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6회
Dreams
할머니 손맛을 이어받은 아틀라스 로봇 분식점에서 추억을 만끽했던 유재원은 서울로 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으로의 복귀였다. 하지만 유재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가는 대신, 지하로 더 내려갔다.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의 지하 3층까지는 일반인에게도 공개되는 쇼핑몰과 공연 시설들이 있다. 그 밑으로는 자율 주행 차량이 무인 상태에서만 들어갈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더 밑으로 내려가면 매우 엄격한 보안 시스템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데이터 센터와 각종 기계실이 자리하고 있다.
유재원의 엘리베이터는 데이터 센터를 지나고, 기계실도 지나며 더욱 내려왔다.
그곳은 설계자만 알고 있는 긴급 대피 시설이었다. 단순히 공간만 크게 있는 게 아니라,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 코앞에 있는 매봉역과 연결된 지하 도로가 있다.
거리는 200m를 조금 넘는데, 그렇다고 열심히 걸을 필요는 없다.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에 큰 불이 났을 때, 빠르게 대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다. 동시에 지금처럼 미행이 붙었을 때,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따돌릴 수 있는 방식이기도 했다.
유재원 일행에게 붙은 미행이란 중국 국가안전부 해외 요원들이 따라붙은 것이었다.
남북 대치 상황 때 북한 간첩들이 그렇게 많았다면, 지금은 중국에서 넘어온 간첩들이 그렇게 많았다.
물론 이런 작자들을 국정원은 물론이고 CIA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유재원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유재원과 협력을 하는 건 아니었고, 독자적인 판단과 독자적인 액션이었다.
더구나 이번 일은 확실하게 마침표가 찍히기 전까지는 다른 정보기관이 알아서 좋을 건 없었기에, 지금처럼 복잡한 루트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매봉역에서 나온 유재원의 옷차림도 변해 있었다.
정장 차림에서 청바지에 반팔 티의 캐주얼한 차림이 되었고, 모자와 안경까지 착용했다. 경호원들 역시 마찬가지. 이 정도만 해도 유재원은 아주 쉽게 군중 속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관악산 너머에 자리한 덕진공과대학 캠퍼스였다.
유재원이 이과 인재를 안정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만든 덕진공과대학은 이제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최고의 공과대학으로 거듭난 상태였다.
덕진공과대학만 졸업하면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혜택이 ID 그룹의 인턴 채용이었는데, 이거 하나 때문에 덕진공과대학의 입결은 개교 때부터 최상층 수준이었다. 지금은 한국 최대의 학벌이었던 서울대도 아득히 능가했다.
그도 그럴 것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은 사회 전체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었다. 특히 노동 시장에서의 변화가 매우 큰데, 과거 좋은 일자리로 평가를 받았던 것들이 지금은 애매한 일자리로 변하는 중이었다.
이를테면 사짜 돌림 직업들이다.
예전이었다면 전문직으로 명예와 부를 함께 얻을 수 있는 직업이었는데, 지금은 빠르게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 중이었다.
힘도 있고 목소리도 큰 단체들이 열심히 저항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파도를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물론 전통의 강자였던 사짜 돌림 직업들을 대신해서 새롭게 뜨고 있는 직업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였다.
2010년대 중반까지 OECD 최고 수준을 자랑했던 한국의 노동 시간은 이제 바닥에서 찾는 게 더 빠를 지경이다.
이렇게 대폭 늘어난 여가 시간을 위한 사업들의 시장 규모가 폭발적이었다.
게임과 스포츠, 아이돌 산업은 해마다 30% 이상 성장하고 있을 정도였다. 단적으로 게임 산업의 꽃인 e스포츠만 해도 프로게이머들의 몸값은 과거와 차원을 달리했다.
e스포츠에도 수많은 종목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업계 최고를 자랑하는 것이 레전드 리그 프로게이머들이었다.
레전드 리그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고전파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상혁이었다.
TG T1이 레전드 리그 코리아 챔피언십 7회 우승, 레전드 리그 월드컵 5회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준 선수가 고전파였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 수록 기량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더욱 상승해서, 작년 K/DA 스텟이 커리어 하이를 찍어버렸다.
그런 고전파는 2018년 현재의 소속인 TG T1과 3년 재계약을 했는데, 전체 계약 규모가 300억 원이 넘는다.
e스포츠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고액의 계약이었다. 그렇다고 TG T1이 손해를 무릅쓰고 큰 출혈 계약을 한 건 아니다. 오히려 T1은 흑자 운영 중이었다.
레전드 리그 글로벌 중계권 분배금만 해도 연간 수십억 원의 수익이 나왔고, 구독권 판매와 각종 CF 활동, 굿즈 판매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T1의 운영비 지출보다 훨씬 컸다.
덕분에 수많은 꿈나무들이 제2의 고전파를 꿈꾸면서 프로게이머의 문을 두드렸고, 부모님들도 더는 게임만 한다고 반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프로게이머 다음으로 뜨는 직업은 유튜버로 대표되는 인플루언서였다.
채널만 개설하면 누구든 영상을 올리고, 라이브 스트리밍을 할 수 있는 유튜브였다. 그만큼 진입 장벽이 낮아서 수많은 경쟁자들이 난립 중이다. 대신 남과는 다른 감각과 재미가 있다면 바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게 유튜브였다.
월간 누적 조회 수 100만!
이것이 프로 유튜버의 갈림길이었다. 100만을 넘기게 되면 월 3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구독자의 나라에 따라 조회 수 1당 애드센스 수익금의 차이가 생겨나서 약간의 오차는 생길 수 있다.
한국과 미국처럼 온라인 구매력이 강력한 나라의 시청자는 조회 수 1당 수익금이 3~5원에 달한다. 반면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시아처럼 온라인 구매력이 세계 평균보다 낮으면 조회 수 1당 수익금은 0.7~0.5원 정도로 내려왔다.
더구나 유튜버들은 단순히 애드센스 수익금만 생기는 게 아니라, 각종 업체들의 광고를 받아서 별도의 수익도 낼 수 있고, 실제로 애드센스보다 이런 별도 광고 수입이 더 많은 유튜버들도 상당했다.
이처럼 차세대 직업들이 각광을 받는 중이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인공지능 개발자와 프로그래머, 기초과학 연구자였다.
예전에는 개발자 하면 3D 직업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귀한 몸이 되었다. 모든 게 컴퓨터와 인공지능 플랫폼에서 가동되는 세상인 만큼,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한 코더에서 프로그래머가 되기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특히 덕진공과대학교의 커리큘럼은 ID 그룹의 전폭적인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 실전형 스타일인데, 상당한 난이도를 갖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왔다고 방심했다간 삽시간에 미끄러질 정도로 말이다. 대신 이러한 커리큘럼을 훌륭히 소화하며 4년을 보냈다면, 어디에 투입되어도 상당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
막말로 ID 그룹 빼고는 어떤 기업이든 골라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기에 덕진공과대학교는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둔 지금에도 열공 중인 학생들로 가득했다. 덕분에 유재원은 이번에도 아주 쉽게 어우러질 수 있었다.
잠시 후.
“마크 사장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환대에 감사합니다. 유 회장님.”
덕진공과대학교 학생회관 최상층의 카페테리아에서 유재원은 TSMC의 마크 창 사장과 만날 수 있었다.
카페테리아에서도 제일 안쪽에 자리한 곳이었지만, 전망은 매우 좋았다. 덕진공과대학의 아름다운 캠퍼스를 한자리에서 둘러볼 수 있었다. 반대로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코팅이 되어 있어서 보안에도 최고였다.
물론 이 시간에 유재원이 이곳에서 TSMC의 마크 사장을 만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없을 테지만 말이다.
“모리스 회장님은 괜찮으신가요?”
“예, 삼촌께서는 거뜬하십니다.”
마크 사장의 성에서 알 수 있듯, TSMC의 창업자인 모리스 창과는 친척 관계였다. 넓게 보면 TSMC의 로열패밀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핏줄 때문에 마크 창이 TSMC의 사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핏줄만 따지면 마크 창보다 더 진한 성골들은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성골을 다 물리치고 사장이 될 수 있을 만큼, 마크 창의 능력이 출중했고, 충성도도 남달랐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마크 사장을 매수하려고 했던 중국이 얼마나 큰 무리수를 두었던 건지도 뻔히 보일 정도다.
물론 마크 창에게도 중국의 매수 시도를 폭로했던 건 위험한 모험이었다.
다행히 도박 수는 성공했고 단순한 최고기술이사에서 TSMC의 실권을 가진 사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사실 모리스 창이 민족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건 전까지는 중국의 여러 기업과도 협력을 하는 관계였다. 미국 다음가는 다이아몬드 반도체 매수처가 바로 중국의 IT 기업들이었다.
화웨이와 CATL이 미국의 초강력 제재에 숨도 못 쉬고 있다지만, 중국에는 그런 기업들을 대체할 새로운 업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공산당이 대놓고 밀어주면 하루 아침에 대기업도 되었고, 공산당의 눈 밖에 나면 순식간에 공중분해되는 게 중국이었으니 말이다.
하여튼, 중국이 계약된 수량만큼의 다이아몬드 반도체만 얌전히 받아 갔다면, TSMC는 중립을 유지했을 거였다. 그런데 중국은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의 탈취를 끝없이 시도했다.
마크 창의 폭로는 이렇게 누적되던 불만이 개인적 야심과 결합하여 일순간에 터진 사건이었다.
TSMC는 이후 중국 기업들과의 공급 계약을 더 이상 갱신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만이란 국가 차원에서 양안 관계에 대해 완전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북한이 북중동맹조약을 재검토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고, 이제 와서 거꾸로 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반대로 ID 그룹과 한국의 존재감은 대만에서 날로 커졌다.
“앞으로도 TSMC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은 계속 지원될 겁니다. 1나노 공정뿐만이 아니라 0.5나노 공정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기술 지원을 해 드리죠.”
마크 사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시원스럽게 나온 유재원의 확답은 마크 사장이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더구나 0.5나노 공정까지 도와주겠다는 건, 앞으로의 미래도 보장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ID 그룹이 퀀텀 프로젝트를 통해 양자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중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십 단위 양자 게이트를 가지고 경쟁을 하던 시절에 뜬금없이 등장한 퀀텀은 온갖 기록을 다 갈아 치우는 중이었다.
그런 퀀텀의 기반 기술이 0.5나노 공정의 다이아몬드 반도체라는 것도 이젠 상식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상식인 그 기술을 ID 일렉트로닉스 말고는 그 어떤 반도체 회사도 흉내 낼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TSMC도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을 다룬 지 6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1.2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다.
“혹시 조건이 있습니까?”
마크 창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없어요.”
유재원이 TSMC와의 라이선스를 갱신해 주고, 원래보다 더 나은 기술도 제공하겠다고 한 건 일종의 포상이었다.
무엇에 대한 포상이냐 하면, 대만이 중국과 맞서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포상이다. 회귀 전 대만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과 한 몸이 되었다면, 한국에 가해지는 압력은 몇 배로 커졌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지금은 남북경제연합으로 온갖 어그로까지 다 끌린 상태였다.
실제로 북한은 중국과 맺은 조중동맹조약의 전폭적인 수정 원칙을 세운 상태였다. 특히 위급 상황 발생 시 자동 개입이라는 문구는 필히 삭제하는 쪽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수정이 불가능하다면 조약 전체의 파기도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내부 원칙은 딱히 비밀도 아니어서 언론 보도가 이미 몇 번이나 이뤄졌다. 단지 공식 발표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이에 대해 중국의 과격한 네티즌들은 전면 수정이 아니라 파기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중국의 인터넷 여론과 완전 반대였다.
중국은 사방에서 난리였다. 영토 분쟁부터 민족 분쟁까지. 동쪽부터 남쪽, 서쪽까지 주변국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떨어진 상태다. 더구나 중국의 자랑이었던 경제성장률도 매년 눈에 보일 만큼 하락 중이었다.
그나마 중국이 만만하게 대할 수 있는 나라는 북한이었다. 중국 내부에서 최악 중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결속력을 다지는 방법으로 주변국과의 분쟁만큼 간편한 건 없다.
중국에게 점찍힌 그 나라가 북한이었다. 한반도에 인민군을 전개할 때, 조중동맹조약의 자동 개입 조항처럼 확실한 명분을 제공해 주는 것도 없다.
중국 수뇌부가 북한의 조중동맹조약 수정 요청에 대해 무시로 일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재원도 중국의 뻔한 의도를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센티널 포스의 판매도 승인해 드리겠습니다.”
“헉!”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마크 창 사장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이아몬드 라이선스가 TSMC의 최대 현안이었다면, 마크 창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센티널 포스의 대만 도입이었다.
중국의 매수 스캔들을 폭로한 다음부터 마크 창은 대만 독립의 상징이 되었다.
스캔들 폭로는 TSMC의 사장이라는 단 하나의 자리를 위해 벌인 일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마크 창은 그렇게 되었다.
더구나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도 없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몰려온 파도에 올라타는 것이 정답 아니겠는가.
마크 창은 TSMC의 사장이면서 동시에 대만의 비밀 특사라는 타이틀로 유재원과 미팅에 임했던 것이다. 비밀 특사로서의 임무는 바로 ID 그룹이 개발한 센티널 포스의 도입을 타진하는 것이었다.
다만 유재원을 마주하고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는데, 유재원이 먼저 말해 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반면 유재원의 입장에서 대만의 결정은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중국이 북한을 가지고 불장난을 하려고 한다면, 유재원은 대만을 지렛대로 삼으면 그만이었다.
미국이 대만에 F16을 넘기는 것만 해도 게거품을 무는 중국이었다. 대만이 6세대 고등 무인 전투기 센티널 포스를 도입한다면 완전 눈이 돌아갈 거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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