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19화 (919/1,007)

895회

인공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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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점!”

“어허, 52점은 왜 빼 먹나?”

리사 박사가 목소리를 높였고, 짐 켈러가 점잖게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렇다고 해서 흥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CPU 설계에 마스터인 둘은 회로도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때부터 ZEN 코어의 성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선을 그었을 정도다.

둘이서 생각한 선은 인텔 최신 CPU인 아이비브릿지 2세대의 90% 성능. 그러니까 시네벤치로 환산한다면 아이비브릿지 2세대가 10점 중반대이니 ZEN은 9점대의 점수로 설정한 것이었다.

너무 낮은 거 아니냐 싶지만, AMD의 이전 세대인 불도저 아키텍처는 6점을 겨우 넘겼다. 불도저 대비 50%의 성능 향상이니 어마어마한 발전이었다. 여전히 인텔에 성능으론 밀린다고 해도 가성비로 붙으면 승산이 있는 수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1760점이라니.

ZEN 코어가 물리적으로 8개나 집적되어 있으니, 1개 물리 코어의 점수는 220.065점이었다. 아이비브릿지의 22배 성능이니, 그야말로 엄청난 격차였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이 원래 모바일보다는 HPC 컴퓨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지요.”

둘의 궁금증을 유지원이 해소시켜 줬다.

스마트폰과 패드를 넘어서 지금은 뉴에그 PC에도 탑재된 DM12의 엄청난 성능 때문에 오해한 게 있다. 실리콘 반도체 대비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성능 효율은 8배라고 굳어진 것이었다. 실리콘 기반 M12와 DM12의 점수 차이가 8배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모바일 AP는 모바일 상황에 맞게 저전력 세팅에서 나오는 파워였다. 게다가 모바일 태생인 M 프로세서의 아키텍처도 성능의 한계가 있었다.

반면 x86은 PC부터 서버까지 광범위하게 쓰는 강력한 프로세서를 위해 탄생한 아키텍처였다. 비록 연식이 오래되어 구식이라는 오명도 받고 있지만,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x86의 한계가 해소되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은 x86에 적격이었다.

열에도 강하고, 열전도율도 좋아 효과적인 쿨링도 가능했다. 그렇기에 칩에 인가되는 전력을 높이면 높일수록 성능도 올라간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상상 이상입니다! 짐과 저의 예상 점수는 800점 정도였는데, 그 두 배라니!”

오랜만에 들어 보는 리사 박사의 잔뜩 상기된 목소리다.

“그러게요. 이건 저도 기대한 것 이상이네요.”

그런 유재원의 목소리도 상기되어 있었다.

21세기 중반까지 살다가 왔기에 유재원의 안목은 차원이 달랐다. 특히 본인의 특기인 IT분야에서는 몇 세대의 앞을 보고 있었기에 성능에 대해선 늘 불만이었다. 이런 유재원인데 조금전 찍힌 64코어 ZEN 프로세서는 기대감을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회장님께서 만족하시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엔지니어링 샘플이라는 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짐 켈러의 침착한 말이다.

엔지니어링 샘플링이란 건 최종 스펙을 확정하기 전이라는 이야기다. 즉, 이 단계에서 프로세서의 한계치를 찾아 소비 전력 대비 최대 성능을 낼 수 있는 스윗스팟을 찾아내는 게 제일 큰 목적이다.

그렇다고 극한의 성능을 쥐어짜다간 안정성에 크게 해가 될 수 있으니, 성능과 안정성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필요하다.

“그건 전문가이신 두 분께 맡길게요.”

이미 성능에서 만족한 유재원은 너그러운 얼굴로 ZEN 프로젝트 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대신, 시간은 오래 드리진 못해요. 이 녀석으로 ID 클라우드 시스템 전체를 바꾸려면 지금부터 찍기 시작해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 말입니다.”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규모를 잘 설명하는 말이 1억이었다. 클라우드 시스템에 집약된 CPU의 숫자가 1억 개를 넘겼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1억이라는 숫자도 몇 년 전의 기준이었고, 지금은 2개 레기온이 더 추가되어 1억2천만 개를 자랑했다.

실리콘 반도체 CPU로 유재원이 원하는 성능을 내기 위해선 무지막지한 집적이 필요했던 탓이다. 이걸 모두 다이아몬드 공정의 ZEN 프로세서로 업그레이드한다면 어마어마한 성능의 향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 리사 박사와 짐 켈러 수석은 곧장 유재원이 양보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전력과 클럭 등의 수치를 조절하면서 최적의 스윗스팟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응?”

둘의 작업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유재원은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던 김대석이 보였다. 그 모습에 유재원은 조용히 실험실을 나왔다.

“무슨 일인가요?”

“다음 일정이 있습니다. TSMC의 모리스 회장과의 미팅입니다.”

“아! 깜빡했네요.”

스마트폰이 있었으면 자동으로 알람을 보내서 알려줬을 것이다. 하지만 대전 공장의 실험실 라인에 입장할 때는 비인가 스마트기기의 반입은 엄격히 금지된다. 유재원의 스마트폰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죠.”

TSMC의 모리스 회장과의 미팅은 모리스 회장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성사된 것이었다.

당연히 모리스 회장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뻔했다. ZEN 코어로 확인된 것처럼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대중화가 되면 기존 실리콘 반도체 업체는 다 죽는다고 봐야 했다. 아주 일부 실리콘 반도체의 성능으로 충분한 곳이나 디지털 카메라 센서인 CCD, CMOS처럼 다이아몬드 반도체로는 아직 구현하지 못한 분야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성능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나는데, 가격의 차이가 고만고만한 수준이라면 누가 실리콘 반도체를 선택하겠나.

이런 사실은 반도체 제조사들이 제일 먼저 알았다.

TSMC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모리스 회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른 반도체 회사들과 달랐던 건 행동력이다.

다들 유재원의 연락처나 그룹 비서실로 연락해서 미팅 약속을 잡기 위해 난리였다. 거기엔 인텔도 있었다. 그렇지만 모리스 회장처럼 직접 대한민국에 와서 말뚝을 박고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모리스 회장처럼 막무가내로 만나자고 해도 유재원을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사전에 약속도 없이 찾아오면 더 큰 비호감만 사서 될 일도 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유재원도 이와 다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스 회장이 미팅을 성사할 수 있었던 건, 운과 때가 맞았기 때문이었다.

삼엄한 경비 시스템을 통과해 실험실 라인 밖으로 나온 유재원은 준비된 자동차에 올랐다. 그러고서 도착한 곳은 ID 일렉트로닉스 대전 공장 밖에 만들어진 대전 엑스포 기념 전시관이었다.

대전 엑스포를 치렀던 장소는 이제 엑스포 공원화가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애물단지가 된 엑스포 전시관은 모두 철거되고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지금은 어지간한 건물도 모두 보전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ID 일렉트로닉스의 대전 공장을 세우면서 엑스포 부지까지 죄다 인수했고, 공원의 운영도 ID 그룹이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덤으로 지금처럼 대전 공장을 찾아오는 귀빈을 위한 영빈관으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

잠시 후,

“TSMC의 모리스 창입니다.”

“유재원입니다.”

유재원은 모리스 회장을 만나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다.

모리스 회장은 1931년생이니 지금은 81세나 되는 나이를 자랑했지만, 하얀 백발만 빼면 너무나 정정한 모습이었다.

모리스 창 회장은 1987년 대만 정부와 외국인 투자를 절반씩 받아서 TSMC를 창업했다. 그렇기에 TSMC는 처음엔 대만의 국영 기업의 위치에 있었다가 1990년 민영화가 되었다. 지금은 ID 일렉트로닉스, 인텔과 함께 세계 3대 반도체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애플과 퀄컴, 엔비디아, ATI 등등, 500개나 되는 팹리스 기업으로부터 일감을 수주받아 반도체 칩을 제조 중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TSMC는 ID 일렉트로닉스에 딱 한 걸음 모자란 7나노미터 공정의 제품을 생산 중이었다. 인텔이 14나노미터에서 안주하고 있는 동안 과감한 투자로 7나노미터 양산에 두 번째로 성공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수십억 달러의 대형 투자가 몇 년 전부터 이뤄졌다. 그리고 작년부터 7나노미터 칩을 양산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던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몇 년 내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릴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다가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뚝 떨어진 것이었다.

TSMC에게는 날벼락이었다. 단적으로 대만 증시에서 제일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TSMC는 다이아몬드 반도체 발표 이후 주가가 1/3토막이 났다. 그에 따라 대만 주식 시장의 지수도 고가 대비 60%가 하락해 버렸다.

TSMC의 하락도 하락인데, 폭스콘의 폭락도 엄청났기 때문이다.

폭스콘 주가의 폭락 역시나 다이아몬드 반도체 때문이었다. 폭스콘의 일감 중 상당 부분이 애플이었다. 애플의 아이폰부터 패드와 맥북까지. 어지간한 애플의 하드웨어는 폭스콘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애플의 판매량이 폭락하면서 폭스콘에 들어오는 일감도 뚝 끊겼다.

1년만 기다리면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든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나오는데, 비싼 값을 들여서 2012년식 아이폰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이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계열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500만 대 한정 퓨처 액세스 제품들은 이미 매진 상태였고, 리셀러 가격은 10배까지 치솟았다. 반면 실리콘 반도체로 만들어진 일반 모델의 판매량은 전년도 대비 50% 이상 줄어들었다.

그러한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있던 ID 그룹은 재고를 최소화해 놓았고, 생산 설비도 미리 대비를 해 놓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여유가 생긴 라인에서 주문이 폭발하고 있는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 부품이나 신형 IoT 모듈이 탑재된 2012년형 백색 가전용 보드를 만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 대만의 경제에서는 컴퓨터 부품과 반도체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고, 그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기에, 주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다 못해 지하로 파고들고 있는 실정이었다.

오죽하면 모리스 회장은 2005년에 은퇴를 했던 사람이었는데, 올해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회장으로 복귀했을 정도다. 당연히 은퇴 번복 시기는 유재원이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발표했던 올해 초였다.

“이게 뭡니까?”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모리스 회장은 본인의 머리카락처럼 하얀 종이를 유재원에게 전달했다.

완벽한 백지는 아니었다.

하단부에 TSMC 회장 모리스 창이라는 이름과 함께 멋들어진 사인도 들어가 있었다. 사인이라도 교환하자는 건가? 하지만 모리스 창의 이름은 너무 아래쪽에 들어가 있지 않은가.

유재원의 물음에 모리스 회장의 답은 예상 밖이었다.

“백지 위임장입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 이전만 해 주신다면, 그 어떤 조건이든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무슨 조건이라도요?”

“예.”

“TSMC를 제게 넘기라고 해도요?”

“예. 원하신다면 응하겠습니다.”

유재원이 TSMC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떠보기 위해 거절할 수밖에 없는 말을 해 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뜸 넘기겠다니.

“앞으로 파운드리 업체는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이 없이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회사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ID 그룹의 계열사인 TSMC로 계속될 수만 있다면 유 회장님께 넘기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저는 이번 한국행에 전권을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든지 요구하셔도 됩니다.”

80살이 넘은 어르신답지 않게 냉정한 현실 파악이 대단했다.

모리스 회장의 말 그대로 실리콘 반도체 시대는 끝났고, 앞으로는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대세가 될 것이다. 설사 미래에 양자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계속 쓰인다.

양자 컴퓨터의 기초인 퀀텀게이트를 만드는 데 제일 적합한 것도 다이아몬드 반도체였고, 초전도 반도체 역시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베이스로 만들어진다.

모리스 회장이 여기까지 알지는 못할 테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적합한 판단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건 사실이긴 하죠. 하지만 당장은 한국 말고는 다른 나라에 생산 시설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사업부의 규모도 상당했다. 웨이퍼 처리 능력만 보면 세계 1등에 올라선 지도 오래였다. 생산 라인 공정 전환 작업이 끝나면 매달 100만 장의 웨이퍼를 처리할 수 있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로지 돈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은 유재원만 독점하고 있는 게 좋다. 하지만 유재원은 단순히 돈만 벌자고 일을 하는 게 아니었고, 세상도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만은 않는다.

유재원은 돈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를 위해서라면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도 충분히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음, 몇 가지 요구 조건이 있긴 해요. 그걸 완전히 받아들인다면, 예전처럼 기술을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만 해 주십시오.”

모리스 회장은 유재원의 말에 반색하면서도 긴장했다.

TSMC를 넘기겠다는 것은 거절하면서 내거는 조건이니 상상 이상으로 힘든 것들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유재원은 고심 끝내 나온 조건들을 이야기했고, 모리스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한 자리에서 끝낼 수는 없는 협상이었고, 3일에 걸쳐 실무진 협의까지 이뤄진 다음에야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었다.

유재원과 모리스 회장이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하는 게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그날로 대만의 주식 시장은 180도 반전되어 상승에 상승을 거듭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부활이었다.

불행히도 대만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 수출 금지.

-F22 수준의 최첨단 금수 품목으로 지정 예고.

갑자기 튀어나온 암초의 정체는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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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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