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727화 (727/1,007)

34권 11화

"토륨 원자로가 안 팔려서 전전 긍긍하고 있다지?"

"점쟁이세요?"

"점쟁이는 무슨……. 자네가 얼 마나 초조한 티를 냈으면 티파니가 다 알아보았겠나?"

프레더릭 말은 티파니가 유재원 의 초조한 티를 읽고 걱정이 되어 서 프레더릭에게도 말해줬다는 이 야기 였다.

티파니에게 이야기를 들은 프레 더릭은 웃음부터 나왔다.

평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천 재 같은데, 어쩌다가 보면 정상인 보다 2%쯤 모자랄 때도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음, 한두 푼 들어가는 거로는 안 되는 원자로 사업이 어떤 식으 로 이뤄지는지 아는가?"

"물론이죠."

유재원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전력의 수요가 크게 증가해 기존 의 발전 용량만으로는 위태해질 것 같으면, 사업 타당성 조사가 이뤄 진다.

그리고서 적당한 발전 방식과 입 지가 선택되고, 주민 공청회와 함 께 환경 영향성 평가도 이뤄진다.

"그러면서 입찰도 받지."

"네! 맞아요."

그렇기에 유재원은 입찰 단계에 있는 원자로 사업에 열심히 참여했 다. 입찰에 넣을 제안서를 만드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정확하게는 유재원이 아니라 ID 웨스팅하우스의 클라크 사장과 직 원들이 만든 것이지만, 다른 업체 에 절대 떨어질 일은 없는 제안서였다.

그런데도 아직 좋은 소식이 들려 오지 않았다. 심지어 엊그제 발표 된 이탈리아의 원자력 사업에서는 탈락하기도 했다. 안정성 검증 미 비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탈리아는 애초에 염두에 두지 도 않았던 나라였지만, 그런 나라 에서 구식 우라늄 원자로를 채택하 는 걸 보고 조바심이 크게 일어난 건 사실이었다.

"흐음? 자네, 아직도 많은 나라 에서는 입찰제가 요식 행위라는 걸 모르는가?"

"예에?"

요식 행위?

"그러니까 짜고 친다는……

"글쎄. 그건 나도 100% 장담할 수는 없지. 부패 지수가 낮은 북유 럽 국가들이라면 말이야. 대다수 나라들은 입찰에 들어가기 전에 유 력한 회사가 뽑히는 게 보통이란 말일세. 그리고 거기에는 스펙 외 적인 요소들도 상당히 관여한다는 건 상식이지."

프레더릭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 번에 감이 오는 유재원이었다.

"원전과 같은 거대한 사업에 걸 린 이익 단체의 숫자도 많고, 이러 한 이익 단체가 돌아가기 위해선 적절한 이해관계 조절이 필요하단 말일세."

"설마요."

설마라고 말하는 유재원이지만, 프레더릭의 말에는 상당한 설득력 이 있었다.

토륨 원자로 발표 이후에 웬만한 건 다 해 본 유재원이었다. 웨스팅하우스의 전격적인 인수가 화룡점 정이었지만, 1+1이라는 이벤트까지 도 파격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아예 생각도 안 했던 것이 있으니, 로비였다.

토륨 원자로가 다른 업체들처럼 굳이 로비를 해야 할 만큼 단점이 많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게다가 1+1 이벤트로 하니 로비 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한 국처럼 전력 산업이 공기업이라고 해도 토륨 원자로에서 나오는 전기를 헐값에 팔 회사는 없을 테니 말 이다.

"원전 산업에서 그들만의 끈끈함 이란 우리 석유 업계 이상이지. 오 죽하면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나오 겠나? 토륨 원자로의 우수함은 그 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결사 항전 태세겠지."

기존 원전 업계의 위기감은 유재 원도 잘 알고 있었다.

웨스팅하우스는 죽었다 살아났 고, 반대로 다른 원전 업체들은 죽 겠다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고 있빈말이 아니라 주식 시장에서 구 식 원자로 업체들의 주가는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꾸준히 추락 중이 었다.

"그러면 북한도?"

"후후, 북한이 철의 장막 안에 있는 국가라지만, 거기라고 사람 사는 곳인데 다르겠나?"

엉뚱하게도 프레더릭의 말에 유 재원은 배신감이 확 밀려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력 공업성 성장 최강건은 미국까지 와서 모 하비 사막의 토륨 원자로와 워터빌 의 시험로도 보았고, 유재원을 만나 서는 온갖 미사여구로 칭송했다. 심 지어 한민족 운운하면서 한껏 비행 기를 태워 주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확답이 없던 건 로비가 없었기 때문이라니.

물론 프레더릭의 말을 100% 적 용하는 건 곤란하다. 아무리 원전 마피아가 판을 치는 곳이라고 해도 상식이라는 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심적으로는 프레더릭의 말에 마음이 상당히 쏠리는 유재원 이었다.

한편으로 인류에게도 좋고, 발전 소 운영 차원에서도 좋은 토륨 원 자로를 굳이 로비까지 하면서 팔아 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발전소의 규모가 기존 원자로보 다는 좀 더 크게 지어져야 하긴 했 지만, 원자로의 설계가 훨씬 간단 했기에 건설 비용 자체는 줄어든다.

게다가 연료봉의 가격이나 발전 후 나오는 핵폐기물까지 생각하면 토륨 원자로의 장점은 더욱 압도적이다.

"댐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전체를 박살을 낼 필요는 없지. 구멍 몇 개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걸 세."

때려치울까 하던 유재원은 프레 더릭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아쉬운 건 유재원이었다. 더구나 곧 다가올 대지진을 생각하 면 위험 지역에 있는 원자로를 토 륨 원자로로 바꾸는 게 시급했다.

본인과 기업의 이익만 생각하면 필요 없는 일이었지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유재원이 짊어진 과업이니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 이었다.

"조언 고마워요."

"응? 조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 네."

프레더릭은 기왕 조언을 주는 김 에 본인의 노하우를 남김없이 전해 주기로 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이지만, 그 렇지 않은 나라도 많지. 게다가 로 비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도 있고."

유재원은 다시 프레더릭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 자네나 자네의 기업이 직접 로비를 하는 건 위험하단 말 일세. 대신 자네를 위해 일해 줄 회사나 스페셜리스트를 찾아 의뢰 를 하는 게 더 안전하고 확실한 방 법일세."

무슨 말인지 유재원은 바로 이해 했다.

다시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 었지만, 구정물을 묻히지 않고 할 수 없는 사업도 있는 법이었다.

하긴, 돌이켜보면 IT라는 분야는 유재원에게 너무도 호의적인 분야 였다. 신기술과 새로운 트렌드만 보여주면 이를 직접 소비하는 네티 즌들이 열과 성을 다해 호응을 해 주었으니 말이다.

기존의 업체가 아무리 탄탄한 저 변을 가지고 있어도, 최종 소비자 만 사로잡으면 게임은 끝이었다.

반면 원자력 발전이라는 분야는 토륨 원자로 정도로는 기존 업체들 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단번에 뚫 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프레더릭의 조언에 확실한 감을 잡은 유재원은 토륨 원자로 세일즈 의 전략 자체를 완전히 수정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유재원 회장, 허리케인 카트리 나 피해자를 위한 자선 행사 주최.

-자선 행사에서 모인 1,343만 달러에 ID 파운데이션 긴급 구호자금 1억 달러를 포함한 1억 1,343 만 달러 기부!

-오버헤드 비용 절감을 위해 피 해자 직접 구제할 듯.

주요 일간지 신문의 헤드라인으 로 유재원의 통 큰 기부가 올라왔 다.

프레더릭의 통 큰 기부로 자선 행사에서만 1,343만 달러가 모였 고, 여기에 ID 파운데이션의 1억 달러 긴급 구호 자금이 더해졌다.

카트리나 이재민을 위한 기부 리 스트에서 단번에 최상단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이 유재원의 기부는 단순히 기부 단체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재민들을 위해 직접 움직이는 방 식이었다.

집을 다시 지을 돈이 필요한 사 람에겐 주택 건설을 위해서, 가재 도구가 다 망가진 가정에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그보다 훨씬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면 기프트 카드로 지 급했다.

기부를 위해 모인 돈이 최대한 기부를 위해 쓰이려고 만든 게 ID 파운데이션이니, 단순히 돈만 내고 마는 것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 다.

기사가 나온 시각, 유재원은 ID 테크놀로지 본사에서 이제껏 만나 본 적 없었던 부류의 전문가와 미 팅 중이었다.

"프레더릭이 말씀하시길, 존 씨 의 능력이 업계 최고라더군요."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존 가르니 컴퍼니는 고객님들께 실망 을 드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 깐깐하신 프레더릭 회장님도 만족하셨다고 자부합니다."

스스로의 이름을 당당히 말하는 이 넉살 좋은 사람이 바로 프레더 릭이 로비스트로 추천해 준 인물이 었다.

40대 중반의 남성이지만 로비스 트답게 매력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 이었다. 젊었을 적에는 꽃미남 소 리를 들었을 것 같고, 지금은 꽃중 년이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었다.

참고로 가르니라는 성은 미국에 선 희귀한 성씨인데, 프랑스 출신 이라고 했다.

하여튼, 본인의 이름을 딴 존 가 르니 컴퍼니라는 회사는 바로 로비 전문 업체였다. 본인을 포함한 여 러 로비스트들이 모인 작은 모임이 었는데, 프레더릭의 추천으로 알게 된 업체였다.

정보팀을 동원해 회사의 이력을 조사해 보니 과연 프레더릭이 추천 해 줄 만큼 로비 능력이 출중했다.

공교롭게도 존 가르니와 접촉하 려고 할 때, 자선 행사에서 만났던 레밍턴이 알아보겠다고 했던 사안 에 대해서도 보고서로 올라왔다.

역시나 레밍턴이 올린 보고서는 프레더릭의 조언과 무척이나 흡사 했다.

기름칠!

원자로 건설 계획이 있는 나라에 서 토륨 원자로를 간만 보고 있었 던 것은,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에 게 기름칠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 석이었다.

"네, 그래서 이번에 저도 존 씨 께 의뢰를 하려고 합니다."

"혹시 토륨 원자로 건인가요?"

갑질은 하지도 말고, 당하지도 말자는 게 유재원의 원칙이었지만, 이번 토륨 원자로 건만큼은 예외로 둘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존 가르 니는 미리 언질을 받은 것처럼 바 로 토륨 원자로를 언급했다.

"어느 나라의 원전 사업을 공략 하시겠습니까? 우리 존 가르니 컴 퍼니는 10여 개가 넘는 나라에서 원자로 사업을 도운 풍부한 경험이 있습니다."

업체명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건 업무상 비밀이라 하지 못했지만, 존 가르니가 자부심을 부릴 만큼 성과는 높았던 모양이다.

"소리아입니다."

"아, 한국! 한국도 우리 존 가르 니 컴퍼니에게 익숙한 나라……

"노스 소리아입니다."

북한이라는 소리에 존 가르니 씨 의 눈이 크게 뜨였다. 완전히 예상 을 빗나간 나라였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과 달라 진 북한은 일부 지역에 특구를 열 어 외화를 유치 중이었고, 저렴한 노동력이나 지하자원에 관심이 있 는 기업들이 북한 진출에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미국 기업 중에 북한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회사는 없었 다. 북한과 지리적 이점이 있는 대 한민국이나 중국, 러시아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더욱이 북한은 중국과 혈맹이니 중국의 시를 빌려 비즈니스를 해 나가는 게 수월했다.

문제는 유재원에겐 중국도 미개 척 국가였다는 점이다. 텐센트에 지분을 투자하긴 했지만, 그 이상 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았다. 대 신 텐센트가 유재원을 대신해서 중 국 내 ID 그룹의 지사 역할을 했지 만, 그 사업들 역시 IT 분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더욱이 북한은 표면적으로는 중 국과 혈맹이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친중인사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중국의 영토 팽창 야욕은 너무도 강력한 것이었고, 국경과 맞닿은 북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과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북한의 주요 지하자원은 중국에 지금도 헐값으로 팔려나가 고 있을 실정이었다.

더욱이 관계 개선이 이뤄진 지금 에는 북한을 향한 중국의 의심스러 운 시선이 더욱 강해졌고, 그만큼 참견도 심해졌다.

그러니 유재원에겐 중국의 시 를 이용하는 것이나 존 가르니 컴 퍼니에 로비를 의뢰하는 것이나 그 게 그거였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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