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회
Dreams
“아, 여기서 회군이라니.”
완전 독자적으로 구축한 스타링크 지구 관측 모듈을 통해 신의주와 서해의 상황을 지켜보던 유재원의 탄식이었다.
북부전구가 잘못된 판단을 해서 밀고 내려왔다?
그러면 남북미도 북부전구의 전력을 분쇄하는 건 기본이고, 밀고 올라갈 명분이 생기는 것이었다. 중국이 겨우 김후덕 소장이 언급한 조중동맹조약 하나로 북한 땅을 밟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당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부전구를 밀고 올라가는 와중에 생길 사상자들을 생각하면, 북부전구의 회군은 남북미에게 최상의 결과였다.
압도적 우위를 자랑하는 공중 전력과 달리 육군은 양측 모두 재래식이었다. 물론 재래식에도 수준 차이는 분명해서 남북미 연합군의 우위는 분명했지만, 공중전처럼 확실하게 차이가 나진 않는다.
실제 전투가 벌어진다면 아무리 잘 싸웠다고 해도, 센티널 포스가 열심히 엄호를 한다고 해도, 남북미 연합군 역시 피해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더구나 회군이라는 지금 상황이 남북미에 나쁘냐?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남북미 연합군의 북진보다 더 나을 수 있다.
일단 제일 결정적인 것이 병력 규모였다. 남북미 연합군은 갑작스럽게 결성된 것이라서 병력의 규모는 1개 군단 규모도 되지 못했다. 반면 회군하고 있는 북부전구와 동부전구는 군단이 여러 개 모인 집단군의 형태로 머릿수만 10만이 넘는다. 여기에 동부전구는 인민해방군 해군 함대도 있다.
원래부터 시진핑에게 이를 갈고 있던 상하이방이었고, 청렴하긴 했는데 그 청렴함이 본래의 성향이 아니라 야심 때문이었던 리샤오밍 상장이 시너지 효과를 얼마나 일으킬지는 미지수지만 분명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안타까운 건 베이징까지는 아무리 짧아도 최소 하루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땅이 워낙 넓은 중국이다 보니, 북부전구 병력 중에 신의주로 출동하지 않고, 베이징과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병력을 움직인다고 해도 하루의 시간은 필요했다. 해군 역시 마찬가지로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가는 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이란 나라는 이 하루 사이에 어떤 버라이어티한 사건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유재원의 확신이었다.
분명 일이 터질 거다. 그렇지만 그게 본인과 세계에 나쁜 일은 아닐 거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는 것도 엄청나게 흥미로울 것 같다.
몇 시간 후.
-남북미 연합군 신의주 사태 완벽 수습!
-압록강 대치! 남북미 대 중국 전쟁 발발할지도?
-센티널 포스 3개 편대의 압도적 존재감!
유재원은 이미 인민해방군의 회군을 알았지만, 인터넷은 한 박자 느렸다.
신의주에서 대치 중인 남북미 연합군의 짧은 클립 영상들이 공중파와 인터넷을 장식했다. 그러면서 센티널 포스의 편대 비행을 찍은 클립도 방송을 탔다.
멀티스펙트럼 스텔스의 센티널 포스였지만, 가시광선 스텔스까지는 아니었기에 밝은 대낮에는 검은 동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대신 오토포커스를 위한 적외선 센서의 빛은 죄다 흡수해 버렸기에 가까이에서 찍어도 초점이 나가는 일이 빈번했다. 그래서 제보 영상 대부분은 흐릿하게 나왔지만, 이걸 알아차리고 수동으로 찍은 사람이 소수 있어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북부전구의 회군이 보도된 건 2시간쯤 지나서였다.
-긴급 속보! 북부전구 78집단군 후퇴!
다만 매스컴 보도는 회군이 아니라 후퇴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유재원을 비롯한 극소수에 불과했다.
인민해방군의 전자전 네트워크를 자기 집 드나드는 것처럼 들어가서 통신망을 모조리 감청할 수 있는 건 유재원이나 미군 수뇌부 정도뿐이었으니 말이다.
-리샤오밍 상장의 회군에 놀라셨나요?
다시 유재원과 연결된 로버트 킴이 회군을 정확히 언급했다.
“정보부 작품이로군요?”
로버트 킴의 말에 유재원은 대충 회군이 일어난 배경에 미국의 개입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예! 바로 보셨습니다. 인터넷에 이런 말이 있죠?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어 보인다면, 당신의 잔고가 부족한 거라고 말이죠. 물론 유 회장님께는 해당 사항이 없겠지만요.
전혀 아니다.
회귀 전에는 뼈저리게 느꼈던 말이었고, 그 때문에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던 인터넷 밈이었다.
로버트 킴의 설명은 시진핑과 시진핑 일가의 해외 몰수 자산 4천억 달러에서 시작했다.
“음, 그럼 먼저 회군한 부대에 4,000억을 주겠다고 한 거예요?”
-반대입니다. 4,000억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지요. 제2의 시 주석이 되기 싫으면 명분 없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알았다고 하던가요?”
-전혀요. 100이면 100, 허튼소리 말라더군요. 그래서 접촉한 개개인에 맞춘 2차 자산 몰수 리스트를 전해주자 비로소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로버트 킴이 말한 리스트는 아마도 접촉한 사람들의 해외 자산 리스트였을 것이다.
미국은 시진핑과 그의 일가의 자산만 발표했으나, 다른 공산당 수뇌부의 해외 은닉 재산도 상당히 파악해 둔 상태였다.
시진핑에게 분노 중인 상하이방의 고위층도 시진핑 일가와 맞먹는 규모의 자산을 빼돌렸고, 인민해방군의 장성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군 차원에서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특이한 조직이었다.
인민해방군에서 장교직을 수행하다가 낙하산을 타고 인민해방군이 보유한 사업체의 임직원이 되는 게 흔한 일이었다. 화웨이가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렇게 인민해방군이 기업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자금과 각종 이권에 개입해 얻은 자금은 당연히 해외로 은닉되었다. 괜히 집안이나 중국 내의 은행에 놔두면 너무나 불안했으니 말이다.
로버트 킴의 말처럼 4천억은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협박의 대상은 상하이방부터 공청단은 물론 시진핑이 속한 태자당까지 중국 공산당 파벌을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 이뿐만이 아니라 북부전구와 동부전구의 주요 사령관도 마찬가지였다.
사령원인 리샤오밍 상장은 본인의 야망을 위해 청렴함을 유지했지만, 왕시진이나 팬샤오준, 리우지안 등의 수뇌부는 아니었다.
-채찍 다음엔 당근도 내밀었지요. 대신, 양안대전에서 비롯된 중국 내 혼란을 잠재운다면 이번에 몰수된 4천억 달러를 정식으로 돌려주겠다고 말입니다.
시진핑 일가의 해외 은닉 자금 4천억 달러를 정식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자격이란?
시진핑을 치워내고 그 자리에 오르는 것뿐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 돈으로 중국의 정치판을 뒤흔들 메가톤급 폭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일이 계획한 대로 움직이진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천안문 광장의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회군 소식에 한숨 돌리던 유재원은 인공지능 골드의 알람에 깜짝 놀랐다.
스타링크 광학 모듈 영상을 보니 진짜 천안문 광장에 사람들이 점점 모이는 게 눈에 보였다. 2시간 전, 1시간 전 사진과 지금을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났다.
텅 비었던 천안문 광장이었는데, 지금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광장 서쪽 부근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인민해방군 회군이 야심가 리샤오밍과 미국 정보부의 합작품이었다면, 지금 천안문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건 유재원 본인의 역할이 컸다.
정확하게는 멍텅구리로 만들어 버린 황금방패로 인한 후폭풍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양안대전의 참패부터 정보 통제가 심하게 이뤄졌을 중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신의주에서의 인민해방군 회군까지도 중국 내 인터넷을 통해 십억이 넘는 중국인들에게 단 하나의 검열도 없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다.
검열이 되지 않은 생생한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이게 뭔가 싶었다.
-인민해방군 현대화 사업비는 누구 주머니에 들어갔나!
-종이호랑이도 저거보단 잘 싸우겠다.
처음엔 어마어마한 패배에 다들 분노했다.
-시진핑 일가 해외 은닉 재산 4천억 몰수!
-단위 잘 봐라. 위안화가 아니라 달러란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시진핑 일가의 자산 몰수 뉴스가 뜨자 키보드에 모터 달고 온갖 막말을 쏟아냈던 이들이 순간 멈췄다.
그때만 해도 시진핑에 대한 비판은 금기였으니 말이다.
시진핑 사진에 먹물을 뿌렸다고 공안에 잡혀간 뒤로 행방불명이 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해서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행방불명의 원인이 밝혀진 것이 다행일 만큼, 이유도 파악하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렇지만 모든 중국의 네티즌들이 겁쟁이는 아니었다.
특히 스타링크 유저들의 반골 기질은 남달랐다. 이러한 차이는 적극성에서 나왔다. 자유로운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 짝퉁이지만 위성 인터넷을 설치하고, 스타링크에 접속한 사람들이었다.
그야말로 적극적 의사 표명 성향이 있었다.
-인민 대표들에게 진실을 요구하자!
이들은 전국인민대표회의가 진행 중이라는 것에 주목했고, 인민 대표들에게 본인들의 뜻을 전달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가 인민대표회의가 진행 중이었으니 이들에게 현안 질의를 요청하자고 이야기가 모아진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중국 인민대표회의가 진행되는 장소인 인민대회당은 천안문 광장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이자는 글도 천안문 광장이 아니라 인민대회당 앞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 숫자가 많진 않았다.
인터넷 번개 정모가 그렇듯, 커뮤니티 내에서 활발하게 의견이 쏟아져도 오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중국은 큰 나라답게 모수가 엄청나게 커서 오프라인까지 나온 사람들이 100명은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긴 건 바로 황금방패가 무력화되면서였다.
중국 내 스타링크 사용자가 3천만 명은 넘는다고 했지만, 중국 전역에 흩어진 숫자였다. 서해와 접한 해안 도시에 밀집하고 있다고 해도 광둥부터 베이징까지 또 분산되어 있었다.
그러니 소수에 불과했는데, 황금방패 무력화로 인해 진실을 보게 된 이들이 10억 명이 넘었다.
이들의 성향은 수동적이었지만, 숫자가 압도적이다.
원래대로라면 인민 대표들에게 진실을 요구하자는 목소리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중국 근현대사를 보자면 튀는 목소리를 냈다간 다 죽었으니 말이다.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그리고 천안문 사태까지.
개혁 개방 이후 중국에서는 과거의 이야기를 금기했지만, 그렇다고 잊힌 건 아니었다. 그러니 수동적인 대다수는 원래대로라면 적극적 참여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했다.
문제는 멍텅구리가 된 황금방패 검열 시스템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이런 글들이 공개된 인터넷에 올라오면 바로 삭제가 되었다. 그런데 인민대회장 앞에 모이자는 글은 몇 시간이 지나도, 하루가 지나도 살아 있었다.
그러자 수동적인 사람들은 수동적인 태도 그대로 생각했다.
공산당이 하는 일이구나 하고 말이다.
사람이 모이는 걸 꺼려 하는 공산당이지만, 지금처럼 시진핑이 궁지에 몰렸을 때에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모이기도 했다.
완전히 다른 해석이지만 결과는 같았다. 인민대회장 앞에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모이는 것이었다.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냐?”
이미 북부전구와 동부전구가 입을 맞춰 회군을 한 것부터 중국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와 같았다.
야전군을 끌고 베이징으로 들어가는데, 무혈입성이 가능할까? 내전은 기정사실인 것이다. 그런데 인민대회당 앞에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 있다면? 제2의 천안문 사태가 터지는 것도 기정사실이었다.
-유혈 사태 가능성이 70%를 상회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 골드가 유재원의 우려에 동의했다.
양자 슈퍼컴퓨터 퀀텀의 코어 일부가 추가된 골드에겐 거대한 사회와 같은 규모의 복잡한 시뮬레이션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70%라면 제2의 천안문 사태는 확정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공안들이 몰려나오는 중이었다. 아직 상부로부터 어떠한 지시를 받지 못한 모양인지 진압 작전 같을 걸 시작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위에서 지시만 떨어지면 언제든 행동에 들어갈 태세다.
황금방패의 무력화는 중국 사회에 뼈아픈 팩트 폭행을 가하기 위해 행한 조치였는데, 이게 제2의 천안문 사태로 이어질 조짐이 보이자 유재원도 당황했다.
중국의 상황은 엄중했다. 그런 상황에서 불의에 아니라고 모여서 말할 수 있는 이들은 특별했다. 시진핑에 정치적 치명타를 주기 위해 상하이방이 동원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저기에 모인 사람들은 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재원은 최선을 다해 유혈 사태를 피할 방법을 생각했다. 물론 본인과 한반도의 정세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평소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던 유재원의 두뇌도 이때만큼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골드, 너도 고민 좀 해봐라.”
-무엇을 말입니까?
-유혈 진압 가능성을 낮추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방법 말이야.“
결국 답이 나오지 않았던 유재원은 골드에게 물었다.
딱히 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도통 풀리지 않는 문제를 입으로 다시 풀어보면 어쩌다 해결책이 나오기도 했기에 해 본 행동이었다.
몇 초가 지나도 골드의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너도 답이 없지?”
본인의 고민을 골드에게 떠넘기려던 유재원은 몇 초가 지나도 답이 없자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아니요. 방법을 찾았습니다.
놀랍게도 인공지능 골드는 10초가 넘는 연산 끝에 가능성이 있다는 답을 내놓았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주말이네요!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시고 월요일에 다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