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35화 (935/1,007)

9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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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5일.

전 세계 취재진의 시선이 법무부에 모였다.

법무부는 부서의 특성상 어지간히 충격적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면 전 세계급 이목을 끄는 게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몇 주 전 한국에도 크게 보도된 미국 법무부의 폭스바겐에 대한 벌금 확정과 같은 사건이 있다.

법무부가 폭스바겐에 때린 벌금은 100억 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물론 법무부가 확정을 했다고 해도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 구속력이 생기는 것이지만, 미국 법무부가 100억 달러라는 벌금을 확정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미국 법무부는 아우디와 포르쉐에도 별개의 벌금을 매길 예정이다.

아우디와 포르쉐의 디젤 차량에서도 배기가스 조작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하위 브랜드라고 해도 별도의 법인이 있는 만큼, 별도의 벌금을 얼마든지 매길 수 있었다.

리콜 명령은 별도였다. 대략 100만 대 정도의 차량이 강제 리콜 대상이었다. 여기에 구매자들로부터의 손해 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었다.

이러한 소송들이 모두 폭스바겐의 패소로 끝난다면 폭스바겐은 최대 180억 달러에 이르는 손실이 확정된다.

독일의 법원도 한때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독일 법원에서도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실이 확정되었고, 이에 대한 벌금으로 10억 유로를 책정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회장은 무혐의로 풀려났고, 실제 처벌은 유로5 규격의 엔진 제작을 담당했던 실무진에게만 물렸다. 그것도 징역 3년으로 매우 약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행태는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도 있었다. 폭스바겐 미국 지사 사장은 수석 엔지니어의 실명을 운운하며 기술력이 부족해 유로5 기준 달성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속임수를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아니면 법무부가 포커스를 맞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2013년 2월 23일에 치러졌던, 제55회 사법 시험 1차 합격자 명단 발표를 찍기 위해 모인 취재진들 사이에는 CNN과 BBC는 물론 AP와 로이터, 타스와 같은 대형 매스컴도 자리하고 있었다.

“합격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법무부 직원은 막중한 부담감 속에서 준비해 온 합격자 명단을 띄웠다.

과거에는 하얀색 전지에 응시 번호와 합격자 이름을 나란히 써서 벽에 붙였겠지만, 지금은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 동시에 법무부 홈페이지에 공시로 업로드하기에,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겠다고 세종시의 법무부 본청에 찾아오는 응시생은 아무도 없었다.

명단이 뜨자마자 취재진 사이에 웅성거림이 떴다.

-인공지능 골드는? 있다!

-제일 위에 있네?

-그럼 인공지능이 1차 시험 수석이란 말이야?

1차 시험 합격자의 명단은 당연하게도 성적순이었고, 거기에서 제일 위에 자리하고 있는 이름은 인공지능 골드였다.

300명 합격자 중 1위가 인공지능 골드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틀라스 로봇에 오프라인 모드로 이식된 인공지능 골드가 사법 시험 1차 수석을 당당히 따냈다.

“예, 인공지능 골드는 350점 만점을 받아서 1등에 자리매김했습니다. 합격자 평균 점수는 294.2점입니다.”

취재진들 사이에 다채로운 표정이 일어났다.

예상을 했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지 않았던 이들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는 표정들이었다.

물론 합격자 발표가 나오자마자 전 세계로 인공지능 골드의 사법 시험 합격 소식이 전달되었다.

“그런데, 합격자 인터뷰는 어디서 따야 하는 거야?”

한편으로 난감해진 게 합격자 인터뷰였다.

사법 시험이 아직 끝난 건 아니고, 주관식으로 치러지는 2차 시험과 면접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1차 시험 합격만으로도 갖는 의미는 남달랐다.

실제 법학과가 있는 대학교의 경우엔 사법 시험 1차 합격만 하면 장학금이 무조건 나온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더욱이 만점으로 합격했다니, 평소라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취재진이 총출동해서 인터뷰를 따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사람이 아니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같은 시간.

-축하합니다, 회장님, 골드가 1차 합격했다는 소식입니다. 그것도 350점 만점으로 전체 수석이랍니다.

한국에 있는 최 부회장이 제일 먼저 유재원에게 합격 축하 인사를 했다.

“뭐, 당연한 결과죠.”

유재원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2월 말에 시험이 끝나자마자 전송된 데이터에서 바로 만점을 확인한 유재원이었다. 다만 서프라이즈를 위해서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나저나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고 싶다면 해야죠.”

-회장님께서 나서시는 겁니까?

“아뇨. 당연히 주인공인 골드가 직접 하는 인터뷰죠.”

ID 일렉트로닉스 반도체 사업부의 대전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나서부터 매달 300만 개 단위의 에픽 CPU가 나왔고, 여기에서 나온 수량 대부분은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업그레이드에 투입되었다. 벌써 4월이니 누적된 수량만 1,200만 개에 이른다.

전체로 보면 겨우 10%의 교체였지만, 에픽 CPU 하나가 기존 인텔 CPU의 100배 이상의 성능을 발휘하기에 어마어마한 연산력을 뿜어냈다.

4월 중순인 현재 시점에서 전체의 10%만 교체했음에도 ID 클라우드 시스템의 전체 성능은 최소 5배 이상 올랐다.

그에 따라 인공지능 골드의 성능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자연어 처리였다. 원래부터 골드의 자연어 능력은 다른 인공지능을 압도했는데, 이제는 거기서 몇 차원 더 올라선 것이다.

따라서 유재원은 자신 있게 언론과 인터뷰할 상대로 골드를 지명할 수 있었다.

실제로 유재원은 이번 인공지능 골드의 사법 시험 도전에서 뭔가 크게 손을 쓰진 않았다.

아틀라스 로봇이라는 열악한 하드웨어에서 오프라인 모드로 작동하는 인공지능이 사법 시험 1차 시험에서 만점을 받도록 만드는 건 유재원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유재원은 대신 ID 클라우드 서버의 모든 리소스를 사용할 수 있는 개발자 버전 골드에게 위의 조건을 입력하고서, 스탠드 얼론 버전을 만들어내도록 명령했을 뿐이다.

그 결과는 지금 확인할 수 있듯, 350점 만점!

사법 시험의 합격만 바라보며 몇 번이고 시험에 응시했던 고시생들에겐 가히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러한 충격의 강도는 아마도 프로 바둑기사들이 느꼈던 것과 같을 것이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던 인공지능 골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1차였다.

2차 시험의 경우 서술형 문제였고,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라 4일에 걸쳐 시험을 치른다. 그렇기에 객관식인 1차 시험보다 인공지능에 훨씬 가혹한 시험이었다.

물론 유재원에겐 대책이 다 있었다.

답은 인공지능 골드의 본체인 ID 클라우드 서버의 업그레이드와 꾸준한 학습이었다.

겨우 두 달에 뭘 할 수 있겠나 싶겠지만, 인공지능 골드의 사법 시험 도전을 위한 심화 학습은 단 1초도 쉬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었다. 게다가 ID 일렉트로닉스의 다이아몬드 반도체 생산 수율도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 중이다.

서술형 문제를 위한 학습은 사법 시험 도전을 결정했을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이뤄지고 있었다. 6월까지 학습을 한 다음, 그 최적화된 데이터를 유준영 연구원이 관리 중인 아틀라스 로봇에 통째로 업데이트시키면 끝이다.

이러한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반칙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를 영혼이라고 친다면, 영혼이 통째로 바뀌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골드의 특성이 1초도 쉬지 않는 기계 학습 아니겠는가.

매일매일 발전하는 것이 인공지능 골드의 실체였다.

다음 날.

-인공지능 골드, 사법 시험 응시를 위해 공부한 시간은 단 6개월!

-현재는 사법 시험 2차 시험을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학습 중!

-2차 시험도 만점에 자신감 보여!

-필기? 전혀 문제 없다. 필경사 데이터도 이미 확보!

인공지능 골드의 사법 시험 관련 이야기들이 기사들로 쏟아졌다.

어제 이뤄진 언론사와의 인터뷰가 날짜가 바뀐 지금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었다. 언론사에서는 만점에 대한 비결부터 2차 서술형 시험에 대한 대책까지 다양하게 물었고, 인공지능 골드는 그에 대해 최대한 설명해 주었다.

만약 지금이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선 지점이었다면, 아무리 친절한 설명도 사람이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서는 순간 그야말로 마법과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이뤄질 것이고, 이를 실현하는 데 쓰인 기술은 인류의 지적 기반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것일 테니 말이다.

그때가 되면 과거 유재원이 만들었던 기계 심리 해석 모듈이 필수가 되겠지만, 지금은 그저 사법 시험 1차 합격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공지능 골드의 설명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말투도 확연히 달라졌다. 전에는 인공적인 느낌이 다분했다면, 지금은 집중해 듣지 않으면 그냥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좋은 성적과 인터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도입된 재판장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기술 발전에 매우 긍정적인 사람들은 인공지능 판사가 진짜로 생겨난다면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했다.

반면 법조인들은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오기 위한 초읽기에 들어갔다며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 법조인들은 55회 사법 시험 1차 시험의 문제집을 구해다 직접 풀어보기도 했는데, 만점을 맞는 건 불가능이었다.

요즘 사법 시험의 문제들은 6지선다형이 기본이고, ‘맞는 지문을 가장 많이 고른 것은?’이나 ‘모두 고르시오’와 같은 각종 변칙 바리에이션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한 시간을 넘기고도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법조계에서도 인공지능 판사나 검사가 생기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생겨났다.

그와 함께 인공지능의 사법 시험 도전의 여파는 다른 곳으로도 번졌다. 대표적인 것이 의대였다. 사법 시험이라는 건 대한민국에서 제일 어려운 전문직 자격 심사 시험이었다. 거길 통과했다는 건, 수능 정도는 아주 쉽게 뚫어낼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인공지능 골드가 수능을 쳐서 의대에 입학한다면?

인공지능 의사의 탄생도 시간문제인 것이다. 예전이라면 어림도 없는 소리라면서 무시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였다.

-회장님,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유재원은 김대석 비서실장의 알람에 시계를 보았다. 오늘 있는 제일 큰 스케줄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

“네, 나가요.”

지금 딱 출발하면 여유롭게 도착할 시간이었다. 유재원은 컴퓨터에 떠 있던 작업들을 모두 저장했다. 그리곤 잠금 버튼을 누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스터, 개통식 스케줄을 위해 준비한 의복입니다.”

서재에서 나온 유재원에게 알프레드 집사님이 옷을 건넸다. 평소 유재원이 외부 스케줄을 갈 때마다 입는 정장이다.

티파니의 권유대로 알프레드는 유재원의 저택에 들어와 집사님이 되었다.

알프레드 집사님이 저택에 항상 머물게 되면서 집안의 스타일도 제법 많이 달라졌다.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변화였다. 대신 일련의 변화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보이는데, 바로 격조였다.

ID 그룹이나 유씨 집안은 유재원 단 한 사람의 능력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과 가문이 되었다. 덕분에 부의 크기는 남부럽지 않았지만, 전통이나 격조는 부족했다. 그걸 알프레드 집사님이 하나씩 채워주고 있는 것이었다.

유재원의 의복 스타일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정장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디테일과 품질이 크게 올라갔다. 같은 정장이라고 해도 다 똑같은 게 아닌 것처럼, 알프레드 집사님이 준비한 정장은 뭔가 달랐다.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유재원에게 알프레드 집사님이 마무리로 여기저기 디테일을 잡아 주었다.

“좋군요.”

서재에서의 모습과 완전히 달리진 유재원의 모습에 만족감을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알프레드 집사님이었다.

유재원은 곧이어 준비된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다.

목적지는 실리콘 밸리 남쪽의 조그맣던 도시 코요테 시티였다. 원래는 실리콘 밸리의 자그마한 위성 도시였지만, ID 테크놀로지 본사와 ID 클라우드 센터 등이 들어선 이후로 커다랗게 발전한 지역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시작될 스케줄은 바로 5G 개통식이었다.

개통식 행사의 규모는 유재원은 물론 존 매케인 대통령과 버라이즌, 스프린트, AT&T 등의 통신사 대표들이 모두 모이는 커다란 행사였다.

이렇게 큰 행사를 코요테 시티에서 하는 건, 이곳만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클린턴 대통령 시절, 정보 고속도로 사업의 첫 삽이 뜨인 곳이 여기 코요테 시티였다. 이후 미국은 IT 혁명을 발판으로 무섭게 발전했다. 그리고 지금 5G 무선 통신 상용화를 세계 최초로 개시하면서 4차 산업혁명도 선도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행사가 열리는 것이었다.

언론에 먼저 배포된 보도 자료에 담긴 설명은 여기까지다.

그렇다는 말은 보도 자료에 담기지 않은 특별한 발표 하나가 현장에서는 하나 더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중요한 이벤트에서 뭔가 특별한 걸 숨겨 놓는 건 이제는 백악관에서도 준비할 만큼 유행이 되었다.

흥할 때도 있고, 망할 때도 있었다.

중요한 건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숨겨 놓은 아이템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가 관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존 매케인 대통령이 준비한 특별 아이템은 흥행이 대박이었다.

3,000억 달러 규모의 민생경제 지원책이었다. 워싱턴 DC에서 말이 많았던 록펠러 압류 자산의 활용법이 처음 확정된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학자금 대출이든, 주택담보 대출이든 고리의 대출의 일부를 연방 정부가 지원해주겠다는 이야기다.

미국인이라면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없던 만큼,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또한, 빠른 집행을 위해서는 행정부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행정부에 거대한 통합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전자정부 2.0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미국에선 스마트 행정부라는 이름으로 불릴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발표에 다들 크게 환호했다. 그러나 모든 이가 환호만 한 건 아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한구석에서는 빅브라더라는 단어가 유령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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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설 연휴의 시작이네요!

독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푹 쉰 다음, 건강하게 복귀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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