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3회
2차 기술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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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은 성공적이었다.
전통과 신세대적 감각을 잘 버무린 덕에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아티스트들의 공연 파트도 대폭 늘어났다.
예체능 쪽으로는 감각이 많이 부족한 유재원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정도였으니,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던 대통령 취임사 중에는 대형 스크린을 활용해서 앞으로의 비전을 확실히 제시했다.
마치 국민을 향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과 같은 연출이었는데, 누가 봐도 이건 유재원의 IDDC 발표 오마주였다.
정병우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내걸었던 첫 번째 공약은 뭐니 뭐니 해도 통일 준비였다.
전병헌 전 대통령 시절부터 급진전한 북한과의 관계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심화 발전되었다. 단적으로 두 개의 유전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석유의 힘으로 각종 현대화 사업이 진행 중인 북한이었는데 제일 많은 일감을 수주한 곳은 대한민국이었다.
ID 그룹도 몇 가지 사업을 수주했다.
광케이블 공사와 전산망 구축 사업과 같은 IT 하드웨어 구축 사업이었다.
심지어 남북한은 한반도 종단 철도 사업도 진행 중이었는데, 부산부터 신의주까지 올라가는 고속 철도 노선을 건설하고, 이를 단둥과 이어서 중국의 대륙 철도와 잇는 프로젝트였다. 동시에 목포에서 함흥, 길주, 나진까지 올라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연결하는 사업도 있었다.
수십조 원의 건설비가 드는 사업이지만, 북한은 펑펑 터져 나오는 유전의 힘으로 거뜬히 수행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확대된 개성 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개마고원 하이킹 등의 사업으로 들어오는 돈도 상당했다.
김정남과 백강철의 이두정치도 의외로 안정감이 있었다. 해외에서는 둘의 권력 투쟁으로 북한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보았지만, 둘 다 각자의 자리에 만족해했다.
덕분에 정병우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통일을 언급하는 건 먼 미래가 아닌, 조만간 찾아올 변화라는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급진적인 통일은 대한민국과 북한이 동시에 망하는 길이었기에, 북한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북한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하는 작업이 먼저 수행되어야 할 일이었다.
잠시 후.
성대했던 취임식도 마침표가 있었다.
정병우 대통령 부부가 먼저 차를 타고 떠났고, 유재원을 비롯한 귀빈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
보통은 이렇게 메인 행사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유재원이었다.
그러니 이번 취임식이 일반 행사였으면, 행사 참석을 마친 유재원은 바로 공항으로 가서 전용기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내일까지도 한국에 머물러야 했다. 바로 정병우 대통령의 취임 첫 만찬 행사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재원만을 위한 만찬은 아니고 이번 취임식을 위해 각국에서 기꺼이 대한민국을 찾은 귀빈들과의 만찬이었다.
물론 유재원이 마음만 먹으면 독대를 요청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그런 파격은 정병우가 국회의원이던 시절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할 생각은 없다. 파격이란 곧 특혜였고, 이는 곧 시빗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니 말이다.
유재원으로서는 굳이 독대 같은 특혜가 없어도 되는 위치였다. 게다가 정병우가 대통령이 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줬다지만, 그 대가를 굳이 받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모두가 함께하는 만찬에서 몇 마디 대화를 공개적으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유재원의 뜻을 전달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바로 오늘 만찬 행사가 있었으면 유재원의 일정이 가벼워졌겠지만,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정병우 대통령은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었다.
청와대로 들어가서 미국의 존 매케인 대통령을 시작으로 각국에 전화를 거는 게 먼저였고, 중요 우방국의 사절들과 만나는 것도 우선적으로 할 일이었다.
만찬 행사가 내일로 잡혔다고 해서 유재원은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자, 우리도 가죠.”
유재원이 일어섰고, 김대석 비서실장이 뒤를 따랐다.
다음 스케줄을 치르는 게 아니라, 서울의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에 자리한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유재원이 방한한다고 사방에서는 각종 파티와 모임에 초청도 했다. 특히 집요할 정도로 유재원을 모시려고 하는 곳이 있으니 전경련이었다.
전경련이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줄임말이었고,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를 모방해 만들어진 재벌들의 모임이었다.
설립 목적은 자유 시장 경제의 창달과 건강한 국민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 정책을 구현하고 대한민국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데 두고 있다고 했지만, 듣기에 좋은 소리만 모아놓은 새털처럼 가벼운 문구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반기업 입법을 저지하기 위한 로비와 재벌 총수의 경제 범죄에 대한 선처 요구, 재벌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압력 단체였다.
자그마한 이익에만 집중하는 단체였기에 유재원은 굳이 참가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ID 그룹이 생겨난 지 근 20년이 되는 동안 가입하지도 않았다.
전경련도 그런 유재원의 고집을 잘 알고 있었고, 일부 회원사들과 마찰이 크게 있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서 이후로 추가적인 권유는 없었다. 그런 전경련이었는데, 최근 다시 유재원과 접촉을 시도하는 건, 정병우와 유재원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었다.
정병우가 김&정 법무법인에서 활동하던 시절, 수임했던 사건들은 모두 대기업의 횡포가 일으킨 사건들이었다.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신기술을 탈취했다든지, 산재 피해를 당했음에도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사건이라든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에 당하고 내쫓겨진 가맹점주가 극단적 선택을 했던 사건 등등.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은 그저 김&정 법무법인의 대표를 했다고 거저 주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정병우와 소송전을 벌이지 않은 기업들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그 과정에서 정병우는 험한 꼴도 여럿 당했는데, ID 그룹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없었다면 결코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정병우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전경련 회원사들에게는 최악이었다.
심지어 전경련 회원사들은 이번 대선에서 보수 통합 후보인 이명박에게 배팅했다. 배팅이라는 말은 선거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반면 정병우는 기업들의 선거 자금을 받는 대신 통일국민당 자체적인 지원과 국민 모금을 통해 돈 안 쓰는 선거라는 운동을 하면서 비용을 최소화했다.
전경련이 다시금 유재원과의 인연을 맺기 위해 열심인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간 정병우 대통령이 보인 행보는 물론이고, 선거 중에 기업들에게 진 빚도 없는 만큼 강력한 경제 개혁 드라이브가 걸릴 거라는 위기감이었다.
물론,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라는 걸 체감하기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다음 날.
유재원은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청와대 만찬에 참여했다.
여러모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세종시로 옮긴 청와대에 들어가 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새로운 영빈관에서의 만찬도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유재원에게 배정된 자리는 당연하게도 정병우 대통령의 바로 오른쪽이었다.
다들 부부를 동반한 탓에 혼자 덜렁 나온 유재원이 특이했지만, 이 정도로 위축될 유재원은 아니었다.
더욱이 유재원은 정병우 대통령부터가 직접 배려를 하고 있었고, 같은 테이블의 다른 참석자들 역시 유재원에게 어떻게든 말 한마디를 해 보려는 마음이었다.
전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는 유재원이지만, 최근 보여준 행보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3월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그리고 이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는 좋은 화젯거리였다.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진짜로 일어난 걸 보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릅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가 최악으로 진행됐다면 일본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태평양 국가들 역시 방사능을 피할 길이 없었겠지요.”
정병우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진을 예보한 것도 놀라웠는데, 아틀라스라는 이족 보행 로봇이 준비된 걸 보고 역시 유 회장님이다 싶었습니다. 도대체 몇 수나 앞을 보고 있는 건지 저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더군요.”
작정하고 유재원을 띄워주는 정병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만찬장에는 엄선된 귀빈들뿐만이 아니라, 한국은 물론 해외의 취재진도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든든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대지진도 예측했고, 아틀라스 로봇 같은 후속 대책까지 완벽히 준비한 천재가 대한민국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저는 대한민국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예 정병우 대통령은 유재원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줬다.
대한민국에 대한 조언이라.
“음, 어쩔 수 없군요. 대통령께서 물으시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요. 일단 제 사견이라는 걸 전제하고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질문이 접수되자마자 수십 개의 아이템이 떠오른 유재원이었다. 그걸 머릿속에서 잘 정리한 유재원은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완성한 이족 보행 로봇 아틀라스가 여러분께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지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의 공간으로 변한 원자로 내부에 들어가 연료봉 회수와 냉각수 파이프 보수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아틀라스 로봇은 지금도 센세이션이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가 단기간에 2배나 늘었고, 아틀라스 관련 조회 수도 급등했다.
대당 3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경악했지만, 비싸다는 말 대신 그럴 만도 하다는 의견들이 더 많았을 정도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보기에 이러한 반응은 그저 현상 그 자체만을 보고 나온 것일 뿐. 아틀라스가 상징하는 변화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아틀라스가 상징하는 건 바로 4차 산업혁명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과거에는 세계경제포럼의 창시자인 클라우스 슈바브가 2015년에 기고한 글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였다.
그렇지만 이번 생에서 4차 산업혁명은 유재원이 먼저 꺼내든 단어였다.
유재원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한 다음부터는 IT 혁명 다음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질 거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종종 등장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을 통한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산업 환경이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걸 의미하죠. 이런 4차 산업혁명에 단호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위기에 대응하고 기회를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겁니다.”
대한민국이 IMF 외환 위기를 빠르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IT 혁명의 힘이 컸다.
대대적으로 깔리기 시작한 광케이블과 빠르게 보급된 스마트폰이 결합되어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다.
스마트폰 게임 분야에서 대한민국 게임사들이 보여준 활약상은 대단했다.
초기에는 앵그리 버드 같은 단순한 게임이 흥했다면, 지금은 PC에서 즐겼던 3D 게임들과 MMORPG가 대박 행진 중이었다. 게다가 부분 유료화와 확률형 랜덤 박스 아이템 장사로 게임 개발사들은 패키지 게임을 만들 때보다 수익 모델이 훨씬 건실해졌다.
과도한 확률형 랜덤 박스로 인한 부작용도 크긴 했다.
특히 게임에 몰입한 어린이들은 뒷일 생각하지 않고 마구 결제해버리는 탓에 수천만 원이 청구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대해 안드로이드 사는 어린이들이 무턱대고 지른 유료 아이템의 환불 요청을 몇 번이고 들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부모 동의 없는 미성년자의 계약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논리였다. 게임사들은 아주 싫어했지만, 법리 싸움에서 안드로이드 사를 능가할 수 없었기에 대부분 순응했다. 반면 결제 문제에 있어 칼 같은 애플 쪽으로 집중하는 회사들도 좀 있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모바일에 집중하면서 게임의 그래픽 수준이 너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그렇지만 한국 게임사들의 실적만큼은 매분기 역대급 성적을 갱신 중이다.
이러한 게임사들 뿐만이 아니라, 네트워크와 데이터베이스, 인공지능,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등. IT관련 산업들은 현재 대한민국 경제를 선도하는 성장 동력이었다.
“조만간 놀라운 스마트 기기들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인공지능의 수준도 날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것 역시 기정사실이지요. 이러한 혁신들이 계속되면 산업의 지형도도 순식간에 바뀌게 됩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쓸려가 버릴 만큼 강력한 변화가 올 겁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으면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선도는 과거에도 가능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잘 준비해 놓고도 부스러기만 겨우 주워 먹는 정도에 그쳐야 했다. 제일 큰 덩어리는 강대국의 몫이었던 것이다.
이번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유재원이었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겁니다.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법과 제도의 정비는 필수적일 것이고, 많은 시행착오도 있을 겁니다. 최악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반발도 크겠죠. 하지만 먼저 가지 않으면 도태될 뿐이라는 걸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재원의 말이 끝났다.
조금 전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만찬장에는 깊은 침묵이 자리했다. 유재원의 말에서 엄청나게 급진적인 변화가 예고되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유재원의 성향은 강력한 진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 유재원조차 극심한 변화가 올 거라고 표현했으니, 얼마나 급진적인 변화가 있을지 가히 상상되지 않았다.
“역시, 유 회장님의 탁월한 식견은 명불허전입니다. 새 정부에서도 최선을 다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토록 하겠습니다.”
심지어 정병우 대통령은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유재원의 조언을 바로 받았다.
4차 산업혁명이 현실에서 일어나면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집단은 ID 그룹이지만, 이렇게 말해도 아무런 논란 따위가 생겨나지 않는 건 오직 유재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말뿐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뜯어보고 맛 볼 수 있는 아이템들을 준비했다.
준비된 아이템이 공개될 시점도 그다지 멀지 않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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