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12화
"성공한다면 존 씨를 600만 달러 의 사나이로 만들어 드리죠."
성공 보수가 600만 달러라는 이 야기에 존 가르니의 눈이 크게 떠 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그가 로 비스트로 20년 넘게 활동했지만, 가장 크게 받아 본 성공 보수는 100만 달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것도 인생에 몇 번 없었던 일이었 다.
그런데 역대 최고치의 6배에 달 하는 제안을 받았으니 흥분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여기에 유재원은 존 가르니의 의 욕을 더욱 고취시키는 한 마디도 보탰다.
"활동비도 따로 계산해 드릴 테 니, 최선을 다해 주세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유재원은 존 가르니 와 바로 계약을 체결했고, 그날로 존 가르니 컴퍼니는 사운을 걸고 활동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효과는 대단했다.
9월 중순.
모하비 사막에 건설 중인 거대한 토륨 원자로의 윤곽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할 무렵.
최강건으로부터 긴급한 미팅 요 청이 들어온 것이었다.
유재원은 존 가르니 컴퍼니에 의 뢰를 하긴 했는데, 그렇게 빨리 반 웅이 올 줄은 몰랐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에너지 기업들은 다 하고 있던 로비라는 걸 유재원만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러니 후발 주자로서 ID 웨스팅하우 스가 힘을 내려면 몇 달은 걸릴 줄 알았다.
다행히 북한은 예외였다.
철의 장막 속에 사는 북한은 중 국을 따라서 개방 노선을 선택하긴 했는데, 무척이나 제한적인 지역에 만 한정해서 이뤄지고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 같은 초거대 사회 간접 자본 건설은 북한이란 나라에겐 버거운 일이라는 걸 다 알고 있 었다. 그렇기에 전력 수요가 폭발 하는 북한이지만 거기에 관심을 두 는 에너지 기업들은 ID 웨스팅하우 스가 유일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적극적이지 않 은 모습을 보였고, 유재원은 답답 하기만 했다. 정보팀을 움직였지만, 폐쇄적인 국가라서 제대로 된 정보 를 얻을 수도 없었다.
해킹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한도 인터넷을 쓰긴 했는데, 네트워크에 연결된 시스템을 국가 통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 다. 북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 봐 도 토륨 원자로 계약에 미적지근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존 가르니 컴퍼니가 활동 하기 시작하자 정보들이 하나둘 들 어오기 시작했다.
-북한, 2대 독재자 김정일의 최 대 현안은 북미 수교.
-평양과 워싱턴DC에 만들어진 연락사무소가 대사관 승격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상당.
-북한도 유재원 회장이 앨 고어행정부와 상당한 연줄이 있다는 것 을 잘 알고 있음.
-토륨 원자로를 북미 수교의 지 렛대로 활용해 볼 생각으로 이어짐.
존 가르니 컴퍼니로부터 날아온 중간보고였다.
"북미 수교라니."
지금의 토륨 원자로는 1+1 이벤 트로 남는 게 없는 장사였다. 그런 데 이걸 북미 수교의 지렛대로 삼 으려는 북한이 비싱?식적으로 보일 정도다.
어처구니없는 보고서를 받은 유 재원은 바로 존 가르니를 서재로 불렀다.
"이거 진짜예요?"
"네! 중국의 대북 전문가를 통해 교차 검증한 것입니다!"
그에 대해 중간보고를 위해 유재 원의 서재를 다시 찾은 존 가르니 가 바로 반박했다.
"북한의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토륨 원자로는 이제 막 세상에 나 온 신형 모델로서, 실적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모하비 사막에 2GW의 대형 발전소가 세워지고 있지만, 당장 완성된 건 아니니까요. 그러 니 북한이 ID 웨스팅하우스의 첫 고객이 되어 주는 것이 본인들 입 장에서는 유 회장님께 굉장히 큰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겁니 다."
역시 세상엔 특이한 사람들이 너 무 많다. 그런데 아직 존 가르니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더욱이 북한에게 토륨 원자로의 최대 장점은 장점이 아니라는 겁니 다."
"그건 또 무슨 말이죠?"
"토륨 원자로에서 나온 핵폐기물 은 재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일반적인 핵발전소에서 나온 연 료봉에는 상당한 핵물질이 남아 있 다.
그걸 다시 원심분리기 같은 곳에 넣고 돌리면 고농축 핵물질이 나온 다. 보통은 다시 핵연료봉을 만드 는 데 쓰이지만, 더 농축시키면 핵 폭탄을 만들 만큼 강력해진다.
반면 토륨 연료봉은 아무리 원심 분리기를 돌려도 나오는 건 토륨과 비핵분열성 우라늄인 우라늄-234 정도뿐이다.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 북한이지 만, 그렇다고 가능성까지 없애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여기서 드러난 다.
"비단 북한만 이러는 게 아니더 군요. 일본도 토륨 원자로에 시큰 둥한 반응이었습니다."
존 가르니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 를 끄덕였다.
일본은 핵폐기물 재처리 기술이 세계 최고인 나라였다.
핵폐기물을 정제해 당장 핵무기 로 전환할 수 있는 고농축 플루토 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었고, 핵 폐기물도 언제든 재처리할 수 있도 록 발전소 근처에 상당량의 사용된 핵 연료봉을 쌓아 놓고 있었다.
"오히려 북한이 아닌 다른 유럽 을 공략하는 게 더 쉬워 보입니다."
유럽의 대다수 나라들은 환경 오 염에 민감했다.
기존 원자력 발전소들은 그저 깊 은 곳에 묻어 둬야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핵폐기물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니 ID 웨스팅하우스에서 전 통의 비즈니스 방식을 따라 준다면 얼마든지 수주할 수 있다는 존 가 르니의 말이었다.
전통의 비즈니스라는 건 바로 커 미션이었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계획이 입안 되면 거기에 따른 다양한 이권 단 체들이 움직인다. 민간의 사회단체 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다양한 이 해관계들이 일어나면서 힘을 겨루 게 된다. 이들을 움직이는 데엔 후진국처럼 뇌물을 직접 찔러 주는 것부터, 합법적인 후원까지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유재원이 보기엔 비효율의 극치 였다.
저렇게 실제 사업과 전혀 관계없 는 비용은 그대로 원전 건설 비용 에 전가되어 사업비만 올라갈 테니 말이다.
언제나 시스템의 성능을 100%, 아니 120% 끌어내기 위한 극한의 최적화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유재원이었기에,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최적화에 대한 유재원의 집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게 바로 안드로 이드 운영체제였다.
버전이 올라갈수록 화려해지고, 기능도 많아지는 운영체제였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에 나온 구식 시스템에 최신 버전을 설치하 면 성능 향상을 느낄 수 있었다.
각 CPU의 모델에 따른 최적화 코드를 매번 갱신했고, 멀티코어 사용의 효율성도 극대화하는 CPU 스케줄러의 최적화도 지속적으로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유재원에게 기존 에너지 업 체들의 비즈니스 방식은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토륨 원자로가 좋다는 게 너무도 뻔한데, 저렇게 나 많은 가욋돈을 써가면서 낙찰을 받아야 한다니 말이다.
유재원은 일단 유럽 쪽은 놔두고 북한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나마 북한은 한 사람이 결정만 하면 곧바로 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였으니 말이 다.
존 가르니의 보고를 다 들은 유 재원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적극적 이어서 저들이 착각을 해 버린 모 양이군요. 달궈진 분위기를 식히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스스로 갑이라고 착각하는 북한 에게 차가운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 었다.
북한은 지금 차기 원자로 사업에 서 ID 웨스팅하우스와 다른 에너지 업체들 사이에 경쟁을 시킬 수 있 다고 보고 있었고, 핵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토륨 원자로의 장점을 단점으로 보고 있었다.
더욱이 북미 수교라는 북한 최대 의 현안을 토륨 원자로와 연동해서 유재원을 지렛대로 쓰려고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갑인지 가리 는 방법은 확실하다. 서로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쉬운 쪽이 먼저 손을 내밀게 되 어 있다.
"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 만, 기다리는 시간이 예정보다 길 어쩔 수도 있습니다. 살라미 전술하면 북한이 원조니까요."
존 가르니의 우려에 유재원은 간 단히 답했다.
"그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 이죠."
"예! 그럼, 분위기를 만들어 보겠 습니다."
ID 웨스팅하우스에는 유재원이 지시를 하고, 존 가르니는 유재원 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분위기 를 만들어 보는 것으로 그날의 미 팅은 끝이었다.
결과적으로 유재원이 옳았다. 게 다가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ID 웨스팅하우스가 북한의 차기 원자로 사업에서 손을 뗐다는 소문 이 돌기 시작할 때, 매일같이 VIP 대우를 받으며 LA의 호텔에서 지 내던 최강건에 대한 접촉을 끊었다. 대신 유럽에서 나온 위원회 양반들 에게로 접촉과 지원을 강화했다.
어차피 유럽도 토륨 원자로를 팔 아야 할 지역이었으니, 미리 약을 치는 것이었다.
간단한 대외 활동 전술의 변화였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최강건의 강 짜에 ID 웨스팅하우스가 그만 질려 버렸고, 최우선적인 공략 대상을 북한에서 유럽으로 바꾸었다고 보 기에 충분했다.
나름의 셈법이 있었던 최강건은 본인의 계산대로 잘 굴러가고 있었 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ID 웨스팅하우스가 유럽으로 눈을 돌렸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본인에 대한 ID 웨스팅하우스 측의 대우도 달라졌다.
그래도 담담했었다. 당장 실적이 없는 토륨 원자로를 살 만한 나라 는 북한뿐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 문이다.
하지만 최강건의 윗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북한 수뇌부에 모종의 이유로 비상이 걸 리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그것은 바로 김정일의 건강 이상 설이었다.
북미의 관계 개선과 남북 경협의 확대로 북한 정권의 안정성은 최고 였다. 그에 따라 북한 수뇌부의 긴장감도 절로 풀어졌다.
회귀 전에는 고난의 행군이다 핵 개발이다 하며 긴장감을 잔뜩 세우 며 고슴도치처럼 지냈을 사람들이, 지금은 권력이 가져다주는 온갖 향 락을 즐기기에 바빴다.
아이러니하게도 날이 바싹 섰던 회귀 전과 비교하면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매일 기름진 음식에 술 도 함께 했으니, 성인병이 자연스 럽게 따라붙었던 것이다.
북한의 수뇌부에서도 더는 묵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더는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볼 상황이 아니 었다.
최강건에게 떨어진 지령은 최대 한 빨리 상황을 진전시키라는 것.
그렇기에 최강건은 기존의 지연 전술을 폐기하고 급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유재원은 최강건의 미팅 요 청을 보고받고 즉답을 피했다.
"흐음. 효과가 너무 좋은데."
북한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소문과 함께 ID 웨스팅하우스의 포커스를 유럽으로 맞추는 것만으로 이렇게 빨리 반응할 줄은 몰랐다.
정상적인 흐름은 절대 아니다.
유재원은 자연스럽게 북한 수뇌 부의 급격한 변화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머릿속 기억의 궁전에 저장된 타임테이블을 보면, 김정일 의 건강 이상은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일어났으니 말이다.
예정보다 일찍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라면, 최강건 의 태도 변화를 이해할 수가 없다.
"김 비서실장님, 긴급 임원 회의 소집해 주세요. 화상 미팅으로. 아, 존 가르니 씨도 초대하시고요."
"예, 회장님!"
유재원 혼자서도 괜찮은 방침이 나올 테지만, 이번만큼은 여러 사 람의 머리를 모으기로 했다. 일이 틀어지면 국가 단위에서 후폭풍이 일어나는 것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자 유재원도 평소와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리에서 치열 한 의견이 오고 갔다.
북한에 토륨 원자로를 팔고 자원개발권을 얻어 온다는 목적은 변하 지 않았지만, 이를 추진하는 방식 은 크게 달라졌다. 유재원 그리고 ID 그룹이 웬만하면 가용할 수 있 는 수단을 동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동원되는 수단에는 앨 고어 대통령과의 친분도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재원이 토륨 원자로 판매를 위해 북한의 숙원인 북미 수교의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 다.
여기엔 확고부동한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북에 휘둘리지 않 는다는 것이었다.
토륨 원자로라는 기술은 오직 ID 그룹에서만 가능한 독점 기술이다. 그걸 가지고 있는데, 겨우 심부름 꾼이나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 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