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9화 (19/298)

< -- 어리와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 -- >

세진은 이런 저런 고민 끝에 UCC제작에 들어갔다.

대상은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였다.

어리가 만든 모형은 그냥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눈으로 겨우 보일 정도로 작은 자동차 키를 돌리면 모형에 시동이 걸린다.

이때는 반드시 자동차 기어를 중립으로 놓은 상태여야 한다. 아니면 보통의 수동 자동차가 그러하듯 엔진과 기어가 맞물리는 충격에 시동이 걸리지 않고 꺼지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다. 6789cc에 직렬 6기통 엔진을 달고 있는 것이 메르세데스 벤츠 680S다.

어리는 이 엔진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작은 크기로 만들어서 말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는 말 그대로 오리지널 차를 그대로 줄여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개폐가 가능한 지붕도 원래 천으로 만든 재질을 그대로 살려서 만었고, 당연히 실제와 같이 열고 닫을 수 있다.

세진은 그 작은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는 것에서부터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변속하고 엑셀을 밟아 속도를 높이는 것까지 영상으로 찍어서 UCC로 제작해서 인터넷에 올렸다. 물론 자동차가 직접 달리는 것을 찍을 수는 없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는 무선 조종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행 장면을 찍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대신에 네 바퀴가 바닥에 닿지 않게 자동차의 밑에 받침대를 깔고 자동차 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찍었다.

만약 이 차가 지붕이 열리는 오픈카의 형태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시동을 걸거나 기어를 바꾸고 이쑤시개로 페달을 밟는 것도 시연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율이 높은 렌즈까지 빌려서 찍은 영상은 처음 차만 나왔을 때에는 그것이 미니어처라는 것을 절대 알아볼 수 없도록 정교했다.

그런 화면에서 갑자기 커다란 손가락이 나타나서 핀셋으로 자동차 키를 돌리고 이쑤시개로 클러치와 엑셀을 밟는 장면에선 누구도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세진은 기대했다.

그렇게 공을 들인 동영상이 UCC가 되어서 인터넷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세진의 영상이 올라가고 며칠이 지났을 때, 세진은 자신이 정말로, 아니 자신의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가 정말로, 엄청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TV뉴스에서 보도가 되기도 하고, 컴퓨터 화면이나 스마트폰 화면에도 종종 자신의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가 등장했다.

세진은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올린 영상을 보며 신기하게 여기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세진에게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를 팔 생각이 없느냐는 구입 의사가 전해졌다.

처음 세진에게 온 메일에 적인 액수는 그리 크지 않았다. 환전을 하면 몇 백 만원 정도여서 세진도 그리 내키지 않는 액수가 대부분이었다.

메일의 수는 제법 많았지만 대부분 고만고만한 액수를 적어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열흘째가 되면서 전혀 다른 단위의 액수가 적힌 구입 의사들이 전해졌다.

"7억 8천 만 원? 이건 어떤 미친놈이야?"

세진은 그런 메일 중에서 하나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메일에는 원화로 7억 8천 만 원이 적혀 있었고, 인도 장소도 서울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만나서 거래를 하자는 이야기였다.

세진은 그 메일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는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의 가격을 최고 5천 만 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것도 많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 680S 오리지널의 가격을 생각하면 미니어처라도 희소성을 따져서 5천 만 원 정도는 받아도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7억 8천 만 원이란 금액을 제시하는 구매자가 나타났다.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세진은 그날 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리고 이튼 날 출근해서 회사에서 판매 의사를 밝히고 매수자를 만날 약속을 잡을 결심을 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그리고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아침 뉴스를 들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날 아침 뉴스가 세진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 이와 같은 이유로 화제가 되고 있는 동영상에 대하여 벤츠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 680S에 대한 권리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 미니어처 제작에 대해서는 간섭할 수 없지만 그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상 세계뉴스 단신에 소리야 기자였습니다.

세진은 스마트폰을 들고 멍하게 서 있다가 하마터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했다. 그리고 겨우겨우 회사에 출근을 한 뒤에도 넋을 놓은 사람처럼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결국 소문이 날대로 난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는 집에 모셔두고 관상용으로 써야 할 물건이 된 것이다.

물론 어떻게든 은밀하게 거래를 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것은 세진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그동안 만들어 놓은 다른 자동차들은 또 어떻게 하지?"

세진은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 이외에도 그 동안 어리를 통해서 적잖은 자동차를 만들어 놓았다.

동영상을 올린 뒤로도 세진은 어리와 함께 국산 자동차들의 미니어처를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사실 다른 것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제일 만만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자동차였다.

다른 것들은 자동차에 비해서 단순해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고, 비행기나 헬기, 혹은 선박은 세진이 어떻게 정보를 구해 볼 도리가 없었지만 자동차들은 집 앞에 있는 정비소에만 가더라도 얼마든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세진은 정비소에서 동영상을 찍어서 어리에게 보여주거나 분해된 엔지의 사진 등을 보여 주면서 여러 형태의 엔진에 대해서 어리가 알 수 있게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들 대부분이 상자에 담겨서 세진의 방구석에 쌓여 있었다. 벤츠에서 저렇게 나온다면 결국 세진이 만든 다른 자동차들도 떳떳하게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이거 너무 인기가 많으니까 이런 일도 생긴 거겠지? 그냥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그나저나 그럼 자동차들은 결국 그걸 만든 회사에나 팔아야 한다는 말인가?"

세진은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미니어처를 완성한 후에 그것을 마침 미국에서 열리는 자동차 경매장에 보내서 호응을 살펴볼까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영상을 올려서 일단 인지도를 높인 후에 경매에 붙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벌였던 것인데 막상 실행 직전에 막혀 버린 것이다.

벤츠 회사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680S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세진이 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비록 그것이 9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정말 벤츠에서 미니어처에 대한 판매 금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약간 의구심이 들지만 굳이 그런 거대 사와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세진은 메르세데스 벤츠 680S 모형을 두고 오며가며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왕 만든 것이니 일단 반응을 살피자는 의미로 벤츠 회사의 영업부로 그것을 보내버렸다.

비행기 택배로 보내느라 적잖은 비용을 지불한 세진은 벤츠에서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를 놓고 내심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설마 그냥 받아서 입을 씻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못해도 미니어처를 만들어 팔 수 있는 권리에 대한 협상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보낸 것이었다.

그는 벤츠에서 그 미니어처의 가치를 안다면 분명히 연락을 해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미니어처는 차라리 오리지널 메르세데스 벤츠 680S보다도 더 가치가 크다는 것이 세진의 생각이었다.

오리지널 메르세데스 벤츠 680S은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세진이 만든 미니어처는 벤츠의 기술로도 만들기 쉽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세진이 기다리던 벤츠의 반응이 왔다.

다만 전화가 오기 전에 세진이 과장에게 업무상의 문제로 잔소리를 들은 후여서 시기가 좋지 않았다.

기분을 풀기 위해서 휴게소에 나와 커피 한 잔을 뽑아 들던 세진은 남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무심히 받았다.

"여보세요? 박세진입니다.

"아, 박세진씨?"

"그렇습니다만?"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벤츠 한국 지사입니다."

세진은 잠시 벤츠의 한국 지사가 있는가 고민을 했지만 있겠거니 하면서 통화에 집중했다.

"네. 그런데요? 벤츠에서 저에게 무슨? 아, 제가 보낸 모형 때문입니까?"

"역시 박세진씨 본인이 맞군요. 그렇습니다. 조금 전에 저희 지사로 벤츠 본사에서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박세진씨와 미팅 약속을 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동영상이 문제가 되었을 때에는 메일 주소 밖에 없어서 신속하게 연락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보내신 모형에는 연락처가 자세히 있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 본사에서는 최대한 박세진 씨와의 미팅이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방금 말씀하신 메르세데스 벤츠 680S의 미니어처 때문입니다.

"그래요? 그래서 지금 저에게 전화 하신 이유가 시간 약속을 하기 위해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박세진 씨, 내일 오후에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장소는 강남역 부근의 호텔이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진은 이 순간 살짝 심통이 났다.

내일 오후면 자신의 근무시간이었다. 평일 오후에 직장인이 밖으로 나돌아 다닐 시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죄송하지만 일이 있습니다. 내일 오후는 어렵겠군요."

"네?"

"제가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 네. 그럼... 금요일 오후는..."

벤츠의 사원은 열심히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빈 시간을 찾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진은 그쪽의 스케줄을 고려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잖아도 짜증이 나 있는 상황에서 벤츠의 사원이 약속시간과 장소를 멋대로 정하려고 하는 것에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토요일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만 시간이 남습니다. 그러니 그 시간에 맞춰서 장소를 정해 다시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강북에 살기 때문에 너무 먼 곳이고 두 시간 안에 미팅이 끝날 것 같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약속을 정하죠. 일단 그렇게 아시고 이번 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어디서 만날지 정해서 다시 전화 주십시오. 물론 너무 먼 곳이면 10시 라도 못 갈 수 있으니 약속 장소는 강북이 좋겠군요."

"네? 여보세요. 박세진씨 무슨 그런 일방적인..."

"시간과 장소를 그쪽에서 정하려는 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죠? 내키지 않으면 약속이고 뭐고 안 보면 그만이죠. 그럼 끊습니다."

세진은 그렇게 쏘아붙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런 세진의 서슬에 휴게소에서 쉬고 있던 몇몇 직장인들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이즈음 세진의 에테르 수련이 성과를 거두면서 밖으로 기세가 뿜어져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방금 벤츠의 사원과 통화를 하면서 화를 내다보니 사나운 기세가 쏟아져서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세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벤츠의 전화를 받았지만 업무 중이라 통화가 곤란하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덕분에 애가 탔던지 벤츠의 사원은 문자로 통상적으로 회사 업무가 끝나는 6시에 다시 전화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세진은 그런 메시를 받고 툴툴 웃었다.

"별 것도 아닌 놈이 지가 벤츠에 다니면 다니는 거지 누굴 물로 보고 말이야."

혼잣말을 하는 세진은 오늘 과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확 날려 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사실 전화기에 화를 낸 것은 과장에게 질책을 들으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면이 강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연재 시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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