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712화 (712/1,007)

33권 21화

"음, 50%도 너무 높습니다. 여기 자료를 보시면 알 수 있겠지만, 개 성공단에 입주한 한국 기업들은 단 순 조립 공정이 대부분입니다. 미 국산 제품도 중국산 중간재 비율이 상당한 만큼, 30%가 마지노선이라 생각합니다."

"50%도 상당히 무리해 양보한 것인데 30%요? 그 정도면 중국산 제품을 그대로 가져와 라벨만 바꾸 는 것 아닌가요?"

웬디 커틀러 부대표의 반박이 바 로 나왔다. 그러더니 서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여기 일성통신의 광고를 보시면 설 계부터 제작까지 모두 한국에서 해 야만 메이드 인 소리아라고 하던데, 김 대표의 주장과는 너무 다른데 요?"

일성통신의 스마트폰 전지전능 옴니아의 신문 광고였다.

그걸 본 김현종 본부장의 포커페 이스에 살짝 금이 갔다. 옴니아의 주요 어필 포인트로 자랑스러운 메 이드 인 소리아를 내세웠는데, 한 국산 부품에 한국에서 조립한 제품 임을 강력하게 선전하고 있었다.

"설마 광고를 진짜 통계로 믿으 시는 건 아니겠지요? 기업의 입장 에서야 얼마든지 이렇게 광고를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광고 문구가 아니라 현실과 법률을 다뤄 야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현실을 보았을 때 30%는 되어야 개성공단 의 역할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습 니다. 동시에 미국의 대북 영향력 도 증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50% 인정만 해도 엄청난 진전이었다. 그러나 김현종은 거기에 만 족하지 않았다.

다시금 포커페이스로 무장한 김 현종 본부장은 웬디 커틀러의 논리 를 해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의 이견을 좁혀 나가 며 최종적으로 40% 선으로 잠정 합의를 보았다. 또한, 제2의 개성공 단이 생긴다면 같은 조건을 그대로 인정해 주기로 하는 등, 매우 큰 진전을 이루어냈다.

그렇지만 아직 남은 건 상당했 다.

제일 큰 난관인 ISD부터, 한국에 는 너무도 민감한 농산물 개방까지. 남은 건 태산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김현종 본부장은 느낌이 좋았다. 한미 FTA는 그 어떤 협정 보다 공평하게 체결될 것 같은 예 감이 들었다.

동시에 불안감도 일어났다.

철벽과 같았던 웬디 커틀러 부대 표가 갑자기 전향적으로 나온 건 분명 윗선의 지시가 달라졌기 때문 임을 김현종 본부장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본인이나 웬디 커틀러나 모두 윗선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 꾸는 건 윗선의 지시가 있지 않으 면 불가능했다. 그러니 윗선에서 상당한 양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양보를 했으면, 미리 언질 이라도 좀 주지 그랬느냐는 푸념도 작게 들었다. 양보한 만큼 합당한 대가를 받아내려면 준비를 확실히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김현종 본부장이 생각하는 통 큰 양보는 없었다.

오히려 청와대에서는 FTA 협상 이나 SOFA 재협상 등 한미 현안 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미국 의 태도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먼저 큰 양보를 보이는 미국이 파병과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해 올 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 였다.

이런 해프닝은 앨 고어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이 되어서야 끝났다.

재선 취임식에서 앨 고어 대통령 은 동아시아 전략에서 한반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한 차원 더 높 은 수준으로 격상할 거라고 공식 발표했다.

구체적인 수준은 밝히지 않았지 만, 한미 FTA부터 SOFA 재협정까 지, 기존의 일방적인 관계를 상호 호혜적인 관계로 격상시키려고 한 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은 앨 고어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 소식을 전하면서 이 점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동시에 앨 고 어의 재선 취임식 VIP석 1열에 자 리한 유재원 부부의 모습도 큼지막하게 보도되었다.

같은 시각.

"역시 유재원 회장이었군요."

앨 고어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을 보던 노 대통령이 고개를 크게 주 억거렸다.

최근 미국과의 협상에서 미국이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 가 드디어 풀렸던 탓이다. 단순히 앨 고어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 아 니라, 국내 정보기관의 구체적인 보고까지 곁들어졌다.

그 보고서 안에는 작년 12월 7 일 하와이에서 유재원과 앨 고어 대통령의 회동에 대한 정보도 제법 정확하게 담겨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함축적인 물음이었다. 거기엔 민 간인인 유재원이 국가가 해야 할 대미 외교를 대신한 것에 대한 걱 정과 ID 그룹의 영향력이 경제 차원을 넘어 정치에도 관여할 만큼 거대해진 것에 대한 우려 등이 섞 여 있었다.

더욱이 노 대통령의 현 비서실장 은 국민의 정부 출신이었고, 김대 중 대통령이 습관처럼 말했던 유재 원과 ID 그룹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사람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ID 그룹의 영향 력이 한국을 좌지우지하는 걸 크게 걱정하던 사람이었다. 미래와 일성, 금성 등등의 재벌 가문들이 어떤 식으로 법을 우습게 알면서 한국을 지배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 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범적인 유재원과 ID 그 룹이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달고 살았던 김대중 대통 령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냥 마음 편하게 유 재원의 선의를 믿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렇지만 통일국민당이라는 정치 세력을 수족처럼 다루는 것을 보면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재원의 뜻이라고 통일국민당에 전해지면 불과 몇 달 만에 법제화가 완료되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유재원 개인 의 사익을 위해 움직인 예는 없었 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이대로 유재원이나 ID 그룹의 영 향력이 커나간다면 대한민국이란 자랑스러운 나라가 한 개인의 사적 소유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번 일로 우리가 손해 본 게 있습니까?"

반면 노 대통령은 문제없다는 표 정이었다.

"민간 외교라는 것도 있지요."

의심과 경계부터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달리 노 대통령은 유재원 의 선의에 대해 믿는 쪽이었다. 그 도 그럴 것이, 통일국민당을 통해 진작에 권력을 사유화하려고 했다 면 벌써 하고도 남았다고 보았다.

단적으로 이번에 크나큰 합의를 이루어낸 한미 FTA만 보더라도 유 재원이 사적 이익을 챙기겠다고 마 음먹었으면 진작 체결하고도 남았 다.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안드로 이드 스마트폰의 최대 판매처는 미 국이었다. 미국은 전자기기에 대해 8%의 관세를 물리고 있다.

8%라면 일반 기업에도 제법 큰 부담이다. 그렇지만 ID 그룹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작년 2004년 안드로이드 스마트 폰은 미국에서만 4천만 대 이상이 팔렸다. 연식별, 모델별 가격이 다 다르지만 평균 대당 가격을 800달 러라고 한다면 320억 달러의 매출 이었다. 그리고 관세가 8%이니 25 억 6천만 달러가 세금이었다.

한미 FTA 체결이 되면 단숨에 25억 6천만 달러의 이익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이니, 강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었다.

특히 경쟁사인 애플의 경우 아이 폰의 생산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 었다. 당연히 애플도 중국서 만들 어진 아이폰을 미국으로 가져올 때 관세를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FTA는 불가 능에 가까운 것임을 고려한다면, 한미 FTA를 밀어붙인다면 아주 쉽 게 가격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의 다른 대기업들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한미 FTA 체결에 대해 지지 중이었다. 대미 수출량이 많은 기업일수록 특히 심 했다.

반면 유재원은 정부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든가, 청탁도 없 었다. 이제 와서는 정부에 대해 아 쉬운 소리 하지 않는 것이 ID 그룹 의 강점이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노 대통령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통일국민당이 껄끄럽긴 했다. 특히나 지금은 제1 당이 되어서 전보다 훨씬 눈치를 보게 생겼다.

그럼에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로 미리 경계심을 보여서 괜한 트 러블이 생기는 건 막고 싶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이 우리와의 동맹 수준을 격상하기로 마음먹은 결정 적 계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유재 원 회장 때문이 아닙니까? 현시점 에서 최고의 민간 외교관이 유재원 회장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노 대통령의 말은 유재원에 대한 청와대 방침에 방점을 찍는 선언이 었다.

이후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 과의 대화는 한미 FTA와 SOFA 재개정 등 굵직한 대미 협상 전략 에 집중되었다.

미국의 태도가 바뀐 지금이 국익 을 최대화할 최적기라는 판단이었 다.

비슷한 시각.

셰브롱 본사에는 아직도 환하게 불이 켜진 사무실이 있었다. 미래 전략이사의 사무실로 그 주인은 바 로 유재원의 아내인 티파니였다.

이르쿠츠크 유전 탐사 성공으로 주가를 크게 올린 티파니였고, 그 에 대한 공으로 직함은 미래전략 프론트 매니저에서 미래전략 최고 이사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업그레이 드된 직함만큼 주어진 임무도 달라 졌다.

최근 티파니에게 주어진 임무는 바로 탐사에 성공한 이르쿠츠크 유 전의 개발이었다. 유전 개발은 탐 사에 성공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 다.

유전에서 원유를 뽑아내는 것도 일이었고, 뽑아낸 원유를 가공하고, 가공된 각종 부산물을 최종 소비처 까지 옮기는 것도 큰일이었다.

셰브롱은 유전의 탐사부터 유전 개발, 원유의 가공과 최종 소비처 로의 유통까지 석유 산업 전체를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거대 기업이었다.

문제는 이르쿠츠크 유전은 러시 아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곳이 었고, 러시아라는 나라는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냉전을 치른 적성국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이르쿠츠크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 를 안전하게 가져나오는 것은 셰브 롱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안이 티파니에 게 주어졌다는 것은 셰브롱에서 그 녀의 위상을 단번에 보여주는 확실 한 증거였다.

티파니가 중앙의 상석에 앉아 있 었고, 티파니의 양쪽으로 전략기획 실 임원들 12명이 6명씩 나뉘어 앉 아 있는 형태였다.

재미있는 공통점이라면 전략기획 실 임원 모두 T&U 리서치에서 함 께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티파니가 이러한 구도 를 만든 건 아니었다. 셰브롱에도 유능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전 략기획실을 만들 때 4명 정도는 내 부 전문가를 모셔 왔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러 트러블을 일으켜 잘려 나갔다.

가장 큰 사고는 중요한 사안들을 외부로 유출했던 일이었다. 바로 이모들에게 말이다. 또는 유전 개 발 전문가라면서 가르치려고 들기 도 했다.

아주 오래전 티파니가 처음 셰브 롱에 입사했을 때, 유재원에게 나 이 많은 임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괜히 물어본 게 아니었다. 로열패 밀리인 티파니지만, 셰브롱 안에서 는 햇병아리와 같은 취급이었으니 말이다.

텍사코 인수부터 이르쿠츠크 유 전 개발까지 굵직굵직한 프로젝트 를 여러 번 성공시킨 다음에야 기 존 임원들의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 지긴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아 주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티파니는 집에서는 유 재원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문제를 집까지 가져 와서 사랑스러운 남편까지 불안하 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대신 티파 니는 스스로 답을 찾았다.

스타일의 변화도 그중 하나였다.

집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 는 티파니지만, 회사에 출근할 때 는 차가운 도시의 이미지를 빌려 입었다. 무채색의 검은색 혹은 회 색 정장에 헤어스타일도 포마드를 발라 딱 붙이는 것이다.

스타일 변화는 의외로 효과가 있 었다.

전과 다르게 자기 방식이 맞는 거라면서 가르치려고 드는 임원들 이 크게 줄었다. 이후 티파니가 여 러 가지 공을 쌓으며 능력을 보이 자 발언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이제는 이사에 이르러 티파니를 우 습게 보는 사람들이 더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르쿠츠크 유전 개발 프로젝트도 티파니의 의중을 고스 란히 반영할 수 있었다.

티파니의 오른편에 앉은 젊은 여 성이 i웍스 노트북을 조작해 전면 스크린에 띄워진 화면을 바꾸면서 설명을 곁들였다.

"이것이 트란스네프트와 협의한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의 청사 진입니다."

트란스네프트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송유관 건설 기업으로 러시아에 서 파이프라인 사업을 독점하는 재 벌이었다.

카스피해 유전을 서유럽까지 전 달하는 송유관을 단독으로 건설하 며 능력을 입증했고, 그 이후부터 러시아의 모든 송유관 사업을 독점 하며 승승장구 중이었다.

내륙에 유전이 많은 러시아가 뽑 아낸 원유를 소비처까지 옮기는 가 장 간편하고 확실한 방법이 바로 송유관 건설이었으니 말이다.

이르쿠츠크 유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정에서 안정적으로 원유를 뽑 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뽑 아낸 원유를 처분하는 것 역시 큰 일이었다. 그리고 처분 방식은 크 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 다.

러시아의 국영 석유 기업인 로스 네프트에 팔든가, 직접 처분하는 것이다.

티파니의 선택은 후자였다. 그리 고 그 방식에서 송유관 건설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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