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회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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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라니.
방금 인공지능 골드의 메시지가 나오기 전까지 까맣게 잊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Z+라는 차세대 프로그래밍 언어를 출시할 때, 함께 묶어낸 것이 Z코인과 Z스택닷컴이었다. Z코인은 Z+의 컴파일러 네트워크에 기여하면 제공하는 보상용 암호화폐였고, Z스택닷컴은 프로그래머들이 Z코인을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전문 개발자 포럼이다.
Z+는 C+와 C의 점유율을 빠르게 장악하면서 확장 중이었고, 그만큼 Z코인과 Z스택닷컴의 활성도도 높아졌다.
오죽하면 ID 그룹 계열사들이 소프트웨어 관련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 Z스택닷컴의 고레벨에는 높은 가산점을 부여할 정도였다.
프로그래머들의 세계에서도 Z스택닷컴에서 99레벨쯤 한다고 하면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공신력이 있을 정도다.
참고로 Z스택닷컴에서의 레벨업은 누군가 올린 질문에 답을 하거나, 본인의 노하우를 공개해서 10개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경험치 1점이 올라간다. 그렇게 해서 경험치 100점을 쌓으면 1레벨이 상승한다.
그러니까 99레벨이라는 건 9,900개의 문제를 해결해 줬다는 의미였고, 쓸모 있는 프로그래밍 노하우 9,900개를 공개했다는 말과 같았다.
반대로 질문을 했을 때도 경험치는 쌓인다. 대신 질문만 달랑 올려서는 안 되고, Z코인을 걸고 질문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Z스택닷컴이 활성화되는 만큼, Z코인도 활발하게 쓰이게 되었다. 동시에 Z코인이 활발하게 사용되는 만큼 Z코인의 가치도 상승했다.
2008년 Z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1Z코인은 한국 돈 100원의 가치보다 조금 높았을 정도였다.
현재 시세는?
1Z코인당 500원이다.
2년 만에 400%가 올랐다. 투기라고 해도 될 만큼 엄청난 시세 폭발이었다. 그렇지만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폭등의 근거가 있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Z코인이 처음 등장할 때 한국 돈 108원 정도의 가치였던 게, 과소평가된 시세였다는 점이었다. 실제 가치는 200원쯤 하는 것이었는데, Z코인의 정착을 위해서 유재원이 Z+ 네트워크의 세팅 값을 조정해 싸게 풀었다.
게다가 Z코인의 활용은 단순히 Z스택닷컴의 화폐로만 한정된 게 아니라, 해외 송금이나 전자상거래에서도 쓰일 만큼 빠르게 확장 중이었다는 점이다. 수수료 없는 빠른 해외 송금은 암호화폐의 기본적인 기능이었지만, Z코인만큼 빠르고 안전한 건 없었다. 게다가 P마켓을 비롯해 여러 ID 그룹의 유료 서비스를 Z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덕분에 Z코인의 저변은 빠르게 확장되었다. 그렇지만 N페이라는 확실한 대안도 있었기에 대세는 되지 못했다.
다만 극소수 사람들이 Z코인을 대량 매집을 하기도 했다. 암호화폐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2년 만에 5배가 오른 걸 보고 투자를 한 것이었다.
“지금 비트코인이 얼마지?”
유재원은 그래프가 찍고 있는 시세를 확인했다. 그리곤 꽤나 놀랐다.
“22달러!?”
한국 돈으로 치면 23,000원쯤 하는 가격이었다.
“몇 분 만에 이렇게나 올랐다고?”
유재원이 알기로 비트코인의 가격은 9천 원쯤 했었다.
500원 하는 Z코인에 비하면 엄청난 시세였는데, 제대로 알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로 거래량이었다.
Z코인이 하루 거래되는 액수는 100억 원이 넘는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N페이에 비하면 작은 액수지만, 그래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반면 비트코인의 경우에는 몇백만 원 수준이었다. 시세가 20배는 높아도 거래량에서는 비트코인의 완패였다.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사토시 나가모토가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 얼마 후, IDDC 2008에서 Z+를 발표한 유재원에게 제대로 디스를 당했다. 트랜잭션 성능부터 채굴에 대한 불합리함까지. 게다가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99%를 유재원의 ID 클라우드 서버가 장악해 버렸고, 무시무시한 채굴 성능을 선보이면서 채굴 난이도를 급상승시켰다.
호기심이 생겨 비트코인 채굴에 참여하더라도 급상승한 채굴 난이도 때문에, 극악한 채굴량을 자랑한다. 들어오는 코인에 비해 지불해야 하는 전기세가 몇 배나 더 높아진 것이다.
게다가 비트코인 창시자인 사토시 나가모토는 유재원이 지적한 단점들에 대해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이후 극소수의 마니아들만 남은 비트코인은 원래 역사보다 훨씬 낮은 시세를 형성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진행하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몇 분 사이에 9천 원 했던 1비트코인의 시세가 23,000원으로 폭등했다. 대량 매수세가 들어온 것이었다.
“뭐야? 거래량도 많잖아?”
한두 개 정도의 비트코인을 갑자기 23,000원에 매수해도 시세는 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폭등한 시세를 보고 비트코인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대량의 매도 물량이 쏟아냈다. 그런데도 현재가는 22달러, 한국돈으로 23,000원 선에서 수만 개의 매도 물량을 다 받아냈다.
“뭐지?”
유재원은 시세 그래프를 보며 의문에 휩싸였다. 마치 누군가가 작정하고 시세를 끌어올리는 듯한 그림이었다.
자연스럽게 유재원은 도대체 누가 갑자기 비트코인 시세를 끌어올리는 건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비트코인의 시세 폭등은 유재원에게도 이득이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유재원 본인이었으니 말이다. 사토시 나가모토가 비트코인 채굴 프로그램을 공개한 직후부터 ID 클라우스 서버를 이용해 대량으로 채굴을 했던 유재원이었다.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막강한 컴퓨팅 성능 덕에, 현재 유재원의 비트코인 지갑에는 무려 500만 개가 넘는 비트코인이 있었다.
현재 시세로 500만 개의 가치를 계산한다면 1,150억 원이라는 금액이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비트코인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 생각이었던 유재원이었으니, 오늘의 시세 폭등은 절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유재원은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물량을 풀어서 시세를 박살낼까 생각했다가, 곧 마음을 접었다. 물량을 푸는 건 가장 마지막에나 선택할 극단적인 방식이었다. 일단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며칠 후인 8월 25일.
유재원은 비트코인 시세 폭등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인공지능 골드의 폭등 알람이 뜬 게 8월 18일이었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난 때였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비트코인의 시세는 계속 상승했다.
지금은 1비트코인에 30달러, 한국 돈으로 33,000원에 이르고 있었다.
유재원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의 궁전에 저장된 비트코인 시세 차트보다 더 빠른 상승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중국 부자들이 대놓고 펌핑을 하고 있으니.”
범인은 중국이었다.
정확하게는 중국의 광둥성의 부자들이었다.
이걸 파악하기까지 약간의 난관이 있었다. 비트코인이 대량 거래되는 지갑들은 알아보기 쉬웠지만, 그 지갑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암호화폐의 자랑 중 하나가 거래의 투명성이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라고 해서 익명성이 완전히 보장되는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제1금융권에 뒤지지 않을 만큼 투명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참여해 블록체인에 연결되면 비트코인의 최소 단위인 1사토시의 거래도 살펴볼 수 있다. 다만 비트코인 지갑의 주인을 찾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할 만큼 어려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재원은 결국 답을 찾아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비트코인이지만, 결국 대량으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거래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활성화된 비트코인 거래소는 비트맥스라는 거래소였다. 사무실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거래소였는데, 미국 거래소라는 인식과 달리 유명한 조세 회피처인 세이셸 공화국 소속이었다.
유재원이 파고든 지점이 비트맥스였다.
그 결과 비트맥스에 최근 1개월 동안 중국에서의 접속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국 광둥성에서의 접속이 많다는 것도 파악해냈다.
시점도 특정해 냈는데,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의심 계좌 동결을 했던 날 이후로 접속이 크게 늘어났다.
최근 한 달간, 500억 원어치의 비트코인을 광둥성의 특정 부자들이 싹쓸이를 했다.
시작점은 ID 인베스트먼트의 차이나 리스크 리포트였다.
월 스트리트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뤄졌던 보고서였고, 신빙성이 있다고 본 투자회사들이나 큰손들은 중국에서 투자금을 회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상하이 종합 주가 지수가 폭락하기도 했다.
중국의 부자들 역시 차이나 리스크 리포트를 보았다.
중국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차이나 리스크 리포트에 나온 것처럼 중국의 신도시 유령화는 중국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더욱 쉬쉬하고 있었던 사안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중국 유령 신도시의 비어 있는 아파트나, 상가들은 의외로 주인들이 다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주식 시장 폭등도 엄청나지만, 그보다 더 엄청난 게 부동산 가격 폭등이었다.
덕분에 중국의 신도시 아파트들은 다 완성되기도 전에 팔렸다. 심지어 유령 도시 상태인데도 배로 폭등한 아파트도 있을 정도다. 이렇게 폭등한 아파트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중국에는 수도 없이 많았다.
부동산 가격은 무조건 오를 거라는 신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차이나 리스크로 유령 아파트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우게 해 줬던 매수세가 뚝 끊겼다.
중국의 투기꾼들에게 이제는 누가 더 먼저 탈 나지 않고 탈출하는지가 최우선인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부동산 거품이 확 꺼지면 담보 대출을 해 준 은행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국무부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의심 계좌 동결이 터졌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은 마카오에 위치해 있었고, 지리적으로 접근이 수월한 중국 광둥성의 부자들이 주로 거래하는 은행이었다.
부동산을 현금화한 부자들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돈을 맡기려고 했는데, 의심 계좌 동결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그렇다고 중국의 은행에 돈을 맡길 수도 없었다.
여러모로 깨끗한 자금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대안으로 찾은 것이 암호화폐였고, 구체적으로는 비트코인인 것이다.
암호화폐 중에서 제일 잘나가고 범용적인 것은 Z코인이지만, 유재원이 만들었다는 게 중국 부자들을 덜컥거리게 만든 요인이었다.
한중 무역 전쟁에서 중국이 가장 큰 타깃으로 삼은 게 바로 유재원과 ID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최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안드로이드 Z0은 8월 초 IDDC와 함께 전 세계에 동시 발매되었다.
작년만 해도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점에 판매가 되었지만, 이번에 발매된 Z0은 그렇지 못했다. 전파 인증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졌고, 배터리 인증도 마찬가지였다.
전자제품 분야의 관세가 30%에서 45%로 폭등한 것도 모자라, 아예 정상적인 판매조차 못 하게 막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한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일이었지만, 중국 당국은 테스트가 끝나면 결과가 나오니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이러한 중국의 반 유재원 정책은 그대로 Z코인에도 전해졌다. 중국의 전자상거래에서 Z코인은 쓰지 못한다는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정확하게는 암호화폐 유통 금지 정책이었는데, 비트코인은 그대로 둔 채로 Z코인을 받았던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제재를 했다.
그러니 떳떳하지 못한 뭉칫돈을 가진 부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암호화폐는 비트코인뿐이라는 것이다.
띵!
-마스터, 비트코인 시세가 다시 폭등 중입니다.
마침 인공지능 개인 비서 골드의 알람이 울렸다. 내용도 비트코인이었다.
중국인들이 비트코인을 대량 매집한다는 걸 알고서 인공지능 골드의 비트코인 모니터링 설정에 조금 손을 보았던 유재원이었다.
전에는 100% 이상의 변동 폭이 생겼을 때 알람을 울리도록 했다면, 지금은 30%만 올라도 알람이 울리도록 했다.
그렇게 설정을 바꾸고 나서부터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알람이 울렸다. 비트코인을 매집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시세가 폭등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비트맥스에 접속해 보니 과연 비트코인 차트는 오늘도 큰폭으로 상승 중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중국 사람들이군.”
아쉽게도 비트맥스는 ID 클라우드 서버가 아닌 자체 서버를 통해 거래소를 차렸다.
대신 인터넷 전용선을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상업용 전용선 서비스를 구독 중이었다. 덕분에 비트맥스로 들어오는 접속자들의 통계 정도는 유재원의 서재에서 간단히 볼 수 있다.
패킷 자체는 암호화되어 있어서 개개인을 식별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대체적인 흐름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부자들 사이에 비트코인은 대세였다.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유재원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
그것은 바로 중국 전역에 비트코인 광풍을 불러일으킨 다음 비트코인을 시궁창에 처박아 버리겠다는 계획이었다.
회귀 전 비트코인 광풍이 얼마나 크게 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유재원이었다. 거기에 휩쓸린다면 중국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도 거품이 잔뜩 낀 중국의 경제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다.
“골드, 비트코인 풀매수 들어간다!”
행동력 넘치는 유재원답게 비트맥스 거래창에 올라와 있는 비트코인 매도 물량을 쓸어 담았다. 매도 벽이 무너질 때마다 수백만 달러씩 유재원의 계좌에서 출금되었고, 동시에 비트코인 시세를 나타내는 차트에는 붉은색의 거대한 기둥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같은 화면을 보고 있을 수많은 이들을 한눈에 사로잡아버릴 너무도 매혹적인 붉은 기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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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비트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