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06화 (906/1,007)

882회

흥망성쇠(Rise and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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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전 세계가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떠들썩해졌다.

당연하게도 일단 작동 클럭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12Ghz라고 찍힌 스크린 샷이 빠르게 퍼졌고, 20.55라는 벤치마크 점수나 각종 게임의 벤치마크 결과가 광범위하게 공개되었다. 기존의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찍을 수 없는 수치였다.

오죽하면 19대 총선 선거 운동이 한창인 대한민국에서는 다이아몬드 열풍이 불었다.

물론 가장 열심히 기술을 홍보하는 건 통일국민당이었다.

통일국민당의 창당 발기인이기도 했고, 통일국민당의 첫 선거에서 광고도 찍어 주었던 유재원이다.

지금도 통일국민당과는 긴밀한 관계였다.

그렇기에 통일국민당은 마치 유재원의 성취가 본인들의 성취이자 대한민국의 성취라는 식으로 포장을 했는데, 그게 또 매우 잘 먹혔다.

통일국민당은 이 기세를 그대로 투표일까지 끌고갈 욕심에 지지 연설을 한 번만 해 주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정병우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통일국민당의 의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국정을 이끌어 나가는 데 훨씬 수월해지니 말이다.

유재원도 거기에 응해 주고 싶었지만, 본인과 식구들의 출국이 몇 시간 후였다.

한국에서의 겨울나기도 완벽했고 다이아몬드 반도체 제조 성공으로 본래의 목적도 충실히 수행했다.

반도체 생산 라인을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전환하고 양산 체제를 갖추는 건 유재원보다 훨씬 잘하는 이들이 ID 일렉트로닉스에 많이 있다. 후속 작업은 이들에게 맡기고 유재원과 가족들은 이제 미국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출국 일정은 하루 전에 공지 된 상태다.

티파니와 혜성이도 어제부터 부산스럽게 캐리어를 꾸리고 선물을 산다고 난리였다. 이와는 반대로 늘 몸만 움직이면 되는 유재원이었기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중이었다.

자투리 시간도 알뜰하게 사용하는 유재원은 그 몇 시간도 낭비하기 싫어서 본인이 제일 잘하는 프로그래밍을 하는 중이었다.

“음, 역시 컴퓨터 그래픽은 옵션 하나만으로 확 달라진다니까.”

그중에서도 컴퓨터 그래픽 관련한 프로그래밍을 하는 중이었다.

바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전용 그래픽 라이브러리인 글라이드 X의 최신 개발자 빌드를 손보고 있었다.

새로운 컴퓨터 그래픽 함수를 추가 중이었는데, 그 결과가 지금 막 모니터에 나오는 중이었다.

글로벌 일루미네이션이라는 그래픽 함수였다.

컴퓨터 그래픽에서 빛을 표현하기 위한 계산 방식이다. 광원에서 나오는 직접광과 화면 속 오브젝트의 재질과 물체의 형태, 벽 등에서 반사되는 간접광까지 모두 계산하여 사실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만들 수 있다.

보통은 글로벌 일루미네이션보다는 레이 트레이싱을 더 많이 선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빛 입자 하나하나를 모두 계산하는 데 필요한 연산량을 감당할 만한 건 슈퍼컴퓨터 정도는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레이 트레이싱은 글로벌 일루미네이션에서 파생된 기술로 필요한 연산력을 줄이기 위해 빛 처리 방식이 간소화되었다.. 추적되는 빛의 특성이나 오브젝트에 반사되는 빛을 계산할 때 들이는 정교함이 많이 축약되었다.

빛 입자 수와 반사 품질 계산의 정교함이 떨어지면 화면에는 뿌연 노이즈가 낀 것처럼 변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무지막지한 연산량으로 인해서 버벅거리기 쉽다.

그렇기에 고수준의 글로벌 일루미네이션은 영화에서 사용하고 레이 트레이싱은 게임에서 편법으로 구현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간소화 했음에도 아직 레이 트레이싱을 제대로 지원하는 게임은 없었고, GPU 제조사가 뿌리는 기술자랑 유튜브 영상이나 벤치마크 프로그램에서만 돌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그런 편법은 끝이다.

유재원의 모니터에 떠 있는 건 2077년 미래의 가상 도시였다.

사이버펑크스럽게 LED와 홀로그램, 유리로 범벅이 되어 있는 도시가 멋들어지게 비춰지고 있다.

완벽한 글로벌 일루미네이션으로 유리 궁전 스타일의 빌딩을 서로 비추었고, LED와 홀로그램이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이제야 좀 볼만하네.”

그간 유재원이 인공지능이나 인터넷 서비스 등에 프로그래밍 능력을 집중하고, 컴퓨터 그래픽 쪽으로는 글라이드 X의 초기 버전 말고는 손을 대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재원의 심미안으로는 현존 최고의 그래픽이라는 배틀필드 3도 딱히 대단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그래픽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보다 수준 높이 업그레이드시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재원이라고 해도 정해진 연산 능력 이상의 퍼포먼스를 끌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래픽 쪽은 글라이드 X 초기 버전을 만들 때 말고는 손을 놔 버렸다. 그런 유재원이 지금 다시 컴퓨터 그래픽 관련한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었다.

화면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던 유재원은 마우스를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화면의 각도가 변하면서 미래 도시의 새로운 면을 드러냈다. 대신 초당 10프레임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기에 화면이 마치 파도가 치는 것처럼 물결이 쳤다.

“역시 다이아몬드 반도체라도 최적화는 필수겠네.”

제어 패널을 열고 몇 가지 옵션을 조절했다. 빛의 반사를 몇 차례나 추적하는지 설정하는 것도 바꾸었다.

세팅을 바꾼 후, 마우스를 움직이자 훨씬 부드러워졌다. 화면에 찍힌 프레임은 33프레임이었으니, 적어도 게임용으로는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소스 코드와 다양한 테크닉적인 최적화를 한다면 이 화질 그대로 60프레임대의 출력도 가능할 법했다.

모두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힘이었다.

XD-M11 칩에 GPU도 ATI의 라데온 HD6000 아키텍처를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뽑아낸 칩을 썼고, 메모리와 그래픽 카드 메모리 역시 다이아몬드 공정의 칩을 썼다.

CPU와 램, GPU를 모두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사용하자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가 나왔다. FHD 해상도에서 글로벌 일루미네이션을 걸어도 초당 60프레임으로 뽑아낼 수 있을 만큼의 막강한 성능을 달성한 것이다.

슈퍼컴퓨터가 있는 실험실이나 CG 관련 일을 하는 스튜디오에서나 가능한 일을 이제는 가정집 컴퓨터로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당장 출시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게 아쉽네.”

늘 시간이 문제였다.

ID 일렉트로닉스의 모든 반도체 생산 라인을 다이아몬드 반도체 생산 라인으로 바꾸는 데엔 최소 1년이 넘게 걸린다. 일반인의 경우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탑재된 컴퓨터 제품을 쓰기 위해서는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올해 8월 IDDC에서 다이아몬드 반도체 제품들을 선보이겠다고 했던 건 허풍이었느냐?

당연히 아니다.

실험실 생산 라인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말이 실험실 라인이지, 정규 생산 라인 1개와 똑같은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실험실 라인을 열심히 돌리면 월간 10만 장 분량의 웨이퍼를 찍어낼 수 있다. 웨이퍼 1개에서 대략 10~20개의 칩을 얻을 수 있다.

양산의 ID 일렉트로닉스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수율이 너무나 처참한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리콘 반도체였다면 300개 정도는 나오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겨우 리스크 생산 중인 다이아몬드 반도체에 2나노미터 미세공정이라는 걸 고려하면 상당히 준수한 숫자였다.

이렇게 생산된 AP를 3달 정도 모으면 450만 개 정도 되는데, 이 제품들을 퓨처액세스라는 정책으로 한정판처럼 판매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실리콘 반도체가 탑재된 일반형 제품과는 가격에서 크나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3배는 높게 책정해 놓았다.

이래도 될까 싶었는데, 시장 조사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완판은 물론이고 구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웃돈이 붙어서 거래될 거라고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글로벌 일루미네이션이 적용된 게임을 돌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제품과는 완벽히 차별화를 보여 줄 수 있는 요소였다.

“좋아.”

유재원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작업이 끝난 글라이드 X용 글로벌 일루미네이션 소스 코드를 각종 예제와 함께 회사 서버에 업로드했다.

안드로이드사는 물론이고 ID 소프트웨어와도 공유되는 서버였다. 미국은 지금 한창 일과 시간이니 제임스나 존이 유재원의 업데이트를 확인하면 바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띵!

ID톡 알람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역시!”

유재원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화면을 확인한 유재원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

예상했던 제임스나 존의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CIA의 존 맥마흔 국장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의 등장이었다. 게다가 존 맥마흔 국장은 ID톡의 프라이빗 화상 통화를 요청하고 있었다.

유재원은 바로 연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연결 중으로 바뀌었다.

존 맥마흔 국장과는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CIA의 프리즘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기도 했고, 몇 가지 안보 관련 사안에서 협조하기도 했던 일이 있었다. 최근에는 작년 유재원의 청문회에서 유재원에게 도움이 되는 보고서도 올리고, 직접 의원들을 만나서 의견을 전해 주기도 했다.

사적인 대화를 나눈 시간이 짧긴 해도 미국 수뇌부에서 유재원에게 매우 호의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곧이어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맥마흔 국장의 모습이 스마트폰에 떴다.

-오랜만입니다, 유 회장님.

“안녕하세요, 맥마흔 국장님.”

-최근 거하게 한 건 하셨더군요. 역시나 유 회장님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보여 주시는군요.

“아! 국장님도 봐 주셨군요.”

-당연한 말씀을. 회장님께서 청문회에서 리미트를 풀겠다고 할 때 기대하긴 했는데, 다이아몬드 반도체라니, 저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맥마흔 국장은 과학기술국 출신 아니랄까 봐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바로 언급했다.

“여러모로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이죠.”

유재원이 말한 도움이란 기술적 도움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을 꺼내 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줬다는 것을 의미했다.

반도체 기술 발전 동향에 상관없이 뜬금없이 등장한 다이아몬드 반도체였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의구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방송된 청문회에서 유재원은 분명 차원이 다른 뭔가를 보여 주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이아몬드 반도체 때문에 전화 주신 건 아니죠?”

-물론입니다. 회장님의 신변에 조금 우려되는 일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신변 우려?

존 맥마흔 국장이 전하는 정보는 국제 무기 암시장에서 미사일과 RPG-7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는 첩보였다.

국제 무기 암시장이라니. 게다가 RPG-7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미사일이 거래되었다는 건 대단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패트리어트나 S-400과 같은 대형 지대공 미사일은 아니고 제식명 AGM-114, 보통은 헬파이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사일이었다. 처음엔 대전차미사일로 개발되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변형이 출시되었다. 최근에는 대 드론용 버전까지도 나왔다는 소식도 있었다.

국제 무기 암시장에서 무기들이 거래되는 게 하루 이틀 있는 일은 아니었다. 소련이 붕괴될 때는 핵물질까지도 암시장에 나왔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헬파이어 미사일도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충반하다.

그런데 이러한 거래 정보를 존 맥마흔 국장이 유재원에게 직접 알려 준다는 건 딱 하나를 의미했다.

“이게 저를 향하고 있다는 건가요?”

-아직 확실한 단계는 아닙니다. 하지만 테오도르 루스벨트 다리 사건의 경우도 있고 하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존 맥마흔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비를 철저히 했다지만 헬파이어 미사일까지 막아내는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티파니도 이제는 배가 많이 나온 상태인지라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아예 둘째는 그냥 한국에서 출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현재 CIA는 매케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유 회장님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가용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추적 중이고, 록펠러에 대한 모니터링도 최고 단계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긴 안전하다는 거죠?”

-네!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은 안전합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미국의 파이브 아이즈 일원으로서 이러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 중입니다. 그에 따른 경호 조치의 상향도 확인되었습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최고 수준의 경호를 받고 있는 유재원이었다.

아무래도 록펠러 가문과의 싸움에 마침표가 찍힐 때까지는 이러한 상태가 계속될 것 같았다.

“하긴, 19세기부터 끗발 날렸던 가문의 숨통을 끊는 일인데, 반항은 당연한 거겠죠.”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유 회장님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후 유재원은 존 맥마흔 국장과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스펙이나 발매 일정 등에 대해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곤 곧장 티파니에게 연락해 지금의 상황을 알렸다. 미사일이라는 이야기에 티파니도 출국 일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대신 혜성이가 난리였다. 비행기를 타기로 했는데, 그게 미뤄졌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덕분에 유재원은 비행은 못 하더라고 혜성이를 데리고 전용기에 올라 실컷 구경하기로 약속을 해야 했다. 다음으로 김대석 비서실장에게 미국행의 무기한 연기를 전했다.

필요한 조치를 하고 보니, 이제 남는 건 시간이었다.

유재원은 기왕 이렇게 된 거 글라이드 X에 차세대 컴퓨터 그래픽 관련 기술이나 추가하자는 생각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띵!

-마스터, 유럽에서 긴급 속보입니다.

-SNS로 차량 호송 중이던 클라크 록펠러가 큰 사고에 휘말린 사진이 떴습니다.

하지만 다급히 터진 인공지능 골드의 긴급 메시지에 유재원은 텔레비전을 켜야 했다.

클라크 록펠러가 사고에 휘말렸다니.

뭔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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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2020년도 이제 딱 하루 남았네요.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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