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86화 (986/1,007)

962회

Dreams

엑스박스 4D.

보통 사람에겐 그저 작년에 나온 신형 게임기로 기억되겠지만, 22살의 아론 클레멘스에겐 엑스박스 4D는 자유 그 자체였다.

아론이 처음 엑스박스 4D를 선물받았을 때만 해도, 보통 게이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기뻐했고, 근미래 디스토피아 프로젝트 2077에만 관심을 두었다. 그렇지만 남들 다 재미있다고 하는 프로젝트 2077은 아론 클레멘스에겐 취향 차이가 심하게 오는 게임이었다.

겨우 메인 스토리만 클리어하고 플레이를 멈추었다. 남들은 2회차가 진국이고, 저번 8월에 출시 1년 기념 DLC가 나오면서 갱스 오브 나이트시티라는 확장팩으로 갱들 간의 영역 싸움이 제대로 구현되어 엄청 재밌다고 하는데, 아론은 영 아니었다.

대신 아론의 눈에 든 건 엑스박스 4D에 기본 탑재된 마인크래프트와 센티널 포스였다.

VR 완벽 지원!

마인크래프트와 센티널 포스 두 게임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구였다.

처음엔 큰 기대가 없었다. 프로젝트 2077도 VR 지원이 된다고 해서 해 봤는데, 생각처럼 완벽하진 않았던 탓이다.

뇌파 인터페이스로 캐릭터를 조작하는 건 잘 되는데, 피드백이 어려웠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론이 게임 속 플레이어를 마음으로 움직이면 곧잘 움직이긴 하는데, 그걸 게임 속 NPC들이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투 시에 게임 패드를 잘 써야 하는데, 불의의 사고로 한 손에 영구 장애가 온 상태라서 어려웠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미국 공군사관학교 3학년을 다니고 있던 3년 전, 고단했던 생존 훈련이 끝나고 주어진 휴갓길에 만취한 화물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아론의 차를 박아 버렸다.

천만다행으로 즉사는 피했지만, 그 사고 이후 아론 클레멘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파일럿에게 중요한 오른손은 정규 장애 판정이 내려졌다. 아론도 힘껏 재활을 해 봤지만 새끼 손가락만 까딱거릴 수 있을 뿐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보조 기구가 없으면 지금도 불가능했다.

오른팔을 생각할 때마다 아론 클레멘스의 머릿속은 나쁜 생각들이 가득 들었다.

손이 완전히 뭉개졌다. 신경은 다 끊어졌고, 지금은 모양만 잡아 놓은 것에 불과했다. 장애는 영구적이다. 오른손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프로젝트 2077처럼 고장난 팔은 잘라내고 의수를 달아 볼까 싶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스마트 의수는 비싸지만, 비싼 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고 하니 말이다. 문제는 엉망이 된 오른팔인데도 새끼손가락이 어째서인지 움직인다는 것이고, 이때문에 재활의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끼 손가락이 움직이니 나머지 손가락도 움직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그 사고이후 아론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활달하던 성격도 침울해졌고, 집 밖으로 나오는 일도 드물어졌다. 결정적으로 본인과 부모님의 자랑이었던 공군사관학교에서도 퇴교했다.

그런 아론 클레멘스에게 계속 관심을 주는 건 부모님과 여자 친구 클라라뿐이었다.

엑스박스 4D도 여자 친구의 선물이었다. 성능이 크게 올라서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을 텐데, 같이 게임을 하자고 해서 2대나 샀단다.

게임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VR이 대박이었다. VR 이용자들을 위한 가상의 커뮤니티가 제공되는데, 거기에서는 아론 클레멘스도 정상인이었다.

가상현실 속에서 아론의 아바타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였다. 비밀은 뇌파 인터페이스였다.

자율 신경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팔과 손가락까지도 마음대로 움직였다. 남들은 이게 되게 어렵다고 하는데, 아론은 접속을 처음 했던 날부터 가능했다.

이러한 VR 기술이 극대화된 것이 마인크래프트와 센티널 포스 게임이었다.

마인크래프트는 여자 친구와 함께 플레이했고, 센티넬 포스는 파일럿을 꿈꾸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을 만끽해주었다.

게임도 오래 즐기면 실증이 나기에 마인크래프트는 뜸해졌다. 대신 몇 번을 질리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게임은 센티넬 포스였다.

처음엔 에이스 컴뱃류의 단순한 슈팅 게임인 줄 알았다. 에이스 컴뱃은 아론이 꼬마 시절 플레이스테이션 진형에 있을 때, 즐겨 했던 게임이었다.

실제로 센티넬 포스를 실행하니 게임의 방식은 에이스 컴뱃과 비슷했다. 덕분에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었는데, 플레이를 해 보면 해 볼 수록 완전히 다른 게임이라는 결론이었다.

특히 옵션을 조정해서 현실성을 MAX로 끌어올리자 아론이 공군사관학교 시절 교육의 일환으로 받은 전용 시뮬레이터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여기에서 VR 모드로 플레이하면 게임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차원이 달라진다. 진짜로 전투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심지어 망가진 육신이 게임 속 고등 무인 전투기 센티널 포스에 빙의한 것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하늘에서의 자유로움이란.

교통사고 이후 잊고 있었던 바로 그 감각이었다.

그걸로도 충분했을 텐데, 센티널 포스는 게임적 재미도 엄청났다.

SF적인 스타일로 플라즈마 캐논이니 전술 레이저 시스템과 같은 무장이 등장하긴 해도, 등장 기체들은 센티넬 포스 빼고는 모두 현실 고증이었으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게임에서 구현된 인공지능 파일럿의 기량도 엄청났다. 공군사관학교의 교관들을 능가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그렇게 열심히 플레이를 했던 아론은 당연히 센티넬 포스의 파이널 미션까지도 클리어했고, 그 뒤에 숨겨진 스페셜 미션과 조우할 수 있었다.

실제 센티넬 포스에 탑재된 인공지능 파일럿과의 1vs1 미션이라니.

모든 미션을 S랭크로 클리어했던 아론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붙어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인게임 인공지능 파일럿과는 차원이 다른 기량이었다. 장거리 교전부터 도그 파이팅까지 아론은 상대도 되지 않았다.

겨우 플라즈마 캐논을 두 방 먹여 주는 것에 그쳤는데, 게임 속에서 플라즈마 캐논은 기관총 대미지의 50%를 추가한 것에 불과한 성능이었다. 그래핀 패널로 내구력이 월등히 증가한 센티넬 포스는 플라즈마 캐논으로는 14방을 누적 명중시켜야 잡을 수 있는데, 이건 불가능이었다.

그렇지만 아론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꼭 스페셜 미션을 클리어하겠다는 것이 아론의 단기 인생 목표가 되었다.

그때가 작년 겨울이었다.

해가 바뀌고서도 아론의 도전은 끊이지 않았다. SF1과 꿈에서도 싸울 지경이었다.

수많은 고민 끝에 내놓은 도출된 결론은 1vs1로 정당하게 붙으면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작전을 바꾸었다. 온갖 꼼수란 꼼수는 다 동원하기로 말이다.

중요한 지형도 가장 자신있는 그랜드 캐년이 나올 때까지 재시작을 계속했다. 그랜드 캐년이 결정되자 협곡을 초고속으로 통과하여 교전 거리를 극단적으로 압축한 다음, 도그 파이팅으로 몰아갔다. 그러리고서 기체의 기동력과 내구도를 믿고 몰아붙였다.

누가 조종하느냐만 다르지, 스폐셜 미션에 등장하는 기체는 같은 센티넬 포스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주어지는 무장도 인게임의 SF적 무기가 아니라 현실의 기관포와 암람 미사일이었다. 조건은 완전 대등했다.

예전이라면 이렇게 겨우 근거리 도그 파이팅까지 몰고 와도 기관포와 미사일을 주고받다가 먼저 터져 나가는 건 늘 아론의 기체였다.

그런 아론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어억!”

VR 고글을 쓰고 있던 아론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3자가 보았을 때는, 이상한 안경을 쓰고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론 본인에게는 그 어떤 순간보다 급박했다.

평소처럼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아론의 집을 찾았던 여자 친구는 그 모습이 너무도 웃겨서 스마트폰을 들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들어 찍는 모습이 아주 능숙했다. VR 장비를 풀 세트로 하고 있는 아론과 엑스박스 4D가 연결된 텔레비전을 한 앵글에 동시에 들어오도록 찍는 모습이 이전에도 비슷한 흑역사를 여러 번 박제해 놓은 경험이 있어 보였다.

“오! 미사일 요격?”

더구나 그녀는 아론에게 엑스박스 4D를 선물해 준 것이 자연스러웠던 만큼 게임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이는 아론의 기체가 무슨 의도인지 보자마자 알아차릴 정도다.

여자 친구의 말처럼 오늘 아론이 들고 나온 작전은 바로 미사일 요격이었다. 시뮬레이터에 비견되는 사실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게임성도 있었던 센티넬 포스였다. 그렇기에 눈으로 보이는 미사일의 궤적을 보고 실제 미사일의 위치를 예측해서 기총을 쏘았을 때, 운이 좋으면 미사일이 총알에 맞아 터진다.

먼저 적 기체의 미사일을 모두 소모케 한 다음 사냥을 한다는 것이 아론의 전략이었다.

현실이면 불가능했을 테지만, 게임 속 본인의 기체와 일체화가 된 아론은 가능했다. 실제 아론은 수백 판 센티넬 포스를 플레이하면서 여러 번 기총으로 미사일을 요격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미사일 요격만 중점으로 밀어붙이는 시도는 처음이다.

“와!”

텔레비전에 집중하던 여자 친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려 4발의 미사일을 요격하면서 적의 미사일을 모두 소모시켰다. 대신 그 과정에서 아론도 미사일을 두 발이나 맞았다. 한 발은 정통으로, 두 번째 발은 근거리에서 터진 탄두에 휩쓸렸다. 그와 함께 1,200발의 기관총 탄환도 모두 소모했다.

대신 아론은 미사일이 4대나 남아 있었다.

완벽한 우위!

이제 사냥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적이 기수를 돌려 도망가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장면이라 뭔가 싶었는데, 0.1초만에 재보급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시뮬레이션이면서 동시에 게임성을 가지고 있던 게임이었기에, 전투 구역 밖으로 나가면 재보급이 순식간에 이뤄진다. 그나마 HP 역할을 하는 내구성이 다시 차진 않지만, 미사일과 기관총 탄환은 바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걸 상기하자마자 아론은 재보급을 하러 가는 적의 뒤를 뒤쫓았고, 남았던 미사일을 모두 때려 넣었다. 그런데 사람 미치게도 귀환하는 적은 뒤에서 날아오는 미사일도 회피했다.

다 피했으면 사기라는 말이 나왔을 텐데, 마지막 한 발이 적 기체의 후방을 제대로 강타했다. 그렇지만 최고 속도가 떨어졌을 뿐, 완벽히 박살 내진 못했다. 게다가 재보급 라인까지는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렇게 되자 아론도 상식 밖 선택을 했다. 기체의 속도를 최고로 올린 다음, 몸통 박치기를 수행한 것이었다. 원래 의도는 재보급 라인을 넘지 못하게 막은 다음, 연료를 바닥내 먼저 땅에 떨어뜨리겠다는 것이었는데, 적 기체가 오히려 피하지 않고 같이 충돌해 버린 것이다.

둘 다 지면으로 추락했다.

먼저 추락한 건 아론이었다. 그러니 먼저 터져 나가야 하는 것도 아론의 기체였는데, 추락 지점으로 인해 운이 갈렸다.

아론의 기체는 그랜드 캐년의 깊은 협곡으로 떨어진 반면, 적은 그대로 지면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먼저 터진 건 적의 기체였고, 불과 약간의 시간을 두고 아론의 기체가 협곡 바닥에 처박혀 터졌다.

원래대로라면 둘 다 비겼다는 판정이 나왔어야 했는데, 0.01초 차이라고 해도 먼저 터진 건 적 기체였기에 아론의 승리로 판명되었다.

그 순간.

-게임태그 #모비우스1의 스페셜 미션 클리어를 축하합니다.

-특별한 게이머를 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아론의 ID인 모비우스1의 미션 클리어 축하 메시지와 함께 특별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는 문구도 떴다.

자신의 게임태그에 붙일 수 있는 금색 SF1 아이콘, 인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특별 스킨 그리고 스팀 기프트 카드였다.

“기프트 카드?”

“10만 N포인트!”

액면가는 무려 10만 N포인트였다. 한국 돈으로 1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하고 싶은 게임이 있다면 원 없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액수다. 하지만 갸차 게임을 제외할 때의 이야기다.

참고로 ID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풀 패키지 게임으로 출시하고, DLC의 유료화도 최소화하는 정책이었다. 대신 이와는 반대로 무료 플레이에 부분 결제 비즈니스 모델을 채용한 게임도 빠르게 늘고 있었다.

치열한 PVP 게임인데, 아이템을 루팅이 아닌 갸차 뽑기로 제공하는 뽑는 페이 투 윈 모델이 나온 지도 오래 되었다. 지금은 지존 장비를 여러 파츠로 나눈 다음, 갸차로 뽑아서 완성하는 컴플리트 갸차 모델도 나오는 중이다.

이런 뽑기 게임에 빠지면 1천만 원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론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감동했다. 오죽하면 옆에서 평소처럼 흑역사를 찍고 있던 여자 친구를 안고 펄쩍 뛸 정도였다.

그렇지만 준비된 선물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비슷한 시각.

유재원은 아론의 스페셜 미션 플레이를 봤다.

센티넬 포스의 인공지능 로그 파일은 물론이고, 아론의 플레이를 VR 모드로 직접 확인했다.

“미쳤네.”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골드, 기관총으로 미사일 4기를 연속에서 요격할 수 있는 확률은?”

-1억분의 1 이하입니다.

골드의 대답은 즉각 나왔다.

지상에 설치된 미사일 요격 시스템인 CIWS도 명중률은 0.1%이하였다. 그렇기에 수천 발의 탄환으로 탄막을 만들어 미사일을 요격한다.

그런데 이걸 마하 3으로 나는 전투기를 통해 구현한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게임적인 허용은 있다. 게임 속에서 탄도학이 현실처럼 완벽하게 구현된 건 아니었고, 대기권의 환경과 바람과 같은 요소도 비교적 간단히 구성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론이란 친구의 능력은 전혀 과소평가되지 않았다.

플레이 로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본인의 감각을 게임 속 기체와 일체화한 점이었다. 뇌파 인터페이스로 스마트 의수를 무의식중에 제어하는 것처럼, 게임 속 기체를 미세 조정해서 명중률을 비약적으로 높인 것이었다.

센티널 포스 게임에 혹시나 하고 스페셜 미션을 만들어 놓긴 했는데, 실제 클리어하는 사람이 나온 건 대박이다. 그런데 그 인물이 유재원이 찾고 있던 새로운 타입의 인재였다니.

유재원은 바로 아론의 게임태그로 급하게 쪽지를 보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들어갔지만, 본론은 당장 만나자는 미팅 요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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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새로운 타입의 능력이지만, 초능력은 아닙니다~.

그나저나 ㄴㅂㅍㅇ가 터질 줄은 예상도 못했네요. 차기작 연재처로 고려 중인 곳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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