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6회
셔먼 액트(Sherman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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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와 마크는 방침이 정해지자 과괌하게 움직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실리콘 밸리에서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1등이 되지 못한 업체들이 모이는 일이 잦아졌다.
그와 함께 ID 그룹이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진행 중인 라이프 리워드라는 의문의 프로젝트에 대한 소문도 퍼지기 시작했다.
보통은 Z코인을 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코인을 뿌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면서 N페이는 모르고 당했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막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러던 와중에 애플의 CEO인 잡스도 참가를 하면서 뭔가 집단행동이 이뤄질 것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잡스의 개인주의는 유명할 정도였다.
독자 규격을 밀고 있는 애플의 정책은 모두 잡스의 편집증적인 성격에서 비롯되었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일이었다.
-실리콘 밸리의 반 ID 그룹에 애플의 잡스 합류!
이런 식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만큼 임팩트 있는 일이었다.
그런 잡스가 합류하자 실리콘 밸리의 움직임은 구체화하였고, 빨라졌다. 또한, 중구난방이었던 매스컴과의 소통도 정리되면서 이들의 입장과 요구 사항도 명백해졌다.
IT 업계 지배자적 위치에 있는 ID 그룹을 향해 페어플레이를 요구했고, 정치권을 향해서도 법률과 같은 실질적인 조치를 요청했다.
비슷한 시각.
-보스, 재미있는 일을 하고 계셨더군요.
“아, 이번 일이 벌써 뉴욕까지 알려졌나 봐요.”
-그럼요! 보스가 하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뉴스의 소재인걸요. 미리 알려주셨으면, 더 큰 판을 깔아 드렸을 텐데, 아쉽습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이라는 세계 최대의 미디어 그룹을 15년이 넘게 이끌고 있는 레밍턴이었다. 레밍턴에게 주어진 직함은 두 개였다. 하나는 ID 그룹의 부회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총회장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회귀 전 받았던 은혜에 대해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레밍턴을 찾았고, 창립 멤버가 되었다.
이후 레밍턴이 보여준 비즈니스적인 수완은 유재원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유재원이 미국서 성공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었고, 회사 조직이 급속도로 팽창할 때 레밍턴의 인맥으로 고급 인력들을 빠르게 수급할 수 있었다.
앨런 사장과 레빈 윌리스 정보팀장 등등. 그때 들어온 멤버들은 아직도 ID 그룹에서 본인들의 실력을 최대치로 발휘하고 있었다.
레밍턴 역시나 넥스트컴과 타임워너라는 이질적인 두 기업이 합병된 거대 조직을 잘 이끌고 있었다.
“워싱턴 분위기는 어때요?”
유재원도 실리콘 밸리의 집단행동을 진작 보고받았다.
겨우 클로즈 베타 테스트 단계로 한국과 미국에 10만 명씩 운영 중이었다. 뿌려진 Z코인도 2천만 개 정도였다.
이런 초기적인 상황에서 실리콘 밸리의 빠른 대응은 확실히 의외이긴 했다. 특히 페이스북의 에두아르도와 마크 두 창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고, 거기에 잡스까지 합류했다는 건 유재원에게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
-음, 아직은 크게 관심을 보이는 의원들은 없습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레밍턴의 말은 유재원을 안심시켜 주었다.
20년째 한결같이 보스 타령을 하는 레밍턴이지만, 비즈니스를 할 때는 진중했다. 게다가 레밍턴의 말과 정보팀의 일일 보고서는 일치했다.
잡스를 필두로 반 ID 그룹의 기치를 내걸고 모인 실리콘 밸리 사람들이 처음으로 집단행동에 나서는 중이었고, 언론들도 핫이슈로 다루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워싱턴의 의원들 중에선 유재원이 예상했던 것처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아직 없었다.
라이프 리워드에 담긴 유재원의 대전략을 간파한 사람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서비스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에두아르도와 마크 같은 녀석은 아예 Z코인을 띄우려고 돈을 뿌리고 있다는 식으로 착각했고, 잡스 정도만 그보다 뭔가 고차원적인 노림수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잡스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레밍턴 역시 라이프 리워드가 무엇인지 정보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이번 기회에 레밍턴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 줬다.
레밍턴과 같은 사람은 전체적인 그림을 알고 있어야 돌발 상황이 생기더라도 최선의 대응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동시에 즉흥적으로 중요한 정책을 실행하고서 이제야 측근들에게 알려주는 본인의 모습에 살짝 부끄럼도 느끼는 유재원이었다.
-그런 초장기 계획이라니. 보스는 대체 얼마나 멀리 보고 있는 건지 저 같은 사람은 짐작도 되지 않는군요. 실리콘 밸리의 애송이들이 펄쩍 뛰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이번 라이프 리워드는 무조건 성공시켜야 한다는 걸요.
“네! 정답입니다. 일단은 클로즈 베타 서비스 중에 나오는 소중한 피드백과 빅데이터를 잘 모아서 완성도도 높이는 게 관건이죠.”
레밍턴은 역시나 유재원의 편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대화의 주제는 최근 무서운 기세로 흥행 중인 드라마였다.
-왕좌의 게임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1화부터 시청 가구수가 500만 명을 넘었는데, 지금은 700만 후반대까지 올랐습니다.
왕좌의 게임을 언급하는 레밍턴의 목소리에서는 자부심이 넘쳤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이 거느리고 있는 유료 케이블 방송 중 하나인 HBO에서 제작되고 있는 판타지 소설 원작의 드라마다.
방송국은 전과 동일했지만, 제작 방식에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쯤 대대적으로 열었던 문과판 밀리언 달러 챌린지를 통해 판권을 얻은 콘텐츠가 100개가 넘는다. 거기에는 당연히 왕좌의 게임도 있었다.
유재원이 얻은 각종 소설과 웹툰의 영상화 작업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는데, 왕좌의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방영 시점만큼은 과거와 같이 2011년에 1시즌을 시작하는 것으로 했다. 대박이란 콘텐츠의 완성도 중요하지만, 방영 시점도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시즌 1화가 방영된 건 올가을부터였다.
촬영은 작년부터 했고, CG에도 잔뜩 힘을 줘서 영화판으로 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퀄리티를 달성했다. 당연히 배우들도 장기 계약을 체결해서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언맨 시리즈만 봐도 1편이 개봉했을 때의 시점과 지금 시점에서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출연료는 차원을 달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재원이 주연들에 대한 팬심 때문에 비싸게 계약했다는 말이 나왔었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왕좌의 게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트장 구축과 시네마틱 CG 비용 여기에 배우들의 장기 출연 계약 덕분에 1편당 제작비가 미국의 평균 드라마 제작비의 3배를 상회했다.
HBO의 드라마 제작 역사상 가장 높은 비용이기도 했다. 그에 따라 HBO와 타임워너에서는 흥행에 대한 걱정도 컸다. 어지간한 흥행으로는 손익 분기점을 넘는 게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레밍턴과 유재원에게도 미칠 수 있었다.
실제로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일부 이사들은 왕좌의 게임이 쫄딱 망하길 바랐다. 유재원과 레밍턴이 잘나가는 게 아니꼽고, 이들이 잘될수록 본인들의 입지가 좁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뚜껑이 열린 지금은?
레밍턴의 말 그대로 대박이 터졌다.
1화 시청 가구수가 500만이면, 한 손에 꼽을 만큼 뜨거운 데뷔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요즘도 우리의 오리지널 시리즈 정책에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후후, 전혀요.
막대한 제작비의 비결은 타임플렉스 오리지널 정책이었다.
돈 보따리를 풀어서 오리지널 콘텐츠로 어마어마한 VOD 라이브러리를 쌓겠다는 전략이었고, 그에 따라 매년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콘텐츠 확보에 쓰이고 있었다.
아쉽게도 왕좌의 게임도 오리지널 정책에 부합하는 콘텐츠였다.
다만 100%는 아니었다.
NBC에서 실시간 방송이 끝난 직후 타임플렉스에 업로드되어 VOD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타임플렉스의 전통적인 오리지널 시리즈 개봉 방식은 한 방에 시즌 전체 편을 업로드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오리지널 정책에 따른 지원금을 100%는 받지 못했다. 그래서 HBO의 경영진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대박이 터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완전히 바뀌었다.
-그나저나 한국에 들어가신다고요?
“네, 이번 겨울도 한국에서 지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해야 할 일도 있었지만, 부모님 때문이기도 했다.
부모님께는 작년 한국에서 혜성이와 지냈던 기억이 워낙 좋았던 모양이었다. 은근히 올해도 한국서 지내는 게 어떻느냐는 말에 유재원과 티파니도 흔쾌히 동의했다.
셰브롱의 오너가 된 티파니였지만, 최고 경영자는 따로 두고 있었기에 한국에 머무는 게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티파니에게도 한국에서의 기억은 좋은 것밖에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고민은 1초도 하지 않았다.
-부럽군요.
“그러면 레밍턴도 같이 갈까요?”
-솔깃한 제안입니다! 당장 고개를 끄덕이고 쉽지만, 저에게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말입니다. 보스 같은 사람은 순식간에 끝낼 일일 테지만,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때그때 처리하지 않으면 일에 치여 죽습니다.
“하하, 설마요.”
-진짭니다. 대신 보스가 없더라도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할 테니, 걱정 마시고 다녀오시길. 아, 실리콘 밸리의 애송이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도 매일 체크해 놓겠습니다.
“네, 레밍턴 덕에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겠네요. 그럼 잘 부탁해요.”
서로 덕담을 주고받은 유재원은 레밍턴과의 화상 미팅을 종료했다. 지금부터는 한국행을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며칠 후.
“아빠! 우리 지금 비행기 타러 가는 거지?”
“그래. 샌프란시스코 국제 공항에서 탈 거야.”
“와! 비행기! 너무 좋아!”
“혜성이는 비행기 타는 게 좋아?”
“응응! 신나!”
공항으로 가는 자동차에서 유재원과 티파니 사이에 앉아 있는 혜성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신이 난 상태였다. 자동차 안에 있는 것만 아니었으면 신남을 표현하기 위해 뽈뽈거리면서 사방을 뛰어다녔을 태세다.
두 달만 지나면 4살인 혜성이의 체력이란 상상 그 이상이었고, 남아도는 체력 덕에 활달하기 그지없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거대한 저택에서 혜성이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유재원도 혜성이와의 좋은 추억들을 쌓기 위해서 짬이 날 때마다 놀아주고 있지만, 그걸로 부족할 정도로 활달했다.
다행히도 요즘 혜성이가 꽂힌 게 있어서, 놀이 시간이 확 줄었다.
로봇 그리고 비행기였다.
보통 지금의 혜성이 나이대가 되는 아이들은 자동차나 공룡과 같은 것에 흥미를 보인다는데, 혜성이가 꽂힌 건 로봇과 비행기였다. 로봇도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멋진 로봇이 아니라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 시리즈를 좋아했다.
의외인 점은 혜성이가 최고로 애정하는 로봇이 아틀라스가 아니라 진돌이라는 점이었다.
처음엔 아틀라스였는데, 매사추세츠에서 폐기되는 걸 보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틀라스는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없었지만, 진돌이는 혜성이가 태어나던 때부터 함께 하고 있었다.
물론 겉모습만 그대로였다. 내부의 기계 장치와 소프트웨어는 꾸준히 업그레이드가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은 애완 로봇이었는데, 지금은 애완 로봇의 차원을 뛰어넘었다.
진돌이 다음으로 혜성이가 좋아하는 로봇은 뜬금없게도 로봇 청소기였다. 로봇 청소기가 알아서 거실과 방을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하는 모습을 디디와 함께 지켜보는 게 혜성이의 일과 중 하나였다. 심지어 청소 중인 로봇 청소기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걸 즐기기까지 했다.
원래는 고양이 디디의 자리였는데, 디디를 밀어내고 본인이 차지했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어서, 로봇 청소기를 좀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고 안전한 의자까지 만들어 줘야 했다.
아틀라스는 로봇 청소기 다음인 3순위 정도일 거다.
그리고 로봇과 비슷한 차원으로 빠진 분야가 비행기였다.
유재원과 가족들이 탄 자동차가 샌프란시스코 국제 공항에 진입하자 혜성이는 티파니 무릎에 앉아서 창문에 바싹 붙었다.
유재원이 있는 쪽보다 티파니의 쪽에서 비행기들이 월등하게 많이 보였으니 말이다.
“747! 777! 와아~! 380!”
혜성이는 눈에 들어오는 비행기의 기종을 일일이 고사리 손으로 찍으면서 와하 하는 감탄을 끊이지 않고 뿜어냈다.
놀랍게도 전부 정답이었다.
누구 닮아서 기억력이 이리 좋을까.
혜성이의 호들갑을 보고 있던 유재원은 문뜩 티파니가 말이 없다는 걸 인지했다.
“응? 무슨 일 있어?”
티파니는 무척이나 떨리는 눈빛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인지라 유재원까지도 불안해졌다.
“티파니?”
“외할아버지가 위독하시대.”
티파니의 말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유재원도 순간 말문이 막혀 뭐라고 대답하지 못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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