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09화 (809/1,007)

785회

리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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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옮기자.”

“응! 그럼 인증키 준비해.”

유재원의 말에 영식이가 관제실의 클라우드 서버 제어용 콘솔 앞에 앉았다.

둘이서 대전 데이터센터까지 직접 내려온 것에는 단순히 100만 개의 CPU가 집적된 서버실을 구경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고도화 학습이 마무리된 바둑 모듈을 복사하는 일이었다.

완전 자율주행 학습 프로그램과 바둑 모듈, ID 그룹의 비밀스러운 연구 그리고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민감한 정보들이 가득한 대전 데이터센터다.

대전 데이터센터로 프로그램이나 데이터가 들어오는 건 자유지만, 나가는 건 안 되는 곳이었다. 특히 바둑 모듈과 같은 최상급 보안 프로그램 자체를 복사하는 건 이곳에 근무하는 서버 관리자들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슈프림 네트워크 매니저인 영식이와 유재원이 각자 가진 인증키를 넣으면 잠금이 풀리면서 복사할 수 있다. 대신 원격으로 입력하는 건 불가능하고, 이렇게 직접 본인이 와야 한다. 게다가 콘솔 앞에 앉아도 바로 시스템을 조작하지 못한다.

손바닥 지문 인증으로 클라우드 시스템과 직결된 콘솔의 키보드와 마우스 제어권을 얻어야 했다.

띵!

영식이가 손바닥 지문 인증을 마치자 맑은 알람 소리와 함께 잠겼다는 의미의 붉은색이었던 키보드의 LED 색이 풀림을 의미하는 녹색으로 바뀌었다. 클라우드 시스템의 제어권을 얻은 영식이는 곧장 본인의 OPT 카드의 버튼을 눌러 8자리의 임시 인증번호를 넣었다.

“회장님 차례야!”

유재원은 초까지 표시되는 서버실의 시계를 보고는 컴퓨터처럼 암산으로 OPT용 임시 인증번호를 한 번에 때려 맞췄다.

-9856 5781

띵!

작년 혜성이 돌잔치에서 배터리가 제거된 본인의 OPT 카드를 돌잡이 용품으로 사용한 다음, 재발급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재발급 없이도 이렇게 아무런 문제도 없이 클라우드 시스템을 사용 중이니 앞으로도 재발급은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대전 데이터센터의 클라우드 시스템에 바로 접속할 권한을 얻은 유재원은 바둑 모듈을 옮기기 시작했다.

“으아, 전체 용량이 512테라바이트네. 복사하는 데 3시간은 걸리겠다.”

500테라바이트가 넘는 용량 중에 99.99%는 바둑 데이터베이스로 단 1바이트도 버릴 수 없는 귀중한 자료였다. 게다가 3시간도 서버용 레이드 시스템이 적용된 덕에 단축된 시간이었다. 일반 PC였다면 복사하는 데만 한 세월이었을 거다.

준비성 좋은 유재원은 서버용으로 나온 4테라바이트 SSD를 가지고 왔다. 획기적으로 빨라진 복사 시간, 하드디스크보다 충격에도 강하다. 문제는 가격이지만 유재원에게는 제일 의미 없는 수치였다.

복사를 마친 바둑 모듈은 007가방 4개에 나눠 담겼다. 이를 경호원 넷이서 하나씩 들었다. 심지어 007가방과 경호원 사이에 강철 수갑으로 연결까지 되었다.

데이터센터 입성부터 프로그램 복제까지 그야말로 철두철미한 보안을 자랑하는 프로세스였다. 대전 데이터센터를 나가는 것도 이제껏 치렀던 보안 수칙들을 거꾸로 진행하는 것처럼 검증을 받았다. 경호원들이 나눠 들은 007가방 속의 SSD도 일일히 시리얼 번호를 검증했을 정도로 깐깐했다.

창업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떠한 해킹도 당하지 않은 ID 그룹의 비밀은 누구의 예외도 없이 철저히 따르는 보안 수칙이었다.

그렇게 대전 데이터센터를 나선 유재원은 제주도로 이동했다.

제주도 원더랜드 호텔이 바로 세기의 대전이 열릴 장소였다.

10월 중순.

-세계 바둑 랭킹 발표.

-1위 이세돌 9단 확정.

-인공지능 골드 VS 이세돌 9단 대진 확정!

2009년도 바둑 랭킹이 확정되었다.

아직 2달이나 남았음에도 바둑 랭킹이 확정되었다는 의미는, 2위가 나머지 바둑 경기를 다 이겨도 순위가 뒤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작년부터 최전성기를 자랑하는 이세돌 9단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무시무시한 기력을 발휘하면서 국내와 세계 바둑대회를 휩쓸었다.

특히 올해에 접어들면서 이세돌 9단의 기력은 급상승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이세돌 9단의 기풍은 압도적인 수읽기를 통한 흔들기와 난전 유도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려 압살해 버리는 것이었다.

구경하는 사람이 즐거운 바둑이자 순간순간 번뜩이는 묘수가 나오면서 초반부터 계가하는 마지막까지도 틈만 나면 전투가 벌어진다.

그런 이세돌 9단의 기풍은 2009년 들어 심화 발전되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었다. 훨씬 과감해졌고,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묘수는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그야말로 완성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런 이세돌 9단이었는데, 5월부터인가 트러블이 생겼다.

바로 한국 기원 그리고 바둑계와의 마찰이었다. 인공지능의 바둑 도전이라는 세기의 이벤트 덕에 바둑에 대한 인기는 급속도로 치솟았다.

미국에서도 넥스트컴 게임의 바둑 등록자들이 폭등했던 마당인데, 한국은 더 많은 신규 유저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고인 물만 가득했던 한국 바둑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한국 기원은 수많은 대회를 개최하며 들어오는 물을 맞아 신나게 노을 저으려고 했다. 이게 문제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바둑계의 아이콘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세돌이었다. 당연하게도 한국 기원이 개최하는 바둑대회에 이세돌 9단의 출전을 강제했다.

인공지능 골드와의 대국을 준비해야 할 이세돌 9단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게다가 바둑의 기보 저작권 문제도 이세돌 9단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보의 저작권은 당연히 대국을 둔 선수의 것이어야 하는데, 한국 기원은 선수의 몫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회를 개최한 본인들 소유라는 것이다. 게다가 대국료 또한 비상식적으로 책정했다. 그러니까 일은 엄청나게 시키면서 돈은 주지 않는 양아치 같은 짓을 관행이라는 이유와 권위의 힘을 빌려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이세돌 9단이 과감하게 반기를 들었다.

과거에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그때와 다른 건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도전이 코앞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과거에는 한국 기원에서 과감한 징계 조치를 결정했고, 이세돌 9단은 휴직계로 대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기원이 징계 조치를 만지작거릴 수가 없었다.

세기의 이벤트인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도전은 한국 기원 없이도 충분히 치를 수 있는 대회였기 때문이다.

한국 기원의 인증이 있든 없든, 이벤트 자체로 이미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유재원도 한국 기원의 공인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대회 그 자체.

압도적인 승리 그 자체만이 중요했다.

결국, 먼저 손을 든 쪽은 한국 기원이었다. 이세돌 9단이 2009년도 세계 랭킹 1위를 일찌감치 확정을 짓자 수세에 몰린 한국 기원에서는 인정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2009년 10월 24일.

인공지능 골드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딱 하루 남았다.

제주도의 원더랜드 리조트 호텔은 취재진으로 가득 모였고, 대국이 열릴 그랜드 홀도 세팅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수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대국을 직접 관람할 행운을 얻은 이들을 위한 관객석이 300개 준비되었고, 이들 앞에는 한 단 높은 무대에 바둑판이 놓였다. 객석에서 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이 이세돌 9단의 자리였고, 왼쪽에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모듈이 자리했다.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모듈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두 개를 통틀어 부르는 패키지였다.

소프트웨어는 얼마 전 유재원과 영식이가 직접 대전 데이터센터에 내려가 복사한 500테라바이트가 넘는 용량을 자랑하는 물건이었다.

하드웨어는 2개 파트로 이뤄져 있다.

하나는 대국장 구석에 자리한 2m짜리 기둥 같은 물건으로 일명 랙이라고 불린다. 랙 안에는 2U 규격 랙마운트 컴퓨터 18대가 들어가 있었고, 남은 공간에는 랙마운트 컴퓨터를 하나의 시스템처럼 연결해 주는 광대역 초고성능 네트워크 유닛과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로봇팔 제어 유닛이 장착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18대의 2U 규격 랙마운트 컴퓨터다.

랙마운트 컴퓨터에는 8개의 네할렘 제온 CPU, 16개의 TPU, 256기가바이트 메모리, 대전 데이터 센터에서 복사해온 SSD 8개씩 장착한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 18개가 묶여 하나의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성한다.

과거 구글이 했던 알파고 딥마인드 챌린지는 바둑 인공지능이 실제 구동되는 시스템과는 원격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치러졌었다. 그로 인해서 불필요한 루머가 많이 양산되었다. 알파고에 들어가는 연산력이 예고했던 것 이상으로 주어졌다느니, 실전에서 쓰인 알파고의 버전이 공개한 것과 달랐다는 식의 루머였다.

이번에는 이렇게 독립적으로 구동되는 시스템을 전면에 공개하면서 루머가 생겨나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물론 이렇게 대국장 한구석에서 빛을 내면서 구동되고 있는 모습을 공개해도 인터넷의 생리상 루머는 또 생겨나겠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덜할 것으로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바둑 모듈이 구동될 랙 캐비닛은 통짜 유리가 씌워져 있었다. 접근 금지이기도 했고, 100% 가동을 시작하면 열과 소음이 상당히 생기는 탓이다. 통짜 유리로 밀봉 후에 초강력 에어컨으로 찬바람을 공급해 열과 소음을 막는 것이다.

다른 파츠는 작년에 시범 경기에서 선보인 로봇팔이었다.

로봇팔의 형태는 작년에 보였던 것보다 훨씬 발전된 상태였다.

아이언맨의 로봇팔을 오마주한 것처럼 레드와 골드의 투 톤 조합이었고, 손가락도 다섯 개로 사람과 같이 설정했다.

딱!

바둑통에서 바둑알 하나를 집어 인공지능 골드가 계산을 끝낸 자리에 착수하는 일련의 작업은 매우 부드러웠다.

작년 버전 로봇팔의 경우 구동할 때마다 기잉 하는 소리가 났었는데, 지금은 엄청나게 집중해서 들어야 겨우 들릴 만큼 소음도 억제되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작동 상태를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보여주었던 모니터 역시 이번에도 장착되었다.

“시간만 충분했으면 S버전도 완성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이언 버전보다 S버전이 이곳과 훨씬 잘 어울렸을 텐데 말이지요.”

유재원과 나란히 서서 아이언맨 버전 로봇팔의 착수 테스트를 보던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창업자인 마크 박사가 아쉬움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흐음? 그건 동의하기 어렵네요.”

유재원은 개발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지만, 이번 만큼은 동의하기 힘들었다.

마크 레이버트 박사가 말한 S버전이란 바로 실리콘 스킨 버전의 로봇팔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보리 색깔의 실리콘은 마치 사람의 피부와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크기도 실제 사람의 팔과 비슷한 크기다.

딱 보면 사람의 신체 중에 팔만 잘라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게 S버전의 최대 단점이었다. 불쾌한 골짜기라는 심리적 저항선을 너무나 자극하는 형태였던 탓이다.

보고 있으면 너무나 기괴하다고 할까.

유재원에게 인수된 보스턴다이나믹스는 넘치도록 지원되는 개발비와 원하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TO 덕에 개발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그에 따라 빅독과 리틀독, 치타와 와이르 캣과 같은 4족 보행 동물과 같은 로봇의 개발이 끝났고, 착수 로봇과 같은 로봇팔 분야에서도 큰 진보를 이뤄냈다.

더욱이 미국 국방성이 요구했던 LSSS(보행형 분대지원시스템)도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대형화된 4족 보행 시스템인데, 여기에 분대 규모 전투원들에게 필요한 탄약과 식량, 각종 장비를 싣고 빠르게 움직이며 전투를 보조하는 무인 로봇이다.

배터리 문제가 제일 큰 발목을 잡고 있었지만, 전고체 배터리라는 혁신이 이뤄지면서 전격 도입이 코앞까지 왔다. 소음과 야전 상황에서의 고장 시 정비 문제만 해결하면 보스턴다이나믹스도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마크 레이버트 박사의 원대한 꿈은 돈방석이 아니라 본인의 로망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인간과 똑같이 닮은 로봇의 완성이었다.

로봇팔 S버전도 그러한 마크 레이버트 박사의 로망이 듬뿍 담긴 발명품이었다. 지금의 기술로는 그런 로봇을 만들 수 없으니 로봇팔처럼 중요 부위부터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로봇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불쾌한 골짜기에 갇혀서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작업에 적합한 형태의 로봇을 만드는 게 낫다고 말이다.

착수 로봇처럼 팔만 있어도 충분하다.

대신 마크 레이버트 박사에 대한 투자는 계속 해 주었다. 그의 로망처럼 진짜로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서는 로봇이 나온다면 유재원의 생각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모든 준비는 끝났다.

다음 날.

10월 25일, 오후 2시.

인공지능 골드와 이세돌 9단의 역사적인 대국이 시작되었다.

딱!

경쾌한 착수음이 대국장을 울렸다. 흑을 잡은 골드의 선수였고, 곧장 대국장에는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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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주말이네요!

7월 말부터 비만 계속 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확실히 우리나라의 기후가 달라지고 있는 게 사실인 모양이네요.

얼른 장마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비 피해 조심하시고, 월요일에 다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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