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회
초격차 차세대 슈퍼컴퓨터, 퀀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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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각.
중국 광둥성의 부자인 왕첸밍은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천국에 있다가 지옥으로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스마트폰을 들고서 불같이 화를 내는 왕첸밍. 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는 비트맥스의 실시간 비트코인 차트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비트맥스가 기본 제공하는 실시간 차트와는 모양이 많이 달랐다.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건 같지만 일반 유저에겐 그저 그래프만 보여주는 반면, 왕첸밍의 차트에는 다양한 기능의 버튼이 달려 있었다.
바로 자동 거래 봇을 조종하는 버튼들이었다.
비트맥스가 1계정당 거래 한도를 100비트코인으로 한정한다는 조치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뤄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왕첸밍과 같은 큰손들에겐 해당 조치를 시행하기 2주 전부터 공지를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첸밍이 들고 있는 비트코인의 숫자만 해도 10만 개였다. 비트맥스 최대의 큰손이었기에 2주 전에 미리 연락을 받을 수 있던 것이었다.
왕첸밍이 처음 비트코인을 할 때만 해도 투자금의 크기는 눈곱만큼 작았다. 그것도 유학 가 있던 아들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비트코인이란 말은 들어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을 만큼 IT와는 거리감이 있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왕첸밍이 비트코인의 마수에 사로잡힌 건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르는 비트코인 때문이었다.
투자 원금이 10만 달러였던 때, 1비트코인은 20달러쯤 하던 때였고, 수천만 달러로 확대할 때가 1비트코인에 600달러였다. 마지막으로 큰돈을 투자한 건 2천 달러 초반 때였다. 2천 달러가 넘었을 때는 왕첸밍의 투자 방식이 조금 달라졌는데, 비트코인 자체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비트코인 선물이라는 파생 상품에 투자한 것이었다.
그와 함께 비트맥스의 사전 연락을 통해 1계정당 거래 한도 제한이라는 정보를 받았고, 5천 개 정도의 깡통 계정을 만들어 비트코인을 분산했다. 그리고 아들 녀석의 도움으로 5천 개의 분산 계정을 일시에 조종하는 자동 거래 봇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남들보다 먼저 비트코인을 알아본 아들 녀석은 일찌감치 비트코인 자동 매매 프로그램이나 자동 거래 봇을 만들어 판매했고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수완을 선보이기도 했다.
문제아였던 아들의 180도 달라진 모습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건 덤이었다.
하여튼, 왕첸밍은 원래의 신념은 내려놓은 지 오래였고, 공격적이다 못해 전투적인 투자를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전투적인 투자의 결과로 왕첸밍은 비트코인을 10만 개나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트코인이 1비트코인에 1만 달러라는 역사적인 선을 넘었을 때, 그의 재산은 무려 10억 달러를 돌파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왕첸밍이 보유하고 있는 암호화폐는 비트코인뿐만이 아니었다. 알트코인의 대표인 에테리움은 물론, 출시된 지 1달도 되지 않은 대시(DASH) 같은 코인도 대량 보유 중이었다.
띵 하는 알람과 함께 비트맥스에서 비트코인의 시세가 1만 달러를 넘는 순간, 이러한 암호화폐의 시가 총액은 30억 달러를 가뿐히 돌파했다.
비트코인보다 알트코인의 시세 차익이 훨씬 큰 것이었다.
나이를 많이 먹어 웬만하면 놀랄 일 없던 왕첸밍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절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광둥성의 땅부자였던 왕첸밍이 세계적인 현금 부자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띵띵띵!
술친구는 물론이고, 광둥성 당위원회 서기와 같은 거물들의 연락도 쏟아졌다. 모두 그를 통해 비트코인의 존재를 일찌감치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비트코인의 1만 달러 돌파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중이었고, 엄청난 투자 수익을 맛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비트코인의 큰손 왕첸밍을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시했던 것이다.
-오늘 한번 둘만의 자리를 만들 수 있겠나? 언제나 신세만 졌던 게 마음에 걸렸는데, 내 오늘 한턱 크게 내겠네.
=영광입니다! 바로 시간을 내겠습니다!
심지어 광둥성 당위원회 서기인 왕양이 직접 술자리를 만들어 왕첸밍을 초청했다.
왕양과 왕첸밍은 왕씨였지만 족보는 완전히 달랐던 존재였고, 공산당 내에서의 파워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였다.
그런 왕양이 둘만의 자리를 만들자고 했다면, 앞으로는 그의 꽌시에 본인도 포함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황금빛 미래가 현실이 된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지금은 그 황금빛 꿈이 산산조각 나고 있는 중이었다. 1비트코인에 1만 달러를 찍었던 비트맥스의 차트는 새파란 기둥이 나타나 바닥을 뚫고 있는 중이었다.
대량 매도 물량이 터졌다는 소리였다.
1만 달러였던 시세는 파란색 기둥과 함께 수직 급락하면서 8천이 무너졌고, 6천도 무너졌다. 순식간에 5천 달러까지 꺾여 버렸다.
딱 반토막이었다.
띵띵거리면서 메시지와 ID톡이 왔다면서 수도 없이 울려댔던 왕첸밍의 스마트폰도 비트코인 시세가 반토막이 나는 순간 뚝 끊겼다.
“오류인가? 그렇지. 오류겠지?”
왕첸밍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단 오류라고 생각했다.
아주 경우가 없던 일은 아니었다. 중국에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비트맥스로 몰려들었다. 중국 당국이 황금방패로 비트코인은 물론이고 암호화폐 전체를 막아 버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업데이트로 간단히 우회할 수 있었다. 애플도 비슷한 업데이트를 실시하면서 비트맥스로의 접속은 더 많아졌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린 비트맥스는 에러가 터지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거래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던 건 기본이고, 차트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1만 달러를 돌파한 지금, 사람들이 몰리면서 에러가 터진 게 아닐까 하는 왕첸밍의 희망도 완전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라는 타이틀을 자랑하는 비트맥스의 서버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었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었다.
강력해진 서버의 파워에 트레이딩 프로그램의 패치와 업그레이드도 꾸준히 이뤄지면서 동시 접속자가 수백만이 되어도 거뜬할 정도였다.
비트코인의 시세가 5천 달러로 반토막이 난 건 결코 에러 따위가 아닌 현실이었다.
“그, 그러면! 단순한 시세 차익을 노린 매도가 연쇄 작용을 일으킨 건가?”
1비트코인이 1만 달러였을 때 쏟아져 들어왔던 황금빛 미래가 너무나 강렬한 경험이었던 걸까. 왕첸밍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락의 이유를 찾았다.
비단 왕첸밍뿐만이 아니라, 비트코인에 투자했던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유재원 단 한 사람이 비트코인을 500만 개나 보유하고 있고, 이 사람이 비트코인 시세 폭락을 위해 마구 던져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더욱이 유재원은 비트맥스가 1계정당 거래 한도를 100비트로 제한할 거라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왕첸밍보다 먼저 깡통 계정을 수십만 개를 보유했고, 이를 동시에 제어하기 위한 자동 거래 봇을 만들어 두었다.
그렇기에 매도 물량을 쏟아내는 건 한두 개의 고래 계정이 아니라, 수십만 개의 계정이 1비트에서 0.00001비트 사이의 물량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이번 시세 붕괴를 단 한 사람이 초래했다고 추리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띵띵, 띵띵띵!
-왕씨, 지금 비트코인 시세 뭐야?
-비트맥스 오류 난 거지?
-갑자기 반토막이라니!
왕첸밍의 스마트폰이 난리가 났다.
ID톡의 비밀 단톡방이었다. 원래는 중국의 지도부에서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지역 개발 정보 등을 공유하는 단톡방이었는데, 이제는 비트코인만 다루는 단톡방이 되었다.
왕첸밍의 친구들답게 1만 달러를 돌파하는 순간 그들 역시 난리법석을 피웠다가 이제야 현실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침착해! 시세 차익 매물이 나왔는데,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낙폭 과대를 일으킨 모양이다.”
몇 달 사이에 암호화폐 전문가가 다 된 왕첸밍이 폭락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냈다.
-그럼 낙폭 과대란 말이지?
-매수할까?
친구들에게 쌓은 왕첸밍의 신용도는 최고였다.
여기에 비트코인 전문가라는 타이틀까지 있으니, 단톡방 속 친구들과 지인들은 왕첸밍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심지어 아직도 위기감이 없는 이들은 추가 매수를 거론했다.
왕첸밍도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액수가 좀 커서 그렇지 비트코인에서 폭락과 폭등이란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가자.”
대화를 불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뜻이 통했다.
추가 매수를 결정한 이들은 바로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고 매수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시세 차익을 노리다가 낙폭이 과도하게 나왔으니, 매물로 나온 물량을 죄다 쓸어 담겠다는 의지였다.
“역시!”
매수 주문을 넣자 비트코인의 시세는 바로 반등하면서 치솟아 올랐다.
심지어 왕첸밍과 같은 판단을 내린 큰손들이 많았던 모양인지, 호가가 빠르게 올라갔고 매수 주문이 체결되지 못하고 잔량으로 쌓이는 물량도 점차 많아졌다.
그렇게 반등을 시작한 비트코인은 대략 8천 달러 선에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른 큰손들도 그 지점을 바닥으로 다질 모양인지, 매수 주문 잔량의 숫자를 크게 늘리기 시작했다.
8천 달러에 매수 주문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그 숫자가 순식간에 만 단위를 넘어섰다.
“이게 다 얼마인가?”
그러더니 불과 10분 만에 매수 잔량이 5만 개가 넘어섰다.
8천 달러에 5만 개의 주문. 돈으로 따지면 4억 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액수가 단단한 바닥을 만들었다.
한두 개의 매도 주문, 많아 봐야 100개 정도의 매도 주문은 5만 개짜리의 매수벽에는 기별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소량의 매도 주문으로 매수벽이 갉아지는 속도보다 매수 주문이 누적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든든하군.”
왕첸밍이 5천을 찍다가 8천까지 올라온 비트코인의 시세와 엄청난 숫자의 매수벽에 안도하던 그때.
비트맥스의 실시간 차트와 거래창이 버벅거리더니, 프리징이 걸렸다.
“또 무슨 일이…….”
왕첸밍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프리징이 풀렸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비트코인 개수로 5만 개, 현금으로 4억 달러에 이르는 매수벽이 한 방에 사라진 것이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들려오는 비트맥스의 거래 체결 메시지가 떴다.
8천 달러에 매수벽이 쌓였을 때, 왕첸밍도 함께 2천 개 정도의 매수 주문을 넣어 힘을 보탠 것이었는데, 그 거래가 체결되었다는 소리였다.
든든히 바닥을 받쳐주던 매수벽이 사라지자 또다시 비트코인의 시세는 폭락했다. 이번 폭락은 훨씬 거칠고 더 빨랐다.
순식간에 5천 달러의 벽이 무너졌고, 4천 달러 중반대까지 떨어져 버렸다.
왕첸밍의 시야가 까마득해졌다. 새파랗게 긴 기둥은 마치 자신의 심장을 뚫어버린 것 같았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현금 잔고가 4억 5,124만 달러 증가했습니다.
“좋군.”
인공지능 골드의 메시지에 유재원은 짜릿함을 느꼈다.
매수 잔량이 5만 개나 응집된 매수벽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쾌감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4억 5천만 달러 정도의 현금이 생기는 건 덤이다.
수십만 개의 비트맥스 계정은 ID 클라우드 서버의 강력한 힘과 자동 거래 매크로를 예술적으로 운영하는 인공지능의 힘에 의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 중이었다.
비트코인 시세 파괴라는 유재원의 명령을 자동으로 수행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암호화폐 매수자들에게 최대한의 대미지를 가하도록 하라는 조건도 충실히 맞추어 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비트코인의 시세를 5천 달러까지 내려꽂은 다음, 잠깐 숨을 골랐던 것도 최대한의 대미지를 주기 위한 테크닉이었다.
인공지능 골드가 파악한 중국 투자자들의 패턴은 낙폭 과대 상황에서의 추가 매수였으니 말이다.
이제까지 중국 투자자들은 그러한 패턴으로 암호화폐 거래에서 제법 많은 돈을 벌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5천 달러를 찍고 튕겨 올라오는 중에 나온 패닉셀 물량을 다 받아내는 건 물론이고, 8천 달러 선에서 거대한 매수벽을 쌓아 존재감을 과시했다.
인공지능 골드는 그렇게 매수벽이 만들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5만 개 이상의 물량을 투하하면서 붕괴시켰다.
심지어 그 기세를 이어 이전보다 더 큰 폭락을 이루어냈다.
1만 달러를 5천 달러로, 8천 달러였을 땐 4천 달러로. 반토막에 반토막을 만들어내는 것이 유재원이 선택한 전술이었다.
2CH.com부터 중국의 웨이보와 바이두까지. 코인 관련 커뮤니티를 둘러보니 죽겠다는 사람들이 반이었고,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러 와서 놀리고 있는 사람들이 반이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4천 달러인 지금 시세라도, 아직 큰 이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많았으니 말이다. 특히 유재원이 타깃으로 잡고 있는 중국의 비트코인 트레이너들은 1,000달러 이하에서 진입한 사람들도 많았다.
“자, 다시 달려보자!”
최종 목표는 미중 무역 전쟁 이전의 비트코인 시세로 돌려놓는 것이다.
-예, 매도를 다시 시작합니다.
한시도 목표를 잊은 적이 없는 유재원은 단호히 명령을 내렸고, 인공지능 골드는 명령에 따라 다시금 매도 폭탄을 쏟아냈다.
매크로가 멈췄던 잠깐 동안 데드캣 바운드로 살짝 올라가던 시세는 다시 폭락했다. 이번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패닉셀 물량이 쏟아졌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모니터상에 그저 파란 기둥이 다시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있는 단순한 그래픽으로 표시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에겐 패닉을 선사하는 대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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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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