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호흡 가다듬을 틈이 없다. -- >
정도광은 오늘도 잠을 설쳤다.
일본에선 아직도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고, 수상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였다. 거기다가 천황제도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일본에서 그렇게 난리가 난 것이야 정도광에게 별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태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박세진이란 인물과 그의 연인이었던 심선정의 죽음에 이르러선 정도광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도광은 일본의 가까운 친우에게 자주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곤 했는데 얼마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박세진이란 특별한 인물에 대해서 국정원과 미국 정보국등록일 : 13.
12.08 00:01조회 : 6308/6312추천 : 187평점 :선호작품 : 7446(비허용)선호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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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슬쩍 언질을 준 적이 있었다.
그 후에 일본의 내각 조사실에서 어떤 작전을 벌이다가 심선정이란 여자를 죽이고 박세진이란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전이 실패한 것인데 더구나 일본의 정예 요원 다섯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함께 벌어져서 애석해 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 사태가 어쩌면 그 박세진이란 인물의 친구들이 벌이는 일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관계자들에게 제출이 되었다.
정도광 역시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로서 그런 보고서를 볼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당연히 보고서를 접했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그 때부터 정도광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크으음."
정도광은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났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서 장식장에서 양주와 잔을 꺼내 소파 앞 탁자에 놓고 앉았다.
"일이 우습게 되었군. 어쩌면 내 이름도 이미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정도광은 돌이킬 수 있다면 돌이키고 싶었다.
어차피 일본의 친우에게 정보를 주는 것은 거래였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였던 것이다.
물론 정치를하는 입장에서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그야말로 끝장이 날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차라리 목숨을 가지고 가면 가지고 갔지 자신들과의 거래를 밝히지는 않는 족속이었다.
만약 저희들이 먼저 거래를 밝히겠다고 협박을 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협조적인 친일 계열이 다수 이탈할 것이 분명한 것이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이 나라에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놈들은 약삭빠르게 그런 협박 따위는 입에 담지 않아서 좋았다. 그래서 서로 대등한 관계로 거래를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만약 그들과의 관계를 가지고 협박을 했다면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녀야 했을 것을, 그들은 그 좋은 패를 절대 사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것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오래 이용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던 정도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자그마한 일 하나로 큰 위기가 닥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을 분석해서 올라온 보고서에도 벗이라는 단체의 능력을 짐작하기 어렵다고 했었다.
그들이 몇이나 되는지 그리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그들이 일본이란 경제 대국을 벼랑으로 몰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도 자신들의 정체는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러니 이제 그 발톱이 국내로 향하게 되면 정도광은 제일 먼저 표적이 될 것이다.
그것이 정도광이 요즈음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유였다. 대부분의 보고서에서 벗이 일본에서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고 한결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대충 벗의 복수도 끝난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각 조사실과 연관이 있는데다가 심선정의 죽음에도 한 발 걸치고 있는 정도광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정도광은 오늘도 집으로 가지 않고 북한강 지류에 지어 놓은 별장에서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건축허가가 나지 않을 곳에 버젓이 별장을 지을 때에 그런 것이 권력의 맛이라고 즐거워했지만 그 후로 몇 번 찾지 않았던 곳이었다.
많고 많은 별장이며 아파트며 집을 두고 이렇게 한적한 곳에 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남모르게 어린 아이들이들과 즐길 일이 있을 때에나 왔던 곳이었다.
꿀꺽, 꿀꺽.
"크으, 쓰군."
정도광은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독한 알코올이 숨결을 타고 코로 흘러나오는 것을 즐겼다.
"쓴가?"
"누, 누구냐?"
하지만 정도광은 갑자기 들리는 침입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윽, 어억!"
하지만 곧 두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
뭔가 무릎에서 터지는 느낌과 함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는 필요가 없어. 정도광, 너는 이제 어디 가지 못할 거니까 말이야."
"누, 누구냐?"
"알잖아. 누군지."
"버, 벗?"
"맞아. 잘 맞췄어.
그렇지만 너도 선물은 없어. 대신에 정도광 네가 나에게 선물을 줘야 할 것 같아."
"무, 무슨 말이냐?"
"역시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여. 너도 알겠지만 나는 그렇게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야. 음, 일본에선 말이야 대부분 팔이나 다리가 하나 정도 잘려 나가면 줄줄줄 입을 열기 시작했어. 그런데 너는 어떨까?"
"어, 어쩔 생각이냐?"
정도광은 두려움에 실금을 할 정도였다.
"넌, 죽어.
하지만 네가 죽고 나서 너와 관계가 있는 이들이 무사할지 어떨지는 네가 하기에 달렸어. 음? 그래 손녀딸이 여섯 살? 손자는 세 살? 거기에 둘째 아들이 또 이번에 손자를 낳았더군."
"그 어린 것들을 가지고 협박을 하는 것이냐?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아니. 아니. 그건 정도광 네가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거야. 나는 별로 죄책감 같은 거 안 느끼니까 말이야. 그리고 원래 죄가 없는 사람, 착한 사람이 당하는 세상이잖아. 그러니까 네 손자, 손녀, 아들, 딸이 죄가 없으면 당해도 괜찮은 거야. 안 그래?"
정도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 세진은 정도광 앞의 소파를 치우고 삼각대를 놓고 스마트폰을 고정시키고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자자, 이제 이야기를 해 봐. 들어 줄게. 마지막 가는 길인데 말이지."
정도광은 스마트폰을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 어차피 죽을 건데 자식이고 손자 손녀가 다 필요가 없는 거야. 그렇지?"
세진은 그렇게 말하곤 정도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리고 그가 잠시 허리를 숙여 탁자 아래로 손을 더듬는 순간 정도광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미친, 미친 노옴."
그리고 정도광이 탁자 위에 내려놓았던 양주잔에 살덩이 하나가 떨어졌다.
거기에 양주를 부은 세진이 잔을 들고 정도광을 바라보았다.
어리가 만든 얼굴 마스크를 쓴 세진의 모습은 창백한 안색의 50대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곧 죽을병에 걸린 듯이 안색이 좋지 않고 입술까지 파랗게 질려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세진은 정도광의 엄지발가락이 들어 있는 잔을 빙빙 돌렸다.
"이걸 마시고 싶어? 그런 거야?"
세진의 말에 정도광의 낯빛이 변장한 세진의 얼굴만큼이나 하얗게 변했다.
정도광은 자신이 자살을 하지 못하는 이상 저 악마가 원하는 것을 줘야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날, 벗의 이름으로 정도광 동영상이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물론이고 각 언론사와 경찰, 검찰, 정부 기관 등에 일제히 뿌려졌다.
다급하게 동영상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고 정부 일각에서 나섰지만 개인이 주고받는 동영상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SNS를 통해서 전해지는 동영상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얼마간 혼란을 겪던 정부는 더 이상 동영상 삭제에 힘쓰기 보다는 정도광 동영상에서 지목된 사람들을 긴급 체포하는 것으로 태도를 바꿨다.
정부는 정도광 일당을 비호하다가 벗들의 공격을 받을 것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한국의 국민들도 벗(友)이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을 두고 걱정 어린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봤다. 도쿄가 그러했듯이 서울도 한강 이남과 이북을 이어주는 다리들이 끊어지면 어마어마한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아직도 일본 사태에서 사용된 폭탄의 종류나 폭발 원리에 대해서 밝혀졌다는 소식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이어질 벗들의 파상 공세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일까? 정부는 이례적으로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동영상 유포를 막으려고 시도했던 이들부터 도마에 올랐다. 그들은 동영상에 이름이 언급이 되지 않았더라도 동영상 유포를 막으려는 정황이 있었다면 모두 일단 정직에 수사 의뢰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동영상에서 이름이 나온 이들은 모두가 출국 금지에 긴급체포가 되었고, 간혹 도주한 이들도 철저하게 색출해서 검거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발표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국민들은 그것이 벗들에게 보내는 한국 정부의 메시지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국회의원 수 십 명에 정부 관료들이 또 수 십 이었다.
거기에 군과 제계에서도 적잖은 이름들이 언급되어 줄줄이 압송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들과 이어진 하급자들이 또 다시 시간차를 두고 쇠고랑을 차고 들어갔고 다시 그들이 부리던 이들이 끌려들어갔다.
나라 전체가 늦겨울 날씨에 맞게 꽁꽁 얼어붙었다.
그리고 정도광은 심선정의 수목장이 이루어진 숲의 초입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어 죽은 모습으로 며칠 뒤에 발견이 되었다.
워낙 세상이 소란스러워서 정도광의 발견이 늦어진 것이다.
세진은 구리시 내골의 어리 공방에 돌아왔다.
돌아온 세진을 맞은 선도일은 아무 말도 없이 밥을 챙겨 주었다.
세진 주변의 감시자들은 이미 대부분 철수한 상황이었다. 이제는 국정원의 선도일과 선도일을 지원하는 차량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세계의 정보기관은 이번 일이 세진의 친구들이 벌인 일이라고 확신했다. 타지마할의 모형 탑은 벗(友)이란 단체의 트레이트 마크처럼 쓰였고 그것이 선정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에 죽은 정도광의 품에서도 타지마할의 탑이 나왔다.
때문에 그들은 지금 상황에서 세진을 건드리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진의 친구들이 가진 폭탄의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 세진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핵폭탄이었다.
정보기관들은 세진을 해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진을 해친 배후 세력은 일본이나 한국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거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직도 일본 사태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폭탄을 설치하고 터트린 것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폭탄을 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어떤 신무기를 이용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 세진을 건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젠 세진의 부모님도 건드릴 수가 없다.
세진이 문제가 아니라 세진의 친구들이 문제인 것이다. 세진의 친구들은 잔혹했다.
그들이 일본에서 저지른 일을 보면 세진의 부모님을 인질로 잡는다고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라고 정보기관들은 판단하고 있었다.
세진이나 세진의 부모에게 문제가 생기면 일본 사태가 다시 벌어지게 될것이 분명하니 당분간은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말자는 것이 공통된 의견인 것이다.
까똑! 까똑! [일은 다 끝난 겁니까?]세진은 탁자 위에 있는 스마트폰을 보았다. 도일이 세진이 돌아오자 새로 준비해서 놓고 간 것이다.
도일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진의 대답에 부엌에서 들리던 그릇 소리가 멈췄다.
"아직 선정이를 지우지 못했습니다.
선정이를 지워내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될 때까지 제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죠. 저는 아직도 싸우는 중입니다. 제 친구들의 싸움은 끝났을지 몰라도 저는 아니죠."
다시 그릇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세진의 말에 깜짝 놀랐던 도일이 그래도 친구들의 싸움이 끝났다는 말에 앞으로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서 조금은 긴장이 풀린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폰 문자 수신음이 다르네요?"
까똑!
까똑! [전에 가지고 계시던 것을 폐기해서 다시 만든 겁니다. 세진씨 쓰시라고 말입니다.
참, 거기 무슨 추적장치나 도청장치 같은 것은 절대 없습니다. 아마도 세진씨에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멍청이는 없을 겁니다.]
도일이 설거지를 하다 말고 예의 LTE급 문자 전송 실력을 보여준다.
"세상엔 멍청한 놈이 많더라구요. 이번 일본 놈들 일도 그랬지요. 모든 정보기관이 저와 제 팀원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고 있을 때, 그 놈들은 저를 납치하려고 했으니까요.
선정인 그 때문에 죽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부모님을 모시고 올 수가 없어요. 또 그런 오판을 하는 놈들이 있을까 두려워서 말입니다."
까똑!
까똑! [하긴, 세상 일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어리는 어디 있습니까?]
"곧 올 겁니다.
어리는 똑똑하니까요."
= 똑똑한 어리, 춤추는 고래다.
"봐요. 온다고 했지요?"
세진은 현관 밖에서 들리는 어리 앵무의 목소리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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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일단 한국은 알아서 깨갱하는 수준에서 자체 정리를 시켰습니다.
다 날아가지 않으려고 알아서 기었다죠... 쿠쿠쿠... 몇 곳 박살을 낼까 하다가... 좀 봐줬습니다.
제대로 안 하면 엎으려고 했는데... 일단 알아서 하는 걸로 설정을 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워낙 세력이 커서 저렇게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떱.. 직접 작살을 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네요... 후후후오늘도 3편.. 한 챕터... 올립니다.
이게 첫 편이라죠.
행복하시길... ^^그런데 어리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속담을 왜 저렇게 쓰는 걸까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