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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노트-13화 (13/298)

< -- 초보 헌터의 헌팅 -- >

사냥은 세진이 보기에도 답답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첫 사냥에서 세진이 판단했던 것처럼 아도보 한 마리는 제이앤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몇 번 사냥을 하면서 확인한 결과 알프론도 혼자 한 마리의 아도보를 책임질 능력이 충분했다.

그러니 두 마리씩 나오는 아도보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알프론과 제이앤은 끈질기게 한 마리씩 나타나는 아도보를 기다렸고, 짝을 지어 나타나는 경우엔 절대 사냥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세진은 알프론과 제이앤이 무척 조심스럽고 또 겁이 많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안전한 사냥을 하는 것이야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진이 끼지 않아도 두 사람이 두 마리의 아도보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한데 굳이 한 마리만 고집하는 모습에 답답함을 넘어서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지만 이제 첫 사냥에 나온 세진이 두 사람에게 무어라고 충고를 할 입장은 전혀 아니어서 입을 다물고 상황만 지켜보며 두 사람을 따라 다녔다.

"이야! 나왔다"

그러던 중 여섯 번째 사냥에서 드디어 코어가 나왔다.

붉은색 등급의 코어니까 대략 4에텔론에서 6에텔론 사이의 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텔론으로 계산하면 400만에서 600만 텔론이다.

세진은 알프론이 내미는 코어를 받아들고 한숨을 쉬었다. 그 하나가 이전에 허르렛일을 하면서 두 달을 모은 텔론보다 더 가치가 있는 물건인 것이다.

지난날을 생각하니 한숨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자자, 가자. 아직 여유가 있어. 앞으로 서너 번은 더 사냥을 할 수 있겠네."

알프론이 신이 나서 앞서 걸음을 옮긴다.

그 뒤를 제이앤과 세진이 따라 걷는다.

"왜 두 마리 아도보를 피하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렇게 대기 장소로 돌아가는 중에 의외로 제이앤이 세진에게 말을 걸었다.

"궁금하긴 하지. 하지만 무슨 이유가 있겠지. 괜히 그러는 건 아닐 테니까."

세진은 내심 답답했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고맙군요. 그렇게 생각을 해 준다니. 하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앙금이 쌓일 테니까 설명을 해 줄게요. 이유는 간단해요. 나와 알프론이 한 마리의 아도보는 상대할 수 있지만 두 마리는 상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세진은 제이앤의 말을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멀뚱하게 제이앤을 바라봤다.

"부족 몬스터들은 간혹 협공을 할 때가 있어요. 아도보도 그런 종류 중에 하나죠. 어느 한 쪽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다른 쪽이 동족을 돕기 위해 나선다는 거예요. 그러니 재수 없으면 한꺼번에 두 마리를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요. 그런데 나나 알프론은 아직 그런 상황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다는 자신이 없어요. 작은 상처라도 입게 되면 그만큼 전력에 차질이 생겨요. 그래서 한 마리의 아도보만 고집하고 있는 거예요."

세진은 제이앤의 자세한 설명에 그제야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너무 단순하게 상황을 보고 있었다고 반성했다. 몬스터 사냥에서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을 수 있는지 아직 그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초보, 그것도 생초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말은 쉬운데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젠장.'

세진은 할 말을 마치고 묵묵하게 걷기만 하는 제이앤의 옆모습을 살짝 살피다가 제이앤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 놀라서 고개를 바로 했다.

"천천히 걷는 소가 천 리를 간다.

"뭐라고요?"

세진이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한 말을 스치듯이 들은 제이앤이 뭐라고 했는지 되물었다.

"아닙니다. 혼자서 한 말입니다. 천천히 걷는 소가 천 리를 간다는 말이죠. 천천히 그러나 묵묵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목표에 닿는다는 뜻입니다."

"좋은 말이네요. 그래요. 우린 지금 천천히 걷는 소인 거예요. 하지만 언젠가 소도 달릴 때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한 번 달리기 시작하면 무서운 것이 소죠."

제이엔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고개를 앞으로 향했고, 세진도 시선을 바로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은 느린 소처럼 가자. 아직은.'

세진을 그렇게 다짐했다.

실전이 왜 필요한가?

세진은 열흘 동안 이어진 사냥에서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허공에 창을 아무리 찔러봐야 생체에테르를 지니고 있는 몬스터의 몸뚱이 한 번 찌르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다가 어느 정도 사냥에 익숙해진 후로는 세진 혼자서 아도보를 상대하는 연습도 했는데 그 때에 아도보의 단검이 세진의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와서 하마터면 큰 상처를 입을 번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세진은 단검에 찔리고도 큰 상처가 없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세진의 몸에 흐르고 있는 에테르 때문이었다.

"경험을 해 봤으니 알겠지만 세진의 몸에 흐르는 에테르는 몬스터의 공격에 담겨 있는 에테르를 상쇄시키는 효과가 있어. 그러니까 몸 안의 에테르가 강하면 강할수록 몬스터의 공격을 버티는 능력이 강해지는 거지."

그 때, 알프론이 세진에게 그렇게 설명을 해 줬다. 그리고 세진의 상처가 크지 않은 이유가 세진이 상대하던 아도보는 이미 오랫동안 싸우는 바람에 에테르를 거의 소진한 상태였기 때문이란 설명도 했었다.

그렇게 몬스터에게 찔리는 첫 경험을 한 후로는 힘이 빠진 아도보를 상대로 1:1 실전 대련을 할 기회도 자청해서 얻었다.

그런 시간 덕분에 세진은 몸 안의 에테르를 제법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헌터로 성장했다.

단 열흘이었지만 세진에겐 엄청난 발전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열흘간의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세진의 품속에는 붉은색 등급의 에테르 코어 열 한 개가 들어 있었다.

운이 좋았던 건지 이번 사냥에선 평균 여섯 마리의 아도보를 처리하면 코어 하나가 나왔다. 열 마리에 하나가 나오는 평균적인 확률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인 셈이다.

어쨌거나 세 사람은 레트시로 들오자마자 에텔론 상점부터 들렀다. 괜히 코어를 들고 있어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코어는 분실할 수 있지만 툴틱에 들어 있는 것은 누구도 억지로 빼앗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코어를 환전하는 것은 기본적인 행동 요령이다.

열 한 개의 에테르 코어는 59에텔론으로 교환이 되었다. 그리고 세진은 알프론과 제이앤의 동의를 얻어서 스킬을 익혔다. 무기에 에테르를 더 쉽고 빠르게 담을 수 있는 기술과 몸에 에테르를 더 담아서 방어력을 키울 수 있는 스킬로 전에 제이앤이 배웠던 것과 같은 것을 세진도 배우기로 한 것이다.

게이트 이용료와 스킬 각인비용까지 50에텔론이 들었는데 30% 세금 때문에 에텔론이 모자랐지만 전에 남았던 한 자리 숫자의 에텔론 덕분에 겨우겨우 기술을 각인할 수 있었다.

세진은 기술의 각인이란 것이 무척 궁금했는데 일단 한 번 당해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몸 안의 혈관을 강제로 확장하는 것처럼 에테르가 지나다닐 통로를 억지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통로로 에테르가 어떻게 흘러 다녀야 하는지를 기억에 새겨 넣는 그런 과정이 각인이었다.

그러니 통로가 없어도 기억에 의존해서 통로를 만들 수도 있고, 그래서 헌터 중에서 새로 각인을 받지 않아도 예전에 익숙하게 썼던 스킬들을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게 되는 거란 사실을 세진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도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고통은 마비시켜서 느낄 수 없게 했다지만 그래도 뭔가 자신의 몸 안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여서 에테르의 통로를 만들어 내는 느낌은 소름이 돋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세진이 스킬을 각인한 후, 세 사람은 당분간 집에 틀어 박혀서 수련을 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알프론과 제이앤도 아직 이전에 각인한 스킬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은 아니라면서 수련을 해야 한다고 했다.

둘은 각인된 스킬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특히 라훌의 경우에는 에테르 기관이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테르를 이용하는 재능을 타고 난 것이기 때문에 각인 후에 그것을 숙련시키는데 헌터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다시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날 밤, 세진은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열흘간의 사냥 때문에 몸이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똑똑!

침대에서 뒤척이던 세진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이런 경험이 이전에도 있었다.

"누구야?"

세진이 낮은 목소리로 문을 향해 물었다.

"저예요."

같은 상황에 같은 사람이었다.

다만 전과 달리 제이앤 특유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꾸미지 않은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세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램프 등에 불을 밝히고 문을 열었다.

램프를 들고 있는 세진 때문에 문 앞에 서 있는 제이앤의 모습이 흔들려 보였다.

"무슨 일이야? 들어와."

세진은 제이앤을 방으로 들였다.

말없이 들어온 제이앤은 세진의 침대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쩐 일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나를 찾아 온 거야? 할 말 뭔데?"

세진도 램프를 벽에 붙은 선반 위에 올리고 침대 머리맡에 앉으며 제이앤에게 물었다.

"사냥이 끝났어요."

"그렇지."

"첫 사냥을 하고 나면 헌터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충격을 받아요."

"그런가? 난 별 충격이 없는 것 같은데?"

세진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사냥 때문에 받은 충격은 없는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고, 뒤척이게 되죠. 그리고 잠이 들어도 사냥 장면들이 자꾸 떠올라요. 그리고 몬스터가 죽는 장면들이 떠오르고 자신이 사냥에서 위험에 처했던 장면들도 떠오르죠."

"그런가? 난 아직 잘 모르겠는데? 뭐 아직 잠들지 못한 건 맞는 말이지만."

세진은 제이앤을 보며 뚱하게 반응했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그래요. 그건 라훌헌터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우리 라훌헌터들은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을 마련했어요."

"그래? 그 방법이 뭐지?"

세진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제이앤이 침대에서 일어나서 입고 있던 헐렁한 잠옷의 어깨띠를 풀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잠옷은 제이앤의 발치로 떨어지고 세진의 눈앞에는 탄탄한 제이앤의 나신(裸身)이 펼쳐졌다.

"으음."

세진은 간신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 방법이란 것이?"

"맞아요. 성적인 유희는 마음과 몸의 긴장을 풀어주죠. 만약 그대로 풀어주지 않으면 팽팽하게 당겨진 철사처럼 버티다가 어느 순간 끊어져요.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어요. 갑자기 미쳐버리는 경우죠. 몸의 긴장도 문제지만 마음의 긴장은 특히 중요해요. 아닌 것 같아도 세진의 마음은 상처를 받았을 거예요. 뭔가를 죽이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신적인 충격을 주기 마련이에요."

"그런가?"

세진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몬스터니까 당연히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살육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죽인 몬스터의 수가 70마리에 가깝다.

자신은 느끼지 못해도 정말 그 정신적인 충격이 누적되어 쌓여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내 말을 믿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와 세진이 가까워지면 서로에게 좋을 거예요. 헌터와 라훌이라는 구분보다는 연인 사이로 묶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요?"

"그런 의도도 있나?"

"그걸 바라긴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세진은 나와 함께 자야 해요. 그게 세진에게도 우리 파티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세진만 좋은 건 아니에요. 나도 이런 기회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죠. 그러니 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건 차후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해도 될 문제니까요."

'알프론과도 이런 관계인 건가?'

세진은 그런 질문이 나오려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면서 제이앤이 알프론과도 잠자리를 했다면 자신이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 제이앤이 알프론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찾아 온 거라면 도리어 제이앤과의 잠자리가 더 기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자, 긴장을 풀어요. 이렇게요."

제이앤이 다시 침대 위로 올라오며 무릎걸음으로 세진에게 다가왔다. 벽에 붙은 램프의 조명 때문에 제이앤의 벌거벗은 몸에 있는 굴곡이 더욱 깊어 보였다.

세진은 굳이 제이앤을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세진은 침대에 올라가며 제이앤의 입술에 깊은 키스를 했다.

제이엔이 매끄럽게 손을 놀려 세진의 옷을 벗겨 내기 시작하자 세진도 호응해서 옷을 벗었다. 이내 둘은 침대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서로를 껴안고 뒹굴었다.

뜨겁고 부드러운 제이앤의 육체는 세진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고, 벽 선반에 놓은 램프 불꽃은 바람도 없는데 심하게 흔들리다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남은 것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살결 스치는 소리와 간혹 급하게 멈추는 호흡 소리뿐이었지만, 어둠은 길고 길게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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