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9회
리콜 스캔들
=============================
7월의 말.
신종플루 백신 QIV-A1이 전 세계에 공급된 지 약 한 달이 지나자, 신규 감염자 수치와 사망자 수치는 후지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수직 낙하했다.
세계 최고의 감염율과 치사율을 보였던 멕시코가 이제는 신규 감염자 리스트에서 최하위까지 내려왔다.
새롭게 최상단에 올라온 나라는 주로 유럽 나라들이지만, 빠르게 도입된 신종플루 백신 덕에 감염자 숫자는 전세계 공통으로 우하향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중이다.
3월부터 터졌던 신종플루 사태는 이제 마무리 단계로 진입했다는 신호였다. 그에 따라 전 세계의 나라들은 신종플루의 공포를 떨치고 경제 회복을 위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ID 그룹도 2000년대를 마무리할 IDDC 2009 준비로 정신이 없었을 때, 1896년 영국에서 창간된 전통의 과학 저널 네이처에 기념비적인 논문 하나가 올라왔다.
-기계학습 인공지능을 위한 백신 탐색 알고리즘과 이를 이용한 H1N1 백신 탐색 증명.
마치 201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 유행하던 라이트노벨의 제목처럼 긴 이름의 논문 한 편이 네이처 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유재원과 레이몬드 박사 그리고 셀트리온과 함께 공동 저작한 그 논문이 드디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7월 마지막 주간 네이처에는 다른 논문이 탑재되지 못했다. 오직 백신 탐색 알고리즘 논문 하나가 네이처 지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백신 탐색 알고리즘 논문이 담긴 네이처 지는 특집 편과 같이 두툼한 두께를 자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백신 탐색 알고리즘 논문의 두께는 무려 200페이지가 넘었고, 네이처 지는 단 한 장의 가위질도 없이 문서 전체를 주간지에 담았기 때문이다.
핵심 알고리즘은 A4용지의 20장도 안 될 만큼 심플하지만, 알고리즘을 기계학습 인공지능을 위해 변환하고 학습이 잘 될 수 있도록 조율을 하는 노하우와 백신 탐색 알고리즘의 운영법 그리고 백신 탐색 알고리즘이 찾아낸 후보 물질을 검증하는 방법까지.
말 그대로 신종플루 바이러스인 H1N1을 분석해서 QIV-A1을 만들어낸 방법의 에센스가 담겨 있는 논문이었다.
네이처 지는 논문이 투고되고 나서 하루 늦게 이를 확인했다.
평소에도 네이처 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매일 엄청난 숫자의 논문이 투고되었기에 하루 늦게 확인한 것도 사실 매우 빠른 일이었다.
이메일 관리자는 유재원이라는 이름을 확인하자 깜짝 놀라며 직속 상관에게 보고했고, 그의 직속 상관은 바로 논문을 받아 열어보고는 진짜라는 걸 인지하자마자 네이처의 검증단을 소집했다.
네이처의 검증단은 그야말로 깐깐하게 논문 전체를 훑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사인 사이언스 지가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문을 게재했다가 얼마나 큰 망신을 당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네이처 지도 사실 사이언스처럼 엉터리 논문을 실었다가 망신을 당했던 경우도 제법 있었다. 얀 헨드릭 쇤이란 사람이 낸 논문들이었는데, 데이터가 조작된 사실이 발각되면서 그자는 학계에서 매장당했고, 이를 실어준 네이처 지도 대망신을 당했었다.
그렇지만 이번 사례는 경우가 아주 달랐다.
ID 그룹 그리고 유재원의 명성 그대로, 결과물을 떡하니 보여주고 그에 대한 논문이 나온 것이다.
원래 논문이란 인류가 탐사한 지적 영역의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한 가설을 논리적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실체를 구현하는 것인데, 유재원은 늘 거꾸로였다.
기가 막힌 결과물을 먼저 공개하고서 논문을 냈다.
그렇지만 네이처 지의 심사기구는 깐깐한 눈으로 논문을 검토했다. 그렇기에 논문이 공개되었을 때의 파장은 엄청났다.
또한, 몸살을 앓는 곳은 하나 더 있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홈페이지였다.
네이처에 올라온 200페이지짜리 논문도 풀버전이긴 했다. 그 자체로 완성되었고, 이론적인 검증은 끝이다.
그렇지만 논문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각종 임상 데이터와 백신 탐색 알고리즘의 고도화를 위해 사용된 H1N1 관련 자료들은 종이로 출력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용량을 자랑했다. 그러한 데이터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학술용 홈페이지에 업로드했다.
유재원은 통 큰 배포가 그대로 보이는 대목이었다.
백신 탐색 알고리즘 논문을 본 기업과 연구소 그리고 개인 학자들은 모두가 데이터를 얻기 위해 스탠퍼드 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계학습 인공지능에 대한 논문을 냈던 때였다. 그때는 홈페이지에 너무 많은 접속자가 몰리면서 서비스 장애가 일어났지만, 이제는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데이터의 용량이 한층 방대해졌음에도, 서비스에 아무런 문제가 없던 건 접속자의 숫자에 따라 서버에 할당되는 자원의 크기도 탄력적으로 상승하는 서비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데이터를 원하는 이들은 차별 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다운로드를 완료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세계 최대의 제약 회사들 역시 빠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각.
“우리 시스템에서도 구현 가능한가?”
존 밀리건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사장의 물음이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신약개발부의 최고 책임자인 메이스 로젠버그였다.
“이론적으론 가능할 거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데이터센터 팀장에게 들어보시죠.”
메이스 로젠버그의 말에 존 밀리건 사장의 시선이 데이터센터 팀장에게 옮겨졌다.
거기엔 하얀 가운을 걸친 작고 왜소한 남자가 있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데이터센터 팀장이다.
두 사람에 비해 아주 젊었다. 실제로 작년 MIT를 졸업하고 바로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데이터팀장으로 스카우트 되었으니 엄청난 능력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파격적인 인선을 할 만큼 길리어드 사이언스도 IT 혁명을 적극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실제로 평상시의 업무나 신약개발 업무에서 상당 분량의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자체 기술로 구축한 데이터센터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네! 가능합니다.”
데이터센터 팀장의 말에 존 밀리건은 화색을 띠었다.
존 밀리건 사장의 질문은 두말할 것 없이 네이처에 올라온 백신 탐색 알고리즘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새파란 데이터센터 팀장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산만 충분하다면요.”
예산!
개발자가 벗어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음, 얼마가 필요한가?”
존 밀리건 사장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라는 걸출한 제약 회사 역시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최소……. 40억 달러는 쓰셔야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뭐? 내가 제대로 들었나? 4, 40억이라니!”
백신 탐색 알고리즘이 공개되었으니, 이를 데이터센터에 구현만 하면 이제 어떤 바이러스라도 연구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 존 밀리건이었다. 그런데 시스템 구축에만 최소 40억이라니.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게다가 우리 데이터센터는 작년에 최신 슈퍼컴퓨터로 구축했지 않은가!”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데이터센터의 메인 시스템으로 선택한 것은 크레이사의 최신 X5E 슈퍼컴퓨터였다.
“이젠 구식이죠.”
X5E의 연산력은 무려 1페타플롭스에 달했다. 슈퍼컴퓨터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당당히 차지하는 슈퍼컴퓨터였지만, 아주 간단히 구식이라고 말하는 데이터센터 팀장이었다.
그 모습에 존 밀리건의 이마에 핏대가 확 올라왔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열이 솟구친 것이다.
“자세한 설명 부탁하네.”
그 모습에 메이스 로젠버그가 먼저 나섰다.
“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시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그러면서 데이터센터 팀장은 화면이 큼직한 안드로이드 패드를 꺼냈다. 크레이 슈퍼컴퓨터와 직통으로 연결된 패드로서, 슈퍼컴퓨터의 작업 스케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화면의 구성은 그야말로 단순했다.
텍스트와 아스키코드로 간략히 구현된 상태창이 하나 있었고, 다양한 수치들이 상태창 안에 가득했다.
“지금 돌려보고 있는 건 신종플루 바이러스인 H1N1의 백신 탐색입니다. 논문이 밝힌 것처럼 정상 구동된다면 QIV-A1가 나와야겠죠.”
“벌서 구동을 시작한 건가?”
데이터센터를 맡은 건방진 팀장은 논문이 공개되자마자 백신 탐색 알고리즘의 설치를 끝냈던 것이다.
실제로 논문에서 밝힌 것처럼 작동하는지 워낙 궁금했던 탓이다.
답은 YES였다.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현성이었다.
논문을 보고 똑같이 재현할 수 있어야만 논문이 제대로 된 것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 당연히 백신 탐색 알고리즘 논문도 완벽한 재현을 보장했다. 그러한 예제로 쓰인 것이 바로 신종플루 바이러스인 H1N1의 백신 후보 물질 탐색 작업이었다.
데이터센터 팀장의 말 그대로 논문을 잘 재현했다면, 모두가 작업의 결과로 신종플루 백신 QIV-A1이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숫자 보이시나요?”
“잘 보이는군. 85만 2,240.”
“이게 작업 완료까지 남은 시간이랍니다. 음, 9년하고도 8개월쯤 남았군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답게 시간을 연 단위로 순식간에 변환했다. 엄청난 시간의 절벽 앞에서 존 밀리건 사장은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뭐라? 9년 8개월?”
그렇게 오래 걸린다면 백신 탐색 알고리즘을 돌릴 이유가 없었다. 그 시간이면 기존의 백신 제작 기법을 쓰는 게 훨씬 나은 정도다.
“40억 달러 정도를 투입한 대단위 클라우드 시스템의 컴퓨팅 파워라면 100일 정도에 끝낼 수 있으니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40억 달러라니.
신약개발에 수억, 때로는 수십억 달러가 투입되기도 하는 게 제약 회사의 일이었다. 하지만 알고리즘 하나 돌리자고 40억 달러나 써야 한다는 건 존 밀리건 사장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렴한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뭔가!?”
“ID 클라우드 시스템에서 컴퓨팅 파워를 임대하는 거죠. 10페타플롭스 연산력을 1년간 독점 임대하는 데 1억 달러라더군요. 이 정도 연산력이면 처리 시간은 2년 이하로 확 줄어듭니다. 물론 1페타플롭스가 최고 상품은 아닙니다. 그 이상의 연산력도 빌려올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 달 내에 끝낼 수도 있는 거죠. 물론 그만한 연산력을 빌리고자 하면 부르는 게 값일 테지만.”
1억 달러라니!
그 이상은 부르는 게 값이라니.
열이 확 오르는 존 밀리건 사장이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았을 때 40억 달러를 써서 독자 시스템을 꾸리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한 비용인 건 맞았다. 게다가 데이터센터 팀장의 말대로 40억 달러짜리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도 무섭게 발전하는 IT 기술 때문에 몇 년 지나면 구식이 된다. 덤으로 유지비도 언덕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테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아니, 사장님. 여기서 고민해 볼 것 있습니까? 백신에 관심이 있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늦으면 임대 상품이 매진될지도 모릅니다. 클라우드 시스템의 연산력이 무한한 건 아니니까요.”
존 밀리건 사장이 내켜하지 않는 모습에 메이스 로젠버그가 말을 보탰다.
하지만 존 밀리건 사장은 1억 달러씩이나 주고 컴퓨팅 파워만 빌려온다는 것이 특히나 싫었다. 마치 유재원이란 녀석은 이렇게 흘러갈 걸 예상하고 백신 탐색 알고리즘을 공개한 것 같았으니 말이다.
정답이었다.
이러한 컴퓨팅 파워의 압도적인 차이가 유재원이 과감히 백신 탐색 알고리즘을 공개한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데 막강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했지만, 누구도 ID 테크놀로지의 클라우드 시스템을 능가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이다.
절대 오만함의 표출이 아닌 이유는, ID 클라우드 시스템은 날마다 성능이 향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텔이 최신 네할렘 아키텍처 CPU를 발표하자마자 100만 개나 되는 주문을 넣었던 유재원이었다.
ID 테크놀로지의 클라우드 시스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완성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와서 이걸 따라잡는 건 그 누구도 불가능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와 마찬가지로 유수의 제약 회사들과 생명공학 연구소, 국책 연구소에서는 비슷한 결론을 도출했다.
페타플롭스 단위의 연산력을 임대하는 계약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유재원만이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덤으로 여러 제약사들과 연구소들이 앞다퉈 돌리는 백신 탐색 알고리즘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 자체로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는 것 아니겠는가.
문뜩 존 밀리건 사장은 유재원이 부러워졌다.
인류의 숙적 중 하나가 바이러스였고, 바이러스와 싸울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유재원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따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학자들과 달리 사업수완도 천재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유재원이라면 거대한 호텔을 빌려서 성대한 파티라도 열었을 텐데.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비슷한 시각.
유재원은 평소와 달리, 누군가의 예상처럼 기분을 내고 있었다.
세상에 딱 한 대뿐인 슈퍼카를 타고 신나는 드라이브를 하는 중이었다. 자동차는 딱히 좋아하지 않았던 유재원이었으니 너무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장소는 모토시티 디트로이트였고, 유재원이 탄 자동차는 라이트닝 볼트의 2세대 슈퍼카 슈퍼소닉이었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가마우지 낚시꾼에게 묶인 가마우지 신세가 될 줄 알면서도, 갈 수 밖에 없는 존 밀리건과 여러 제약사들에게 심심한 애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