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6회
리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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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바둑 이벤트, 인공 지능 골드의 바둑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중계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인공 지능 골드의 바둑 도전이란 세기의 이벤트는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는 대국이었다. 바둑의 저변이 거의 없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케이블 방송 혹은 유튜브 스트리밍 중계로 대국을 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공중파인 KBS에서 중계 중이었다.
그것도 첫날 한 번이 아니라 다섯 번의 대국 전체를 중계하기로 했다. 하루에 한 번씩, 이틀 연속 대국한 다음 하루의 휴식이 주어지니 토요일까지 중계 스케줄이 잡힌 것이다.
-흑을 잡은 인공 지능 골드의 로봇팔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과연 역사적인 첫 수는 어디에 둘 것인가! 이소룡 6단은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캐스터의 물음에 대국장을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던 이소룡 6단이 입을 열었다.
-바둑의 초반 포석에는 정석이 있습니다. 이를 따른다면 화점이 제일 유력하죠. 작년에 있었던 시범 대국의 경우에도 가끔 변칙적인 수를 두었지만 시작은 정석을 잘 따랐거든요.
딱!
이소룡 6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공 지능 골드와 연결된 로봇 팔이 바둑돌을 놓았다. 한평생 바둑판과 바둑돌을 만든 명인의 제품이라 그런지 착수 소리가 너무도 경쾌했다.
-천원! 이소룡 6단은 정석을 예측했지만, 골드는 변칙을 선택했습니다.
-아, 그렇네요. 천원. 가로 10번째, 세로 10번째 줄이 겹치는 바둑판의 정중앙을 천원이라고 부릅니다. 바둑판의 중심이라서 뭔가 큰 의미는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실리 측면에서는 의미가 없는 지점이죠. 1년이란 시간이 더 주어진 인공 지능 골드는 다른 수를 찾았을까요? 몇 수를 더 봐야 골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소룡 6단의 말이 정석이다.
바둑판의 중앙은 귀한 바둑돌을 하나를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실리가 귀나 변에 비해 너무 적어서 초반에는 두지 않는 게 정석이다.
-과연 이세돌 9단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딱!
-역시 화점이네요.
이세돌 9단의 선택은 정석이었다.
-우하귀 화점! 첫수부터 흥미진진합니다.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드러내는군요. 그러면 인공 지능 골드의 대응은 어떨까요? 천원을 중심으로 이어갈 것인가. 이세돌 9단의 우하귀 화점에 대응할 것인가!
이에 대한 골드의 대응은 초읽기였다.
겨우 2수만에 초읽기까지 쓸 만큼 인공지능 골드의 탐색 작업이 길어졌다.
같은 시각.
“어어? 시작부터 천원? 뭐죠? 흉내 바둑이라도 해 보려는 건가요?”
최강욱 부회장의 말이었다.
물론 최강욱의 질문은 유재원에게 한 것이었다.
대국장은 제주 원더랜드 리조트 호텔의 그랜드 홀이었지만, 유재원을 비롯한 인공 지능 골드 관련자들은 따로 분리된 공간에서 모여 있었다.
그렇다고 그랜드 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니고, 호텔 최상층의 프레지덴셜룸에 모여서 인공 지능 골드의 대국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재원은 기본값이었고, 로봇팔을 담당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마크 박사도 있었다.
유재원이 왔으니 최강욱 부회장도 당연히 함께했다. 게다가 최강욱 부회장은 알아주는 바둑 애호가였다. 알게 모르게 바둑대회 후원도 많이 하고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황재홍 한국 ID 인베스트먼트 사장이나 ID 일렉트로닉스의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인공 지능 골드의 하드웨어 책임자인 영식이와 바둑 모듈의 첫 번째 알파 버전을 만든 이찬수 사장도 자리하고 있다.
마크 박사만 빼면 ID 그룹의 한국 쪽 고위 인사들이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한국계 파벌이라고 라벨링을 할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ID 그룹에서 한국계 파벌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유재원이 그룹 내 사조직에 대해서 혐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벌이라는 게 학연이니 지연이니 하는 것으로 묶인 사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비공인 조직을 의미하지만, ID 그룹에서는 턱도 없는 소리다.
능력이 있더라도 사내 정치 같은 걸 꾸며서 사조직 같은 걸 만든 시도가 밝혀지면 바로 감찰이 떴고, 증거가 나오면 중징계가 내려졌다.
이러한 ID 그룹의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해고 처분이 떨어진다. 놀랍게도 해고 처분이 내려진 임원들의 숫자는 제법 많았다. ID 일렉트로닉스처럼 외부로부터 합병돼 만들어진 조직에서 특히 많았다.
ID 그룹으로 간판이 바뀌었는데도 정치질이 생활화되었던 조직에 몸담고 있던 버릇을 고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잘려 나가다 보니 이렇게 한국 쪽 임원들이 다들 한자리에 모여 있어도 ID 그룹의 다른 지역 임원들이 불안하게 느낄 일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지금 치러지고 있는 인공 지능 골드와 이세돌 9단의 대국에 담긴 의미에 대해선 ID 그룹 임직원들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만 머물고 있던 인공 지능 골드의 영역이 전문 영역으로까지의 확장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자리였다.
바둑계 사람들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컴퓨터 기술이 발전해 봐야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경우의 수는 우주 전체보다 크고, 그걸 컴퓨터가 정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즉, 이번 대국의 승자는 이세돌 9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2000년대 이후로 우후죽순 생겨난 배팅 사이트에서도 이번 대국의 승패를 걸고 내기 중이었다. 10월 말이라서 온갖 프로 리그들이 모두 진행 중이었지만, 가장 많은 돈이 걸리고 있는 종목이기도 했다.
배팅 사이트 전체를 종합해 보면 돈을 건 사람들 중 이세돌 9단의 승리에는 72% 인공 지능 골드에는 25%를 배팅했다. 나머지 3%는 무승부다.
대국이 끝날 때까지 언제든 배팅할 수 있기에 수치는 유동적이었는데, 인공 지능 골드가 첫수를 천원에 놓는 순간 이세돌의 승리에 배팅하는 사람들이 확 늘어났다.
이러한 도박사들만큼이나 인공 지능 골드의 착수에 집중하고 있는 이들이 유재원을 비롯한 ID 그룹 임원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담고 있는 카메라도 있었다.
인공 지능 골드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카메라였다. 제목 그대로 이번 대국의 전체 모습과 대국을 준비하던 과정, 대국 이후의 상황까지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였다.
ID 그룹에서 만드는 것도, ID 미디어그룹에 속하는 NBC나 TVN에서 만드는 것도 아니다.
바로 타임플렉스 오리지널의 신호탄이었다.
90년대부터 획기적인 VOD 서비스를 선도했던 타임플렉스는 이제 케이블 TV의 점유율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워너브라더스의 라이브러리만 제공했지만, 지금은 다른 방송사의 쇼,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 다른 영화사의 영화까지도 제공했다. 무제한인 워너브라더스 라이브러리와 달리 기간 한정이긴 해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얼마 전부터는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 프로그램도 타임플렉스를 통해 전 세계에 제공 중이었는데, 미국과 유럽에서도 나름 고정 시청자층이 생겼다. 일찌감치 한류가 시작되었던 남미에서는 음악 방송이 특히 인기였다.
그렇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가기로 한 타임플렉스였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신규 서비스가 티임플렉스의 지분을 상당 부분 갉아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타임플렉스 오리지널 콘텐츠였다.
이제까지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만든 영상 작품을 가져와 가입자에게 공급하는 유통업자였다면, 이제는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내겠다는 포부이기도 했다. 유재원이 따로 조언을 해준 게 없었는데도, 아주 정확하게 문제를 진단했고 해결책도 찾아낸 타임플렉스였다.
타임플렉스는 2010년부터 연간 100억 달러, 한국 돈으로 11조 원을 자체 제작 콘텐츠 제작에 쓰기로 의결했고, 유재원은 이 계획을 승인했다.
블록버스터 영화부터 고품격 드라마, 토크쇼와 스탠딩 공연, 뮤지션들의 언플러그드 공연과 다큐멘터리 등등.
가입자는 물론이고 아직 타임플렉스를 사용하지 않았던 잠재 고객들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인공 지능 골드는 다큐멘터리 카테고리에 제일 먼저 등록될 콘텐츠였다.
“인공 지능 골드는 정석이라는 게 의미가 없을 겁니다.”
최강욱의 질문에 답을 한 사람은 유재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대국장에서 구동 중인 인공 지능 골드의 바둑 모듈은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기초는 이찬수 사장이 만든 알파 버전이었다.
바둑의 규칙과 저작권 문제가 없는 기보들을 바탕으로 바둑을 익혔다. 만약 알파 버전이 그대로 바둑 모듈로 확정이 되었다면, 첫수는 이세돌 9단과 같은 화점이나 그 근처에 돌을 두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찬수 사장의 알파 버전은 최종적인 바둑 모듈로 이뤄지지 않았다. 알파 버전은 이후에도 바둑을 익히며 기력을 끌어 올렸지만, 진짜 선수는 이러한 알파 버전을 상대로 무에서부터 바둑을 익힌 버전이었다.
내부적으로 불리는 건 오메가 버전.
오메가 버전은 바둑에 대한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없었다. 그저 알파 버전을 상대하면서 승리를 하도록 설계되었다.
알파 버전을 상대하면서 바둑의 규칙을 익히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지기만 했다. 심지어 바둑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포석을 두다가 졌다. 그러다가 30일이 지나서는 점차 세력 싸움이 되었고, 100일쯤 되었을 때는 처음 승리했다.
오메가 버전이 알파 버전과 대국을 시작한 4개월 차부터는 승패마진이 역전되었다. 200일이 지났을 때는 오로지 승리만 했다.
그렇게 무에서부터 시작한 오메가 버전의 바둑은 수천 년 사람들이 경험으로 쌓은 정석 바둑과는 궤를 달리했다.
반면 작년에 이창호 9단과 시범 대국을 했을 때 구동되었던 버전은 이찬수 사장의 알파 버전이었다. 그렇기에 작년의 시범 경기 대국은 바둑인의 상식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던 대국이었다.
딱!
때마침 대국장의 인공 지능 골드가 긴 탐색을 끝내고 2번째 착수를 했다. 위치는 인공 지능 골드의 첫수였던 천원과 이세돌 9단의 첫수인 우하귀 화점의 중간 지점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정석은 아니었다. 화점을 잡은 돌에 대한 상식적인 대응은 아주 붙인다던가 한 칸 정도 띄우면서 집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인공 지능 골드는 이세돌 9단의 첫수에 대해 의식은 했지만, 천원에 첫수를 놓았던 스스로의 페이스를 바꾸지도 않았다.
-이 수는 뭐죠?
-음, 몇 수 진행되는 걸 좀 더 봐야겠습니다. 이번 수도 도무지 인공 지능 골드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네요.
바둑이 취미인 캐스터나 프로에서 제법 성과를 내던 이소룡 6단은 아리송한 표정이다.
“세상에!”
그렇지만 오메가 버전의 비밀을 들은 최강욱 부회장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공 지능 골드가 놓은 포석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오메가 버전을 완성한 유재원도 앞으로 어떤 포석이 이어질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이건 확실하죠. 인공 지능 골드가 놓는 자리는 가장 승률이 높은 자리라는 거요. 결국 골드가 이길 겁니다.”
이번엔 이찬수 사장이 설명을 보탰다.
사실 오메가 버전의 실체를 가장 먼저 확인한 사람이 이찬수 사장이었다. 열심히 만들고, 나름 자신도 있었던 알파 버전이 몇 개월 만에 따라잡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허탈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더욱이 스스로 바둑을 깨우친 오메가 버전의 무시무시한 기력은 인간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역시나 대국의 흐름은 이찬수 사장의 예언 그대로였다.
이세돌 9단이 첫수를 화점에 놓았고 이후 이어진 포석도 정석을 따랐다. 일종의 탐색전이었다. 그렇게 바둑판에 30개 정도의 돌이 놓이자 이세돌 9단은 특기인 빠른 수읽기를 통한 흔들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인공 지능 골드는 이세돌 9단보더 더 빠르고 훨씬 공격적이었다.
결과는 151수 흑 불계승이었다.
이세돌 9단이 하얀 바둑돌 2개를 동시에 놓았을 때, 바둑계가 받은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다만 제1국은 탐색전의 성격인 만큼, 다음 날에는 분명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음 날 이어진 두 번째 대국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인공 지능의 가공할 능력에 경악하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하루 쉬고 이어진 세 번째 대국의 결과는공포였다.
인공 지능 골드의 거침없는 3연승이었고, 대국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공포와 함께 깊은 무력감을 느낄 정도였다.
유재원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최상의 결과였다. 하지만 유재원은 안심하지 않았다.
문제는 네 번째 대국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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