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회
초격차 차세대 슈퍼컴퓨터, 퀀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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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직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은 회귀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원자로 주변의 송전 선로와 변전 시설 등이 지진의 직접적인 파괴력으로 쇼트되거나 무너져 내리면서 외부 전력이 차단되었다.
이후 쓰나미가 발전소를 덮치면서 원전 시설 전체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지하에 설치된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침수되어 정지했고, 발전소 내의 모든 전기 시설이 바닷물에 잠기면서 가동이 정지되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전체에 전기가 나가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나마 회귀 전과 달라진 점은 원자로가 1월부터 가동 정지 상태였다는 점이었다. 유재원이 강력하게 주장한 대지진 예고에, 작년 11월 말에 공전의 히트를 친 휴머니티 드라마 체르노빌 덕이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는 6개의 원자로가 있고, 이것들 모두 가동 정지 상태였기에, 지진으로 인해 발전소 전력 전체가 빠지는 블랙아웃이 되었지만 원자로 내부 온도가 미친 듯 상승해 냉각수가 증발해 원전 전원 완전 상실 사고(Station Black Out, SBO)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도 단순 블랙아웃으로 마무리되었다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여기에 변수가 생겼다.
아소 다로 총리와 도쿄 전력이 지시한 재가동 작업이었다.
이틀 전 전진을 본진이라 단단히 착각해 버린 아소 다로 총리였고, 여기에 도쿄 전력이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면서 재가동 작업을 바로 승인했고, 명령이 나온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작업자들이 투입되었다.
작업자들이 했던 작업은 6개 원자로의 점검, 그리고 재가동을 위한 연료봉 투입이었다.
도쿄 전력은 여론에 떠밀리면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정지를 결정했었다. 대신 기왕 정지하는 김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전체를 정밀 점검하고, 원자로 역시 보수 작업을 하며 폐연료봉 모두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덕분에 원자로는 완전히 개방된 상태였는데, 이 상황에서 원전이 거의 잠길 만큼 엄청난 높이의 쓰나미가 일어난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외부와는 완전히 폐쇄된 상태에 있었을 테니, 해수 유입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지진이 일어난 시점은 오후 2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고, 이때 작업자들은 원전 점검과 연료봉 교체를 위해서 원자로를 완전 개방해 놓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는 원전 1호기에서 발생했다.
1호기는 제네럴 일렉트로닉스의 비등수열 원자로 M1이란 구식 모델이었다. 첫 가동일자가 1971년 3월이었으니 40년이나 된 골동품이었다. 그렇기에 연료봉 교체 작업도 기계식 기중기와 도르래를 이용한다.
너무나도 구식이었기에 대지진과 같은 갑작스러운 위기에 대응하는 안전장치는 없었다. 심지어 너무 낡아서 기계장치들의 내구도가 상당히 깎여 있었다.
새 연료봉을 넣으려는 시점에서 대지진이 일어나자 충격을 견디지 못한 도르레 사슬이 뚝 하고 끊어져 버린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을 정도다.
이동 중 사슬이 끊긴 연료봉은 그대로 원자로 내부로 추락했다.
연료봉 하나의 무게는 3톤이 넘었고, 무게는 곧 파괴력으로 고스란히 변환되어 원자로 하부를 망가뜨렸다. 게다가 충돌 대미지는 연료봉 자체에도 큰 대미지를 주었다.
원자로 하부과 충돌된 부분이 크게 우그러졌고, 눈에 보일 정도로 큰 파열도 생겨났다. 그 틈으로 핵연료봉에 내장되어 있던 고농도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였다.
더욱 큰 문제는 핵분열 반응이었다.
가동이 정지된 원자로라고 해도, 완전히 차가워지진 않는다. 가동이 정지된 것은 감속제가 투입되어 핵분열 연쇄 반응을 최대한 낮췄다는 말이지, 핵분열을 완전히 끝냈다는 말은 아니었다.
원래 한 번 반응을 시작한 연료봉은 핵물질의 반감기가 모두 끝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료봉 교체 작업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작업이었다.
한 번에 모든 폐연료봉을 꺼내고 새로운 연료봉을 넣는 게 아니라, 하나씩 교체하는 방식이었다.
즉, 기존에 핵분열 반응 중이었던 연료봉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 핵분열을 유도하는 중성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원자로 정지 상태에서 나오는 중성자들은 감속제에 대부분 흡수되어야 하는 게 이론적으로는 정답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론과 달랐다.
감속제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중성자들이 상당히 많았던 상태였는데, 거기서 새로운 연료봉이 추락해 버린 것이었다.
중성자들이 쏟아지자 연료봉 내부의 핵분열 물질이 반응을 했다.
이 말인즉, 핵분열을 일으키면서 막대한 열에너지와 함께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정밀한 계측기에서만 잡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원자로 내부의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관제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냉각수를 최대한 주입하고, 동시에 감속제를 더욱 투입해서 핵분열 연쇄 반응을 최대한 차단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렇지만 관제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쓰나미로 인해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침수되면서 작동시킬 수 없었고, 외부 전원을 끌어오는 것도 대지진이 일으킨 쇼트 때문에 불가능했다. 가장 확실한 정지 장치인 감속제 투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연료봉 낙하의 충격에 기계 장치가 고장이 났는지, 관제실에서 아무리 조작을 해도 중성자 양은 감소되지 않았다.
“소장님! 지금 당장 해수라도 끌어들여 반응로를 식혀야 합니다!”
관제실 내 직원들 중 누군가 비명처럼 외쳤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소장인 요시다 마사오도 그 의견에 바로 동의했다. 쓰나미로 인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해수가 유입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본인 마음대로 해수 유입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일단 도쿄 전력 본사에 긴급 상황을 보고하면서 해수 유입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도 무선 통신망은 살아 있었다. 정확하게는 소프트뱅크의 4G 무선 통신망만 안테나가 4개 꽉 차게 뜨고 있었다.
요시다 마사오 소장은 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현장의 상황을 빠르게 설명하면서 해수 투입 승인을 요구했다. 그리고서 몇 초가 흘렀을까.
요시다 마사오 소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도쿄 전력 본사 간부의 대답이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도 그 권한은 없기 때문에 윗분들과 이야기를 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장의 다급한 상황을 이야기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일본의 고질병인 전화 돌리기의 시작이었다.
회귀 전에도 도쿄 전력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에서 초동 대응에 실패했고, 해수 투입도 미적거리면서 원자로 폭발이라는 최악의 사고를 초래했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이러한 난리통을 제3의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따다닥. 따다다닥.
시작은 특이한 신호음이었다.
-마스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지수가 폭등하고 있습니다.
곧이어 인공지능 골드의 경고 메시지가 떴다.
딱딱거리던 신호음은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모니터링을 위해 띄워둔 드론에 장착된 방사능 측정기의 소리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대지진으로 인한 재난이 소강상태에 이른 것 같자 좀 눈을 붙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유재원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를 다시 켜니 붉은색과 노란색이 사선으로 들어간 경고등이 큼지막하게 띄워져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경고등을 클릭하자 세슘137 감지라는 세부적인 데이터가 나타났다.
세슘137은 자연계에서도 극미량 감지는 되지만, 워낙 소량이라서 무시해도 될 양이었다. 유일한 대량 생산은 핵발전 그리고 핵무기의 폭발을 통해서나 가능하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세슘137이 감지된다는 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핵물질이 유출되었다는 뜻이었다.
드론에 장착된 방사능 감지기는 전문가 수준의 장비로 저준위의 방사능 물질부터 엄청난 고농도의 방사능까지도 측정할 수 있었다.
“골드, 현재 유출된 방사능 수치는?”
-12기가베크렐입니다.
“아니, 시작부터 기가 단위라고?”
골드의 보고에 기가 차는 유재원이었다.
베크렐이란 단위의 의미는 단위 시간당 얼마나 많은 핵붕괴가 일어나는가를 나타내는 SI 단위였다.
1초에 1개의 원자핵이 붕괴하면 1베크렐이라는 의미다.
현재 지구의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100베크렐 정도의 방사능 수치는 감지되는 수준이다. 제과점 오븐에서 막 나온 따끈따끈한 빵에서도 100~200베크렐 정도는 나온다.
그런데 기가 단위의 베크렐이라니.
이 정도라면 소규모 핵 유출 사고에서 감지되는 수치였다.
문제는 감지 장치가 장착된 드론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가깝게 접근은 했지만, 그렇다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위까지 접근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12기가베크렐이라면, 정말 큰 유출 사고가 터졌다는 이야기였다.
유재원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들은 모두 가동 정지에 들어간 상태이지 않았던가. 그러니 과거와 같이 비상 전원까지 다 나가더라도 핵분열을 계속해 원자로 내부의 온도가 올라갈 일은 없어야 했다.
“일단 유튜브 라이브에 띄워!””
더는 생각해 볼 것도 없는 유재원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띄워진 드론의 영상을 유튜브 라이브로 송출하라고 명령했다.
과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에서 제일 문제가 된 건 해수 유통이니 뭐니 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소수의 도쿄 전력 사람들만 공유하고 외부에는 전혀 알리지 않은 비밀주의도 큰 문제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유재원도 당장 무슨 사고 때문에 방사능이 유출되었는지 알기는 불가능했다. 대신 과거처럼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시간이 낭비되는 걸 막는 최선의 방법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을 일본과 전 세계에 정확히 알리는 것에 있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튜브는 제격이었다.
한때,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1천만을 찍기도 했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은 지금도 100만 명 이상이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비밀을 풀기에 제격이었다.
여기에 유재원은 인터넷 말고도 타임워너 넥스트컴과 ID 미디어그룹이라는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국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재원의 명령이 내려지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핫이슈로 등극했다.
몇 시간 후.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다.
-무능의 극치 아소 내각과 도쿄 전력의 조바심이 빚어낸 대참사.
-급하게 이뤄진 연료봉 교체 작업 중, 지진 닥쳐.
-3톤짜리 연료봉 원자로 하부로 추락!
-핵분열 감속 제어 컨트롤 장치 고장. 원자로 내부 온도 상승 중!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고농도의 방사능 물질 유출이 유튜브를 통해 제일 먼저 알려졌고, 이는 곧 전 세계에 긴급 속보로 전해졌다.
그와 함께 일본 정부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을 물어보는 내외신의 문의가 폭증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이렇게 내외신의 문의가 폭발할 때까지도 일본의 아소 다로 내각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생태였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소장인 요시다 마사오와 접촉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
일본의 도호쿠 지역 신문사의 기자였다.
유튜브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유출 소식을 접하기 전부터 요시다 마사오 소장의 전화로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던 기자였다.
다들 쓰나미 상황만 집중하고 있던 와중에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괜찮은지 물어보기 위해서 접촉을 시도했었다.
지방신문 기자가 이렇게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열심이었던 이유는 체르노빌이라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그때 큰 인상을 받았던 기자는 유재원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민김하게 다뤘던 것도 떠올릴 수 있었다.
유재원이 메인으로 다뤘던 사안 중에 의미가 없이 흘렀던 일이 있던가. 결코 없었다. 그러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도 뭔가 중대한 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일어났다.
덕분에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연락을 시도했다.
한편으로 당시 요시다 소장은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발전소의 비상 상황이 너무나 심각한데, 해수 투입은 거부한 채로 책임 회피만 하는 도쿄 전력 본사의 지침에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그런 요시다 소장은 유튜브에서 터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현황을 인지하게 되면서 심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때마침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걸려오는 기자의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시다 소장은 현재 발전소의 상태와 도쿄 전력 본사의 대응을 숨기는 것 없이 풀었다. 기자는 요시다 소장과의 인터뷰로 기사를 만들었고, 조간신문 윤전기가 돌아가기 전에 송고를 마칠 수 있었다.
또한, 인터넷 홈페이지와 넥스트컴, 야후 재팬과 같은 대표 포털 사이트 뉴스 페이지에도 기사를 송고했다.
-외부 전원 상실과 비상 디젤 발전기 고장으로 냉각수 주입 불가능!
-최선의 방법은 해수 투입!
-현장 소장의 요청에도 도쿄 전력 해수 투입 거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아소 다로 총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본이 난리가 나는 건 당연했다.
특히 아소 다로 총리와 도쿄 전력을 향한 일본인들의 분노가 거대했다.
초유의 대지진으로 일상이 멈춰 버린 일본이었는데, 지금껏 일본 사람들이 본 건 유재원의 활약뿐이었다. 지진 예고는 물론이고, 쓰나미 상황에서 고립된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구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반면 아소 다로 총리는 지진 발생 후 12시간이 다 지날 때까지도 현장은커녕 텔레비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행히도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막대한 여론의 압력을 받은 도쿄 전력은 어쩔 수 없이 해수 투입을 결정했다.
대량의 해수가 원자로 내부로 투입되면서 내부 온도도 안정화되었다. 그렇지만, 사건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원자로 내부로 떨어져 내린 연료봉을 회수하고, 남아 있는 폐연료봉을 모두 수거해 밀봉해야만 완벽한 해결이었다. 평소에도 원자로 내부에 들어가는 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고농도 방사능 물질까지 유출된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해수 투입 역시 임시방편이었다. 해수에 포함된 염분이 원자로 내부의 막대한 열과 만나면서 소금 결정이 만들어지는데, 이게 쌓이게 되면 냉각 효과가 너무나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쓰나미로 인한 피해 상황은 대강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고, 일부는 복구작업을 시작했다.
반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었다.
그야말로 전전긍긍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해결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이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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