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unter room - 귀환 -- >
게이트에 빠진 세진이 나타난 곳은 지구에 있는 세진의 방이 아니라 지하창고였다.
세진은 게이트 이용에 여유가 생기자 곧바로 이곳 창고에 있는 석판들을 떠올렸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뭐 변한 것은 하나도 없네. 그런데 그 돌덩어리들도 에테르로 작동하는 거 맞겠지?"
세진은 조금 걱정을 하면서 석판들이 붙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전에 봤던 그대로 석판들이 벽에 가지런히 붙어 있었다.
"어디 보자. 접촉을 하라고 했지?"
세진은 배낭의 옆구리 주머니에서 에테르 저장 장치 하나를 꺼내서 석판에 닿게 했다.
러자 은빛의 에테르 저장장치에서 은색 빛이 생겨서 석판으로 흡수되었다.
세진이 보기에는 저장장치에서 은빛 가루가 날려서 석판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저장장치의 은색 부분이 약간씩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은빛 밑으로는 흑갈색이 조금씩 드러났다.
"이렇게 남은 에테르 용량을 확인하게 되어 있나? 숫자로 표시하는 것 보다는 좀 아날로그 적이지만 그래도 딱 보면 알 수 있도록 해 뒀네."
세진이 중얼거리는 동안에 석판으로 흡수되던 은빛 가루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거 석판 충전이 끝났다는 이야기지? 자, 그럼 어디 제대로 공부를 시작해 볼까?"
세진은 석판에 손을 대고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내용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워낙 방대한 내용을 한꺼번에 알게 되는 것이라 놓치는 부분도 많았지만 이전에 한 번 들어서 기억하던 것도 있고 하니 조금 더 많은 내용을 기억할 수 있었다.
세진은 벽에 붙어 있는 모든 석판들을 한 번씩 다 확인하며 석판 밑에 쪽지를 붙여서 석판의 내용들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기초 상식, 오러 운용법, 마법과 마법진, 에테르 활용법.
세진은 석판의 내용을 그렇게 네 가지로 분류했다.
그리고 기초 상식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다시 초급, 중급, 상급의 세 단계로 구별해서 꼬리표를 석판 밑에 달아 두었다. [기초 오러 운용법] [중급 에테르 활용법] 등과 같은 꼬리표를 석판 밑에 달아 놓은 것이다.
"자, 이젠 먼저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겠지? 일단 상식부터 하자. 적어도 상식적인 인간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세진은 썰렁한 말장난을 하며 기초 상식 딱지가 붙은 석판에 다시 손을 올렸다.
이전에는 석판 하나에 한 번 손을 대는 것으로 끝이었지만 이번에 에테르를 충전시킨 이후로는 몇 번이고 석판의 내용을 살필 수가 있었다.
거기다가 기초 상식 석판에는 이곳의 석판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도 설명이 되어 있어서 이전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도 줄일 수 있었다.
짧게 끊어서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이곳의 지식을 머리에 담아서 가지고 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세진에게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세진은 주섬주섬 쓰레기들을 배낭에 챙겨 넣고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곳 지하창고에선 시간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곧 부모님께서 돌아오실 시간이 된다.
세진은 이곳에서 구정 연휴를 모두 보낸 것이다.
"참, 길고 긴 구정이었네."
세진은 배낭을 어깨에 걸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번 구정 기간에는 다른 행성에서 헌터로 지냈던 기간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모르는 세진만의 기나긴 시간이.
그리고 팔찌를 이용해서 게이트를 열었다.
"이젠 안 당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이트를 그렇게 발밑에 꼭 만들어야 했나?"
세진은 그 이유가 팔찌를 소유하게 된 사람을 억지로 이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몇 번이나 추락하는 경험을 한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든 게이트 입구는 세진의 앞쪽에 있었다. 회색의 평판 같은 것이 세진의 한 걸음 앞에 나타났다.
크기는 세진이 의도한 대로 한 사람이 걸어서 들어가도 걸리지 않을 정도의 높이와 넓이였다.
세진은 거침없이 게이트 입구를 향해 걸었고 두 걸음을 걷고 세진이 멈췄을 때, 그는 그의 방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돌아왔다!"
세진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뭐야? 누가 있어?"
그런데 그 고함에 문밖에서 세진의 부모님이 화들짝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아직 오실 때가 안 된 거 아닌가? 내가 시간 계산을 잘못했나?'
세진은 다급하게 머리를 굴렸지만 어찌 해 보기도 전에 세진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야, 너 이 자식아 너는 도대체..."
세진의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뭐라 소리를 치려다가 세진의 꼴을 보고는 입을 다무셨다.
"아니, 얘가 지금 그게 무슨 꼴이니? 방에서 군화는 왜 신고 있어? 거기다가 활과 화살은 또 뭐고? 배낭까지? 여보 쟤 꼴이 왜 저래요?"
어머니도 아버지 뒤에서 따라 오시다가 깜짝 놀라신 모양이다.
"하하하, 제가 여행을 갔다가 지금 막 들어와서요. 그래서 이 모양입니다."
세진은 되지도 않을 변명을 늘어놓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방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와?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게냐? 정신 머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
아버지는 세진의 꼴에 더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밖으로 나가셨고, 다행스럽게도 뭔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어머니의 팔도 잡아끌고 억지로 데리고 나가셨다.
세진은 그런 아버지에게 내심 고마움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하루 일찍 오셨단 말이에요? 그것도 제가 걱정이 되어서?"
"그렇다니까 그러네. 그런데 와 보니까 너는 없고, 집은 조용하고 그러지 뭐니."
"뭐 좋더구만. 오랜만에 푹 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피곤하고 그래서 좀 쉴까하고 누웠는데 네 고함소리가 들리지 뭐니. 그래서 부랴부랴 뛰어 나온 거였지."
"아, 그렇군요. 그것 참, 저도 정신이 없었는지 신을 신고 방으로 들어갔네요. 아하하."
세진은 짐을 대충 정리하고 거실에서 부모님과 마주 앉아서 지나간 구정 연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필이면 부모님께서 여행을 간 나라에서 내전이니 뭐니 해서 치안이 급속도로 나빠진 탓에 외무부에서 여행객들을 서둘러서 귀국하도록 지침을 내렸단다.
뭐 그래도 신경 안 쓰는 인간들이 많지만 부모님이 끼어 있는 일행을 맡은 여행사는 외무부의 권고를 받아들여서 일정을 줄이고 조기 귀국을 결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하루 일찍 귀국을 하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별로 불만이 없으신 모양이었다.
"덥기는 왜 그렇게 더운지. 거기다가 모기가 아주 극성이야. 극성. 여긴 이렇게 추운데 말이다."
어머니는 열대지방과 한국의 겨울 날씨에 제대로 적응이 되지 않으시는지 그렇게 투덜투덜 하시면서도 사람은 계절 변화에 맞게 살아야 하는 거라고 한 마디 하신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다.
그래도 추석에는 어디로 갈까 궁리를 하시는 것을 보며 세진은 그저 웃을 따름이다.
"그런데 너는 어딜 다녀온 게냐?"
잘 익은 파인애플 조각을 포크로 찍어 들면서 아버지가 세진에게 묻는다.
"혼자 집에 있기도 심심하고 해서 동호회 번개 모임이 있다고 해서 겨울 사냥을 나갔다가 왔습니다."
"그거 안 하지 않았어?"
"그냥 아직 회원으론 등록이 되어 있어서요. 그래서 간다고 했던 와도 된다더라구요. 그래서 비박용품까지 모두 꺼내서 한 번 갔다 왔죠."
"그래? 그래서 사냥은 했고?"
"웬걸요. 허가가 안 나서 비박도 겨우겨우 했습니다."
"원, 준비를 제대로 하고 사람들을 모으든지 하지. 괜한 헛걸음을 하지 않았어?"
어머니께서 동호회의 허술한 준비를 타박하신다.
세진은 자신의 거짓말 덕분에 엉뚱하게 어머니의 타박을 들은 남모를 사람들에게 잠시 미안한 마음을 가져본다.
"그래 마음 정리는 어느 정도 한 게냐?"
아버지는 세진에게 그렇게 물었다.
당신 생각에는 세진이 한동안 방황을 하다가 이번 연휴에 어느 정도 해갈을 했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쉬이 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문제인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서 결정해라. 이제 네 인생에 우리가 간섭할 때는 지났으니 네가 알아서 해야지."
"이이는 무슨 그런 말을 해요? 세진아 뭐든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해라.
부모가 뭐겠니. 내일 죽어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못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응?"
세진은 어머니의 말씀에 코끝이 시큰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소리를. 이제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해야지. 세진아 분명히 말하는데 우리 가진 거 없다. 우리 늙어서 여생 편히 지낼 정도도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손 내밀지 마라.
응? 어이쿠, 아파! 이 사람아."
"이이가 아까부터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겠어요? 세진이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 아이도 아닌데 말이라도 좀 좋게 하면 얼마나 좋아요?"
'은근히 어머니가 더 무서운 것 같아. 손을 내밀 아이도 아니라니.'
세진은 적당하게 인사를 하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두 분의 정겨운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고, 또 방에서 확인할 일도 있었다.
세진은 어리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서 에테르 저장 장치를 꺼내들었다.
"자, 니가 그렇게 대단한 놈이라면 어디 능력을 보여 봐라.
내가 너에게 내 운명을 걸어도 될지 어떨지 알고 싶다."
세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에테르 저장 장치를 어리의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도 역시 은빛의 가루가 어리의 몸통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전에 석판이 에테르를 받아들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빠르게 저장 장치의 은색이 줄어들었다.
"와우 어마어마한데? 가만 이게 하나의 1천 에텔론이니까 1에텔론이 100만 텔론이면 컥, 10억 텔론짜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는 거야? 참, 텔론 허무하네."
비록 다른 곳에서는 쓰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생체에테르바디로 활동하는 행성에서만 사용 가능한 화폐라고 하지만 그 액수가 10억이란 생각을 하니 무척 아까운 생각이 드는 세진이다.
하지만 어리라는 이 테라포밍 기계를 잘만 이용할 수 있으면 뭔가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세진은 10억 텔론이 날아가는 것을 꿋꿋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자, 어서 어서, 응? 먹었으면 무슨 변화가 있어야지?"
세진은 석판의 상식에서 테라포밍에 대해서 얼마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것이 정말이라면 이 작은 기계가 화성을 지구처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어리라는 이 작은 기계에 거는 기대가 사뭇 대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띠리릭!
"왔다.
왔꾸나!"
세진은 어리에서 짧은 소리가 들리자 소리죽여서 환호성을 올렸다.
뭔가 변화가 생겼으니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는 여전히 에테르를 흡수하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에테르 저장장치 하나가 완전히 비어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저장장치 자체가 형체를 잃고 어리에게 흡수되어 버렸다.
"뭐야? 그러니까 에테르가 없어지면 저장장치도 사라지는 거였어? 1회용?"
세진은 저장장치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
"어쨌거나 이제 이놈이 에너지를 먹었으니 무슨 변화가 있어야 할 텐데? 어디보자."
세진은 어리를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피면서 에테르를 흡수한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결국 어리의 정수리 부분에 예전에 없던 둥근 표시가 생긴 것을 확인했다.
"이거 딱 봐도 눌러주세요. 내지는 만져주세요. 하는 거지?"
세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새끼손톱 크기의 형광색 표시를 검지로 살짝 눌렀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세 편은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글은 새벽에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