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14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되었지."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는 지금 가장 뜨거운 상품이었다.
집값은 꾸준히 오르는 중이었고, 기왕 집을 사는 거 오르기 전에 사 자는 심리로 많은 이들이 주택 구 입에 나섰다.
그중에는 집값을 혼자서 부담하 기 버거워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런 이들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해 주는 은행들도 많았다.
신용도가 조금 부족해도 상관없다.
서브프라임 채권들을 모아 만든 옵션 상품도 잘 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경제 활황으로 시중에 풀린 막대 한 자금이 은행과 투자 은행을 통 해 주택 시장으로 몰리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지만 대출자가 이자와 대출금을 갚지 못하더라도 큰 문제 는 아니다.
압류한 주택을 다시 팔면 대출금 은 간단히 돌려받을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돈이 더 나올 때도 많았 다. 주택의 가격은 계속 상승 중이 었으니까.
"이 좋은 걸 그만하라니?"
에런 폴드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리먼 브라더스가 서브프라임 모 기지론에 투자한 자금은 5천억 달 러가 넘었고, 이를 통해 벌어들이 는 수익의 규모도 연간 5백억 달러 에 이르렀다.
덕분에 리먼 브라더스에서는 어 마어마한 성과급 잔치를 이어 가고 있었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투자 를 과감하게 선택한 에런 폴드 본 인의 누적 성과급 액수는 1억 달러 를 가뿐하게 넘어섰을 정도다.
이렇게 재미 좋은 장사에 시종일 관 찬물을 끼얹는 ID 인베스트먼트 가 곱게 보이지 않는 에런 폴드였 다.
"응?"
그러다가 에런 폴드의 눈에 확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인 조지프 P. 케네디는 월가 앞에 서 장사하던 구두닦이들끼리 주식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대공황을 예견할 수 있었다. 홈리스가 무담 보 대출로 빚을 내어 집을 사고 있 는 지금, 조지프 P. 케네디의 교훈 을 되새길 때다.
"무담보 대출?"
주식 시장이 과열되었다는 지표 로 삼기에 가장 최적의 신호는 바 로 객장에 이색적인 사람들이 나타 날 때였다.
산에서 도 닦고 있어야 할 스님 이라든가, 애엄마들이 우르르 나타 났다든가 하면 확실한 거품 상태라 고 단언할 수 있다.
재산도 없는 홈리스가 무담보 대 출로 집을 사는 지금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위험하다는 증거라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에런 폴드의 눈에 보이 는 무담보 대출 상품은 그렇지 않 았다.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가격은 수 요에 달려 있다. 집도 마찬가지로 원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격은 올 라간다.
그러니 무담보 대출을 통해서라 도 집에 대한 수요를 올린다면 전 체적인 수익은 확 올라갈 것 아니 겠는가.
물론 담보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무능력자에게 대출을 해 주는 건 위험하지만, 담보대출 그리고 이와 연동된 옵션 시장까지 고려한다면 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딱 섰다.
따르릉.
컴퓨터를 통해 제대로 계산을 해 보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에런 폴드의 비서였다.
"응? 뭔가?"
-이사님을 뵙고 싶다는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오늘 미팅 약속은 저녁에 있는 걸로 아는데?"
-네, 약속 없이 찾아와서 죄송하 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ID 인 베스트먼트의 빈센트 그린힐 사장 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상품 에 대해 커다란 제안을 하기 위해오셨다고 합니다.
원래 에런 폴드는 약속 없이 찾 아오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다.
만나 봤자 이런저런 투자를 제안 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역시나 대 부분 쓸모없고 가망 없는 것들이었 으니 말이다.
하지만 빈센트 그린힐 사장이라 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비서가 언급한 것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이었다.
참 공교롭게도 지금 에런 폴드가 보고 있던 것도 ID 인베스트먼트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한 경고 였다.
"음, 그럼 응접실로 안내해 주 게."
도대체 무슨 제안을 하려고 몸소 찾아왔는지 궁금해졌다.
에런 폴드는 응접실에서 만난 빈 센트 그린힐과 간단한 악수와 인사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시작은 빈센트 그린힐이었다.
"리먼 브라더스 측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상품을 무척이나 긍정적으 로 전망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안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자신하 는 만큼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수 익률과 연동되는 풋 옵션 상품을 만들어 주시지요. 그러면 우리 ID 인베스트먼트에서 매입하겠습니다 . 무제한으로 말이지요."
빈센트 그린힐의 제안은 에런 폴 드의 상상력을 단번에 뛰어넘은 파 격 그 자체였다.
옵션이란?
옵션은 특정 상품에 부여된 권리였다.
기준으로 삼을 기초 자산을 정하 고, 만기 시점도 정한다. 그리고서 해당 상품의 가치가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 판단해서 콜 옵션 혹 은 풋 옵션을 발행한다.
콜 옵션이란 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였다.
석유를 예로 들어보자면 현재 원 유 1배럴의 가격은 65달러인데, 3 개월 후에 80달러에 살 수 있는 콜 옵션을 샀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서 원유 가격이 100달러가 되었다고 하면 20 달러의 이익이 생긴다.
위험을 감수하고 미리 80달러에 살 수 있는 콜 옵션을 구매했으니, 100달러가 아닌 80달러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콜 옵션의 반대가 풋 옵션이다.
풋 옵션은 팔 수 있는 권리로서, 콜 옵션의 반대로 작동한다.
마찬가지로 원유를 예로 든다면, 3개월 후 50달러에 행사할 수 있는 풋 옵션을 샀다. 그리고서 3개월이 지났을 때 원유 가격이 1배럴에 30달러로 추락했다면? 20달러의 이익 이다.
옵션이 없는 이들은 30달러에 팔 아야 했지만, 옵션이 있으니 50달 러라는 가격에 팔 수 있게 된 것이 다.
그런데 옵션이 마냥 좋은 건 아 니다.
만기 시점의 가격을 정확하게 예 측하는 건 월 스트리트의 그 누구 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날카로운 직감 아니면 정교 한 계산을 통한 예측으로 기준을 잡고 항상 모니터링을 하면서 위험 을 대비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준 가격에 미 치지 못한 옵션은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옵션에 투자된 돈은 그냥 날 리는 것이었다.
가까스로 만기 시점에 기준 가격 안으로 들어왔다더라도 옵션 구매 가격은 따로 내야 했으니, 이를 포 함해 손익을 계산해 봐야 했다.
그렇기에 옵션으로 진정한 수익 을 내려면 만기 시점에 기초 자산의 가격은 물론 옵션 구매 가격까 지도 고려해서 투자를 설계해야 한 다.
이렇게 까다로운 탓에 보통 옵션 은 커다란 투자에서 위험을 대비하 는 보험용으로 쓴다거나, 만기 시 점까지 기다리지 않고, 중간에 경 과를 보다가 팔아 버리는 식으로 쓰는 게 보통이었다.
에런 폴드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 지론을 발굴하는 비상한 눈을 가지 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상식이 파 괴될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빈센트 그린힐의 제안은 그야말로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의 풋 옵션이라니. 빈센트 사장님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하락할 거라고 확 신을 하는 모양이군요?"
"그렇소."
에런을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 는 빈센트 사장에게는 일말의 불안 감도 없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한 부 정적 예측은 유재원이 시작한 것이 었지만, 빈센트 사장 역시 동일한 견해였기 때문이다.
홈리스가 무담보 대출로 집을 살 수 있다니. 그야말로 엄청난 과열 상태라는 걸 말해주는 확실한 지표 였다.
더욱이 빈센트 사장뿐만이 아니 라,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분석팀 에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 한 과열을 확신했다.
이견이 나오는 건 붕괴 시점이었 다.
폭발하기 직전의 압력솥은 확실 한데, 미국의 경제가 너무 좋아서 몇 년은 더 이어쩔 수 있다는 분석 도 있었다.
유재원도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의 경험으로 원래 서브프 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질 시점이 2007년 8월 16일이라고 정확히 알 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경제 변수들이 크게 바뀐 지금에서는 똑같은 날에 터질 거라고 보는 건 위험했다.
오히려 경제가 활황인 지금 일찍 터질 가능성도 매우 컸다.
유재원은 빈센트 사장에게 정확 한 날짜를 말하지 않았지만, 이러 한 불안감을 공유했다.
유재원의 말이라면 하늘이 두 쪽 이 나도 믿을 정도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던 빈센트 사장과 ID 인 베스트먼트의 투자분석팀은 서브프 라임 모기지 투자 상품에 대한 풋 옵션 대량 매수라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 의 풋 옵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었다는 것이다.
옵션이라는 건 누군가 발행을 해야 하는 것인데, 지금은 ID 인베스 트먼트 말고는 그 누구도 서브프라 임 모기지 상품이 붕괴할 거라는 예측을 하지 않고 있었던 탓이다.
"그런데 왜 하필 저희를 찾은 거 죠?"
"그야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 해 가장 낙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리먼 브라더스 아닙니까? 그 만큼 높은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으 실 테고, 그런 만큼 풋 옵션 발행 에도 부담이 없으실 거라고 생각했 지요."
빈센트 그린힐의 말에 에런은 고 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본인이나 리먼 브라더스 의 다른 임원들이나 모두 서브프라 임 모기지론에 대해서는 긍정적이 었다.
그렇지만 풋 옵션 발행을 섣불리 결정하진 못했다.
권한이 없어 그러는 건 아니다. 최고재무책 임 자 (CFO) 라는 에런의 직위로는 문제없는 일이었다.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부터, 투 자 분야에 대한 결정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힘을 쓸 수 있는 자리 였다.
오히려 너무도 먹음직스러운 제 안인데,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른 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 습니까?"
" 얼마든지요."
그렇게 시간을 얻은 에런은 신중 한 눈빛으로 빈센트 그린힐을 살폈 다.
ID 인베스트먼트 사장이라는 직함이 없었더라면 그야말로 평범한 노인이었다.
젊었을 적 화려한 금발이었을 머 리카락이 지금은 하얗게 세었고, 입고 있는 옷부터 구두까지도 모두 평범한 것들이었다.
그나마 손에 걸린 황금색 로열오 크 시계는 에런의 눈에 확 들어왔 다.
저게 그 유명한 ID 그룹의 근속 자 포상품인 모양이다. 사고 싶어 도 살 수 없는 주문 제작 제품이라 고 했던가.
그러면서 에런은 어느 정도 생각 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풋 옵션을 얼마나 매입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리먼 브라더스가 움직이려면 최소 천만 달러 이상……
"통이 좀 작으시군. 최소 1억이 요. 상한은 없소."
1천만 달러도 조심스럽게 말했던 에런에게 빈센트 사장이 확 치고 들어왔다.
1억 달러.
단번에 10배를 올려서 말한 것이 다. 게다가 상한은 없다고 했으니 10억 달러라도 OK라는 이야기였 다.
에런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