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3회
인공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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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ZDF 아침 뉴스입니다.
-오늘 첫 번째 뉴스는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글로벌 IT 기업 ID 그룹 회장 유재원이 세종시를 방문했는데, 그 이유가 시티OS의 오류 보고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정확히는 대기질 센서에서 이상 수치 데이터의 보고 때문이라는데요, 그 때문에 세종시에서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유 회장은 대기질 이상 수치의 원인을 휘발유나 경유차에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배기가스 정밀 진단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풉!”
평온한 보통의 아침 루틴대로 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던 사내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기침 때문에 입안에 든 걸 뿜었다.
어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유재원의 뉴스였고, 독일에서도 어젯밤부터 시작되어 오늘 아침에도 한 꼭지로 전해지고 있는 뉴스였다.
역시나 독일의 뉴스도 시티OS의 오류에 중점을 두고 보도되었다. 그렇지만 밥을 먹다 뿜게 된 이 남자에게는 아니었다.
제일 마지막에 나온 배기가스 정밀 진단 소리에 엄청나게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남자의 직업은 폭스바겐의 수석 ECU 프로그래머였다. 자동차의 모든 동작을 제어하는 ECU의 소스 코드를 직접 다룰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의 뉴스는 그의 입장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는 몇 년 전 폭스바겐 경영진의 은밀한 지시에 배기가스 필터 제어 프로그래밍을 ECU에 추가한 사람이 본인이었으니 말이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일을 했던 터라 저녁 뉴스에는 확인을 못 했고, 이제야 뉴스를 본 그는 식은땀이 줄줄 났다.
그때 그의 스마트폰에서 띵하는 소리가 났다. ID톡이이었다.
-로버트 수석님! 지금 뉴스 보셨습니까?
발신자는 그가 함께 특정 시나리오 상황에서 필터를 작동시키는 ECU 비밀 패치를 만들었던 팀원이었다.
“그래. 나도 보았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팀원의 물음에 순간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겨우 나온 생각은 이것이었다.
“회사에서 지침을 주겠지. 좀 기다려 보세.”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로버트의 답신과는 달리 출근 시간이 다 되어도 회사에서 딱히 뭐라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사에 출근을 하는 로버트였다.
회사 직원들은 평소처럼 로버트 수석을 대했다. ECU 패치 작업은 말 그대로 비밀이었기에, 경영진과 로버트 본인을 포함한 3인의 프로그래머만 관여했다. 그렇기에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도 보도된 유재원 뉴스를 그저 해외의 특이한 뉴스를 봤다고만 여겼다.
-로버트 수석님, 뮐러 CEO의 호출입니다.
로버트가 본인의 데스크에 앉아 인트라넷에 접속하자마자 수뇌부의 호출이 들어왔다. 역시 수뇌부도 그 뉴스를 봤던 모양이다.
로버트 수석 프로그래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쯤 뒤.
“완전히 망했군.”
수뇌부와의 회동을 마치고 본인의 자리로 돌아온 로버트 양은 나직하게 망했다는 소릴 내뱉었다.
한 시간쯤 전 뮐러 CEO에게 불려 갔던 로버트는 거기에서 패닉에 빠진 경영진들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나 빨리 꼬리가 잡힐 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폭스바겐 AG가 제2의 도요타가 될 거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로버트를 불러다가 하는 말도 배기가스 정밀 검사에서 뭔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길 바랐던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로버트는 확신의 말을 하진 못했다.
로버트는 유재원이 이렇게 대놓고 액션을 취할 정도면 볼장은 다 봤다고 확신했다. 더욱이 로버트는 경영진이 필터 기술을 연구하는 대신 ECU를 조작하는 꼼수를 선택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그때 왜 더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아니, 하나 있으려나?”
로버트 양은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지만, 완전히 손을 놓아 버린 건 아니었다.
-우리가 내린 지시나 자네들의 작업물은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폐기하게.
뮐러 CEO로부터 받은 지시였다.
작업물을 폐기하라는 건 할 수 있는데, 지시 사항도 폐기하라니.
포커페이스가 기본인 뮐러 CEO였기에 그 속에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로버트 양의 마음속에서는 스멀스멀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다.
만약 뮐러 CEO가 희생양으로 ECU의 소스 코드 작업을 했던 본인과 직원 둘을 점찍었다면?
그렇게 되면 관련 작업물을 폐기한 본인은 증거 인멸 혐의가 씌워지는 것이었다.
디지털의 세계에서는 한 번 생성된 데이터를 완벽하고 깔끔하게 지울 수가 없다. 소프트웨어적으로 지웠다고 해도 하드웨어 차원에서 얼마든지 복구가 가능했다. 설사 여러 번 오버라이트를 해서 원본 파일을 감춘다고는 해도, 지웠다는 흔적 자체는 남게 된다.
뮐러 CEO의 지시를 녹음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개인용 스마트 기기는 반입이 철저히 금지된 터라 뭘 해 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정확하게 그걸 지우라고 지시받은 것도 아니었고, 독일인답지 않게 이리저리 돌리는 말로 꾸며진 간접지시였다.
아무래도 보험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로버트 양은 뮐러 CEO로부터 받은 관리자 권한을 통해 폐기 작업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다른 작업도 시작했다.
이틀 후.
“시장님!”
세종시의 이재관 시장을 다급히 부르며 시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노크도 없었다.
“아침부터 왜 이리 호들갑인가.”
이재관 시장의 수행비서였다.
“이거, 이것 좀 보십시오!”
수행비서의 손에 들린 건 A4 종이 한 장이었다. 영어가 반이었고, 그래프가 반이었다. 영어는 질소 화합물부터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각종 중금속의 이름과 수치들이 적혀 있었고, 하단의 꺾은선 그래프는 이러한 수치를 시각화한 것이었다.
꺾은선 그래프는 굵은 선과 얇은 점선으로 2개였는데, 얇은 점선은 가로로 뻗어 나가는 x축과 딱 붙어 있었고, 굵은 선으로 그려진 선은 하늘 높이 떠 있었다. 심지어 높이를 보여주는 y축에는 숫자의 단위가 한 번 뛰었다는 생략 기호도 있었다.
바로 배기가스 포집 장치에 모인 배기가스를 검사해서 나온 수치였다.
“그러면 범인은 그 외제차란 말인가?”
“음, 그것이…….”
대뜸 범인을 물어보는 이재관 시장의 질문에 수행비서가 바로 답하진 못했다. 대신 수행비서는 함께 들고 왔던 서류철에서 새로운 보고서를 꺼냈다.
처음 보여준 게 폭스바겐 골프 차량의 보고서였다면, 이번에는 아우디 A4의 검사 보고서였다. 아우디도 비슷한 형태의 그래프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미래자동차도 포집 장치 검사에서 폭스바겐만큼은 아니어도 기준치를 상회하는 오염 물질이 나왔다.
“하여튼, 결과를 보면 유 회장님의 지적이 정확하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유 회장께는 알려드렸나?”
“아닙니다. 시장님께 제일 먼저 보고드리는 겁니다.”
“어허, 유 회장님이 제일 궁금해하고 계실 텐데 어서 알려드리게.”
“네!”
“아니, 아예 내가 직접 전화를 해야겠군.”
이재관 시장에겐 그저 유재원이 최우선이었다. 수행비서는 미래자동차까지도 정밀 검사에서 기준치를 넘겼다는 것을 우려했지만, 이재관 시장은 그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움직였다.
이재관 시장은 바로 전화기를 들었고, 유재원이 직접 전해준 명함을 보란 듯 꺼내고서는 전화번호를 신중히 눌렀다. 그리곤 한 번 크게 심호흡하고는 통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띵~!
-마스터, 세종시 이재관 시장의 전화 연결 요청입니다.
“잠깐만요. 중요한 전화라서 잠깐 받고 오겠습니다. 이야기는 계속하세요.”
유재원은 인공지능 골드의 메시지에 회의를 잠깐 멈췄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네, 유재원입니다.”
-회장님! 이재관입니다. 포집 장치로 확보한 배기가스 분석이 나와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많이 바쁘신지요?
바쁘긴 했다.
지금 유재원이 있는 곳은 대전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사업부 본부 대회의실이었고, 리사와 짐 켈러 그리고 AMD의 주요 임원들을 모아두고 차세대 CPU 생산 전략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재관 시장의 일도 이와 동급 수준의 문제였다.
“괜찮습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회장님이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범인은 자동차 배기가스였습니다. 검사소에서는 정상이었는데, 실제 운행을 하면서 배출되는 배기가스는 기준치의 40배를 넘겼습니다!
“시티OS의 센서 오류 문제는 해결된 것이로군요.”
-그럼요! 오해로 일을 키운 것 죄송합니다.
일단 유재원은 시티OS의 누명을 벗겼다.
“바로 인정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한 일이죠.”
-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건 배기가스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국토 교통부가 직접 움직여서 배기가스 검사를 해 보고, 어째서 검사소와 실제 운행 중 발생하는 배기가스의 오염도가 다른지도 확실히 파악해 봐야 합니다.
역시 이재권 시장은 세종시의 초대 시장이 될 만한 능력이 있었다.
유재원이 세종시 시청을 방문한 이유가 시티OS의 오류를 직접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배기가스 문제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으니까.
“네, 그렇지 않아도 미세먼지가 큰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거기에 깨끗하다고 안심했던 클린디젤이 조작으로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게 알려지면 큰 화제가 될 겁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일단 바로 기자회견을 열어서 관련 사실을 공표하겠습니다. 검찰에도 정식으로 고소를 진행하겠습니다.
유재원의 확답이 떨어지자 이재권 시장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유재원 라인을 탄다는 건 성공으로 가는 초고속 열차였다.
초대 공수처장이었던 김창완 판사, 현직 대통령인 정병우 그리고 여당인 통일국민당의 의원들 모두 그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민주당 당적을 가진 이재관이었지만, 유재원 회장의 눈에만 든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세종시 이재관 시장 긴급 기자회견.
-대기질 데이터가 튀어오르는 것, 시티OS 오류 아니야.
-범인은 배기 기관이 있는 디젤 자동차. 가솔린 자동차도 기준치 이상 매연 발생 확인.
-검사소 정밀 검사에서는 기준치 충족하지만, 시내 주행 중에는 기준치의 40배 이상의 오염 물질 발생.
-검찰에 정식 고소 검토.
행동력 넘치는 이재관 시장은 유재원에게 장담했던 그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시티OS의 오류가 아니라, 엄청나게 정교하고 정밀한 센서 덕에 교묘한 수법으로 소비자와 정부를 속였던 자동차 회사들의 비리를 밝혀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티OS 문제가 세계적 뉴스로 비화된 게 얼마 전이었다.
관련 소식은 즉각적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이재관 시장은 자료 화면까지 철저히 준비했다.
배기가스 포집기를 달고 주행 중인 자동차들과 이들이 검사소로 돌아와 정밀 측정을 시작하는 모습도 잘 담겨 있었다.
거기에는 미래자동차의 로고도 있었지만,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마크를 제일 가깝게 촬영한 구도의 영상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범인은 폭스바겐이었다. 심지어 아우디도 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자동차 회사다.
이때가 한국 시간으로 오후 4시였고, 독일은 아침 8시였다.
독일은 난리가 났다. 1시간 후, 독일의 주식시장이 열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전 세계인들은 폭스바겐 그룹이 배기가스 시스템에 뭔가 장난을 쳤다는 걸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식시장이 열리자 폭스바겐 그룹의 주가가 전날 대비 수직으로 하락한 가격으로 거래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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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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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네요!
즐겁게 보내시고, 월요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