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56화 (56/298)

< -- 벗(友), 일본 도쿄를 강타하다 -- >

세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세진은 자신의 행동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에테르 붐의 위력에 휩쓸려 사람이 죽었거나 혹은 부상을 입은 것이나 그런 사고의 여파 때문에 근처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방해가 되는 것은 치울 뿐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생기는 피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나는 초라한 개인일 뿐이고, 내 상대는 거대한 단체, 정부, 국가인 상황에서 무얼 가리고 무얼 배려한다는 말인가?'

세진의 행보는 점점 거칠어졌다.

도쿄의 내각 조사실의 한국 담당관을 죽이기 위해서 도쿄 한 가운데에 있던 25층 건물이 무너졌다.

다른 사람들이 몸을 피할 때에도 끝까지 나오지 않고 버티던 한국 담관은 25층 빌딩을 관으로 삼고 동반자로 수십 명의 시민들을 끌고 갔다.

때때로 벗(友)이란 단체의 이름으로 동영상이나 메일이 언론사로 보내졌다.

그 안에는 내각 조사실 요원들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그간에 그들이 했던 많은 일들에 대해서 자백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물론 언론에선 고문에 의한 억지 자백이라고 변호를 하기도 했지만, 그 요원들이 한 일에는 한국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내의 미군이나 미국 정보 요원들에 대한 것도 있었다.

때문에 세계가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그 동안 내각 조사실에선 국내외의 출판물에 대한 스크랩 정도를 한다고 주장하던 일본 정부의 입장도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일본은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고, 연말연시의 행사들이 줄을 이어 계획 되어 있는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다른 도시와 달리 도쿄는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크리스마스 등도 없었고, 캐롤도 없었다.

계속해서 굵직굵직한 자리에 있는 거물급 인사들이 쓰러졌다.

뇌졸증이나 심장마비, 혹은 뇌출혈 등등의 혈관 이상에 의한 사망이 급속하게 늘어났고, 그 늘어난 인원들 대부분이 내각 조사실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이들이었다.

유명인사의 도쿄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도쿄를 버리고 다른 도시로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내각 조사실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와 함께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그리고 벗(友)의 또 다른 경고가 나오자 일본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 우리들은 그동안 보였던 일본 정부의 태도에 몹시 실망하며 책임자 및 관련자에 대한 엄벌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일본을 대표하는 자에게 그 책임을 묻기로 하는 바다.

경고하노니 앞으로 열흘의 시한을 준다. 짧은 글이었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라는 지칭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당연히 그 정점에 있는 존재는 일왕이었다. 하지만 일왕은 정치와 관련이 없으니 수상이 아니겠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벗(友)이 노리는 대상이 일왕일 가능성이 높다고 의견을 모았다.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번 테러에 사용된 폭탄에 대해서 알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폭탄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 어디에 그 폭탄들이 잠자고 있는지 알 방법이 전혀 없었다.

눈앞의 기둥에 폭탄이 있어도 세상의 어떤 감지 장비로도 그것을 알아내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거기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살인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분분했다.

그 폭탄이 사람의 몸에도 심을 수 있는 것이어서 호흡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체내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을 폭파하는 것이 아니냔 가설이 가장 유력했다.

이렇게 되니 마음 놓고 물 한 잔도 먹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든 사람들은 최대한 도쿄에서 멀어져서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각에선 차라리 일본 밖에다가 일본 통치청을 차리고 그리 옮겨가라는 쓴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세진은 자신의 협박에 일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결론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는 것이다.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면 수상과 일왕이 해외 순방이란 핑계로 비행기를 탔다는 정도였다.

물론 그 일을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세진도 그런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연초에 계획되어 있던 일이라며 관방장관이 나서서 변명을 했지만 그걸 순진하게 믿을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원래 계획에 있었더라도 취소해야 할 마당에 도리어 시일을 당겨서 떠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세진은 수상과 일왕이 비행기를 타고 떠난 그 날, 아무 경고도 없이 도쿄의 다리들을 모두 끊어 놓기 시작했다.

크건 작건 다리라고 생긴 것들은 모두 끊어지기 시작하자 도쿄의 시민들은 고립에 대한 공포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경찰이나 자위대의 통제도 받지 않고 무조건 탈출을 하려고 했고, 그 사이에 몇 명의 경찰과 자위대가 죽었다.

물론 그들을 죽인 것은 세진이었다.

그렇게 경찰과 자위대가 죽고, 또 이어서 도쿄 시민들이 쓰러지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진행 되었다.

흥분한 시민들에게 군경의 발포가 있었다는 소리가 들리고 오래지 않아서 도쿄의 이곳저곳에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세진은 그런 아비규환 속을 걸으며 이젠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선정의 핏 값을 과도하게 받았다. 한국 담당자와 몇 명의 책임자 정도만 죽였어도 되었을 것을 텐헤이라는 비밀 단체의 간부들까지도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거기다가 우익이라고 이름 붙은 이들 중에서 도쿄에 있던 이들은 거의 눈에 보이는 족족 죽였다. 정치인 중에서도 제법 많은 이들이 죽었다.

무너진 빌딩이 수십이고 다리는 성한 것이 없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세진의 에테르 붐의 활용 능력이 디버품을 뛰어 넘을 정도였다.

그만큼 에테르 붐의 사용 빈도가 높았다는 말이다.

아직 텐헤이의 수장을 비롯한 핵심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세진은 이쯤에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아수라장이 된 도쿄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남은 일은 저들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외로 나간 수상과 일왕에 대해서는 일본인 스스로가 단죄를 할 것으로 봤다. 믿지 못할 수반을 둔 국가가 얼마나 잘 흘러갈 것인지 두고 보자는 생각인 세진이었다.

그리고 여러 조사 과정에서 테러리스트가 남기고 가는 타지마할의 탑 모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졌다.

한국에서 내각 조사실이 작전을 수행하면서 죄 없는 여자를 죽였고, 그 여자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이 미완성 타지마할 궁전의 모형이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그것은 세진이나 벗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자세하게 알려졌다. 세진은 그 배후에 국정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만이 타지마할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세진은 마지막으로 벗(友)의 이름으로 '일본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자가 없다.

'는 내용의 메일을 각 언론사에 보냈다. 그것으로 세진은 일본 원정을 끝내리라 결심한 것이다.

언제든 때릴 수 있는 매를 굳이 몰아서 때릴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고, 이후에 반응을 봐서 다시 와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다음날 세진은 게슈너 박의 모습을 하고 커다란 배낭을 메고 도쿄에서 외부로 빠져나가는 피난민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진은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뒷좌석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은 상태로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했다.

일본의 일은 어찌되었건 화풀이는 한 듯 했다. 하지만 아직도 손봐야 할 놈들은 남아 있었다.

이번에 일본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넘긴 놈과 그 일당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진은 한국에서 일본처럼 날뛰는 것은 자제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비록 알량한 애국심이건 혹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건 이번에는 사람들이나 건물이 많이 다치는 쪽으로는 일을 벌이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세진은 1월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한강둔치에서 차를 내렸다.

그리고 한동안 강변에 앉아 지난 일본행을 떠올리다가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두고 중간 결산 따위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여보세요?"

"전화로는 말을 하는군요. 선도일씨."

"..."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말이 없는 건, 이 전화가 도청이 되고 있을 수도 있단 건가요?"

"..."

"어쨌거나 집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 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더 수고해 달라는 말도 말이죠."

"..."

세진은 거기까지 하고는 전화기를 접어서 떡배에게 건넸다.

알아들어도 그만이고 몰라도 그만이었다.

당분간 더 수고하란 말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굳이 전화를 한 이유는 그들도 알아야 할 일들이 벌어지게 될 거란 경고였고 내국에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경고였지만 세진의 뜻을 국정원이 알아차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떡배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대포폰을 받아 들었다.

"떡배."

"넵."

"평생을 이곳 구로에서 신분증 브로커로 살고 있다면서? 전설이라고 하더군."

세진이 이렇게 떡배에게 고압적인 말투를 쓰는 것은 떡배가 세진의 정체, 혹은 그가 한 일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며, 몇 번, 학교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래? 그건 의외군."

"그렇게 해 줘야 적당히 봐주기도 하고 그럽니다. 너무 깨끗하면 도리어 미움을 받지요. 경찰들도 그럽니다. 이젠 대충 알아도 넘어가고 그러는 겁니다. 어차피 이젠 잡아봐야 제 밑에 아이들이 쓰고 들어갈 테니 굳이 저는 안 건드리고 그러는 겁니다."

"그래? 어쨌건 내가 부탁이 좀 있는데 말이지."

세진이 떡배를 찾은 것은 그저 잔심부름이나 시킬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밑에 두고 부리는 부하가 제법 있으니 돈만 챙겨주면 충분히 부려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떡배는 세진을 보는 순간 학질에 걸린 듯이 떨기 시작했다.

그는 세진을 보는 순간, 세진이 일본으로 갔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근래에 돌아왔다는 것도.

그렇게 되니 세진이 일본에 간 뒤로 바로 사고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가 돌아온 이후로 일본에서 사고가 없어졌다는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거기다가 테이블을 맨손으로 쥐어뜯는 능력을 눈으로 봤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세진과 일본의 사태가 연결이 되었다.

떡배는 그렇게 좋은 감 때문에 도리에 세진에게 찍혀 버렸다.

그냥 모른 척 했으면 돈이나 몇 푼 받고 잔심부름이나 하고 끝날 관계가 이젠 '세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돼지'로 설정이 된 것이다.

떡배도 그걸 깨달았다.

자신이 떨기 시작하자 세진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떡배는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냥 납작하게 엎드리기로 결심했다.

일본을 지옥으로 만든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 혼자 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가 그 일에 관여한것은 분명하다고 감이 일러주고 있었다.

'죽기 싫으면 기어라.'

떡배는 그렇게 속으로 외쳤다.

"마, 말씀만 하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떡배는 그 뚱뚱한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비지땀을 흘렸다.

"한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말이야. 유명한 사람이라서 쉽게 알 수가 있을 거야. 대신에 내가 그를 조용하게 만나고 싶으니까 적당한 때와 장소만 알려주면 되는 거야. 시끄럽지 않을 곳에 있다면 주변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상관은 없어. 물론 그 놈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많은 건 곤란하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떡배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세진은 그 사람에 대한 간단한 신상명세를 떡배에게 건넸다.

"대포폰 몇 개만 줘."

"저 몇 개나 가지고 올까요?"

떡배의 부하가 냉큼 분위기를 읽고 나섰다.

"다섯개."

"넵. 알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옆 사무실로 가서 깔끔한 스마트폰 다섯 개를 가지고 왔다.

각 스마트폰에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고, 거기에 스마트폰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용하시는 동안의 요금은 저희 쪽에서 계산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문제가 생기면 분실한 거라고 할 겁니다."

세진은 상관없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의 정보를 읽은 후에 포스트잇을 떼어서 떡배에게 건넸다.

"여기로 연락해. 당분간은 이걸 내 번호로 쓸 생각이니까."

"넵. 알겠습니다."

세진은 허리를 굽히는 떡배의 등을 살짝 쳐 주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안녕히 가십시오. 형님!"

뒤에서 떡대들의 인사가 들려왔다.

===================

========= 작품 후기 ============================흐흐흐. 일본이 이 정도로... 글쎄요... 이게 끝은 아니랍니다. 세진이 해 둔 일이 어떤 일을 불러 오는지.. 내일 보시면 ... 음... 우샤... 오늘도 세 편... 행복하십시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