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8회
인피니티(Infi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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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두의 기대를 품으며 시간은 흘렀다.
2015년 새해가 되었을 때, 유재원과 티파니 부부 그리고 혜성이와 라희에게 큰 변화가 있었다. 거주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덕진리로 옮기는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알프레드 집사님을 비롯해 유재원과 식구들을 항상 밀착 경호해 주고 있는 경호팀까지 한국으로 이사를 마쳤다. 샌프란시스코 저택의 터줏대감인 고양이 디디도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넘어온 것은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던 그대로, 혜성이는 2015년부터 덕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기 위함이다.
그렇게 유재원 가족이 덕진리에 내려왔는데, 정작 유봉만과 김말숙은 서울에 집을 새로 마련하셨다. 두 분 모두 각자의 영역을 개척하셨고, 그 분야에서 제법 큰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아버지 유봉만은 ID 파운데이션의 이사장이면서 대한체육회장이었고, 어머니인 김말숙은 한국 인베스트먼트 부동산 파트의 책임팀장이었다.
물론 책임팀장이라는 직책과는 별개로 김말숙이 운용하는 돈은 유재원이 개인적으로 드린 용돈이었다.
용돈이라고 해서 푼돈은 아니었고, 용돈으로 드린 돈을 합산해 보면 대략 2조 원 규모였다.
재벌들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액수였지만, 1원짜리 하나까지 모두 유재원이 직접 세금 처리까지 완벽하게 마친 깨끗한 돈이었다. 대신 어머니가 투자 실패로 다 날려도 상관없다는 뜻에서 용돈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유봉만은 돈 쓰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면, 어머니인 김말숙은 유재원이 준 용돈을 불리는 데 능력이 있으셨다.
김말숙이 주로 투자했던 건 아파트였는데,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은 90년대 초부터 2015년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이너스를 기록해 본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김말숙이 직접 골라 사들인 아파트가 대략 8천 채 정도 되었는데, 꼭 마음에 드는 것 한두 개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전세나 월세로 엄청나게 저렴하게 내놓았다. 특히 우대를 해 주는 임차인으로는 대학생과 신혼부부가 있었다.
대학교 근처의 아파트에는 대학생들이 주로 임차했고, 학군이 괜찮은 강남권에는 신혼부부들이 주로 임차 계약을 맺었다.
유재원과 척을 진 언론에서 김말숙의 아파트 투자를 두고 부동산 투기다 하며 공격을 하기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은 건 임차인 친화적 계약 덕이었다. 게다가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도 그런 기사가 나오자마자 터진 사건이 있으니, 아파트 갭투기꾼의 야반도주였다.
그러니까, 아파트 하나를 산 다음에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고 전세를 내서 받은 전세 자금을 모아 다시 아파트를 사고, 그 아파트를 다시 전세를 주고 대출도 받아 또 다른 아파트를 사는 식으로 계속 굴려 나갔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200채 정도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임차인 중 몇이 급하게 이사를 하게 되면서 전세 자금을 돌려줘야 했고, 여기에 이자 비용도 무시무시하게 커졌다. 결국 갭투기꾼이 선택한 것은 야반도주였다.
징벌적 배상제로 인해서 사기를 저지르면, 사기로 거둔 수익의 몇 배를 배상하게 되어 있지만 일단 잡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예 계획적으로 일을 저질러 버렸기에, 벌써 해외로 튀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반면 김말숙은 아파트 담보 대출 따위에는 관심을 1g도 주지 않았다. 매년 유재원이 수천억 원대의 용돈(?)을 주고 있는데, 은행을 찾을 이유가 있겠는가.
8천 명쯤 되는 임차인들이 한꺼번에 다 나가더라도 보증금이나 전세금을 한 방에 돌려줄 수 있는 게 김말숙이었다. 은행보다 더 나은 지급 보증 능력이었다. 게다가 김말숙이 사들이는 집은 깐깐한 검증으로 하자 보수까지도 완벽했다. 또한, 살다가 문제가 생겼을 땐 앱으로 클릭만 하면 다음 날 김말숙 팀에 속한 전문가들이 나와서 보수를 해 주는 시스템까지도 갖췄다.
덕분에 서울에서 신혼을 시작하는 신혼부부나 이제 막 서울로 올라온 신입 대학생들이 최고로 선호하는 집은 한국 ID 인베스트먼트 딱지가 붙어 있는 집이었다.
이렇게 각자의 일에 열심히신 부모님은 서울로 올라가고, 덕진리 집에는 유재원 가족들이 입주를 완료했다.
그러는 사이 몇 가지 해프닝도 있었다.
혜성이가 덕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으로 등록했다는 게 뉴스를 타고 난 이후, 전학 문의가 폭주했던 것이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혜성이와 함께 유치원 생활을 하고, 그대로 덕진초등학교로 진학해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이 세계 최고의 인맥이 만들어진다는 걸 유재원은 잘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 인지하고 있었기에, 병설 유치원이나 덕진초등학교의 정원에 추가 조정이 생기는 걸 막아 놓을 수도 있었다.
처음엔 공립으로 시작했던 덕진국민학교는 덕진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설로 전환되었고, 지금은 덕진사학재단의 소속이었다. 덕진사학재단은 ID 파운데이션의 소속이었으니, 운영 방침에 유재원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유재원은 최소한 혜성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그냥 아무런 걱정 없이 동네 친구들도 사귀고, 함께 놀 수 있었으면 했다.
물론 혜성이는 올해부터 유치원에 나가는 것 자체가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앞으로 계속 한국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에는 딱히 의미를 두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샌프란시스코 집에서 살 때에도 혜성이 주변에는 또래의 친구들이 없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혜성이의 덕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입학 소식에 난리법석이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유재원과 티파니가 한국으로 완전 이사를 했다는 것을 알고서 한 번 더 난리가 났다.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각자 ID 그룹과 셰브롱이라는 거대 기업의 수장인데, 한국에서 지내는 데 문제가 없겠느냐부터, 이를 통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이득이 무엇인지 따져 보는 기사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ID 그룹은 물론 셰브롱도 전사적인 온라인 업무 처리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부득이하게 참석해야 하는 일정이 생긴다면 전용기를 타고 움직이면 된다.
3월 2일.
고사리손을 꼽으며 오늘만 기다린 혜성이는 드디어 유재원과 티파니의 손을 하나씩 잡고서 덕진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의 입학식에 참석했다.
파파라치들이 어떻게든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난리였지만, ID 그룹 경호팀이 지원한 철통 경비 속에서 치러진 입학식이었기에 그 누구도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없었다.
대신 유재원과 티파니는 혜성이가 병아리 같은 유치원복을 입은 모습을 원 없이 사진으로 담았다.
입학식을 잘 마친 혜성이는 선생님들 손에 이끌려 앞으로 1년 동안 생활하게 될 유치원으로 올라갔다.
유재원과 티파니도 함께 행사를 치른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다들 얼떨떨한 모습이긴 해도, 앞으로 꾸준히 마주칠 일이 많은 학부모였다.
그 숫자는 28명이었는데, 유재원처럼 부부가 함께 온 경우는 많이 없었다. 반 정도는 아빠나 엄마만 온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모인 학부모 중에는 다른 나라에서 오셨다는 게 딱 봐도 티가 나는 분도 여럿 있었다.
유재원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통일국민당과 정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서 한국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힘을 쓰고 있지만, 농촌의 인구 감소 문제가 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학부모님들과의 친목 도모도 잘 마친 유재원 부부는 집으로 돌아왔고, 알프레드 집사님이 차려 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집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혜성이가 유치원에 가서 없으니, 뭔가 적막하단 느낌이었다. 라희가 함께 있긴했지만, 고양이 디디처럼 잠을 많이 자는 게 라희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둘은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잠깐이나마 가질 수 있었다.
“혜성이 출발하면 바로 불러 줘!”
점심시간이 끝난 다음에 티파니는 본인 일을 위해 사무실로 갔다.
집에 붙어 있는 서재가 유재원의 업무 공간이었다면, 티파니는 아예 마당 건너편에 별도의 사무실을 차린 것이다.
혜성이가 유치원에서 출발하면 꼭 알려 달라고 신신당부한 티파니는 그 사무실로 출근했다.
유재원도 서재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잡았다.
“어디 보자.”
프로그래밍을 위해 Z+를 켜고 프로젝트 2077의 NPC 프로젝트 팀에 접속해서 그간 업데이트된 코드를 확인했다.
유재원이 맡은 NPC 파트는 프로젝트 2077을 마치 살아 있는 실제 세계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줄 NPC의 인공지능을 다루는 부분이었다.
NPC에게 각자의 삶을 지정하고 그에 맞는 대사와 행동 양식을 부여해서 실제 프로젝트 2077의 구성원인 것처럼 만드는 일이다. 플레이어가 스쳐 지나갈 NPC들 하나하나에게 이런 식으로 생동감을 부여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지만, 유재원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물론 유재원도 수만 명에 달하는 모든 NPC들에게 대사를 부여하고, 독자적인 애니메이션을 넣는 건 불가능이다.
대신 이러한 일을 전담할 인공지능을 만들어 주는 건 가능했다.
몇 가지 배경을 설정하면, 그에 따라 프로젝트 2077에 맞는 대사와 행동 양식을 보이는 NPC들을 생성해 주는 것. 이른바 NPC 창조 시스템이었다.
다른 게임 개발자들이 보면 이게 가능하냐 싶지만,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지능이 한층 높아진 골드는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프로젝트 2077의 메인 스토리와 배경 지식 그리고 다양한 설정을 학습시킨 다음, 몇 가지 미리 입력된 변수나 플레이어가 내는 피드백에 따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인공지능 골드뿐만이 아니라, 애플사의 GPT 기반인 자연어 처리 인공지능도 이런 종류의 작업이 가능했다.
인공지능에게 반지의 제왕 현자 간달프니 매트릭스 영화 속 오라클이니 하는 기믹을 부여하고 질문을 하면 간달프나 오라클처럼 답변을 주니 말이다.
인공지능 골드의 방식은 GPT보다 훨씬 진보한 것이지만, 최종적으로는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다만 이러한 방식으로 생성된 NPC가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기껏 엄청난 연산력을 투입해 만든 NPC 시스템이 재미없는 이야기나 단순 반복적인 퀘스트만 남발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이끄는 NPC 팀의 최대 난제는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작업은 2013년부터 진행되었고, 쾌속 진행 중이었다.
다른 파트 역시 마찬가지다.
2015년형 하드웨어 시스템에 맞는 차세대 그래픽을 바탕으로 사이버펑크 스타일의 음악과 음향도 완성 중이다. 여기에 다양한 탈것들의 독특한 인터페이스와 사이버웨어와 드론 등의 장비도 만들어졌다.
또한, 게임의 배경 공간인 상주 인구 2천만에 달하는 미래의 메트로폴리스인 나이트시티도 구성이 완료되었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이었는데 ID 엔터테인먼트 직속의 개발진 1천여 명에 아웃소싱 중인 수만 명의 인력을 통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완성되었다.
출시일이 코앞에 다가오면 매일매일 야근인 크런치 모드가 가동되는 게 게임 업계의 일반적인 대응이었다. 게임 개발 비용 중에 제일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ID 엔터테인먼트는 개발비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2015년 3월 현재 시점까지 프로젝트 2077의 개발비로 쓰인 자금만 5천억 원 수준이었으니 말 다 했다.
이렇게 투입된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외주 비용이었다.
이를테면 나이트시티 중심부에 자리한 대표적인 아라카사 타워는 101층짜리 빌딩이었다. 이 중에 실제 게임에서 구현된 층은 50층이 넘는다. 반쯤은 문이 잠긴 층이지만, 나머지 반은 다 둘러볼 수 있고, 층층마다 구성된 스테이지도 작동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라카사 타워도 외주 제작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제대로 된 일본풍을 내기 위해서 일본의 폴리곤 디지털 그래픽스라는 3D 모델링 전문 업체에 50억 원짜리 외주를 줘서 만들어진 것이다.
50억 원이면 강남의 아파트 다섯 채는 살 수 있는 돈이었는데, 게임 속 빌딩 하나 만드는 데 썼다.
서브 퀘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가들이 써내는 스토리 중 내부 평가에서 좋은 반응이 나온 퀘스트를 모아 외주를 주었고, 외주를 받은 업체들은 퀘스트 하나만을 위해 전문 개발팀을 가동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퀘스트는 다시 검수를 받았고, 좋은 평가가 누적될수록 맡겨지는 일감도 커졌다. 심지어 기대 이상의 평가를 연속해서 받은 업체는 ID 엔터테인먼트의 직접 투자를 받기도 했다.
프로젝트 2077의 공개 예정일은 올해 8월 15일이었고, 그날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띵!
한참 프로그래밍에 열중하던 유재원은 알람 소리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혜성이는 아직 집에 올 시간이 아니었다.
-팰콘9 로켓 블록 3의 최종 조립이 완료되었습니다.
-블록3의 최초 발사 실험에 회장님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요즘 테슬라로 유명세를 날리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초대장이었다.
예전에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공개하면서 일론 머스크에게 대대적으로 투자했던 유재원이었는데, 벌써 팰콘9의 첫 발사 실험 날이 다가온 것이었다.
누군가는 ‘벌써?’라고 생각하겠지만, 스페이스X는 제법 역사가 깊은 민간 우주 개발 업체였다. 팰콘9 로켓만 해도 2005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던 로켓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유재원의 막대한 투자가 이어지면서 개발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유재원은 즉각 답장을 보냈다.
답신은 당연하게도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내일이라도 출발하고 싶은데, 먼저 잡힌 스케줄이 하나 있었다.
작년 온갖 뉴스를 몰고 다녔던 제주도 인문학 연구소의 출범식이 이틀 뒤에 있다. 그렇기에 유재원의 스케줄은 제주도에 다녀온 다음 바로 팰콘9 로켓이 있는 텍사스 휴스턴으로 가는 것으로 업데이트가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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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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