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0화 (20/298)

< -- 조기 축구와 어리의 상관관계 -- >

"박세진씨 반갑습니다. 나는 벤츠 코리아의 부사장인 이세호라고 합니다.

세진은 이세호란 사람이 벤츠 코리아의 부사장이란 사실에 조금 놀랐다.

어떻게든 미팅을 주선하려는 사원의 노력이 가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벤츠 코리아의 부사장이 나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집 근처의 소박한 카페로 약속 장소를 정한 것이 살짝 미안해지는 세진이었다. 설마 이런 거물이 직접 나올 것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반갑습니다. 박세진입니다."

어쨌거나 엎질러진 물을 탓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세진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하하하, 네 반갑습니다 박세진 씨. 그리고 우리 사원이 박세진 씨에게 큰 결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자자 앉읍시다."

50대 초반이 되었을까? 그 나이에 부사장이라니 무척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거란 짐작을 하며 세진은 이세호 부사장의 사과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사과라니요 별 말씀을. 덕분에 부사장님께서 제 시간에 맞춰서 여기까지 움직이게 되셨으니 저로서도 죄송한 일이지요. 사실 부사장님께서 나오실 줄은 몰랐거든요. 그러니 서로 없던 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게 이야길 해 주니 고맙습니다. 참, 식사는?"

"하고 나왔습니다."

"주말인데도 바쁘신 모양이군요."

세진은 그 말이 자신을 떠 보려는 수작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회사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이 많다는 인상을 줘야 할 필요가 있는 세진은 그런 질문에 민감했다.

"제가 보낸 미니어처에 관심이 있으신 줄 압니다. 그런데 그런 관심이 벤츠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만들어진 것이 메르세데스 벤츠 680S만 있는 것 아니지요. 아, 한 번 보시겠습니까? 오늘 오후에 필요할 것 같아서 들고 나온 것이 있는데 말이죠."

세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옆자리에 놓았던 쇼핑백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탁자에 올리고 뚜껑을 열어 보여주었다. 뚜껑을 열면 바닥 면만 남는 구조여서 그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자동차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것은 세진이 벤츠 측의 사람들을 만나러 나오면서 의도적으로 들고 나온 소품이었다.

"이건?"

"재미로 만들어본 물건입니다. 지금도 우리 군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지요. 보통 육공트럭이라고 부르는 그겁니다."

이세호는 세진이 보여주는 트럭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 이것도 전에 보내주신 그것과 같은 것입니까?"

"네. 사실 메르세데스 벤츠 680S의 경우엔 설계도를 구할 수도 없고, 실물을 곁에 두고 확인을 할 수도 없어서 조금 미흡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나사하나 볼트 하나도 본래의 것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이건 제가 직접 차의 밑바닥까지 기어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서 만든 것입니다.

어디, 여기 보이시죠? 이런 상처나 흠까지도 재현을 했지요."

세진은 미니어처 트럭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서 바닥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그럼?"

"네. 혹시 실험을 해 보셨는지 모르지만 메르세데스 벤츠 680S도 키가 꽂혀 있었을 겁니다. 그걸 돌리면 시동이 걸리죠. 밧데리가 방전이 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물론 동영상에도 나왔고 제가 보낸 설명서에도 적어 보내긴 했습니다만."

"우린 그 실험을 무척 망설였습니다. 만약 시동을 걸었다가 엔진에 문제라도 생기면 위대한 공예품이 손실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기름밥을 먹는 이들의 궁금증이 두려움을 이기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기적을 보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세호 부사장은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직접 보셨습니까?"

"두 번째 시연에서 직접 봤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귀국했지요."

"네. 그렇군요. 그런데 벤츠에선 저에게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사실 제가 오래 있지 못할 것 같아서 본론을 듣고 싶습니다."

세진은 별다른 약속이 없었지만 바쁘다는 인상을 계속해서 이세호 부사장에게 주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든 거래에서 우위에 서고자 하는 꼼수였다.

"흐음. 바쁘시단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지요. 우리는 사실 미니어처에 대한 소유욕도 소유욕이지만 거기에 사용된 합금과 유리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아울러 초정밀 가공 기술에 대한 노하우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세진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이세호를 바라보았다.

미니어처나 초정밀 가공 기술에 대해선 생각을 했었지만 합금이나 유리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이거 어리가 만든 합금과 유리가 아주 특별한 것이었던 모양이군. 그럼 그것만으로도 꽤나 돈이 되겠는 걸?'

"아, 미안합니다.

너무 과한 욕심이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박세진씨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세진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질책으로 받아들인 이세호 부사장이 서둘러 변명과 함께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미니어처는 주문하시면 가능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만드는 수준의 작품으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설계도가 있다면 그 설계대로 지금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합금이나 유리 같은 것은 우리가 미니어처를 만들기 위해서 어렵게 개발한 것들입니다. 쉽게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기존에 흔한 재료들의 혼합입니다. 그러니 굳이 제게 그것을 물어보실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초정밀 가공은 우리들만의 노하우입니다. 절대 외부에 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세진은 미니어처 주문에만 긍정적인 답을 주고, 합금이나 유리의 경우에는 '니들이 알아서 밝혀내면 만들어 써도 된다'는 식의 대답을 했다. 그리고 초정밀 가공은 어리가 하는 일이니 절대 밖으로 알릴 수 없다는 대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세진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그 엔진에 사용한 합금과 차에 사용한 유리의 경우 아무리 검사를 해 봐도 도무지 파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메르세데스 벤츠 680S를 훼손해서 실험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 고민이 많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이미 그 메르세데스 벤츠 680S가 제 형체를 잃고 조각이 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익을 앞에 두고 정말로 그 메르세데스 벤츠 680S를 원형 그대로 보존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군요. 부사장님은 정말로 그것이 그대로 있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세진은 이세호 부사장이 메그세데스 벤츠 680S의 미니어처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을 때에 그 말에 큰 호감을 느꼈다.

벤츠에서 정말 자신이 보낸 그 메르세데스 벤츠 680S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그건 그들의 자존심이나 장인에 대한 배려 모두에 찬사를 보낼 일이었다. 세진은 그래서 이세호 부사장의 말이 정말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장인정신에 충분한 보상을 할 수도 있다는 치기어린 생각도 들었다.

"만약 제 눈앞에 제가 보낸 그 메르세데스 벤츠 680S가 온전히 나타난다면 합금과 유리 제작 비법을 알려드리는 일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제 동료들도 그 정도로 작품을 대우하는 회사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겠다는 제 뜻을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이세호 부사장은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렸다. 세진은 적어도 이 사람은 메르세데스 벤츠 680S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벤츠는 미니어처 제작에 대한 논의 이외에 어떤 것도 우리와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하하하. 좋아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내 곧바로 연락을 해서 그 메르세데스 벤츠 680S를 가지고 오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이세호 부사장은 정말 기뻐했고, 세진은 그렇게 그와의 만남을 끝냈다.

하지만 이후로 한동안 벤츠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세진은 벤츠 본사에서 결국 메르세데스 벤츠 680S를 해체했다고 생각했다. 이세호 부사장이 그렇게 믿었던 벤츠 본사는 그의 믿음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연락이 오지 않을 수밖에.

그렇게 며칠이 더 흐른 일요일 오후, 세진이 등산을 다녀오니 어리가 현관 안쪽에 놓여 있다.

방의 책상 위에 곱게 올려놓았던 것이 어째서 현관 신발장 위에 나와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일단 세진은 어리를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세진이 방문을 잠그고 어리를 원래의 판 위에 올리자마자 곧바로 어리의 통곡이 터져 나왔다.

- 으아아아아앙. 세진님 어디 갔었어요. 흐아앙.

세진은 어리의 예상치 못한 괴상한 반응에 어쩔 줄을 몰랐다. 지금까지 어리는 그저 말 잘 듣는 협조자였다.

이성적인 존재라고 했지만 감정의 변화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어리가 목소리까지 어린 아이처럼 바꾼 상태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다.

"어리야 무슨 일이니? 응? 왜 그래?"

자연스럽게 세진의 어투도 어린 아이를 달래는 말투가 되었다.

- 아버님이 나를, 나를 들고 나가서, 축구, 조기 축구에. 공이라고, 좋은 공이라고 스파이크 달린 축구화로 뻥, 이리로 뻥, 저리로 뻥. 에테르도 별로 없는데 언제 다 닳을지 모르는데 자꾸만 이리저리 차는데. 흐아아앙. 나, 나 빨리 에테르 충전 해 줘요. 흐흑 어서요. 세진님.

세진은 확실히 어리에게 무슨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전과 달라도 너무 다른 어리였다.

어쨌거나 에테르가 부족하다고 하니 에테르 저장장치를 꺼내서 어리의 모체를 받치고 있는 판 위에 올려놓았다. - 흐윽,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 어리가 공이 아닌데. 축구공이라고 이리차고 저리차고 그러잖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없으니까 나는 내 몸만 보호하고 그러는데 계속 보호하려니까 에테르는 점점 닳고... 흐흐흑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나, 에테르 없는 상태에서 충격 받으면 정말 끝장나는 거라고요.

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버진 왜 하필 어리를 가지고 나가서 축구를 하실 생각을 하셨을까? 어리가 딱 봐도 축구공 보다는 큰데 말이지."

- 그럼 축구공 크기면 가지고 가도 된다는 말씀이에요? 이게 다 세진님 때문이잖아요. 부모님께 잘 설명해서 제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려 주셨어야죠. 이게 뭐예요. 나 정말 죽는 줄 알았다구요.

"그래서 지금 네가 그렇게 변한 거야?"

- 변하긴 뭐가 변해요? 죽지 않으려고 악을 쓰다 보니까 감정 영역이 조금 더 발달을 한 것뿐이죠.

"감정 영역?"

-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인 반응을 관장하는 논리 영역이죠. 에테르는 거의 다 닳아 가는데 축구는 연장전으로 들어간다고 하고, 계속해서 연습을 한다고 이리저리 패스하고, 누군가는 다가와서 슛 연습을 한다고 빌려달라고 하고 막 그러는데 얼마나 겁이 났다고요. 당연히 감정 영역이 발달할 수밖에 없죠.

"휴우. 그렇겠구나. 그래. 미안하다."

- 그러니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아버님을 말려주세요. 안 그러면 저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어."

- 그럼 일 보세요. 전 천천히 에테르 흡수를 하면서 쉴 테니까요.

"쉬어?"

- 그럼 당연히 쉬어야죠. 제가 오늘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거기다가 이렇게 에테르를 흡수할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닌데 천천히 즐기면서 쉬어야죠.

"에테를 흡수하는 것이 좋아?"

- 그럼 세진님은 배고플 때 뭐 먹으면 안 좋아요?

"그게 그런 거냐? 알았다. 천천히 먹으면서 쉬어라.

- 네. 세진님.

세진은 어리의 대답을 들으면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마침 세진의 아버지가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세진이 왔냐?"

"네. 아버지. 저 그런데요."

"어, 왜? 무슨 일 있냐?"

"제 방에 있는 은색 공 있잖습니까."

"그래. 그거? 내가 오늘 잠시 빌려서 쓰고 저기 현관에 뒀는데? 그거 아주 좋더구나. 발에 착착 감기는 것이 차는 맛이 있어."

"그거 축구공보다 큰데요? 그리고 그게 겉으로 봐서는 공처럼 보여도 공이 아니라 그 안에 기계 부속이 들어 있는 민감한 물건이거든요?"

"응? 공이 아니었어? 그럼 그거 완전히 망가진 거냐? 오늘 하루 종일 차고 그랬는데?"

"제가 좀 연구를 할 게 있어서 만들고 있는 건데, 아버지께서 좀 너무하셨습니다."

"그, 그러냐? 그래도 딱 차기에 좋던데 말이다."

"그게 돈이 한두 푼 들어 간 물건이 아닙니다. 안쪽이 완전히 박살이 난 것도 있고 해서, 제가 좀 속이 상합니다. 아버지."

"큼. 난 또 그게 공인 줄 알았지 뭐냐. 알았다. 내 앞으로는 가지고 나가지 않으마."

"공 필요하시면 하나 사 가지고 올까요?"

"얼마 전에 쓰던 공이 문제가 있어서 버리긴 했지. 하나 있으면 좋긴 하겠더라만."

"알겠습니다. 아버지. 대신에 제 방에 있는 그건..."

"안 건든다. 내가 그게 니가 뭐 만들던 거란 걸 어떻게 알았겠냐?"

"네. 아버지. 고맙습니다."

"어이, 아들. 아버지하고 무슨 이야길 그렇게 해? 너도 등산 갔다 왔으면 빨리 씻고 저녁 먹을 준비 해야지? 씻지도 않고 식탁 앞에 오면 밥 없다?"

두 부자의 대화는 어머니의 개입으로 그렇게 끝이 났다. ============================ 작품 후기 ============================일단 두 편... 하나는 새벽에 올릴 수 있도록... 넵... 근데 어리... 마음에 드시나요? 하하 긁적.

============================ 작품 후기 ============================일단 두 편... 하나는 새벽에 올릴 수 있도록... 넵... 근데 어리... 마음에 드시나요? 하하 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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