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06화 (806/1,007)

782회

리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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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욕을 실컷 퍼붓던 리스터 씨의 표정이 달라진 건 급가속하는 도요타 렉서스 차량 안의 모습이 스치듯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잔뜩 놀란 남자 운전자와 조수석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 중인 여자, 그리고 뒷좌석의 아이들 둘. 네 식구가 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 식구를 태우고 이동 중인 아빠라면 절대 과속 같은 건 하지 않는 법이다. 리스터 본인 역시 과거에 트럭을 몰았을 때보다 가족들을 태운 자가용을 몰았을 때 훨씬 조심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도요타 렉서스의 급가속은 폭주가 아니라 사고다.

“급발진?”

급발진이 터진 거라면 조금 전 보았던 그들의 반응이 딱 들어맞는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리스터 씨는 스마트폰을 들고 바로 911을 눌렀다.

-911입니다.

긴급 통화라 그런지 전화벨이 한 번 울리자마자 바로 연결되었다.

“급발진 사고 차량을 목격했소! 일가족 4명이 타고 있는 거 같은데, 빠른 조치가 필요해!”

-은색 렉서스 차량 말씀이십니까?

“어? 먼저 신고가 들어갔나? 하여튼 바로 그거 맞아!”

놀랍게도 911은 리스터의 신고를 바로 알아들었다.

-네, 조금 전 사고 접수가 된 상태입니다.

그러고 보니 조수석의 여자가 전화기를 들고 통화 중이었다. 그때 신고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면 안심해도 될까?

-고속도로 순찰대를 출동시켰습니다만, 현장 도착까지 시간이 걸릴 겁니다.

911의 상담원은 상식적이었다.

리스터도 당장 떠오른 생각이 911이라서 전화를 한 것이었지, 911에 전화를 걸었다고 해서 급발진 사고가 금방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때, 911 상담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혹시 선생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상황 변동이 생겼을 때 다시 전화를 걸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음.”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가는 리스터 씨였다.

-아, 아닙니다. 무리한 부탁은 잊어주십시오. 신고해 주신 것으로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리스터 씨가 말이 없자 911 상담원도 무리였다는 걸 자각하고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

“하겠소!”

그 순간, 리스터 씨의 입에서는 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곤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내려놓고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이 나오기까지 몇 초의 짧은 순간, 리스터 씨의 머릿속은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트럭커 동료들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 라이트닝 볼트의 테스트 드라이버가 된 순간이나, 합격 소식에 너무나도 좋아했던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와 동시에 도요타의 렉서스 차량 뒷좌석에 있던 이름 모를 아이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그들의 모습이 계속 떠오를 것 같았다.

“망할.”

2세대 뉴로의 운전대를 잡은 리스터 씨는 거친 말과 함께 자율주행 모드를 어시스트 모드로 한 단계 내렸다.

같은 시각.

-긴급 속보.

-샌디에이고 인근 고속도로를 달리던 도요타 렉서스 차량, 급발진!

-고속도로 순찰대 출동 중.

“도요타, 이놈들은 바뀐 게 없나?”

뭔가 작업 중이던 유재원은 긴급 속보 체제로 전환된 텔레비전의 화면에 허리를 펴고 집중했다.

IDDC 2009의 종료와 함께 유재원의 길었던 시애틀 출장도 마무리되어,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집의 서재에서 일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리스터 씨가 신고했던 그 도요타의 은색 렉서스 차량이 엄청난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이 잡혔다.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고속도로 상황에 대한 자료화면을 찍으려고 출동한 케이블 TV의 헬리콥터가 근처에 있어서 실시간으로 방송에 전할 수 있었다.

미국의 지역 방송은 물론이고 공중파에서도 심심치 않게 비춰주는 게 경찰의 범인 추격 라이브 방송이었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방송 문화였는데, 실시간으로 비치는 차량 추격은 시청률도 매우 좋았다.

지금 나오는 도요타 급발진 문제는 당연히 유재원도 알고 있었던 사태였다.

일가족 4명이 탄 도요타 렉서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급발진 사고가 나서 참변을 당했다. 미국 도로 교통안전국의 조사에서는 가속 페달의 노후화와 차량 모델에 맞지 않는 바닥 장판이 가속 페달에 걸려서 발을 떼도 가속이 걸리는 문제로 파악했다.

도요타 측에서는 가속 페달 문제와 바닥 장판 문제를 인지하고 대규모 리콜에 들어갔다. 심지어 이러한 자발적 리콜은 도요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랑했다.

그렇지만 실제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

도요타 차량에는 전자 제어 장치의 버그로 인해 실제 급발진이 일어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 도로 교통안전국에서는 전자 제어 장치의 문제가 아니라는 판정이 나왔다.

보고서가 나오자 여론의 반전이 일어났다.

미국 정부와 미국 자동차 업계의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가 짜고서 도요타 죽이기에 나섰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었다.

알고 봤더니 도요타에서 도로 교통안전국의 저사 요원들을 매수해서 도요타에 유리한 보고서가 나오도록 조작했던 탓이다.

또한, 도요타의 전자 제어 장치의 소프트웨어 버그도 실제 존재했으며, 버그로 인해 급발진이 터진다는 것을 피해자 연합 측에서 증명했다. 전자 제어 장치의 오류로 급발진이 된다는 걸 인정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야말로 최악의 최악만 저지른 도요타였다.

그러면 이러한 사건의 전모가 다 밝혀졌을 때, 도요타는 그에 합당한 응징을 받았을까? 전혀 아니었다.

일단 도요타 리콜 사태라 명명된 이번 일이 완전히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4년은 넘었다. 그렇게 길게 사건을 잡아끌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다.

그나마 미국 법무부가 급발진을 부정하고 소비자를 기만한 것에 대하여 12억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지만, 도요타 정도 되는 거대 규모의 업체에서는 큰돈도 아니었다.

이후에도 도요타의 차량은 잘 팔렸고, 기업의 가치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유재원은 당연히 도요타 리콜 사태에 대해 깊숙이 개입할 작정이었다.

라이트닝 볼트라는 세계 최고의 전기자동차 업체를 보유하고 있으니, 북미 점유율이 높은 도요타에게 한 방 크게 먹이면, 그것대로 이익이었다.

물론 유재원의 라이트닝 볼트는 휘발유 자동차들과는 카테고리가 완전히 다르지만, 도요타의 잠재 구매자들 중에 10%라도 라이트닝 볼트를 선택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도요타의 잠재 구매자들의 발길을 돌리는 방법은 역시나 전자 제어 장치의 오류 규명이었다. 도요타가 지루하게 시간을 끌면서 피해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들고, 잔뜩 화가 치밀었던 북미의 소비자들이 도요타의 지저분한 짓거리를 잊어버리게 만든 건 사건 규명이 길게 이어진 탓이었다.

차원이 다른 속도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한다면 도요타에 합당한 처분을 내리는 게 가능했다.

유재원은 도요타가 미국 도로 교통안전국 조사원을 매수해 가속 페달과 바닥 장판 문제라는 보고서가 나오는 때에 맞춰 터트린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렉서스 차량에 빠르게 접근하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모양이 특이한데요? 지붕에 잔뜩 붙은 카메라들은 뭐죠?

-아!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저희 방송국의 자동차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라이트닝 볼트의 2세대 뉴로라고 하는군요.

-예약만 100만 대가 밀렸다고 하던데? 벌써 수령한 사람이 있다니 놀라운데요. 그런데 왜 위험하게 렉서스 차량에 접근하려고 하는 걸까요?

-폭발적인 가속력 좀 보세요! 렉서스를 추월해 앞서 달립니다.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요?

“응? 저거 우리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이잖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유재원은 익숙한 차량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떼스뜨 차?”

유재원의 바로 옆에서 혀 짧은 목소리가 났다.

아기용 의자에 앉아 있던 혜성이가 유재원의 말을 따라 하는 것이다.

몇 달 후면 2살이 되는 혜성이는 이제 많이 자랐다고 말문이 조금 트였고, 엄마인 티파니가 출근한다고 해도 따라가겠다며 보채지도 않았다.

대신 혜성이의 새로운 탐구 대상은 유재원이 되었다. 혜성이는 이제 유재원과 반나절 이상 붙어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응, 이거 말이야. 우리 회사 차란다.”

유재원도 혜성이가 궁금증을 표할 때마다 귀찮아하지 않고 설명을 해 줬다. 아직 만으로 2살이 되지 않은 아기가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유재원 본인도 장담할 수 없지만,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 중이다.

하여튼 텔레비전 속 의문의 차량은 아나운서가 말한 그대로 2세대 뉴로 자동차였다.

여기에 유재원이 추가로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이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던 건, 지붕에 따로 설치된 전방위 카메라 덕이었다.

자율주행 테스트이니만큼, 자율주행 능력을 보조하기 위한 카메라였고, 동시에 차량 주변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녹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는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스트리트뷰의 데이터로 쓰일 예정이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한 부품이지만, 특이한 형태였기에 눈에 잘 들어왔다.

하여튼 자율주행 테스트를 하고 있어야 할 차량이 급가속을 하면서 렉서스 차를 뒤따랐다. 아무래도 자율주행 테스트 드라이버가 수동으로 전환하고 뒤를 바싹 쫓고 있는 모양이었다.

“음. 너무 무모한데.”

사실 유재원이 도요타 리콜 사태에서 전자 제어 장치의 급발진 버그를 찾아내는 것으로만 개입의 정도를 한정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도요타에 먼저 전자 제어 장치의 급발진 버그를 제보하는 건 유재원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반대로 도요타 측에서 전자 제어 장치 개발을 본인들의 역량으로 완벽히 해내지 못할 것을 인정하고 ID 그룹에 의뢰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일도 없었다.

그러면 일가족이 탄 렉서스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를 누군가 막아야 하는데, 그 일 역시 누군가가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급발진에 들어간 자동차를 세우는 일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유재원 본인 역시 그걸 막는 건 무리였고, 누군가에게 급발진 자동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각도로 따져 보았을 때, 결국 나오는 결론은 사고 후의 사태 수습이 과거처럼 유야무야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급발진 중인 렉서스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는 2세대 뉴로 자동차는 유재원의 상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음. 안 되겠다.”

텔레비전을 보던 유재원은 바로 컴퓨터 앞으로 와서 라이트닝 볼트의 자율주행 테스트 프로젝트의 운영 현황을 열었다.

현재의 위치를 보니 샌디에이고 근처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는 딱 한 대였다.

“테스트 드라이버 리스터 프란시스.”

유재원은 곧바로 주행 정보를 띄우고, 모니터링 카메라의 영상도 송출하도록 프로그램을 조종했다. 그러자 곧바로 책상 위의 와이드 모니터에 리스터 씨의 뉴로 자동차가 라이트닝 볼트사의 서버로 전송하던 고화질 영상이 송출되었다.

리스터 씨가 조종하는 2세대 뉴로 전기자동차의 각종 계기판 수치와 리스터 씨의 얼굴, 자동차 전면의 상황 등등.

대도시 근처라 그런가 통신 상태는 아주 양호했다.

“리스터 씨!”

유재원은 바로 긴급 통화 버튼을 누르고 리스터를 불렀다.

갑자기 들리는 유재원의 목소리에 허둥지둥 사방을 둘러보는 리스터 씨의 모습도 보였다.

-우왁! 깜짝이야! 뭐, 뭐야! 누구야!

“리스터 씨, 놀라지 마시고요. 경로이탈 알림 보고 연락드리는 겁니다. 저 유재원입니다.”

-네엣! 진짜 회장님이시라고요?

“네, 저 유재원입니다. 대시보드 보시면 인증마크 뜬 거 보일 거예요. 현재 상황 좀 설명해주시겠어요?”

연결된 화면으로 보니 리스터 씨가 사고 차량보다 먼저 달리면서 공간을 확보했고, 급발진에 걸린 렉서스가 뒤를 바싹 쫓고 있는 상태였다. 텔레비전 화면보다는 몇 초는 앞선 상태의 화면이었다.

텔레비전 그리고 테스트 차량과 다이렉트로 연결된 카메라를 통해서 상황은 파악한 유재원이었다. 그렇지만 리스터 씨가 무슨 의도로 자율주행을 끄고 급발진 중인 렉서스 앞으로 나서고 있는 지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급발진 차량을 보고 위험하다 싶어서 사이렌을 켜고 미리 길을 내고 있는 중입니다.

리스터 씨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율주행 테스트를 위해 장착된 장비 중에는 제법 큰 소리가 나는 스피커도 있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만큼은 아니어도 주변의 주의를 끌 수 있을 정도의 음량은 나온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났을 때 주변에 알린다든가, 주변에서 다가오지 못하도록 소리를 내기 위해 장착된 물건이었다.

대용량 배터리팩이 들어가는 만큼 불이 나면 물만 가지고는 절대 끌 수 없다. 물론 유재원은 불이 절대 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 아니겠는가. 백만분의 1의 확률로 불량 배터리가 들어가 불이 났다고 하면, 애꿎게 불을 끄겠다고 접근했다가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경고를 위해 장착한 스피커였다.

덕분에 고속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들은 사이렌 소리에 모세의 기적을 연출했다. 교통 문화에 있어서 미국은 선진국이었다. 여기에 헬리콥터도 떠 있었으니 고속도로의 운전자들은 알아서 피했다.

“좋아요. 나중 일은 제가 책임질 테니, 리스터 씨는 스스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최선의 판단을 내려주세요!”

-OK! 접수했습니다!

유재원은 이 말이 리스터 씨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리스터 씨의 표정에서 불안감은 제법 옅어졌다.

문제는 지금의 대처로는 상황의 개선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저 급발진이 걸린 렉서스 자동차의 위태위태한 주행을 이어지게 할 뿐이었다.

“앗!”

역시나 1분도 지나지 않아 사태는 더욱 나빠졌다.

사이렌 소리에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비켜섰지만, 그 속도가 느린 차가 있었다. 이제는 거의 시속 180km에 육박하는 렉서스 자동차는 아슬아슬 피했지만, 고속에 급격한 핸들 조작으로 인해 자동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피쉬테일 현상이었다.

렉서스 자동차의 자세 제어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더라면, 바로 균형을 잡았을 텐데 그것도 망가졌는지 흔들거림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유재원의 모니터 화면에는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앙다문 리스터 씨의 모습이 보였다.

유재원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리스터 씨는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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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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