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46화 (46/298)

< -- 사소한 착오가 빚은 비극 -- >

꼬똑!

꼬똑! [그건 또 뭡니까?]세진이 마당으로 뭔가를 들고 나가자 아침 운동을 하고 있던 도일이 재빨리 옆에 수건과 함께 뒀던 스마트폰을 들고 문자를 보낸다.

"이거요? 저도 운동을 좀 해 보려고.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몽둥이 쓰는 거는 좀 하거든요."

꼬똑!

꼬똑!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 겁니까?]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냥 하다 보니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꼬똑! 꼬똑! [그럼 제가 한 번 봐 드리겠습니다. 제가 몇 가지 익힌 무기술 중에서 창술도 있습니다.]

"어? 그래요? 그럼 좀 봐 줘요. 혼자 배운 거라서 말이지요."

세진은 도일의 제안에 반색을 하며 마당으로 나섰다.

그동안 어리 공방에서 깎고 갈아서 겨우 만들어낸 다단 합체 봉이었다.

길이가 2미터로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미 결합해서 들고 나온 것이라 세진은 곧바로 창술 연습을 시작했다.

데블 플레인에서 이리 저리 혼자 연습을 하던 동작들이 나왔다. 도일이 보기에는 허점이 여기저기 보이는 그런 동작들이었다. 그런데 간혹 아주 날카롭게 기세가 살아 있는 공격들이 끼어 있는데 그런 동작이 나올 때면 도일로 깜짝 깜짝 놀랐다.

세진이 데블 플레인에서 각인 받아서 사용하는 스킬들을 흉내 낸 것이 도일에게 의미 있는 공격 기술로 보인 것이다.

몸 안에서 에테르를 움직여서 공격 기술을 쓸 때면 그에 맞는 기초적인 몸동작이 있다.

세진도 그에 따라서 창을 내지르고 휘두르는 것인데 그게 제법 괜찮은 동작이 된 것이다.

짝!

짝!

세진의 모습을 보던 도일이 박수를 쳐서 세진의 시범을 멈추게 했다.

꼬똑!

꼬똑! [체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세는 매우 좋습니다. 제게 기본 동작부터 배워 보시겠습니까?]

"나야 좋지요. 그럼 아침마다 약간씩 배워 볼까요? 제가 도일씨 창도 준비를 하죠."

꼬똑! 꼬똑! [역시 봉술이 아니라 창이었습니까? 몽둥이라고하곤 왜 창을 이용한 공격에 적합한 움직임을 하는가 싶었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제가 한 번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찍어도 되지요? 나중에 보면서 연습하게요."

도일은 세진에게 봉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창을 다루는 기초적인 것들만 보여 줄 생각이었으니 문제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세진은 도일이 봉을 들자 마당 가장자리로 가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도일의 움직임은 역시 세진의 경우보다 체계가 있었다.

물론 세진도 창을 들고 직접 사냥을 한 몸이라 전혀 쓸모가 없는 모양새는 아니지만 공격과 방어, 전진과 후퇴의 기본적인 흐름이 들어 있는 도일의 모습이 훨씬 유려하단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다양한 움직임들이 세진을 놀라게 했다.

'저런 동작에 에테르의 힘이 더해지면 정말 대단하겠어. 멋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효율적인 움직임들이야.'

세진은 도일의 창술 시범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세진은 도일에게 구분동작으로 창술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도일이 말을 하지 않고 몸으로만 설명을 하려고 해서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날이 며칠 반복되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도일이 뜻하는 바를 알아들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말로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에선 도일도 전광석화의 문자 송신 특별기를 난발하며 세진의 답답한 속을 풀어 줄 때도 있었으니 둘 사이의 교습에 지장이 생길 일은 없었다.

탁, 타탓, 타타탓.

세진의 장봉이 이리저리 짧은 간격으로 움직이며 도일의 상체를 노리는데 도일은 단봉 두 개를 손에 나눠 쥐고 세진의 공격을 막고 흘리고 피한다.

그러다가 세진이 찔렀던 봉을 횡으로 그어 내리는 것을 단봉으로 받다가 세진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한쪽 무릎이 꺾인다.

"으읏!"

세진은 급히 힘을 빼고 한 걸음 물러난다.

"아, 미안, 미안합니다.

너무 힘을 줬나 봅니다."

세진은 순간적으로 에테르가 운용되어 봉을 휘두르는 힘이 강해진 것을 깨닫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도일은 몸을 세우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별 것 아니니 괜찮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눈빛 깊은 곳에는 의구심이 들어차 있다.

'순간 순간 예상치 못한 위력이 나올 때가 있어. 거기다가 봉 끝에 검이나 도를 달게 되면 엄청나게 위험할 공격 방식들이 종종 나와. 마치 그런 무기를 써 본 것처럼.'

도일은 세진을 근접 경호 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세진이란 사람이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들이 모여서 이젠 머리를 맞대고 세진이 그의 팀으로 부터 어떻게 부품들을 조달받고 있는지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무인 수화물 보관함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 위해서 몇몇 안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조를 하기로 했다는 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래도 아직 성과가 없다고 해서 도일은 약간은 의기양양한 기분이 된것도 사실이다.

누가 뭐래도 도일에게 세진은 [우리편]이고 우리 편이 이기면 기분이 좋고 사기가 오르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어쨌거나 그것도 그거지만 아침마다 하는 봉술 연습도 도일을 혼란에 빠트린다.

분명 마구잡이로 창을 익힌것이 분명한데 그 속에는 도일도 위협을 느낄 동작들이 제법 많이 들었고, 그런 동작들에는 어김없이 평소보다 월등한 위력이 숨어 있다.

조금 전에도 그렇게 방향을 바꿔서 휘두르는 봉에 그 정도의 힘이 실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도일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도일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무릎이 꺾인 것이다.

이러니 도일에게 세진은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기분인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세진에겐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세진이 없는 곳에서 김혜인 박사도 고개를 흔들면서 세진이 감당하기 어려운 천재거나 천재에 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할까.

이제 첩보용 곤충 로봇 제작의 거의 모든 것은 어리의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컨트롤러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어리 공방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시험을 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것은 외부에서 김혜인 박사를 주축으로 한 개발팀이 진행한다.

벌써 소리만 녹취할 수 있는 형태의 곤충들은 완성이 되었고, 요즘은 영상까지 가능한 모델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 했다.

도일은 사실 곤충 로봇을 보고 있으면 여간해선 그것이 로봇인지 실제 곤충인지 알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아침 운동 중에 하늘을 날아와서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잠자리 한 마리를 봉으로 두드렸다가 감봉 처분을 받기도 했다.

원거리 감시팀에서 이번에 새로 만들어낸 로봇을 실험한다고 도일에게 보냈다가 봉에 맞아 잠자리가 망가진 것이다.

그것은 크기가 제법 커서 벌써 렌즈를 장착해서 영상 전송이 가능하게 만든 것인데 도일이 매몰차게 봉으로 두드려 버렸으니 크게 부서져서 지금 어리 공방에 수선을 맡긴 상태였다.

그래서 도일은 그 후로는 보이는 곤충들을 모두 의심하고 자세히 살피려는 습관이 생길 정도였다.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안심할 수 있는 곳이.'

도일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그럼에도 어리의 방이나 어리 공방에는 그런 곤충 로봇이 전혀 침투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어서 세진에게 또 하나의 비밀이 더해지고 있었다.

로봇들이 들어가려면 어김없이 세진이 나타나서 잡아내는 것인데 어떨 때에는 어리 앵무에게 걸려서 박살이 날 때도 있다. 그래서 다들 [하여간 이상한 곳]이라고 세진의 어리 공방을 부르기도 했다.

세진은 도일과의 아침 훈련이 끝나면 씻고 식사를 하고 곧바로 어리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때부터 세진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주로 어리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에테르 로드 수련에 힘을 쓴다.

비록 에테르의 양이 많이 부족한 지구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그만큼 성과가 있기 마련이다.

데블 플레인에서의 성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세진의 본체도 조금씩 에테르 보유량이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유저 등급은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데블 플레인에서 에테르 기관을 가지고 처음으로 에테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수준은 된다는 말이다.

물론 속내를 보면 에테르의 양이 많이 부족해도 운용 능력은 뛰어난 면이 있어서 유저 중급 정도의 능력은 보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세진으로선 여전히 갈 길이 먼 수련일 따름이다.

그래도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펼칠 수 있는 범위가 반경 20미터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에테르를 이용한 능력 중에서 정신 능력은 육체의 영향을 덜 받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원래 그 정도 넓이를 덮으려면 유저 중급 이상은 되어야 하고, 피시지라고 했던 중급 익스퍼트의 말에 따르면 20미터가 넘는 거리라면 익스퍼트에 가까운 능력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세진은 지금 이곳에서 고작 유저 수준의 에테르로 실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신 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에테르의 양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세진은 아마도 그것이 정신력이나 그 능력의 숙련도에 따라서 달라지는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에테르의 양이 적으니 그것으로 낼 수 있는 힘의 한계는 뚜렷할 것이다. 어느 정도 정교한 운용으로 보정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에테르가 적어서 생기는 근본적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거라고 세진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세진은 다음에는 정신 능력에 해당하는 것들을 모두 각인해서 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몸을 움직여서 일을 처리하는 것 보다는 원거리에서 증거를 남기지 않고 뭔가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기본적인 심리일 것이다.

총이라는 원거리 무기가 탄생한 이후, 먼저 보고 먼저 쏘는 것이 생존의 첩경이 된 이상, 괜스레 단병접전 따위를 꿈꾸는 것은 그저 말 그대로 꿈일 뿐이다. 현실은 먼저 보고 먼저 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바탕이 되니 세진이 육체 능력 보다는 정신 능력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각 조사실(Cabinet Intelligence and Research Office,CIRO)은 일본의 최고급 정보기관으로 일본 수상에게 직접 보고 하는 정보기관이었다.

하지만 이 기관은 사실상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200명도 되지 않는 숫자의 요원으로 출판물 검열 등이나 하는 정도의 미약한 활동을 하는 부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단체는 실상을 그늘에 숨기고 있는 존재 자체가 비밀인 기관이기도 하다.

기존에 존재하던 기관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숨기기 위해서 껍데기만 남기고 알맹이는 어둠 속으로 숨겼던 기관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이 아니라 우익 세력과 자위대 등의 지원으로 유지되며 성장한 단체였다.

때문에 내각 조사실이란 이름도 껍데기에게 내어주고 공식적으로는 쓰지 못하는 사설 정보 단체 취급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익을 위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정부에도 특정한 인물에게만 보고서를 작성하는 단체였고, 그들의 활동을 주관하는 것도 정부가 아닌 우익의 비밀 세력인 텐헤이(天兵), 즉 [천황의 군사]였다.

이 텐헤이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이 단체의 정체지만 텐헤이에 속한 이들이 정치와 군사, 경제를 좌우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실제론 정부 소속인 듯이 활동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내각 조사실은 공식적인 부활, 즉 음지에 숨어 있는 부분을 모두 드러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자는 이야기가 줄곧 나왔지만 지금까지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기관이다.

그런 곳에서 한국의 미니어처 제작자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CIA와 국정원이 시끌시끌하고, 한창 감시를 하고 있던 MSS가 뭔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웃거리다가 발견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다른 이들이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까 우리도 빠질 수는 없다는 정도의 생각으로 세진을 살피는데 몇 명의 정보원을 동원 했을 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국의 우애 깊은 조력자에게서 새로운 곤충 스파이 로봇에 대한 정보가 전해졌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에도 매우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개념과 개발 수준 정도가 전해진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각 조사실에서는 다른 정보기관들이 세진이란 한국인에게 관심을 두는 이유를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고, 실제로 여러 기관에서 다른 이유로 세

진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세진이 곤충 스파이 로봇의 제작에 깊이 관여한 핵심 인물이란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사실 일본의 정보원들은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일단 들키게 되면 너도 나도 서로 봐주는것이 없는 이들이 한국과 일본의 정보원들이다. 그러니 차라리 한국에 있는 우애 깊은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는 쪽이 더 편하고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소수의 인원만 한국에 파견해서 정보 수집을 하거나 조력자를 돕는 무력행사를 할 뿐 일본인으로 구성된 요원을 파견하는 것은 근래에 조금씩 늘려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번에는 내각 조사실에선 오판을 내리고 말았다.

한국 정보부에서 위험한 물건을 손에 완전히 쥐기 전에 자신들이 빼돌리거나 혹은 제거해서 싹을 밟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차라리 좀 더 중요한 비밀이라거나 혹은 한국 전체의 안위와 관계가 있는 정보라면 우애 깊은 조력자들이 더 자세하게 알려 줄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세진에 대한 정보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많이 알려진 것이 없었고, 그들의 정보에 의지한 내각 조사실에서도 CIA나 국정원의 눈만 피하면 어렵지 않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납치에 이은 정보 획득, 혹은 최악의 경우 대상의 말살을 내용으로 하는 작전 명령이 한국에 있는 요원들에게 전해진 것은 금방이었다.

만약 내각 조사실의 다른 국가 담당자들과 공조가 잘 이루어졌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작전 계획이, 한국 담당자의 독단으로 [실행]이란 코드를 담고 한국에 있는 요원에게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세진에게 새로운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