리콘 밸리의 부동산이 유 망하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투자 목적으로 과감하게 구매한 것이었 다.
구매하고 나서 보니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셔서 세를 놓지 않고 계 속 살게 되었다.
재산의 나머지 반은 ID 인베스트 먼트가 운용 중인 펀드에 넣어 놓 은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유재원의 조 언은 정확했다.
실리콘 밸리가 세계 IT 기술 트 렌드를 선도하면서 집값도 날로 오 르는 중이니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하늘 높이 솟는 실리콘 밸리의 집값보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펀드 수익률이 더좋았다는 것이다.
ID 그룹에 입사한 다음부터 매달 꼬박꼬박 저축하듯 펀드를 부었던 길버트였는데, HTS로 확인한 최근 수익률은 502%였으니 말이다.
수익금이 원금의 5배였는데, 최 근 이라크 내전으로 인해 유가가 폭등하면서 대폭 상승해 버렸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 기에 펀드를 깰 일은 없지만, 그냥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숫자 였다.
"아차차! 게임해야지, 게임!"
영롱한 엑스박스2의 자태에 푹 빠져서, 급기야 삼천포로 빠져 버 렸던 길버트는 바로 현실로 돌아와 설치를 마무리했다.
엑스박스2와 보르도 HDTV를 연결하고, 엑스박스2의 전원을 켰 다. 그리고서 몇 가지 설정을 했다.
ID 그룹의 통합 ID인 이메일닷 컴으로 로그인을 하고, 스팀과도 연동을 하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러면 뭐부터 할까?"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