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4회
흥망성쇠(Rise and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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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21세기판 예수의 부활인가 싶어 알아봤더니, 역시나 가짜였지 뭔가. 애초에 죽지도 않았던 사기꾼이었던 거지.
역시나 푸틴 총리는 누구나 알아들 수 있는 직설적인 비유로 클라크 록펠러의 행방을 찾았다는 말을 전했다.
-레고르 오노프코라는 작자일세.
그러면서 유재원에게 파일 하나를 전해줬다.
출생부터 대학 졸업까지. 클라크 록펠러와는 완벽한 별개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파일에 첨부된 러시아 여권 사진에 박혀 있는 건 클라크 록펠러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불과 10분 전에 잡힌 CCTV의 영상에도 헤어스타일이 다른 클라크 록펠러의 얼굴이 있었다.
-혹시 사기꾼에 대한 조치를 원한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네. 친구를 위해서 말이야.
친구를 위해서라는 말에 감흥은 딱히 일어나지 않는 유재원이었다.
국제 사회에서 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그냥 본인과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냉혹한 힘의 세계였다.
“정권 인수에 바쁘실 텐데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후후, 유 회장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이번에도 또 한 건 크게 터트리지 않았나? 청문회에서 했던 말을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지키는 걸 보고 역시 사나이다 싶었지.
푸틴 역시 힘의 논리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3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푸틴은 63.6%라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승리했다. 취임식은 5월이었는데,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앞으로도 계속 재선에 재선을 거듭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유재원이다.
21세기의 러시아의 짜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푸틴이 유재원을 직접 챙겼다. ID 그룹과 셰브롱이 러시아에서 벌이는 협력 사업도 상당했지만, 역시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큰 이유였다.
앞으로의 IT 분야는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얼마나 공급받는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걸 푸틴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게도 다 생각이 있어요.”
-흠? 알겠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게. 유 회장의 전화는 자다가도 일어나 받을 테니까.
“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푸틴과 통화를 마친 유재원은 레고르 오노프코라는 신분으로 위장한 클라크 록펠러에 대해 빠르게 조사했다.
친절한 푸틴은 레고르 오노프코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 번호까지 첨부해 놓았기에, 유재원은 서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었다.
“근데 하필이면 세컨드 캐릭터로 러시아인를 선택했지?”
클라크 록펠러가 러시아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의 첩보 기관 CIA가 프랑스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CIA가 제일 껄끄러워하는 국적인 러시아를 선택했을 뿐이다. 유재원이 푸틴과 얼마나 각별한 사이인지 몰랐던 것도 실수였다.
또한, 프랑스에도 러시아의 첩보원들이 CIA에 비견될 만큼 많이 깔려 있었고, 이번 클라크 록펠러 사망 위장 사건만큼은 CIA와 합동으로 수색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것도 큰 실수였다.
유재원은 곧장 휴대전화 번호를 통해 현재의 위치를 확인했고, 근처의 CCTV를 통해서 클라크 록펠러의 현재 근거지도 확인했다.
또한, 휴대전화를 통한 스마트폰 해킹도 시작했다.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 11이었지만, 유재원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유재원이 먼저 파고들어 간 건 유럽의 통신사인 보다폰 서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폰 자체 보안 시스템은 강력했지만, 통신사의 서버와 애플의 서버는 보통의 인터넷 서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돌아가면 그만이다.
“빙고.”
보다폰의 서버 시스템도 나름 보안 체계를 갖춰 놓았지만, 유재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주 쉽게 빗장이 열렸고, 전화번호를 바탕으로 통신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실제로 해당 번호는 클라크 록펠러가 지하도 교통사고로 사망한 직후에 재개통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통신량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도 제법 있었다.
애플의 자체적인 i메시지로 문자를 주고받으면 암호화되어서 풀기가 어려웠을 텐데, 그냥 통신사 SMS 시스템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들이 있었다.
일반 메시지만 봐도 클라크 록펠러인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록펠러 가문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이런저런 소지품을 가져오라는 명령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i메시지로 주고받은 분량은 일반 메시지보다 훨씬 많았다. 거기에 무슨 말이 있는지 궁금해진 유재원이었다.
맥마흔 국장이 전해줬던 국제 무기 암시장에서 거래되었다는 헬파이어 미사일이 클라크 록펠러의 주문이었는지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물론 유재원에게는 i메시지를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애플의 모든 사용자 데이터는 i클라우드라는 클라우드 시스템에 의해 통합 관리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대한 취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아주 쉽게 i클라우드에서 레고르 오노프코의 계정에 접속했고, 거기에서 i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메시지도 바로 검색되었다.
-미사일은?
=잘 있습니다. 문제는 놈이 예정일에 오지 않아서 창고신세지만요.
-우리 계획이 샌 건가? 미카엘. 자네 생각은 뭐지?
=솔직히 반반입니다. 타깃은 서울에 그대로 말뚝을 박고 움직이지 않고 있는 탓에 추가적인 정보 획득도 힘듭니다.
=서울의 그 화려한 펜트하우스에 냅다 쏴 버릴까요?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 누군가의 질문에 클라크 록펠러의 답은 아직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도 존 맥마흔 국장의 말 그대로 암시장에 나온 그 미사일을 유재원을 향해 쏠 계획으로 클라크 록펠러가 샀다는 건 사실로 확정됐다.
심지어 한국도 이미 반입이 된 모양인지 펜트하우스에도 쏘자고 한다.
“그럼 나도 진행해야겠군.”
여기까지 확인한 유재원은 미련 없이 모든 인터넷 브라우저를 닫았다. 그러고는 텔넷이라는 엄청난 구식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WWW가 아니라 문자로만 가득한 옛 시절 BBS에 접속할 때나 소수의 전문가들이 텍스트 명령으로 시스템 제어를 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가벼운 프로그램이라서 아이콘이 클릭되자마자 화면에 검은색 터미널 창이 떴다. 거기에서 유재원은 설정으로 들어가 프록시를 정성 들여 입력했다.
일부 사설 BBS는 미리 설정한 프록시 값이 일치하지 않으면 접속조차 되지 않는데, 지금 유재원이 접속하려는 곳도 그런 사설 BBS였다.
이 밖에도 몇 가지 설정들이 더 있었고, 유재원은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서 정확한 설정인지 확인하고서야 특정 주소로 접속 명령을 실행했다.
그러자 검은색 화면에 변화가 생겼다.
그 옛날 2400bps 모뎀으로 케텔에 접속했을 때처럼 텍스트와 아스키코드로 만들어진 로그인 화면이 한 줄 한 줄 그려졌다.
아스키코드가 만들어낸 글자는 트레드스톤.
트레드스톤 BBS였다.
언뜻 보면 아직도 꾸역꾸역 운영되는 사설 BBS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무서운 것이었다.
CIA의 비밀 계획 중 하나로 유럽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암살 조직이었다.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요원들에게 살인 지령을 내리면, 철저하게 훈련된 요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살인 지령을 실행하는 형태였다.
CIA의 비밀 암살 조직이라면 존 맥마흔 국장에게 직접 부탁하는 게 정답이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존 맥마흔 국장도 트레드스톤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정확하게는 2000년대 초에 폐기된 프로젝트였다. 게다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도 CIA의 비밀 부서에서 몇 사람만 아는 형태로 조용히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모종의 사고로 프로젝트는 폐기되었다.
문제는 폐기 과정이 다급하게 이뤄진 탓에 모든 흔적들을 다 지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트레드스톤 요원들과 접선하는 사설 BBS도 살아 있고, 결정적으로 사설 BBS로부터 지령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요원들도 남아 있었다.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면 원대로 복귀해야 하는데, 이들에 대한 정보는 죄다 폐기된 상태다. 게다가 중간 관리자는 작전 중 사망해서 이들이 현장에 남아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결이 끊기면 요원들은 이상하다 생각하며 본인이 직접 CIA와 연락을 시도해 볼 수도 있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독한 세뇌가 이뤄졌기에 지령으로 뭔가 지시를 받지 못하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러한 비밀들은 구글과 거대 자본가들의 충돌 막판에 드러났다.
강인공지능 골든실버의 공세로 벼랑 끝에 몰린 거대 자본가에서 특단의 대책이랍시고 잠들어 있던 트레드스톤을 깨웠던 것이다.
이번엔 거꾸로 트레드스톤이 클라크를 향할 때인 것이다.
“음, 임무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계약은 완수라고 하면 되려나?”
유재원은 지령을 작성하면서 ‘계약 완수’라는 단어를 넣는 것에 고민했다.
애국을 위해 트레드스톤 프로젝트에 자원했다가 연이 끊어진 신세가 된 요원들의 처지도 너무나 안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약 완수라고 해 놓아도 수십 년을 대기할 만큼 강력한 세뇌가 된 요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지는 미지수였다.
몇 분간 고민하던 유재원은 계약 완수라는 단어를 지우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퇴직금이란 단어와 함께 100만 유로가 든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의 인증번호도 추가해 넣은 다음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한 시간 뒤.
레고르 오노프코로 위장한 클라크가 있는 안가를 비추고 있던 길거리 CCTV에 변화가 생겼다.
30대 초반의 평범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담벼락 근처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클라크가 숨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에 들어갔던 남자는 5분 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에 들어갔을 때와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 건물을 비추고 있던 CCTV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CCTV를 똑바로 한 번 보았다.
3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분명 CCTV 렌즈를 정확히 보았다. 그러곤 처음 등장했던 그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어디서 왔는지 보기 위해 바로 CCTV를 전환했지만, 파리 시내의 번잡한 환경은 이름도 모를 요원을 유령처럼 사라지도록 도와주는 데 완벽한 환경이었다.
“후우.”
조마조마하게 CCTV를 보고 있었던 유재원은 그제야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곤 곧장 CIA의 맥마흔 국장에게 ID톡을 보냈다.
푸틴 총리가 보내주었던 클라크 록펠러의 단서였다.
-확인하겠습니다.
짧은 답신이 왔다.
그러고서 10분쯤 후에 검은색 승합차가 문제의 건물이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부진 체격의 사람들이 내렸고, 의심 건물에 대한 진압 작전이 시작되었다.
건물로 들어가는 전기를 차단하더니, 문을 박차고 안으로 진입했다. 슥 들어가서 슥 하고 나온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 트레드스톤 요원과 달리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검게 변한 건물 안에서 번쩍거리는 섬광도 터졌다.
그야말로 야단법석한 상황이다.
지켜보는 유재원이 오히려 우방인 프랑스에서 이렇게 막 나가도 되나 싶을 만큼 과격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존 맥마흔 국장으로부터 ID톡이 왔다.
-레고르 오노프코 사망 확인.
-대원들 진입 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음. 자살로 보임.
역시 트레드스톤 요원의 전설은 사실이었다.
-레고르 오노프코의 스마트폰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반입된 미사일에 대한 단서 확인. 추적 중.
꼼꼼한 맥마흔 국장은 헬파이어 미사일에 대한 추적 상황도 직접 말해 줬다.
록펠러와의 악연은 이것으로 끝이면 참 좋겠다 생각하며 유재원은 존 맥마흔 국장과의 ID톡을 마무리했다.
유재원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이후 별다른 사건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남아 있던 가장 큰 위험요소였던 헬파이어 미사일도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일망타진되었다. 뉴스에 났다면 대단히 크게 보도될 일이었지만, 뉴스화는 되지 않고 첩보의 세계에서 조용히 마무리지어졌다.
덕분에 2012년 8월 1일/
유재원과 가족은 오랜만에 미국행 전용기에 오를 수 있었다. 작년에 한국에 올 때는 3명이었는데, 갈 때는 4명이다.
티파니의 출산은 아무런 탈도 없이 이뤄졌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유라희가 유재원의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거침없이 달려온 유재원에게 남은 건 8월 IDDC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IDDC의 존재감은 매년 새롭게 갱신되었지만, 이번에 집중되는 관심도는 진짜 역대급이었다. 물론 관심의 대부분은 다이아몬드 반도체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재원은 IDDC를 단순한 다이아몬드 반도체 발표회장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훗날 역사가들이 시대를 되돌아볼 때,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시작점으로 기억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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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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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네요!
독자님 모두가 평안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