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21화 (921/1,007)

897회

인공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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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이 TSMC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 라이선스를 주기로 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일단 대전제는 백악관이 착각하는 것처럼 결코 싼값에 넘기는 건 아니었다. 영업 이익의 50%가 다이아몬드 반도체 라이선스의 대가였다.

영업 이익이란 매출에서 매출 원가와 판매 관리비를 빼고 남은 이익이었다. 그걸 반이나 달라고 했으니 상당히 가혹한 처사였다. 하지만 애초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이 없으면 망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모리스 회장은 아무런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두 번째는 TSMC가 생산하는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최우선 공급처로 ID 그룹을 박아 넣은 것이었다.

ID 클라우드 서버 하드웨어의 업그레이드가 끝나기 전에는 TSMC가 자유롭게 칩을 팔지 못한다. 대략 2~3년 정도를 TSMC는 ID 그룹을 위해서 일을 해 줘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 견제도 있죠.”

-중국 견제?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부탁하네.

“대만, 이대로 버려두실 거예요?”

존 매케인 대통령이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음에도 유재원은 질문으로 응수했다. 때로는 긴 설명 보다 간단한 질문이 이해를 빠르게 도울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랬다.

-헙, 대만을 왜 버린단 말인가?

이에 즉각적으로 부정을 하는 존 매케인 대통령이다. 그렇지만 말은 아니라고 해도 정곡을 찔린 것처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최근 미국의 동향을 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동시에 과거의 모습도 겹쳐진다.

고립주의 정책이었다.

셰일 가스와 오일 그리고 토륨 원자로의 급속한 발달은 미국의 에너지 정책에서 중동의 존재감을 크게 낮추었다. 여기에 이라크 전쟁도 없었고, 아프가니스탄도 안정적이다. 이라크는 여전히 수렁이었지만, 거기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건 유럽의 나라였으니 말이다.

아랍의 봄에 이어 중동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내전들로 인해 대규모 난민들이 발생해서 유럽으로 향했다.

난민 문제도 문제였는데, 난민 속에는 ISIS라는 과격한 극단주의 테러 조직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벌이는 테러가 런던과 파리, 마드리드 등등 유럽 나라들의 수도에서 터졌다.

미국은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유럽의 상황을 멀찍이서 보며 중동에서 진작 발을 빼기 잘했다는 판단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동북아시아의 역학 구도도 크게 달라졌다.

불량 국가 북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도 이제 어엿한 정상 국가였고, 핵 개발이나 무력 도발도 없었다. 오히려 펑펑 솟아나는 원유를 바탕으로 무섭게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북한은 국토 전체가 공사판이었고,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그 모습이 바뀌었다.

대한민국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벌이고도 치명타를 입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북한 개발 사업의 상당 부분을 수주한 덕이었다.

이제 미국에 남은 위협이란 러시아나 중국뿐이었는데, 러시아는 과거처럼 치열하게 부딪치는 일이 없었고, 중국의 경우 미중 무역 전쟁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될 만큼 미국의 우위를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록펠러 복권이 터졌다.

해외에 신경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워싱턴 DC의 정가는 물론이고 미국인들 사이에 넓게 퍼졌다.

이런 식의 흐름은 회귀 전과도 비슷했다. 그때에도 아메리카 퍼스트니 아메리카를 다시 한 번 위대하게 만들자는 식의 캐치프레이즈가 크게 유행이 되었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까지 하게 되면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트럼프의 재선은 실패했지만, 그가 미국에 남긴 흔적은 치명적이었고 광범위했다. 미국은 세계 경찰이란 역할을 포기했고, 그 자리를 중국이 서서히 차지했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미국의 처지가 좋았다.

그런데도 유재원의 눈에는 그때와 똑같은 흐름으로 가고 있는 게 보였다. 게다가 시기도 훨씬 빨랐다.

미국의 관심이 중동 지역에서 빠져나가는 건 괜찮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도 심리적 방어선을 뒤로 물리는 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었다.-흠, 요즘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이들이 좀 늘어나고 있긴 하지. 그런데 이게 대만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존 매케인 대통령도 유재원의 설명에 수긍했다.

그가 보기에도 확실히 워싱턴 DC 정치인들의 주요 관심사에서 중국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유재원의 말은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었다.

“중국과의 극한 대립이 버거운 대만이 다 포기해버리고 중국과 병합을 선택한다면요?”

-응?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나?

설마라는 말은 없다.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으니 말이다.

중국과 대만의 규모 차이는 일방적이었다. 경제력부터 군사력까지. 대만은 중국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대만이 버티고 있을 수 있는 건 미국이라는 듬직한 우방 덕이었다. 대중국 포위망에서 대만의 지리적 위치는 너무나 중요했으니까.

그렇지만 미국에서 고립주의가 다시 자라나면서 대만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중국도 무턱대고 무력으로만 대만을 굴복시키려 들지 않았다. 홍콩 사태로 얻은 교훈 덕이었다.

대만 경제를 먼저 장악했고, 다음은 미디어였고, 다음이 정치였다. 그렇게 슬금슬금 여론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고, 세대 교체가 이뤄지면서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2030년 후반쯤에 하나의 중국에 대한 국민 투표가 이뤄졌고 아슬아슬하게 찬성이 많이 나오면서 현실이 되었다.

이후 대만에서 일어난 일들은 예전 홍콩 때와 비슷했다. 그와 함께 동북아시아의 힘의 균형도 크게 달라졌고, 한반도에 중국의 위협이 직접 투사되었다.

이후 간덩이가 비대해진 중국은 겁도 없이 미국 군함에 국지 도발을 감행했다가 최첨단 무인 병기와 레일건에 얻어맞고 주제를 파악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의 패권 국가로의 지위는 놓지 않았고, 대한민국만 고달파졌다.

유재원이 대만이란 나라에 대해 호감이 있어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을 라이선스 해 준 게 아니다. 회귀 전과 같은 흐름으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 내린 선제적 조치였다.

“게다가 대만은 IT 부품의 세계 최대의 공급처입니다. 다들 내년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거라고 기대하고 계시죠?”

-그럼, 물론이지! 나도 기대하고 있네.

존 매케인 대통령이 바로 답했다.

“그 기대수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만의 컴퓨터 부품 업체들이 전폭적으로 저를 도와줘야 해요.”

ID 그룹에 부품을 공급하는 퍼스트 파티 중에는 대만의 업체도 상당했다. 게다가 생산해야 할 제품이 스마트폰만 있는 게 아니라, 안드로이드 패드와 뉴에그 PC, i웍스도 있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은 유재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의구심은 여전히 남았다.

-그러면 마이크론이나 인텔도 있지 않은가? 이들 업체는 활용하지 않을 셈인가?

“조건이 맞으면 거기에도 라이선스를 줄 수 있죠. 하지만 TSMC처럼 간절하지 않은 모양이던데요?”

TSMC를 높이 사는 게 모리스 회장의 결단이었다.

ID 그룹의 계열사로의 편입까지도 OK라고 했던 모리스 회장이니, 영업 이익의 50%라는 라이선스 비용도 기꺼이 감수했다. 반면 마이크론은 비슷한 요구 조건에 그건 너무 심하다는 투였고, 인텔은 컨택조차 없었다.

“그리고 TSMC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 라이선스가 되면, 대통령님 말씀대로 중국이 군침을 흘리겠죠. 동시에 어떻게 해서든 기술을 탈취하려고 수작도 부릴 거고요. 그런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다 보면 중국의 민낯이 전 세계에 제대로 드러나게 될 겁니다.”

동시에 대만에서의 반중 감정도 폭발하게 될 것이다.

유재원과 ID 그룹은 손해 보지 않고 최대한의 이익을 챙기면서, 미래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구도도 탄탄히 만드는 포석이었다.

설사 기술의 일부가 유출이 된다더라도

-그렇군. 유 회장 말은 모두 이해했네. 참모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 다시 연락하지.

“네, 골든타임 넘기기 전에 금지 조치를 풀어주세요.”

-노력해 보지. 아 참!

전화 통화를 마치려던 존 매케인 대통령이 뒤늦게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디젤 게이트 말일세. 자체적으로 조사해 봤는데, 너무도 심각한 문제더군. 조만간 폭스바겐을 비롯한 유럽산 자동차 전체에 대한 조치가 있을 걸세. 그리고 유 회장, 자네에게도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도 알아주게.

디젤 게이트에서 존 매케인은 당연하게도 유재원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자동차 판매량은 90년대 말까지는 일본 자동차 회사의 판이었다. 그러다가 이후 도요타 급발진 사건으로 일본산 자동차들이 급격히 몰락했다. 이후 대세는 전기차였지만, 고급형 차량은 유럽산 자동차 회사들이 차지했다.

반면 미국산 자동차의 유럽 판매량은 처참 그 자체였다. 그나마 라이트닝 볼트의 전기차 판매량이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면서 체면은 차렸지만, 유럽 회사들이 미국에 팔아 치우는 양에 비하면 너무나 작았다.

그런 유럽 자동차 회사에 속았다는 것에 분노했고, 그 문제를 공식 언급한 사람이 유재원이라는 것에 기대감이 생겼다.

“네, 저도 대통령님의 재선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의 재선이 코앞에 있다. 정확하게는 11월 4일이었고, 선거 운동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존 매케인 대 민주당의 새 얼굴 버락 오바마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미국인이나 전 세계 언론들은 결과가 뻔하다고 보고 있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의 압승이라고 말이다.

록펠러 가문과 연관된 사건이 모두 해결되면서 존 매케인 대통령의 재선에 엄청난 탄력이 붙었다.

미제였던 JFK의 범인들 중 살아 있는 자들은 모두 법정에 세워 심판을 받게 했고, 금융 독점 자본을 해체해 나온 돈으로 온갖 사업을 일으키고 있었다. 미국의 주식 시장은 불타오르다 못해 폭발할 지경으로 연일 치솟고 있었다. 첨단 IT 기업부터 유통과 서비스 분야까지 고용이 빠르게 늘어나서 실업자 숫자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분위기였기에, 유재원과 존 매케인 대통령은 너무나도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통화를 종료할 수 있었다.

며칠 후.

-미국, 대만 TSMC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 라이선스 특별 허가.

한국 시각으로 오후 3시쯤, 국무부발 속보가 나왔다.

유재원의 주장이 백악관의 전체 회의에서도 받아들여졌고, TSMC에 특별히 허가가 나온 것이었다.

사실 유재원이 혼자서 만든 기술을 가지고 미국이 이래라 저래라 하며 수출 금지를 때리는 건 웃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안보법에는 미국의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파생 기술도 미국의 제재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무시해도 되지만, 그러면 미국 땅에서 돈 벌 생각은 말아야 한다. 독점적 지위에 있는 ID 그룹과 여러 가지 특혜를 받는 유재원이기에 운신의 폭이 일반 기업들보다 훨씬 크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의 방침을 존중하는 게 좋았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 라이선스 금지 소식이 떴을 때만 해도, 미국에 대해 온갖 실망의 말이 쏟아져 나왔던 대만의 여론은 다시금 180도 달라졌다.

안타까운 일은 이미 대만의 주식 시장은 폐장이었다는 점이다. 대만 주식 거래소는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만 영업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크게 하락 중이었는데, 장이 마감된 후에야 소식이 떴다. 피눈물을 흘릴 대만의 개미투자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난장이 벌어진 주식시장이지만, 결국 해피엔딩이었다.

동시에 다른 반도체 업체들도 ID 그룹과의 교섭을 요청하면서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노력했다.

TSMC가 성공했으니, 본인들도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독일 정부, 폭스바겐 조사 착수.

반도체 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디젤 게이트의 타임 라인도 갱신 중이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렸다.

고소도 아니고 이제 겨우 조사 착수라니 말이다.

-폭스바겐 코리아 대표, 검찰 소환!

반면 대한민국의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물적 증거가 확보되자마자 바로 수사에 착수해서 폭스바겐 코리아의 대표를 소환했다. 심문을 해 보고 혐의가 보이면 바로 피의자로 전환될 예정이었다. 그와 함께 민사로 진행되는 폭스바겐 그룹에 대해 집단 소송도 벌써 수천 명의 오너가 모였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진행 중이었지만, 대한민국의 행보가 제일 빨랐다. 과연 예전과 달리 호구 취급이 아닌 다른 결과가 나올지 주목되는 부분이었다.

같은 시각.

유재원은 대전에서의 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번 한국 출장에서 제일 중요했던 일이 AMD의 ZEN 프로젝트의 확인이었기에, 성공적인 결과가 나온 지금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의 스케줄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현재 진행형인 디젤 게이트도 있고 프로녹티스의 임상 2상의 최종 결과와 이후 계획 발표도 있다. 그리고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 시즌3의 파이널 스테이지 직관이라는 굵직한 스케줄들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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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대만의 혐한이 일본 만큼이나 엄청나다지요?

우리나라에 대한 열등감이 혐한의 동력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고요.

그래도 대중국 포위망에서 제일 어그로를 쉽게 끌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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