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5회
뉴 노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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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5일.
기온은 선선하고 날씨는 맑은 평범한 가을 날씨였지만, 누군가에겐 살 떨리는 날이기도 할 터였다. 사법 시험 응시생의 경우엔 말이다. 오늘이 바로 사법 시험 2차 합격자가 발표되는 날이었으니까.
합격자 발표는 법무부의 사법시험관리위원회를 통해 공고되었다. 총 응시자는 186명 + 인공지능 1대였고, 합격자는 55명이니 경쟁률은 3.39대 1이었다. 총 750점 만점에 합격자 커트라인은 435점으로 작년보다 20점이나 올랐다.
공고는 법무부 홈페이지에 즉각 게시되었기에, 괜히 법무부 앞을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떴습니다.”
김대석 비서실장의 호들갑과 동시에 유재원의 모니터에도 합격자 명단이 떴다.
“수험번호 13-136124 확인!”
유재원의 눈에도 김대석 비서실장이 외친 그 수험번호와 리걸 마인드라는 이름이 딱 들어왔다.
“점수는요?”
유재원의 물음이다.
법무부 홈페이지의 합격자 발표는 제일 빨라도 수험번호와 이름만 공개하기에 석차가 확인되지 않는다.
상세한 점수와 등수를 제대로 알아보려면 합격자 확인에 본인의 수험번호와 몇 가지 개인 정보를 다 일일이 입력해야 나온다.
“수험번호 13-136124. 리걸 마인드 인공지능, 744/750점, 1등입니다. 1차에서도 1등이었고, 2차에서도 1등이니 전체 수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뭐, 다들 노력해 준 덕이죠. 최고의 결과가 나온 만큼 리걸 마인드 팀 전원에게 화끈한 보너스를 쏘겠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우와아 하는 함성이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법 시험 2차 합격자 발표를 유재원과 김대석 단둘이 확인하고 있는 게 아니라, 리걸 마인드 개발팀 101명과 함께 지켜보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팀이라니 좀 이상했다.
실제로 리걸 마인드의 알고리즘은 유재원 혼자서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계 학습 인공지능이 안정적으로 구동하면서 학습 효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보조가 필요했다. 하드웨어를 유지 보수하는 것부터, 학습 중 오류가 발생하면 정정하고, 최적화를 해 주는 등의 꾸준한 관리가 필수였다.
여기에 오프라인용 리걸 마인드를 담아 실제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치를 전용 아틀라스 로봇 파트도 있었다. 카메라로 시험지를 보고 인지해서 문제를 풀고, 풀이로 나온 답을 팔과 손가락을 정밀하게 움직여 마킹을 하고, 문장을 쓰는 등의 작업은 보통 난이도가 절대 아니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대성공 이후로 인간형 로봇 회사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지만, 아틀라스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인간형 로봇은 아직도 아틀라스가 유일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정밀하게 결합되면서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니 여기에 관여했던 사람들에게 화끈한 보너스를 쏘겠다는 유재원의 결심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다만 유재원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3차로 최종 면접이 남아 있으니까요. 게다가 면접도 끝났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 실제 판검사 임용까지 완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보너스를 주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 끝까지 긴장을 놓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2차 시험 합격자가 면접에서 떨어지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임용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여기에 법조인들의 집단행동도 예고되어 있다. 그야말로 임명장을 받기까지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고되어 있었다.
다음 날.
-리걸 마인드 인공지능, 사법 시험 2차도 합격!
-2차 시험에서도 1등, 750점 만점에 744점! 역대 최고 성적!
리걸 마인드의 2차 시험 합격 기사가 모든 매스컴의 메인을 장식했다. 유재원과는 단단히 척을 진 보수 성향 종이 신문도 어쩔 수 없이 1면 타이틀에 리걸 마인드를 대문짝만하게 실어야 했다.
비단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도 긴급히 보도되는 뉴스였다.
사법 시험이라는 건 인문계 시험 중에서도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시험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고시라는 말이 나왔고 노량진에 가 보면 사법고시만 몇 년을 준비하는 고시낭인들이 즐비할 정도였다.
그런 사법 시험을 인공지능이 단 한 번에 합격했고, 그 성적이 역대 최고라는 점은 많은 걸 시사했다.
-판사와 검사, 집단행동!
법조인들의 집단행동이란 뉴스 속보가 터진 때는 점심시간이 막 시작될 오후 11시 50분쯤이었다.
-리걸 마인드 인공지능 임용 절대 반대에 500여 명 서명과 함께 사표 제출.
그들의 집단행동이란 집단 사표 제출이었다.
숫자도 500명이나 된다. 사표를 낸 사람 중에는 두 달 전에 검사와의 대화에 참가했던 검사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대통령에게 털리고, 유재원에게도 털리면서 멘탈이 바사삭 부서졌던 이들이었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후에도 업무에 전념하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고집불통에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 한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면서 동료들 사이에서도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뒷담화를 하는 작자도 정작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얼음 동상이 돼서 한 마디도 못 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대 서명을 하고 사표를 집단으로 낸 것 역시나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지른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500명의 집단 사표 중에 대다수는 검사들의 것이지만, 판사들도 제법 있다는 점이었다.
집단으로 움직이는 게 일상인 검사들과 달리 판사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데도, 이번 운동에 동참했다는 건 그만큼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판사들의 숫자는 32명. 검사들에 비해 무척이나 적은 숫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조인들의 집단행동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을까?
-긴급 여론 조사!
-인공지능 임용을 반대하는 법조인들에게 동의한다 22%. 인공지능의 판검사 임용에 찬성한다 68%.
68 VS 22로 극명한 갈림이 일어났다.
검사와의 대화가 막 끝났을 때만 해도 거의 80%에 다다랐던 임용 찬성 의견이 두 달 정도 지났다고 68%로 떨어졌지만, 그 수치 역시 절대다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마스터, 리걸 마인드 팀원의 보너스 책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성과와 직급에 따라 최소 1억 원에서 최대 20억 원의 보너스가 책정되었습니다
-보너스 지급 총액은 189억 원입니다.
ID 그룹의 임금 체계는 기본급 우선이다.
대신 확실한 명분으로 보너스가 나올 때는 이것처럼 화끈했다. 1억 원은 연차가 1년이 안 되는 신입에게 나가는 보너스였고, 20억 원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수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수석 개발자 등급에 지급되는 규모였다.
로또 복권 1등 당첨금 수준의 보너스였지만, 리걸 마인드로 유재원이 거둬들일 수 있는 이익의 규모를 고려해 보면 무리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화끈한 보너스라고 본인이 직접 말한 게 있었으니, 1원도 빼지 않고 그대로 확정했다.
“응, 바로 입금해 드려.”
유재원의 말에 인공지능 골드는 입금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했다. 예전에는 비서실을 통해 이뤄졌던 작업인데, 골드의 능력이 향상되면서 유재원의 계좌를 직접 다루었다. 그러면서 팀원 각각의 세율에 따라 세금 계산도 자동으로 해 줬다.
인공지능이 사무 업무를 다 하면 일반 사무직 직원은 뭐 하나 싶지만, 인공지능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은 아직도 많이 있었다.
세금 부분만 봐도 인공지능이 칼같이 끊어낼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정해진 세금을 다 내겠다는 게 유재원의 방침이지만,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세액이 크게 차이가 난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하려면 모든 사안에 대해 국세청이 바로 계산을 해 주면 좋은데,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전자정부 도입을 가장 빠르게 한 나라였지만, 유재원의 기준에서는 아직도 부족한 게 많았다.
띵.
유재원이 입금을 막 승인할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발신자는 정병우 대통령이었다.
“네, 대통령님.”
-유 회장님,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의 2차 시험 수석 합격을 축하합니다.
역시나 정 대통령은 유재원이 전화를 받자마자 합격 축하부터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벌인 일 따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조치는 빠르고 확실하게 추진해 나갈 테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법조인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중심을 잡았다. 그 정도 집단행동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래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제가 검사를 해 봐서 잘 아는데, 여기서 살짝 망설이는 자세만 취해도 더욱 크게 들고 일어설 겁니다. 차라리 대쪽같이 일체의 타협 없이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빠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정 대통령의 말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뭔가 신빙성이 떨어지고,심지어 꼰대처럼 들렸겠지만, 정 대통령이 하는 말이라 그럴듯하게 들렸다.
“알겠습니다. 저도 힘껏 응원하겠습니다.”
정 대통령과의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차, 나도 할 일이 있었지.”
통화가 종료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유재원은 번뜩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리걸 마인드 해킹 대회의 종료와 결과 발표였다.
잠시 후.
유재원이 공개한 해킹용 리걸 마인드 사본에 한 번이라도 접속해 본 사람은 띵 하는 알람 소리와 함께 장문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리걸 마인드 해킹 대회가 종료되었습니다.
-익명의 도전자 522만 명이 참가해 주셨고, 최대 트래픽이 초당 23Tbps까지 상승하는 등,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습니다.
-다만 철벽과 같은 방어 체계에 막혀 해킹 성공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리걸 마인드 해킹 대회는 주최 측의 승리로 막을 내리겠습니다.
대회의 종료와 주최 측의 승리를 확정하는 메시지였다.
만약 진짜 해킹에 성공한 사람이 있음에도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띄웠다면 바로 반박이 이뤄졌겠지만, 공지가 올라온 다음에도 네티즌들이나 해커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이정구 검사는 뚫린 입이라고 멋대로 해킹 운운했었지만, 실제로는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 자체 보유한 강력한 슈퍼컴퓨터로도 뚫리지 않는 수준의 완벽한 보안을 자랑하고 있다는 게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반면 유재원에게 했던 질문을 그대로 돌려받은 검찰에서는 난리가 났다.
거침없이 수색 영장을 발부받고 청와대에 쳐들어갔던 대동조선 수사팀의 강압 수사 의혹이 터진 것이었다. 남상호 대동조선 사장에게서 영부인에게도 돈을 줬다는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단기간 수십 차례 소환 조사를 했던 게 드러난 것이다.
이와 함께 이정효라는 영부인 이름만 대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다는 약속과 보석으로 풀어주겠다는 증언도 나왔다. 바로 남상호 사장 본인 입에서 말이다.
대동조선 수사팀이 오히려 수사를 받게 생겼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차일피일 조사를 미뤘다. 오히려 이러한 사건 때문에 이번 집단행동도 순수하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되었다.
-긴급 속보! 법무부. 검사들 사표 모두 수리할 것.
-대법원, 사의 표명한 판사들과 개별 면담 후 결정.
오후 2시가 되었을 때, 전격적으로 나온 발표였다.
유재원과 통화했던 그대로 정 대통령은 집단 서명과 사표 제출 따위의 판검사 집단행동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이렇게 크게 벌였는데도 500명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살짝 김이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에 직접 명령해 사표를 수리하도록 했다. 법원의 경우 삼권분립에 따라 대법원에서 결정하는데, 대법원장은 정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임명된 만큼 불협화음을 내지 않았다.
역대급 집단행동으로 정권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자 했던 법조계는 불과 1시간 만에 사표가 받아들여지자 패닉에 빠졌다.
검사들은 사표가 수리된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과격해진 의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삭발 투쟁이니 파업이니 하는 말들이 검사들의 내부 커뮤니티에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검사들의 발악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후 4시, 인천 국제공항에 유재원의 전용기 a380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우아하게 내린 a380의 화물칸에는 속이 투명하게 보이면서도 총과 칼은 물론 화염에도 끄떡없는 보호 유리 케이스에 보관된 모나리자가 있었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유재원의 모나리자 중에 무엇이 진품이냐는 논쟁은 인공지능을 법원과 검찰에 도입한다는 이슈보다 훨씬 컸다.
오후 3시까지만 해도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의 사법 시험 2차 합격이나 그로 인해 촉발된 판검사들의 집단행동이 뉴스 상위권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나리자가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순위는 완전히 뒤집혔다.
국민들의 관심이 압도적으로 모나리자에 쏠렸던 것이다. 더구나 인공지능 기술은 실생활 곳곳에서 발휘되며 사람들을 돕고 있었기에,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 도입엔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판검사들의 집단행동은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졌다. 게다가 두 달 내내 이어진 소식이라 너무 많이 들어 피곤할 정도였다.
반면 모나리자 이슈는 이제 막 시작하는 것이었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결국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의 도입은 확정되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 리걸 마인드의 도입으로 인한 변화를 대다수 국민들이 당장 체감할 수는 없었다.
경찰서를 시시때때로 들락거리는 사람들이나 송사가 빈번한 사람들은 소수였으니 말이다. 대신 인공지능 판사가 주관하는 사이버 재판을 받게 된 사람들은 이전과 확 달라진 사법 행정을 체감할 수 있었다.
법률에 근거하여 예측 가능한 판결도 판결인데, 쾌속으로 진행되는 재판 속도였다. 여기에 변호사나 검사까지도 모두 인공지능이 담당하게 되면 더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이는 사회 전체의 변화 속도도 가속화했다.
훗날 수많은 책과 논문에서 인공지능 혁명에 대해 되짚을 때 중요하게 언급되는 날짜가 바로 2013년 10월 5일이되는 이유였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보통의 삶, 이른바 뉴 노멀 시대의 시작점이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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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챕터 제목처럼 뉴 노멀 시대의 일상 모습도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길어지는 느낌이라 확 잘랐습니다!
다음 챕터에서 이번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함께 폭풍 전개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주말 건강히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