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3화
2GW 규모로 발표된 모하비 발 전소라면 200구짜리 연탄보일러라 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성형이 완료된 토륨 연료 봉 모양을 보면 구공탄 형태의 연 탄과도 비슷했다. 단지 길이가 길 었을 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토륨 연료봉에 막대기 모양의 초우라늄 시드를 삽 입하고 중성자를 뿜어내도록 제어 하면 발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기존의 원전 반응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게 원자로를 구성할 수 있기에 예산이 크게 절 약된다. 물론 반응로에서 생성된 열을 전기로 바꾸는 파트는 그대로 인지라 여기서는 예산 절감이 어렵 다.
이러한 원가 절감 말고도 유재원 이 손해를 최소화할 비책은 또 있 었다. 바로 토륨 연료봉의 판매였 다.
클라크 팀장이 설계한 토륨 연료 봉의 수명은 3개월로 짧다면 짧은 것인데, 이는 안정적인 출력을 위 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토륨 발전의 핵심 원리는 토륨의 중성자 흡수 성질이었다. 중성자를 흡수하면 우라늄으로 변하는데, 그 렇게 변한 우라늄의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가장 좋은 건 우라늄-235로서 핵분열을 통한 에너지가 이 녀석으 로부터 나온다. 반면 우라늄-234는 비핵분열성 물질이라 핵발전에는 쓸모가 없다.
그러니 토륨 원자로가 운전을 계 속하면 필연적으로 비핵분열성인 우라늄-234가 쌓이게 되고 효율도 떨어진다.
기나긴 실험 끝에 클라크 팀장은 그 기간을 100일로 잡은 것이다. 그러니 연료봉 투입 후 100일이 지 나면 새로운 연료봉으로 교체해 줘 야한다.
연료봉 교체는 당연히 ID 웨스팅 하우스의 독점 사업으로 낙점했다.
언뜻 보면 구공탄을 기둥처럼 길 게 늘어놓은 모양인 토륨 연료봉이 지만, 그 내부에는 ID 하이테크의 기술이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토륨은 인도와 중국에 다량매장된 자원이고, 우라늄이나 플루 토늄보다 저렴하기에 비싸게 받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번에 200개씩 투입 되는 발전소라면 연료봉 하나당 1 만 달러씩 받아도, 한 번 교체에 200만 달러의 매출이 나오는 것이 나 다름이 없다.
연료봉 교체 주기가 기존 원전에 비해 짧고, 조금 비싸다고 해도, 발 전소로부터 나오는 전기의 용량이 나 폐연료봉의 처리 등에 있어 토 륨 원자로가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1+1 이벤트 를 과감하게 시행할 수 있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유재원 회장 동무, 최광건이오. 민족의 젊은 영웅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한민족의 긍지를 전 세 계에 내보인 유재원 회장 동무의 위명은 늘 듣고 있었소."
"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 니다. 유재원입니다."
유재원과 악수를 나누는 이는 바 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력공 업성 성장라는 긴 직함을 가진 최 광건이라는 인물이었다.
미국식으로는 에너지부 장관이 고, 한국으로 치면 산업자원부에 가까웠다.
최광건은 북한 사람이라는 전형 적인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턱도 잘 발달되어 있었고, 어깨도 떡하니 벌어져 있었다. 전력공업성이 아니라 어디 레슬링 협회 같은 데 있어야 할 사람처럼 보였다.
재미있는 건 유재원이 최광건과 만나는 모습을 열심히 촬영하는 기 자들의 반응이었다. 경악보다는 흥 미롭다는 반응이 훨씬 컸다.
북한의 고위 관료가 미국에 들어 와 유재원을 만나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외교 관계가 이제 정식 수교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어색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더욱이 유재원과 최광건 둘이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곳은 바로 모 하비 원전 부지였다. 오늘 첫 삽을 떠서 1년 6개월 내에 2GW 토륨 원자로를 완공하는 걸 목표로 건설 을 시작한다.
이를 위해 동시다발적인 공사가 이뤄지는데, 내진 설비를 갖춘 기 초 공사가 끝나는 대로 원자로부터 열교환부, 발전기, 송전 설비까지 동시다발적인 공사를 진행해 순식간에 끝내는 것이 유재원의 그림이 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였기 에 20세기 사람들은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토륨 원자로는 모듈화가 쉬운 구조였다. 더욱이 웨스팅하우스가 한물간 기업이긴 해도 저력이 있는 기업이었다.
너무도 빠른 속도에 당황했던 캘 리포니아주 정부도 1시간 단위로 만들어진 계획서를 보고 가능하다 고 보고 허가를 내주었을 정도다.
"우리 공화국의 최고존엄께서도 토륨 발전소 개발의 위업은 역사에 길이 남을 혁명이라고 하시었소."
"칭찬 고맙습니다."
최고존엄이라고 언급된 사람은 바로 북한의 2대 독재자인 김정일 을 말하는 것이었다.
토륨 원자로 개발 성공 소식을 전 세계로 떠들썩하게 퍼트린 것에 대해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 았지만, 이렇게 확실한 피드백이 돌아왔다.
북한에 정식으로 초청장을 보낸 것도 아니었는데, 최광건을 기공식에 보냈다는 것은 무척이나 긍정적 인 신호였다.
"최고존엄께서는 유 회장 동무의 토륨 원자로에 대해 아주 큰 관심 을 가지고 계시오.. 더불어 같은 민 족끼리 협력한다면 보다 나은 결과 를 내놓지 않겠느냐는 말씀까지 하 셨다오."
그걸 본인 입으로 확인까지 해 주는 최광건 성장이다.
북한이 새로운 원전 건설에 대해 관심이 무척이나 높았다는 정보팀 의 보고서는 확실히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네! 북한이 저희의 토륨 원자로 의 첫 번째 구매자가 된다면 저 또 한 영광이겠습니다. 만약 실제로 계약이 이뤄진다면 제가 직접 북에 가서 원자로 건설을 진두지휘하겠 습니다. 기왕이면 북한이 +1 이벤 트의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네요."
"최고존엄께 꼭 전해드리겠소."
유재원의 말에 최광건은 당연하 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최광건을 대신해 놀란 이들은 김 대석과 같은 유재원의 최측근이었다. 유재원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 해 아직 언질을 받은 게 없는 측근 들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북한이 과거처럼 악의 축으로 몰 리지 않았고, 북한 역시 철권통치 나 공포정치를 하지 않은 덕에 이 미지가 최악으로 떨어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회귀 전과 비교 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아직도 한 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북한을 꺼림 칙하게 여겼다.
그런 북한에 유재원이 직접 간다니 걱정이 더럭 드는 것이 사실이 었다.
이처럼 북한이라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올 만큼 모하비 토륨 원자로 기공식은 아주 성대히 치러 졌다.
시공을 책임지는 구 웨스팅하우 스 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했다. 이 대로 회사가 망하는가 싶었는데, 차세대 원전인 토륨 원자로 덕에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나 다름이 없 었다.
덕분에 모하비 사막이라는 환경적인 난관 속에서도 원자로 건설은 빠른 속도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역시, 킬러 아이템 하나가 있으 니 모든 게 순조롭구나."
모하비 사막에서의 토륨 원자로 건설의 첫 삽을 뜨고서 한 달이 흘 렀다.
토륨 원자로라는 새로운 아이템 덕이 2005년의 전반기는 그야말로 총알처럼 지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모든 사 업은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덕진공대 1회 졸업생으로 뽑은 인턴들도 중도 포기하는 사람 없이 배치받은 곳에서 열심히 적응하고 있었고, 토륨 원자로 역시 아직도 뜨거운 아이템이었다.
만약 유재원이 토륨 원자로 발표 만 하고, 수동적으로 수주되길 기 다렸다면 아직도 안정성이나 경제 성을 두고 여기저기서 태클을 받았 을 것이다.
그런데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 고,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에 2GW라는 대형 발전소 건설에 들 어가자 싹 사라졌다.
기존 원전의 건설비보다는 저렴 하다곤 해도, 수억 달러의 대자본 이 투입되는 사업이었다. 토륨 원 자로가 허술했다면, 미국 에너지부 에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 허가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었고, ID 그룹 이 돈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존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방식 의 핵발전을 지지하던 이들이 이제할 수 있는 소리는 두고 보자는 것 뿐이었다. 이들은 이론과 설계가 아무리 좋아도, 대형 설비를 안정 적으로 운영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았다.
모하비 토륨 원자로가 본격적으 로 가동을 시작하면 십중팔구 분명 문제가 터질 것이니, 그때 들불처 럼 일어나겠다는 것이다.
헛된 꿈이 분명했지만, 유재원에 겐 좋은 일이었다. 목소리 크고 말 많은 이들이 조용해진 만큼, 주변 을 돌아볼 시간이 난 것이다.
덕분에 유재원의 모니터 위에는 토륨 원자로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챙겨보지 못했던 굵직한 뉴스들이 떠올랐다.
-서울대 황우석 박사팀, 개 복제 성공!
유니콘의 탈을 쓴 비루먹은 당나 귀 줄기세포 사기 사건도 이변 없 이 등장했다.
-유튜브, 동영상 공유 서비스 개 시!
"유튜브라면 진짜 유니콘이라 할 수 있지."
회귀 전 유재원이 죽기 직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것이 유튜 브였다.
단순한 일상을 담은 V로그부터, 핵융합 핵심 수식과 같은 전문 정 보까지 폭넓은 저변을 자랑하며 동 영상 서비스 분야에 오래도록 군림 한 서비스가 바로 유튜브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회귀 전보다는 5개월 정도 늦춰진 7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유튜브 는 넥스트컴에 메인 광고를 띄우면 서 존재감을 밝혔다.
유재원은 즉각 새로운 웹브라우 저를 띄우고 유튜브에 접속했다. 그러자 유재원의 뇌리에 남아 있던 최근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게 거 칠고 투박한 모습의 유튜브가 유재 원을 반겼다.
" 아."
감탄이 아닌 탄식이었다.
유튜브에 접속했을 때 보이는 기 본 페이지에는 글자가 너무도 많았 다. 비디오 공유 사이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볼만한 비디오 클립도 얼마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회귀 전이었다면 런칭 초기 유튜 브가 수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디지털 비디오를 찍을 만한 도구로 피처폰이나 디지털 캠코더 정도가 최선이었을 테니 말이다.
반면 지금은 스마트폰의 보급으 로 동영상을 찍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은 디지털 카메라는 물론이고 캠코더까지도 한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렇지만 2005년이 되기까지 동 영상 공유 사이트는 나타나지 않았 고, 원래 날짜보다 몇 달 늦게 나 타난 유튜브도 옛날의 구식 그대로 의 모습이었다.
"하긴 나부터 동영상하면 아직은 성인물이 먼저 떠오르니 말이야."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야만 재미 있는 동영상이 나오는 건 아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겁고 위트 넘 치는 동영상을 만들 수 있고, 그게 아니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방송하 는 것만으로도 여러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리 유튜브 검색을 해 봐도 즐겨찾기를 해 놓 을 만한 고품질의 영상을 찾기가 어려웠다.
대신 살색과 핑크빛이 넘치는 동 영상을 찾기는 쉬웠다. 그나마도 상대의 동의를 받고 찍은 것보다 불법으로 도촬한 것처럼 보이는 게 훨씬 많았다.
유튜브 관리자들이 제대로 관리 를 하지 못하면 음란한 동영상 공 유 사이트로 변질되는 건 순식간일것 같다.
사실 유재원의 클라우드 서비스 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큰 문제는 해커들보다 불법 파일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크랙부터 시작해 값비싼 유료 응용 프로그램 등등을 열심히 올리는 사람들이 그 렇게나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DVD 단위의 대 용량 프로그램도 클라우드 서비스 라면 짧은 URL 주소 하나로 공유 할 수 있으니, 불법 복제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혹할 수 밖에 없다.
또한, 클라우드 서버에 입주한 기업들의 데이터를 노리는 해커들 도 상당했다. 값비싼 데이터를 탈 취하기만 하면 돈방석이었으니 말 이다.
마지막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협한 건 불법 동영상이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