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740화 (740/1,007)

34권 24화

유재원의 말처럼 그날은 순식간 에 다가왔다.

전 세계 동시 개봉을 해도, 가장 빠르게 영화가 걸리는 대한민국에 서 월 스트리트의 외로운 늑대가 개봉되었다.

물리적인 시간만 따진다면 일본 이 한국보다 더 빨리 개봉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유통망 때문에 신작 영화가 다른 나라보다 몇 달은 느리게 걸렸다.

반면 대한민국은 영화 산업의 발 달과 함께 대기업들이 뛰어들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전국을 덮었다.

미국은 한국보다 거의 하루가 늦 게, 동부에서부터 개봉이 시작되었 다.

아쉽게도 다빈치 코드처럼 오프 닝 스코어 신기록을 기록하진 못했 다. 그래도 6월 9일 개봉한 영화 중에서는 1등을 차지했다전 세계 기준으로 첫날 수익은 1,200만 달러. 미국에서만 한정한 다면 700만 달러였다.

미국 영화 티켓의 평균 가격이

6.5 달러 정도였으니 1일 차에만 100만 명이 넘게 월 스트리트의 외 로운 늑대를 선택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100만 명 중에는 리먼브라더스의 CFO 에런 폴드도 있었다.

보람찬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금 요일 밤이었으니, 평소 같았으면 거나한 술판이 벌어졌을 터였다.

그렇지만 동료들이 본인들의 이 야기를 다룬 영화가 드디어 개봉했 다면서 극장에 가자고 했다.

리먼브라더스와 ID 인베스트먼트 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대한 견해 차이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걸 다룬 영화가 나왔다니 에런 폴드도 호기심이 생겨 오랜만에 극 장을 찾았다.

영화 속에서 그 말도 안 되는 가 설을 증명하고자 얼마나 많은 비약 과 상상력이 동원되었는지 확인하 고 실컷 비웃어 줄 작정이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얼굴로 극장 에 들어간 에런 폴드는 영화가 끝 났을 때, 뭐에 홀린 사람처럼 사색 이 되어 영화관을 나섰다.

동료들 역시 비슷했다.

원래 영화가 끝나면 진한 술판을 벌일 참이었지만, 에런 폴드나 동 료들 그 누구도 술 이야기는 꺼내 지도 못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에런 폴드가 제일 먼저 자리를 떴다. 도 망치듯 극장을 나와서 찾아간 곳은 매일이 축제 같았던 그의 직장 리 먼브라더스였다.

바로 본인의 자리로 돌아온 에런 폴드는 컴퓨터를 켜고 정신없이 뭔 가를 찾기 시작했다.

"미친!"

모니터에 뜬 데이터는 바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부도율을 나 타낸 선 그래프였다.

작년부터 꾸준히 우상향을 그리 고 있던 그래프는 영화 속 주인공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붕괴를 예측하며 설명했던 것과 똑같았다.

보통의 그래프라면 에런 폴드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했던 그래 프는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 시점의 2006년 10월까지 예측한 것이었다. 그 그래프가 6월인 지금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 다.

심지어 영화는 올해 초에 완성되 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에런 폴드 의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의 부도 율이 오르고 있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리먼 브라더스 역시 채무자들의 상태를 긴밀히 모니터링 중이었고, 에런 폴드를 비롯한 핵심 임원들은 심각 한 상태라고 해석하진 않았다.

그 예로, 호세 베스라는 사람을들 수 있다. 현재 실리콘 밸리에서 이미지 해석 관련 스타트업에 일하 는 사람이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겨서 집 을 구했는데, 직장과 가까운 산호 세의 집을 샀다. 저금리 담보대출 인 프라임론 하나만으로 집값을 준 비하는 게 부족해서, 서브프라임론 까지도 빌렸다.

그런데 잘 다니던 직장인 스타트 업이 매각에 실패하면서 호세 베스 의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겼다.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이 큰돈을 만지는 루트는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상장이었다.

스타트업이 해당 분야에서 상당 한 존재감을 쌓는 데 성공하고, 수 익 모델도 어느 정도 안착이 되면 나스닥 상장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상장만 된다면 스톡옵션을 실행 해서 너도나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더 큰 기업에 매각이 다.

큰 기업에 인수된다면 효과는 상장과 비슷했다. 스톡옵션에 따라 매각 대금을 분배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상장보다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안정적인 뒷배를 두고서 기술 개발에만 더욱 몰입할 수 있 었으니 말이다.

호세 베스의 이미지 해석 스타트 업도 큰 기업에 매각되는 게 유력 했다. 실리콘 밸리의 터줏대감인 애플사였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는 물론 이고 이미지 센서를 통해 사물까지도 빠르게 인지하는 인공지능 골드 의 엄청난 IQ에 큰 충격을 받은 애 플사였다.

골드보다 1년은 빠르게 시리라는 인공지능 비서를 선보였던 애플사 였지만, 이렇게 빠르게 따라잡힐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시리의 지능을 끌어올 리는 게 최선이었고, 실리콘 밸리 의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이 그 방법 중 하나였다.

애플사에 인수라니!

호세 베스를 비롯해 그의 동료들의 가슴에 바람이 훅 들어왔다.

물론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큰손 은 ID 그룹이었다. ID 그룹이 제시 하는 인수 조건은 그야말로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반면 애플은 좀 짠 손이었다. 인 수 대금도 짜고, 인수 후에 구조 조정도 있었다.

그래도 스타트업 홀로 거친 사회 를 헤쳐 나가는 것보다는 인수되는 게 훨씬 나았다.

하여튼, 애플사에 인수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호세 베스와 동 료들이었지만, 지금은 다 지난 일 이었다.

알고 봤더니 애플은 호세 베스의 스타트업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여 러 회사와 접촉해 저울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애플은 인수 규모를 크게 줄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모양인 지 접촉이 뜸해졌다.

애플에 인수될 줄 알고 지출을 조금 늘려왔던 호세 베스에겐 청천 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사실 애플도 할 말은 있었다.

이미지 해석 스타트업은 물론이 고 실리콘 밸리의 인공지능 관련 회사들을 동시에 인수해 시리의 지 능을 끌어올리는 게 애플의 목표였 다.

그러한 인수 자금은 바로 스티브 잡스가 보유한 픽사의 매각 대금을 통해 만들 계획이었다.

애플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나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회 사의 자금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애플 자체적인 현금 흐름은 이미 사용처가 다 정해진 상 태였기에, 시리의 지능 향상 프로 젝트처럼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은 픽사를 팔아서 조성된 자금으로 하 려고 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와 ID 그룹 사이의 협상이 길어지면서 픽사의 매각도 뒤로 자꾸 밀렸다. 스티브 잡스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호세 베스에겐 큰일이었다.

애플에게 매각될 줄 알고 벌였던 일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그중에 제일 큰 타격은 주택 대출금 상환이었다.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보려고 했는데, 다들 어렵다 고 했다.

결론적으로 호세 베스는 서브프 라임 대출금과 이자를 펑크 냈다.

그제야 호세 베스는 대책 없이 비싼 집을 샀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에게 최악 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애플이 매수를 철 회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애써 샀던 집을 팔 아야 할지 몰랐다.

"크. "

데이터를 보던 에런 폴드로부터 깊은 탄식이 올라왔다.

호세 베스의 케이스는 서브프라 임 모기지론을 받은 대출자 중에서 는 그나마 괜찮았던 것이었다.

대출금 상환은커녕 이자만 내기 에도 벅찬 상태인 이들이 상당수였 다.

그렇게 이자도 받지 못하게 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리먼브 라더스의 특제 레시피로 묶어 만든 CDO나 CDO를 기초 자산으로 놓 고 만든 파생 상품의 수익률이 떨 어진다.

지금도 연 9%라는 놀라운 수익 률을 찍고 있었지만, 내부적인 전 망은 좋지 않았다.

미국은 물론 세계의 경제 기류는 파고를 그리면서 상승과 하강을 반 복하고 있었다.

에런 폴드는 낙관적인 성향이 강했으니, 전체적으로는 우상향이란 그래프를 그린다고 믿고 있었다.

문제는 2006년이 경기의 하강 국면이었다는 점이다.

에런 폴드는 이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보았다.

미국 경제의 규모라면 성장률이 조금 줄어들어도 사회적인 혼란은 크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본 것 이다.

더욱이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초 대형 투자회사가 큰 수익을 내는 시점은 경제가 무섭게 성장할 때가 아니라, 약간의 위기가 있을 때였경제가 어려워지면 대출 금리도 상승하고, 그러면 레버리지 효과로 CDO의 수익률과 관련 파생 상품 의 수익은 몇 배로 확대된다.

그렇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 권의 부도율이 상승할 때에도 예측 한 범위 내라고 생각하면서 큰 걱 정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미국의 경제는 탄탄하니 어려운 시간이 오더라도, 결국엔 경제가 살아나고 회복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손실이 조금 만 누적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서 통제가 불가능해질 것이라 고 했다.

슈퍼컴퓨터로도 계산이 불가능할 만큼 복잡해진 파생 상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극소수의 서브프라임 모 기지 채권의 부도 여파가 계산한 것보다 엄청나게 크게 작용할 것이 라고 말했다.

거기에 덤으로 수익률에 레버리 지 효과를 듬뿍 걸었던 것처럼, 손실 금액 역시 레버리지 효과를 적 용해서 계산해야 하는데, 의도적으 로 숨기고 있다면서 분노했다.

극장에서 보았을 때는 사람이 저 렇게 부정적이어도 되나 싶었다.

≪ o ≫

그런데 막상 데이터를 보면서 한 충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에런 폴 드였다.

CDO와 관련 파생 상품을 설계 한 장본인이었고, 이러한 공을 인 정 받아서 작년에는 1억 달러에 달 하는 성과금을 보너스로 받았다.

그러니 영화의 주장은 택도 없는 소리라면서 자신만만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에런 폴드의 우수한 두뇌가 월 스트리트의 외로운 늑대라는 영화 속에서 나온 데이터는 결코 가짜가 아니라는 확신을 들게 했으니 말이 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물러날 곳도 없었다.

리먼브라더스가 발행한 CDO와 파생 상품의 규모는 수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리먼브라더스 혼자 30%가 넘 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포지션을 전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거기까지의 생각에 이른 에런 폴 드였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았 다. 대신 개인용 HTS를 켰다.

미국의 거래소는 이미 정지된 상 태였지만, 일부 선물 시장은 24시 간 돌아갔다.

더욱이 영국이나 반대편에 있는 일본과 한국, 상하이 등의 해외 시 장은 이제 본격적인 거래를 시작하고 있었다.

IT 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세상 참 좋아진 지금은 앉은 자리에서 해외 거래소에 직접 접속해 증권은 물론이고 각종 파생 상품까지도 거 래할 수 있었다.

띵!

잠시 후 에런 폴드의 PC에서 경 쾌한 알람음이 떴다.

매수 성공 알람 소리였다. 바로 풋 옵션 매수였다. 솟구치는 불안 감에 뭐라도 해야 했던 에런 폴드 는 영국과 일본, 상하이는 물론이고 한국에서까지 풋 옵션을 구매했 다.

비록 리먼브라더스가 취한 포지 션을 바꾸는 건 이제 와서 불가능 했지만, 개인 계좌는 얼마든지 바 꿀 수 있었다.

정신없이 매수하다 보니 그 액수 는 순식간에 1천만 달러를 가뿐히 넘어섰다.

에런 폴드의 모습은 리먼브라더 스나 본인이 이제껏 목소리를 높였 던 서브프라임 낙관론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풋 옵션을 매수하는 데 있어 조금의 망설임이란 없었다.

재미있는 건 에런 폴드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월 스트리트의 엘리트 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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