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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10화 (10/298)

< -- 초보 헌터 레트시(市) 적응기 -- >

헌터에 비해 라훌은 어쩔 수 없는 차별을 받는 부분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차별은 툴틱의 사용 여부다. 라훌은 툴틱을 쓰지 못한다.

그것은 툴틱이 이 행성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행성의 라훌 중에 누군가 툴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을 라훌들이 쓰는 것을 허락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술이 아직은 이 행성에 없다. 그리고 헌터들은 그런 기술을 퍼트리는 것에 제약을 받는다. 문명의 발달은 행성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진에게도 지구의 문명을 뛰어넘는 기술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몇 백 년 전에 이곳에 헌터들이 처음 왔을 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었다.

지만 라훌들이 태어나면서 이 행성 역시 하나의 문명권으로 인식 되면서 그 이상의 기술 전수가 금지되어버렸다. 어차피 에테르 때문에 전기전자 제품이 거의 쓰이지 못하는 데블 플레인의 문명 수준은 그렇게 높은 수준이 될 수가 없었고, 거의 그 상태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몇 백 년이 흘렀다.

이렇게 툴틱이 헌터의 전유물이 된 상황이라서 결국 에테르 코어라는 어마어마한 자원이 헌터들에게만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그것의 가치 환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 행성 내에서 에테르 코어는 쓸 곳이 별로 없다.

에테르 코어는 데블 플레인에서가 아니라 다른 외부 행성에서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획득한 라훌도 헌터와의 거래를 통해서 에테르 코어를 텔론으로 교환을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텔론으론 구입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라훌에게 필요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이 기술, 즉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라훌헌터의 입장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좀 더 나은 기술을 익혀야 좀 더 강력한 몬스터를 안전하게 잡을 수 있다.

에테르를 이용하는 방법. 그것은 강제로 각인을 시키는 방법으로 몸에 새겨진다. 그것을 아주 익숙하게 쓰게 되면 간혹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생체에테르바디를 받았을 때에 어느 정도 흉내를 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몇 되지 않고, 또 그런 사람도 제대로 된 기술을 쓸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몸에 새겨 넣은 것이지 기억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라훌 중에서 에테르를 이용해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이들 즉 라훌헌터들은 바로 그런 기술을 익히길 원한다.

몸 안에 에테르 기관은 없지만 그 대신에 선천적으로 에테르를 이용할 재능을 타고 난 그들은 기술의 각인을 받으면 그 기술을 오랜 연습을 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기술 습득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나은 기술은 더 나은 수입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술 습득의 기본 조건이 에텔론이다.

에텔론이 있어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그러니 기술을 배우고 싶은 라훌은 에텔론을 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에게 자신이 모은 에테르 코어를 맡기고 그 사람이 그 것을 에텔론으로 바꾼 다음에 그 라훌에게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믿을 수 있는 놈을 잡아서 부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헌터가 보증인이다.

"보증인이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나?"

"그동안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맞아. 세진, 우린 세진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세진은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서도 잠시 말이 없이 허공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래 그렇겠군. 만약 내가 딴 짓을 하더라도 에텔론은 날려도 복수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나를 선택한 일면도 있겠어. 안 그래?"

세진은 최악의 경우 자신을 죽여서 복수를 할 가능성도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은 초보 헌터에 불과하고 아직 에테르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자신이 알프론과 제이앤이 넘긴 에텔론을 가로챈다고 해도, 어느 순간 두 사람 중에 누군가의 공격으로 의체를 잃게 될 확률이 높았다.

당연하게도 그런 정당한 복수의 경우에는 라훌을 처벌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선 라훌과 헌터를 역차별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헌터와 달리 라훌은 이곳의 삶이 진짜 삶이고, 헌터는 가짜라는 차이를 인정하는 까닭이 아닌가 하고 세진은 생각하고 있었다.

"복수 따위를 생각해서 초보 헌터를 고른 것은 아니에요. 그저 함께 성장하면 좋을 것 같아서 초보를 고른 거예요. 이번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린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증인이 필요하니까요."

제이앤은 세진의 예상과 다른 대답을 했다.

그 대답을 듣고 세진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했다.

초보 헌터인 자신과 자신보다는 조금 나아 보이지만 역시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알프론과 제이앤이라면 확실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술들을 익힐 필요가 있었다.

보증인 역할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또, 헌터들에게만 제공되는 몇 가지 도구들을 함께 쓸 수 있다면 우리도 훨씬 위험 부담을 줄일 수 있으니까 아예 처음부터 함께 사냥을 다닐 헌터를 구하는 거야. 이건 헌터와 라훌헌터 사이의 편견을 넘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사실 그것만 넘을 수 있다면 서로 이익인 일이라고."

가만히 지켜보던 알프론이 눈을 반짝거리며 세진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헌터들에게만 제공되는 것들 역시 에텔론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상처를 빠르게 치료하는 치료 캡슐과 같은 것이다.

"그래, 어느 순간 너희가 배신하지 않으면 서로 이익이랄 수 있겠지."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함께 하는 것이 이익인데 굳이 당신을 배신할 이유가 없죠."

"맞아. 맞아."

제이앤의 말에 알프론이 맞장구를 친다. 하지만 세진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화이트 코어는 절대 나와선 안 되겠군. 그 정도면 언제든 등 뒤를 찌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이런 세진의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은 듯이 조용해진다.

화이트 코어는 사실 엄청난 가치 때문에 언제나 이야기를 몰고 다니는 물건이다. 물론 헌터들끼리의 파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라훌이 끼어 있는 상황이면 종종 문제가 생기곤 한다.

어떤 경우에는 헌터가 에텔론을 그냥 꿀꺽하고 분배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에텔론으로 교환을 하기 전에 라훌이 헌터를 해치는 경우가 있다.

헌터가 라훌의 에텔론을 삼키는 경우는 라훌이 스스로 알아서 자력구제를 해야 한다.

그 헌터를 잡아 죽이거나 어쩌거나 수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라훌이 헌터를 해친 경우에도 그것을 헌터가 입증하지 못하면 유야무야 넘어간다. 이 경우 헌터룸의 관리 프로그램이 저장한 기록은 열람이 되지 않는다.

그 기록은 오로지 헌터끼리의 문제를 해결할 용도로만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욕심은 언제나 불화의 씨앗이 되는 것이니까.

알프론과 제이앤도 화이트 코어라는 말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좋아요. 만약에 화이트 코어가 나오면 그 처분은 무조건 세진 당신에게 맡기겠어요. 그걸 혼자 가지고 간다고 해도 인정하겠다는 이야기에요."

"마, 맞아. 우린 그렇게 하기로 했어. 이, 이미 이야기 했던 부분이라고. 나는 딱히 찬성하고 싶지 않지만 제이앤이 그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헌터를 보증인으로 삼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라고 했어."

"그리고 더 있어요. 세금 30%를 제외한 에텔론 중에서 절반은 당신에게 주겠어요. 그 나머지를 우리 둘이 나눠 가지는 조건이에요. 아마 당신이 초기에 성장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린 적어도 지금의 당신 보다는 훨씬 뛰어난 헌터들이니까요."

"그리고 이번에 몇 가지 기술들을 익힐 수 있다면 더 뛰어난 헌터가 될 수 있을 거야. 세진. 그러니까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라고. 이건 너에게도 큰 이익이야. 세진."

알프론은 아까의 의기소침한 기색은 씻은 듯이 사라진 모습으로 의욕적으로 세진을 설득하고 있었다.

세진은 두 사람의 말에 무슨 함정이 있는지 살피면서 함정이 아니라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세진을 두 사람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세진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에텔론 환전을 하게 되었다.

그의 곁에는 알프론과 제이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제 더 숨길 것이 없다는 듯이 알프론과 제이앤은 헌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세진은 그들과 파티가 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영원히 혼자 지낼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그것이 헌터라면 조금 더 안전하겠지만 위험한 라훌은 더 큰 이익을 보장해 주었다.

더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정도 때가 될 때까지는 알프론이나 제이앤이 먼저 배신을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익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알프론이나 제이앤이 욕심을 내서 세진의 등을 찌를 상황이 될 때까지는 안전하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세진은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세진은 두 사람과 함께 에텔론 상점에 온 것이다.

이곳에서 코어를 에텔론으로 바꿀 수 있고 또 에텔론으로 구입 가능한 것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세진이 두 사람과 함께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상점 직원이 인사를 하며 세진 등을 반긴다.

세진은 그런 직원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한다. 그 직원이 로봇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원하시는 서비스가 어떤 종류입니까?"

직원이 세진을 보며 묻는다. 세진만이 툴틱을 지니고 있으니 알프론과 제이앤은 직원의 관심 밖인 것이다.

"환전 후에 스킬 구입."

"알겠습니다. 이리 오십시오."

직원은 세진을 데리고 상점 안의 여러 칸막이 공간 중에 한 곳으로 데리고 간다.

"코어를 주십시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자 세진 등이 들어온 입구를 커튼 같은 것으로 가린 점원이 세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세진은 알프론에게 받아 두었던 코어 주머니를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그 안에는 그동안 알프론과 제이앤이 사냥해서 모아 둔 빨간색 등급의 코어들이 들어 있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직원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코어들을 하나씩 꺼내서 확인을 했다.

"코어의 가치는 모두 합쳐서 136에텔론입니다."

코어를 모두 확인한 점원은 그렇게 가치 환산을 했고 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한 것과 그리 차이가 없는 액수가 나온 것이다.

"여기 두 라훌족에게 기술 목록을 보여 주도록."

"알겠습니다."

세진의 말에 직원은 특별한 반응이 없이 기술 목록을 보여준다.

목록은 직원의 손끝에서 비춘 빛이 벽에 화면을 만드는 방법으로 제공되었다.

"둘이서 필요한 것을 찾아 봐."

세진은 알프론과 제이앤에게 선택을 맡기고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상태로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초에 선택의 폭은 좁았다.

가지고 있는 에텔론이 워낙 적은 탓도 있었고, 알프론과 제이앤이 이리저리 알아보고 미리 매입할 스킬을 정해 온 상황이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어떤 스킬들이 제공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리저리 스킬 목록을 살피느라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다.

알프론과 제이앤은 무기에 에테르를 조금 더 강하게 실을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알프론은 민첩성을 올리는 스킬을 배우고 제이앤은 생체에테르를 강화하는 스킬을 배웠다.

사실 그것들은 거의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배우지 않으면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런 기초 기술들이 저들의 몸에 새겨지면 그만큼 에테르가 움직일 수 있는 통로가 개척이 되고 또 기존의 통로가 넓어지게 된다. 물론 이후에 더 나은 기술들을 익히는 바탕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선택하신 기술의 가격은 80에텔론입니다."

점원이 두 사람이 선택한 스킬의 가격을 이야기했고, 세진은 그 값은 내가 바꾼 에텔론에서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후에 점원은 세진 등이 들어온 맞은편 벽에 새로운 문을 만들어서 알프론과 제이앤을 데리고 들어갔다.

저 안쪽으로 가면 헌터룸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듀풀렉 게이트를 타고 행성 밖으로 나가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킬 각인을 받은 후에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곳 행성에선 각인에 필요한 복잡한 장치들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세진은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기다려서야 알플론과 제이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뭔가 굉장히 흥분한 기색이었다. 하긴 무사히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으니 기쁘기도 할 것이다.

"고마워 세진."

알프론이 활짝 웃으면서 그렇게 인사를 했고, 제이앤도 고개를 까딱거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세진은 세금과 기술 각인비용에 게이트 이용료까지 털리고 한 자리 숫자가 남은 에텔론을 툴틱으로 확인하면서 에텔론 상점을 나섰다.

이번에 세진이 얻은 이익은 그렇게 남은 몇 푼의 에텔론이 전부였다. 하지만 앞으로 셋이 파티를 이루고 사냥을 시작하면 지금처럼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는 것 보다는 수입이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세진은 그런 희망을 가지고 알프론과 제이앤이 지낸다는 거처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함께 생활하며 수련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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