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권 24화
-대한민국 스마트폰 시장 분석과 국산 마케팅의 효용에 대하여.
"제목부터 본격적이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유재원 앞 으로 배달된 가장 최근의 문서를 보며 유재원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며칠 전 비서실에 들어온 새파란 인턴 홍범수가 작성한 첫 번째 보 고서였다.
인턴은 아르바이트생보다는 본격 적이지만, 정직원에 비해서는 모자 라는 능력치를 가진 사회 초년생들 이 들어오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홍범수는 덕진공대 1회 졸업생들의 평균과는 완전히 다른 능력치를 지닌 사람이었다.
나이부터가 월등히 높았고, 애까 지 딸린 유부남이었고, 군대는 당 연히 다녀온 사람이기도 했다. 능 력치도 월등해서 서울대학교 졸업 후 일성SDS에서 사내 벤처를 하기 도 했다고 한다.
다만 높은 능력치만큼이나 남들 은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을 했는 데, 덕진공대에 다시 들어와 4년을 공부해 인턴이 된 것이었다.
그냥 ID 그룹이 신규 채용이나 경력직 채용 공고를 낼 때 지원했 으면 합격될 확률이 높았다. 신규 채용 절차가 좀 까다롭다고 해도 홍범수가 통과하지 못할 정도는 아 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유재원은 인턴 대상자의 성적표와 이력을 보다가 바로 눈에 띈 홍범수를 비서실로 넣었다.
며칠 전 직접 불러 이유를 물어 보았을 때, 돌아온 대답도 홍범수 다웠다.
신규 채용 공고 지원에 대해서는 일성SDS 출신이라는 점, 나이가 많 다는 점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 었다고 말했다.
하긴, ID 그룹의 경력직 채용에 서 일성 출신은 일단 걸렀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몇 년도 전의 일이 었다. ID 그룹이 지금의 체계를 이 루기 전, 주먹구구식으로도 일이 처리될 때였다.
일성이라면 학을 뗀 유재원은 막 자리잡기 시작한 본인의 기업에 일 성의 기업 문화가 침투되는 건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그때는 일성 출신이라면 아무리 이력이 좋아도 읽지 않았다. 그래서 홍범수가 본인은 안 되겠구 나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욱이 사내 벤처를 실패하면서 자존심도 자신감도 크게 잃었던 홍 범수였다. 그래서 덕진공대에 다시 가서 본인의 모자란 점을 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만약 배울 게 없으면 바로 때려 치울 생각도 했었는데, 모든 게 새 로운 것들이라 허겁지겁 배우기 바빴다고 고백했다.
그런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던 유재원이었고, 비서실 인턴으로 채 용한 것에 후회도 없었다. 더욱이 인턴 생활의 첫 번째 업무로 주어 진 일도 역시나 경력직 못지않은 실력으로 해냈다.
대한민국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 율 분석은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받아보는 유재원이었다.
2004년 출시된 안드로이드 S4는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로 전작인 S3 의 판매량을 뛰어넘는 중이었다.
대한민국에서만 1,200만 대를 넘 게 팔아치웠다.
미국과 EU 다음으로 큰 시장이 대한민국인 것이다. 앞의 두 지역 이 연합국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한 국에서의 흥행은 그야말로 비정상 적이었다.
새로운 것이 출시되면 바로 구매 해 사용하는 얼리어답터의 나라다 웠고 안드로이드 사랑이 유별나다 고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 으로 나머지 20%를 아이폰 그리고 옴니아 등의 안드로이드 호환 제품 이 나눠 먹고 있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치 확고!
-구매자가 프라이드를 느낄 만큼 압도적이고 선도적인 이미지로 소 비자의 선호도를 지배!
-국산 마케팅의 효과는 미미하나 마 입증. 옴니아의 판매량 지속적 으로 상승 중.
-다만 안드로이드 진영에서의 차 별성은 지극히 낮음.
-가장 큰 이유는 안드로이드 S
시리즈도 국산 제품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
홍범수가 올린 수십 장 분량의 보고서의 결론에 나오는 말이었다. 다만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있고, 몇 가지 의문도 있었다. 그렇기에 보고서를 다 본 유재원은 홍범수를 호출했다.
멀리 떨어진 사이라면 ID톡의 화 상 미팅 기능을 이용했을 텐데, 비 서실은 자동차 타고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게다가 홍범수 개 인에 대한 호기심과 호의도 있었기에, 유재원은 호출하는 데 망설임 이 없었다.
"어, 그러니까…… IMF를 시작으 로 2002 남북 월드컵까지 경험한 대한민국에는 국산이라는 단어에 프 리미엄이 생겼습니다. 국산을 쓰는 게 나라에도 보탬이 되고, 품질도 믿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는 수 입산, 특히 저품질의 중국산 수입량 의 폭증과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 통계청 자료를 보시면
서재로 호출된 홍범수는 본인이 작성한 리포트에 대해 프레젠테이 션을 했다. 처음과 달리 떠는 모습 도 없었다.
"국산 마케팅의 효과는요?"
"일반 제품의 판매 신장률이 20%는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 니다. 대성기획 자료를 보시면, 815 콜라의 국산 마케팅 전과 후의 판 매량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경우 아직 데이터가 나오진 않았지만,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금성전자가 출시한 안드로이드 호 환 제품인 옵티머스보다는 옴니아 의 판매량이 더 많으니까요. 그렇 지만 국산 마케팅의 효과는 우리 안드로이드 시리즈가 가장 많은 효 과를 보았습니다. 세계를 선도하는 국산 스마트폰, 그것이 한국의 보 편적 인식이라는 결론입니다."
역시 신입의 탈을 쓴 경력자는 달라도 달랐다.
유재원이 물어볼 만한 지점에 대 해 미리 공부라도 한 것처럼 데이 터까지 꼼꼼하게 준비했다.
"훌륭한 보고서였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눈에 살짝 걸리는 게 있어요."
그렇지만 지적할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료 조사는 직접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덩치 가 큰 데이터는 구매하기도 했습니 다."
홍범수는 회사 전산망에 올라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알고 봤더니 시장 분석 보고서를 맨땅에서 헤딩해 작성하라는 지시 가 아니었고, 아웃소싱으로 들어온 자료들을 종합하라는 지시였다.
홍범수는 단순 취합만 하기보다 는 보기에 부족하다 싶으면 직접 전화를 걸어서 능동적으로 알아보 았다.
전산망에 등록된 것보다 최신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싶으면 대성기 획의 데이터나, 각종 경제 연구소 의 데이터를 구매하기도 했다.
대성기획은 한국 최대의 광고 기 획사였고, 그만큼 비축된 데이터도 많았다.
그런 대성기획에 홍범수가 ID 그 룹 비서실이라 밝히고 자료 요청을 하니 즉각 전송해 주었다.
마케팅비가 조 단위로 집행되는 ID 그룹은 대성기획의 최대 고객이 었으니 말이다.
경제 연구소 자료의 경우엔 100 만 원이 넘는 가격을 자랑했지만, 비용 처리가 되었기에 홍범수의 부 담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외부 자료를 인용하실 때에는 태그를 확실히 달아주어야 합니다."
태그란 메타데이터 검색에 용이 하도록 고안된 키워드였다.
"구체적인 단어, 아니면 짧은 문 장을 쓰고 단어 앞에 샵(#) 마크만 하면 알아서 태그가 돼요. 그러면 회사의 검색 데이터베이스에 올라 가고,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활용 할 수 있거든요. 반대로 홍범수 인 턴이 필요한 데이터가 있다면 그룹 업무 처리 시스템에서 검색을 하면 십중팔구는 나올 거예요."
ID 그룹의 사내 전산망은 세계 그 어떤 기업보다 고도화된 상태다. 그렇기에 유용한 데이터가 있다면 빠르게 그룹 내에서 공유할 수 있 었다.
"그리고 골드가 메시지 박스를 띄웠을 때, 구체적인 코멘트를 달 아주는 게 좋아요."
"아, 네."
덤으로 기계 학습 인공지능인 골 드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은 학습 단계로 묵묵히 지켜 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다. 하지 만 몇 년만 지나면 골드가 일반 직 원들의 사무를 보조해 줄 것이다. 골드의 지능은 아주 빠르게 성장하 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성장의 바탕에는 유능한 ID 그룹의 임직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골드가 띄우는 메시지 박스는 새 로운 데이터나 패턴이 발견되었을 때 나오는 것이었다.
해당 업무나 데이터에 대해 정확 한 정의를 내려 주고, 라벨링을 해줄수록 골드의 지능 성장 속도도 빨라진다.
홍범수의 빨리 리포트를 만들어 야겠다는 욕심과, 인공지능 골드 모니터링이라는 생경한 환경 탓에 골드에 전송되는 데이터의 수준이 많이 부실했다.
"예! 앞으로는 꼭 따르겠습니다."
이런 지시는 굳이 유재원이 직접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관심이 절로 가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인 턴이고, 막 업무에 참여한 만큼 마 음을 써 주는 유재원이었다.
물론 겉으로만 보면 20대 중반인 유재원이 30대 후반인 홍범수를 챙 기는 건 너무도 어색한 그림이긴 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음, 다음 문서는……
홍범수를 나름의 방식으로 챙겨 준 유재원은, 그를 내보내고 본래 의 업무로 돌아왔다.
일성을 필두로 한국의 재벌들이 하는 국산 마케팅에서 ID 그룹이 타격을 입기는커녕 플러스만 된다 는 걸 확인한 이상, 추가적인 조치 는 필요 없어졌다.
설계를 미국서 하고, 미국인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들, ID 그룹이 한국에 내는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을 생각하면 국산 인정 은 당연한 일이었다.
홍범수의 보고서를 닫은 유재원 은 새로운 파일을 열었다.
"ID 하이테크인가."
ID 하이테크가 최근엔 좀 뜸하긴 했다.
몇 년 전 상업용 드론을 출시해 임팩트를 터트리긴 했지만, 이후에 는 대박 아이템이 나오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유재원은 ID 하이테크 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ID 그룹의 R&D 예산 중 30% 이상은 안정적이고도 꾸준하게 ID 하이테 크에 투입되었다.
예산을 먹기만 하고, 결과물은 딱히 없으니 그룹의 재무부서나 전략기획실 등에서는 블랙홀이라는 별명이 떨어질 줄 몰랐다.
"오! 이놈이 드디어 나오나?"
오늘 그 블랙홀에서 그렇게도 기 다린 무언가의 결과물이 튀어나왔 다는 보고였다.
차세대 원자로 실증 모델의 완성 이었다.
러시아가 붕괴했을 때, 최우선적 으로 데려온 사람들이 항공과 로켓 그리고 핵 개발 관련 과학자들이었 다.
북한으로 넘어갈 사람들까지 모 조리 데려옴으로써 북한의 핵 프로 그램 속도를 저하시키는 것과 동시 에, ID 그룹의 미래 먹거리 중 하 나를 챙겨놓는 것이 유재원의 목표 였다.
그렇게 모셔온 이들은 안드레이 소장을 중심으로 차세대 원자로 개 발에 돌입했다. 그리고 10년이 넘 는 긴 시간을 투자해 나온 것이 바 로 차세대 원자로였다.
안타깝게도 핵융합 방식은 아니 다.
핵융합이란 10년 정도 투자로는 어림도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대신 이번에 완성된 것은 기존의 핵분열 원자로와는 차원이 다른 아 주 안정적인 원자로로, 토륨 원자 로였다.
토륨이라고 하면 게이머들은 보 통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는 상급 재료 아이템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토륨은 게임 속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도 실 존하는 물질이었다.
원소 기호는 Th, 원자 번호 90 번인 악티늄족 원소로 은백색의 금 속이다. 토륨 원자로는 이 토륨을 핵분열 원료로 사용하는 원자로였 다.
현대의 원자로는 우라늄이나 플 루토늄의 핵분열을 이용하는 방식 이다.
고농도로 응축한 상태에서 급격 한 핵분열이 일어나면 핵폭탄이 되 는 것이고, 저농도에서 늦은 속도 로 일어나도록 세팅한 후 발생한 열을 발전에 이용하는 것이 핵 발전소였다.
현대에 핵 발전소는 깨끗하고 저 렴하면서 대용량 발전에 편하다고 널리 쓰이고 있지만, 핵 발전 후 나오는 처치 곤란한 핵폐기물이나 불의의 사고가 터졌을 때의 위험성 은 상상 이상이다.
토륨 원자로는 이러한 문제를 어 느 정도 해결하는 차세대 원자로였 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