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3회
전지전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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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스윽.
고사리 같은 손이 유재원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티파니의 품에 안긴 혜성이였다.
스포츠컷으로 짧게 자른 유재원의 헤어스타일이 혜성이의 눈에 참 신기했던 모양이다. 신기해서 만져봤다가 감촉도 색다르니 계속 만져보는 혜성이였다.
유재원 역시나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번 생에서 이렇게나 짧게 머리카락을 잘라 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저게 무슨 글자야?”
“한자야.”
한글은 마스터한 티파니였다. 대신 동아시아권 나라에서 공용어나 다름없는 한자는 완전 백지였다. 비즈니스나 생활 영역에서 한자를 만날 일은 전혀 없었던 티파니였으니, 그동안은 불편함이 없었다.
한국도 90년대까지는 한자를 많이 쓰던 나라였다. 신문만 펼쳐도 한자가 그득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부터 한글을 쓰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뒤로 한자는 크게 줄었다.
그런 한자가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는 곳이 있었다.
“한자? 뭐라고 적혀 있는데?”
“상승, 백골. 상승은 계속 이긴다는 뜻이고, 백골은 오래돼서 하얗게 된 뼈다귀야.”
유재원은 친절히 한자의 뜻을 풀어줬다.
“상승은 이해가 되는데, 해적들이나 쓸 백골은 왜 붙어 있는 거야?”
“아마 여기 부대 별명이 백골부대인 모양이야. 백골의 기원은 잘 모르겠지만.”
유재원과 티파니 그리고 혜성이가 이야기하고 있던 곳은 바로 제3 보병사단 신병교육대였다.
제3 보병사단의 별명은 유재원의 짐작 그대로 백골부대였다.
사실 백골의 유래는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악명이 자자한 서북청년회에서 자원입대한 이들로 꾸려진 부대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어 동질성을 확보했는데, 백골의 의미는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고향 땅을 찾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행적은 막장이었던 서북청년회였다.
오죽하면 서북청년회를 두고 미국 군정청의 정식 보고서에 ‘나치와 KKK를 합친 것 같다’라는 말이 대놓고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서북청년회의 악행이 너무나 심해서 제3 사단은 백골 상징이나 부대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언급하기가 어려웠다.
대신 부대 자체적으로는 백골 상징을 너무 좋아했다. 덕분에 훈련소부터 내부 구조물, 부대 입구의 상징물, 현판 등에 무수히 많은 해골을 그려 넣고 있었다.
오죽하면 군대의 높으신 양반들도 유재원을 제3사단 신병교육대에는 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일반적으로 병역 면제자들을 위한 4주 코스는 논산 훈련소 담당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유재원에겐 시간이 없었고,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신병을 받는 교육대는 이곳 백골부대 신병교육대뿐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유재원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평범하게 4주짜리 기초 군사 훈련만 이수한다면 그걸로 족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아주 비밀스럽게 입소를 추진했다. ID 그룹 차원에서도 언론에 단 한 줄도 흘러가지 않았다. 덕분에 제3 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 나온 취재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이번 기수를 함께할 훈련병들의 가족들이 제법 있었는데, 유재원을 알아보곤 다들 깜짝 놀라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다들 아들을 군대로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었던 만큼, 요란스러운 반응은 단 하나도 없었다. 가족을 따라나선 이들 중 철없는 몇몇이 셀카를 좀 찍고 싶은 기색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경호원들이 나서서 사전에 차단했다.
그런 모습을 멀찍이 서서 지켜보는 일단의 군인들이 있었다.
“진짜 유재원이네.”
“너 표정 관리 안 하지?”
“말년이라고 해서 긴장 놓지 마.”
제3 보병사단 훈련소의 기간병들과 장교들이었다.
신기한 점이라면 갈굼이란 보통 병사들 사이의 일이었다면, 지금은 하사와 소대장이 눈치 없는 말년 병장을 향해 갈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이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실제로 병사건, 장교건 하나같이 똑같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다들 눈 밑에 시커먼 다크서클이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대통령이 온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만큼, 훈련소 전체를 청소해야 했던 탓이다. 특히 유재원이 기부했던 세탁기와 텔레비전을 비롯한 가전 제품은 열심히 때를 빼고 광까지 냈다.
한국군이라면 누구나 2002년의 악몽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 떨어진 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죽하면 그 사건으로 한국군의 문제였던 장성급 인사 적체가 일시적으로나마 해소되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게다가 일명 똥별이라고 하는 불량한 장성들이 대거 퇴출된 덕에 한국군의 투명성이 크게 오르기까지 했다.
이번엔 무려 4주였다.
비록 신병교육대라는 곳으로 장소가 고정된 상태였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재원이었으니 무슨 사달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난데없이 뜨거운 감자를 맡게 된 제3사단 신병교육대는 비상이 걸렸고, 교육대대장부터 일선 기간병까지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2시입니다. 입소 행사를 위해 모두 이동하겠습니다.”
훈련병들과 가족들의 인소를 맡은 장교가 크게 외쳤다.
그에 따라 신원 확인과 비표 배부 후 대기 중이던 훈련병들과 가족들이 모두 이동을 시작했다. 유재원과 유재원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어? 건물 전체에서 상큼한 민트향이 나네?”
기간병을 따라 이동하던 티파니의 말이었다.
“치약 미싱 했나 보네.”
“치약 미싱?”
티파니는 유재원의 설명에 충격을 받은 듯,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이 더 크게 뜨였다.
군대에서 치약은 단순히 양치질할 때만 쓰이는 의약 외품이 아니었다. 청소할 때도 요긴하게 쓰는 마법의 도구였다.
보통 생활관 바닥에 치약을 뿌린 후 적당량의 물과 함께 거품을 내서 쓸어내면 묵은 때가 깔끔하게 벗겨진다. 치약에 함유된 연마제가 묵은 때를 벗기는 데 특효약이었다. 게다가 청소 후 나는 은은한 민트향은 땀을 비롯한 온갖 이물질로 범벅이 된 훈련병들로부터 나는 악취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평범하게 살았다면 평생 경험해 볼 수 없는 일이었으니 티파니에게는 그야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입소식의 절차가 논산 훈련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훈련소로 입소한 이들은 기간병들의 안내로 가족들과 함께 생활관과 식당, 화장실 등을 둘러보는 투어 행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가족들에게 생활관이나 식당 등을 보여주는 순서는 과거 논산으로 입영했을 때는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부대 입장에서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일반인에게 부대를 개방할 때마다 매번 대청소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이번엔 유재원이라는 규격 외의 존재 때문이라도 평소에 하던 대청소의 범주를 넘어선, 오버홀 수준의 청소를 해야 했다.
입영 장병들의 가족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요즘 군대는 이렇게 시설이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유재원이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절차였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일찍 군대에 입대했었다. 입대했던 곳도 논산 신병교육대였는데, 분위기도 참 암울했었다.
지금은 마치 훈련캠프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괜찮네.”
“응? 이게 괜찮은 거야?”
유재원은 생활관과 식당을 둘러보면서 괜찮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티파니나 부모님의 눈에는 전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과 가족들의 눈높이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회귀 전 군대에 다녀온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는 유재원이었지만, 티파니와 부모님은 웬만한 상류층도 누릴 수 없는 최상류층의 생활 수준을 영위하고 있었다. 유재원의 부모님은 그나마 90년대 초까지는 어렵게 살던 경험이 있지만, 티파니는 모든 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럼! 군대잖아.”
티파니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티파니는 미군 수준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충격이었던 것이다.
투어 행사가 끝나고 바로 입소식이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입소자 대표로 선정된 건 유재원이었다. 일단 유재원의 나이도 훈련병 중에 제일 많기도 했다. 심지어 중대장들보다 나이가 많았으니 말이다. 유명세로 말할 것 같으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신고합니다, 유재원 외 312명은 제3 보병사단 훈련대대 입소를 명 받았습니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며 유재원은 한 번의 버벅임 없이 훈련병 대표로 신고식을 마쳤다. 더욱이 입대 직전 조용히 입소하고 싶다고 엄포를 놓은 덕에 3사단장이나 상급부대의 별들이 출동하는 일은 없었다.
무난한 두 번째 군 생활의 시작이다.
4주는 훌쩍 지났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기간병들 그리고 장교들의 환송을 받으며 제3사단 신병교육대를 나서는 유재원은 신이 났다. 심지어 입소식 때 유재원의 엄포 때문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던 장성들도 총출동했다.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고 싶은 얼굴들이지만, 이미 민간인으로 돌아온 유재원에겐 이들은 그저 귀찮은 아저씨들이었을 뿐이다.
“그럼 전역하면 연락들 해 주세요! 밥이나 한번 먹어요.”
오히려 훈련소에서 함께 뒹군 기간병들과 간부들이 더 친근했다.
덕분에 유재원은 웬만해서는 남발하지 않는 나중에 보자는 공수표를 마구 뿌릴 정도였다.
그만큼 두 번 하는 훈련병 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짜증나는 공간이었다. 겨우 4주짜리 초단기 코스라고는 해도 군대는 역시 군대였다.
신병 교육으로 받은 병기본 훈련은 여전히 짜증이 났고, 실사격 훈련 전에 실시하는 PRI도 여전히 힘들었다. 오히려 실탄 사격이 편했다. 회귀 전에 했던 사격의 경험도 있었고, 밀착 경호팀과의 합을 맞추기 위해 참여했던 훈련에서 원 없이 쏘아본 경험 덕이었다.
반대로 경험이 있어도 힘들었던 건 CS탄을 터트리는 화생방 훈련이었다. 억지로 숨을 참아보려고 했지만, 쉽게 되는 기술이 아니었다. 장소는 달라도 전생에서 한 번 거쳤던 코스였지만, 여전히 적응되진 않았다.
무엇보다 제3사단 신병교육대는 그야말로 FM대로 훈련 코스를 운영했다. 화생방 훈련에서 CS탄을 태울 때도, 양을 줄이지 않고 정량 그대로 소모했다. 나중에 특혜 시비 따위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신 훈련 외적으로 국방부는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뜨거운 물이 펑펑 나왔고, 식사도 푸짐했다. 군대 기준으로는 이것 이상으로 풍족하게 지원해 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깜짝 위문공연도 있었다.
연말이라 스케줄이 꽉 차 있을 텐데도 SNSD와 에프엑스가 위문 공연을 와주었다. 전방 부대도 아니고 훈련소에 위문 공연이라니. 자세한 내막을 보면 복잡할 테지만, 위문 공연은 훈련소를 뒤집어 놓았다.
“와, 우리 자기, 얼굴이 반쪽이 됐네.”
그야말로 전설로 회자될 이야기들을 잔뜩 써놓고 나온 유재원을 신병교육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티파니가 격하게 반겼다.
반쪽이라니?
훈련소에도 거울은 있어서 매일 본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미세하게 변하는 건 확인하는 게 불가능했다.
반면 4주 만에 보는 티파니라면 확실히 달라진 걸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실제로 유재원은 4주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훈련도 열심히 받으며 칼로리를 크게 소모했다. 덤으로 매일같이 쏟아지는 업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도 거의 받지 않았다.
티파니의 과장된 반응처럼 살이 쪽 빠지진 않았어도 얼굴색은 확실히 나아졌다.
“그리고 미국서 난리가 난 거 알아?”
“난리가 났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다.
유재원이 신병교육대 입소는 비밀로 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입소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뤄졌지만, 이보다 더 화끈한 반응은 미국에서 일어났다.
4주짜리 신병교육대 입소라도 군대에 간 것에 대해 좋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보다 더 이슈가 된 건 미국 시민권자인 유재원이 하필이면 한국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는 점이었다.
유재원과 척을 졌다던가, 유재원의 몰락을 바라고 있던 사람들은 이 점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시민권을 받는 이들은 모두 시민권 선서를 하게 되어 있다.거기에는 미합중국을 위하여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는데, 유재원이 한국 신병교육대에 입소했으니 말이다.
“흠, 미국에서도 부르면 똑같이 해 주면 되는 거지.”
이에 대한 유재원의 반응은 간단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라면 한국은 징병제였고, 미국은 모병제라는 점이었다. 시민권 선서에서도 국방의 의무를 말하는 대목에서 ‘법이 요구할 때’라는 전제가 붙어 있었다.
그러니 미국이 유재원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부르면 그때 응하겠다는 말은 그야말로 정론이었다. 실제로 유재원은 911이 터지기 전에 첩보를 주기도 했고, 911 이후 오사마 빈 라덴 생포 작전을 위해서 스텔스 드론과 거의 지구 반대편에서 현장의 상황을 생생히 볼 수 있도록 최첨단의 통신망을 제공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재원은 본인이 한국의 신병교육대 입소를 할 경우, 미국에서 논란이 생겨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신병교육대 입소를 감행한 건, 미국이 본인을 다 잡은 물고기 취급을 하는 기미가 슬슬 보였기 때문이다.
존 매케인 대통령 본인이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존 매케인 행정부가 꾸려지며 새롭게 입성한 뉴비들 사이에 ID 그룹을 견제하려는 분위기가 확실히 감지되고 있었다.
특히 ID 그룹 분할론을 펼치던 보수적 성향의 경제학 교수가 상무부 전기통신정보국장으로 오면서 정권 교체로 인한 위기감 정도가 아닌,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위기론이 되었다.
2010년이 되자마자 인공지능 골드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대적인 신규 사업을 펼치려는 유재원에게 있어서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존 매케인 대통령으로서는 기겁할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의 신병교육대 입소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완전 하지 않았다. 대신 측근을 통해서 단순한 4주짜리 입영캠프이고, 한국군에 정식으로 복무는 하지 않는다는 걸 강조했다. 또한 입영캠프 입소 정도로는 미국 시민권 선서를 위배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못을 박았다.
이와 함께 911 상황에서 유재원이 활약했던 것들이 보도되면서 여론의 반전이 일어났다.
오죽하면 공화당 의원 중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명예시민 수여에 반대한 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방심하지 않고 꾸준히 지켜봐야겠지만, 유재원이 보기엔 긍정적인 결과였다.
집으로 돌아온 유재원은 가족들과 쉬면서 12월의 마지막을 즐겼다. 그리고 새해가 되었을 때 웅크리고 있던 날개를 활짝 펼쳤다.
2010년 1월 4일, ID 그룹의 시무식 겸 비전 발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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