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9회
2차 기술가속
=============================
문짝이 박살 난 사진.
키보드와 모니터가 박살 난 사진.
자그마한 소반에 올려졌던 밥이라던가, 커다란 식탁에 올려졌던 밥상을 뒤엎은 사진.
비트코인 커뮤니티에 접속하면 쉽게 볼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 폭발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문짝을 부수고, 모니터를 박살 내고, 밥상을 뒤엎은 것이다.
원인은 물론 비트코인이나 알트코인에 겁 없이 돈을 넣었다가 폭삭 망해 버렸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처럼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폭락에 제대로 대응도 못 하고 어어 하다가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지갑을 보고 있으면 돌부처라도 멘탈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주식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투자 상품이긴 해도, 그나마 안전장치는 있었다. 상한선과 하한선이었다. 그나마 깡통을 찰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레버리지를 최대한으로 끌어다 쓰는 것이었다.
레버리지라는 게 지렛대를 쓰는 것처럼 이익이 배가 되는 만큼, 손실도 배가 되는 구조였다. 이익이 날 때는 레버리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지만, 손실금이 원금을 넘어서는 순간 강제 매도가 이뤄지면서 모조리 청산된다.
계좌가 완전히 텅 비게 되니 깡통 계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비트코인에도 파생 상품 시장이 있었다. 그것도 전통과 명성이 자자한 시카고 옵션 거래소에서 만든 비트코인 선물 옵션이었다.
그렇지만 시카고 옵션 거래소의 접근성은 매우 좋지 않았다. 증거금으로 일정 금액을 예치해 놓아야 계정이 나오는데, 그 금액이 일반인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액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어떤 상품인가.
탈국가, 탈중앙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암호화폐였다.
중앙에서 제어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거래소를 만들 수 있었고, 심지어 비트코인 선물 옵션 거래소도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들 거래소는 불과 몇 달도 안 되어서 죄다 폭발했다.
1만 달러에서 20달러까지 주야장천 내리꽂히는데, 버틸 수 있는 업체가 몇이나 되겠는가. 만약 1만 달러에서 풋 옵션을 사서 20달러가 될 때까지 유지해 대박, 초대박이 터졌다고 해도 결론은 꽝이었다.
거래소 자체가 문을 닫고 내빼 버렸으니 말이다. 일반 거래소도 야반도주를 하는 판국인데, 비트코인 선물 옵션 거래소는 단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모두 문을 닫았다. 심지어 시카고 옵션 거래소 역시 비트코인 상품 거래를 정지했고, 1천 달러 선이 무너지자 퇴출하기로 의결했을 정도다.
이렇게 계좌에 돈이 좀 남았더라도 거래소 자체가 박살 나면서 깡통을 차게 된 사람들 역시나 상당했다.
-결혼 자금이었는데!
-아파트 담보 대출금으로 투자한 것이었는데 망했다!
-난 아버지 퇴직금이었다.
-장강 물은 따듯하냐?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온갖 사고를 친 사람들의 한탄이 담긴 게시물이 줄을 잇고 있었다. 그렇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글이라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좀 나은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진짜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이나, 상상하지도 못했던 상황으로 몰렸으니 말이다.
용당그룹 왕첸밍 회장이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파란만장한 이벤트가 가득했던 2011년 3월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중국발 속보가 유재원이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도 전해졌다.
-용당그룹 파산.
-왕첸밍 회장, 회사 공금으로 비트코인 투자했다가 천문학적 손실 초래.
-공안, 왕첸밍 회장 도주 첩보 전달받고 긴급 체포.
-왕양 광둥성 총서기, 불법 대출 알선 혐의로 소환.
“희생양인가?”
유재원은 텔레비전 속보를 보고 바로 감을 잡았다.
그렇지만 왕첸밍 회장이 희생양이냐는 건 의문이었다. 왕첸밍은 유재원의 정보팀이 파악한 중국 비트코인의 거물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왕첸밍의 계좌를 들여다본 건 아니라서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대충 10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었다. 비트코인의 평균 매입 단가도 대략 2~3천 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왕첸밍의 진정한 존재 의미는 따로 있다.
광둥성 비트코인판을 이끄는 선구자였고, 강력한 꽌시로 그의 주변 친구들과 광둥성의 고위 공산당에게 비트코인을 퍼트린 슈퍼 전파자였다는 점이다.
광둥성 총서기인 왕양까지도 비트코인판에 끼어들도록 했으니, 유재원에게 있어 최고의 협력자나 마찬가지였다.
광둥성의 총서기인 왕양도 비트코인을 하는 판인데, 다른 고위 공직자들이라고 가만히 있었을까. 광둥성이 비트코인의 성지로 등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본인의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바로 광둥성의 지방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는 것이었다. 본래 자본주의 체제에서 큰돈을 버는 방법은 이익은 독점하고 손실은 나누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대출이 있다. 개인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건 그 부담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하기에 위험을 분산하는 측면은 낮지만, 왕첸밍과 같은 사업가나 중국의 고위 공직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한민국이라면 대출 특혜 사건이라고 보도하고도 남았을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조건으로 막대한 대출을 받았다.
물론 그렇게 받은 돈은 죄다 비트코인 투자에 들어갔다.
더욱이 중국 중앙정부가 외화 관리를 엄격히 하면서, 달러가 중국 밖으로 반출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조항은 보통의 중국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왕양과 같은 거물들 그리고 왕첸밍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렇게 지방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아 비트코인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행복했다.
오죽하면 어서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시세가 폭등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1만 달러가 20달러로 처박힌 지금은 모든 게 악몽과 같았다.
왕첸밍은 용당그룹을 버리고 혼자서 몸을 빼려다가 잡혔고, 왕양은 천문학적인 불법 부실 대출이 드러나면서 모든 커리어가 박살 났다.
그렇지만 이 둘만 족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고구마 줄기 하나를 잡아 올리면 수십 개의 고구마가 딸려 나오는 것처럼, 대출 특혜를 조사하자 수도 없는 문제가 드러났다.
웬만한 지방은행들은 큰 손실을 보았고, 특히 몇몇 은행들은 당장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광둥성이 제일 심했지만, 다른 지방이라고 해서 멀쩡한 곳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중국에서 제일 잘 사는 상하이만 그런대로 괜찮은 수준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중국의 수뇌부는 왕첸밍을 희생양 삼기로 했다.
이미 공안에 잡히는 순간부터 사형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유재원이 판단한 것처럼 겨우 왕첸밍 하나만으로 이 불만을 잠재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적어도 왕양 총서기도 같이 사형대에 세워야 한다는 말이 중국의 주석궁에서 흘러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왕양은 후진타오 국가주석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가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올 때, 아무런 대비책 없이 그냥 내려온 건 아니었다. 퇴임 후 확실한 안전을 보장받았는데, 그것은 본인만의 안전이 아닌 후진타오를 따르는 계파의 안전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주석 자리에 앉은 지는 2년이 넘었고, 5개월 후면 3년 차가 되지만, 아직 권력이 완전해진 건 아니었다. 중요한 사안들을 처리할 때에는 공청단과 같은 파벌의 동의를 받아야 할 때가 많았다.
-중국 광둥성으로 시작한 뱅크런, 중국 전역으로 확산하나?
돈에 민감한 중국 사람들이었기에, 지방은행이 위태롭다는 소문만으로도 뱅크런이 이뤄졌다. 뱅크런이 닥치면 건실한 은행도 순간 위태로워지는데, 부실한 은행들은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관망을 하던 사람들까지도 뱅크런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중국에 난리가 났다.
뱅크런을 초래한 왕양에게 시진핑 지도부에서는 이를 갈았다.
뼈까지 씹어 먹어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후진타오 주석과의 협약과 사형시키고 난 이후의 후폭풍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중국 중앙정부, 지방은행에 공적 자금 투입한다.
-건실한 예금에 대해 지급 보증 약속.
뱅크런 도미노를 막기 위해서 결국 시진핑 주석은 국가의 돈을 움직였다.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된다는 것이 시진핑 주석과 지도부의 생각이었다.
시진핑 주석이 나서자 뱅크런 상황은 크게 약화되었다.
집권 초기부터 부패와의 전쟁을 벌였던 시진핑 주석에 대한 믿음은 아직도 굳건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이 조치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인 불만이 터진 곳이 있으니 상하이였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제일 소득 수준이 높은 동시에 세금 부담도 많이 짊어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세금을 내는 건 좋다 이거다. 그러면 분배 역시 정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지방에서 터지는 부실은 비트코인이란 탐욕에 취해 벌인 사람들의 결과물이었다. 그걸 피처럼 귀한 세금을 투입해 막는다니.
심지어 긴급 편성된 예산은 국채 발행 조달도 아니고, 상하이 개발 지원금을 돌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알려지자 상하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커다란 불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또한, 왕양이라는 문제의 광둥성 총서기를 겨우 실각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하겠다는 것도 이들의 불만을 더욱 증폭하는 요소였다.
상하이 사람들의 피해 의식이란 중국 수뇌부의 생각보다 훨씬 심했다. 특히 청나라 채권 상환에서 상하이가 제일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나 뜯기고도 해외에 딴 주머니를 찬 중국의 부자들이 대단한 것이지만, 그들의 인내심도 점차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진핑 주석이나 그를 보좌하는 수뇌부들 모두가 상하이의 불만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같은 시간.
-정말 아쉽습니다.
화면 속의 은색 윤기 나는 머리칼을 자랑하는 노회한 박사가 진심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ID 하이테크의 안드레이 소장이었다.
“하이테크가 적임자이긴 해도, 이미 과중한 과제를 수행 중이라는 건 잘 알고 있거든요. 처음이야 신나게 일하겠지만, 나중에는 고난의 행군이 계속 이어질 거예요.”
-그래도 양자 슈퍼컴퓨터이지 않습니까.
안드레이 박사가 아쉬움을 토로하는 건 양자 슈퍼컴퓨터 개발 사업인 퀀텀 프로젝트를 ID 일렉트로닉스가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개발이 완료되면 제일 먼저 써 보게 해 드릴 테니, 이제 잊어주세요.”
-그 말씀, 꼭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안드레이 소장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양자 슈퍼컴퓨터의 쓰임새는 다양했지만, 가장 효과적인 분야가 시뮬레이션이었다. 하이테크 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과제 중에 고도의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것들이 상당수였다. 그중에서도 핵융합발전이 최고였다.
핵융합발전의 핵심은 핵융합 시 방출되는 1억도 이상의 초고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인데, ID 하이테크에서는 자기장 차폐 방식을 연구 중이었다. 현실적으로 1억도 이상을 견디는 물질이 존재할 가능성은 0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대단히 불안정한 1억도짜리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가두는 자기장 차폐막을 만드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고성능의 시뮬레이터가 필요했다. 양자 슈퍼컴퓨터는 그야말로 이런 작업에 찰떡이었다.
실제로 회귀 전에도 양자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나서 몇 년 지나 핵융합발전에 지대한 진보가 있었다. 이전까지는 플라스마 유지 시간이 1분 남짓이었는데, 10분 이상으로 확 뛰었다.
ID 하이테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소장님, 무슨 일로 연락 주신 거예요?”
-아 참, 나이가 들다 보니 깜빡하는군요. 내구성 테스트를 통과한 OLED 샘플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오! 예정보다 2개월이나 빠르네요!”
유재원은 안드레이 소장의 말에 반색했다.
내구성 테스트란 바로 번인 테스트였다. OLED에 들어가는 유기 발광 물질 중에 유독 파란색 소자의 수명이 짧았다. 그래서 조금 사용하다 보면 장시간 한 화면으로 고정된 이미지가 잔상처럼 남게 된다.
작년에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아이폰을 출시한 애플도 번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 애플이 마련한 해결책은 보증 기간 연장이었다. 번인을 호소하는 소비자에게 2년 동안 디스플레이 모듈의 무상 교체를 약속했다.
ID 디스플레이와 함께 평판 TV와 모니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금성 디스플레이의 패기이기도 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진영도 스마트 워치라는 OLED 모듈이 들어간 제품이 있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는 제품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덕분에 올해 출시될 Z1에는 OLED가 탑재되겠군요.”
-다 회장님, 덕이지요.
유재원이 한 일은 그저 수명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청색 OLED 소자를 만든 JNC라는 신생 소재 업체를 인수하고 ID 하이테크와 협업을 시킨 것뿐이었다. 물론 그 업체를 딱 찍어 인수한 건 아니고, 6개 회사를 인수한 것인데, 거기에 슬쩍 이름을 끼워 넣었다.
ID 하이테크 쪽에서 검증 실험이 잘못되면 삽질을 더 해야 했을지도 몰랐는데, 안드레이 소장은 본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발색력과 수명이 대폭 개선되었으니, ID 디스플레이에서 양산을 시작하면 된다. 앞으로는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기기를 대대적으로 출시하면 된다.
띵!
-회장님! 당선입니다! 당선!
좋은 소식은 또 이어졌다.
어제가 한국의 2011년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이었고, 한국 시간으로 늦은 밤인 지금 개표 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최강욱 부회장을 시작으로 한국 쪽 임원들로부터 비슷한 ID톡 메시지가 쏟아졌다.
유재원은 바로 텔레비전을 켜 한국의 채널에 맞췄다. 그러자 ‘정병우 통일국민당 후보, 당선’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떠 있는 모습이 두 눈 가득히 들어왔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흐름도 미국처럼 완전히 달라질 거라는 이야기였다. 또한, 유재원이 지금까지도 꼿꼿하게 마스터플랜을 따르고 있었다면, 이 메시지는 마스터플랜의 페이즈2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아주 의미가 없진 않았다.
마스터플랜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매우 각별하게 다가오는 메시지였다.
양자 슈퍼 컴퓨터와 OLED, 정병우까지.
이는 곧 유재원의 마음에 걸려 있던 심리적 리미트가 완전히 해제되었다는 의미였다. 제2의 기술 가속을 일으킬 시간이 왔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모든 리플은 환영입니다. 다만, 독자님들 사이에 감정 상하게 다투시지만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