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할 일 많은데 또 뭐? -- >
세진은 서울대의 몬스터 영역 정리 작전에 나왔다.
일부러 지원을 한 것이다. 당연히 그 목적은 화이트 코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면 공간을 유지하는 코어까지 모두 뽑아 나올 생각이었다.
아직 그 코어를 뽑으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는 확인을 하지 않았기에 실험을 해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이번에 세진이 나온 곳은 저번에 갔던 곳이 아닌 다른 쪽이었다.
관악산 몬스터 영역은 두 개의 몬스터 영역이 겹쳐 있어서 따로따로 처리를 해야 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꼬독! 꼬독! [녹두병사입니다.]
"녹두 병사? 그 녹두나 콩 같은 거 뿌려서 불러낸다는 그거 말입니까?"
꼬독! 꼬독! [우리나라식의 소환병인 셈입니다. 서양에서 용의 이빨을 뿌려서 용아병을 소환하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선 녹두나 콩, 조, 수수 같은 씨앗을 뿌려서 자신이 부릴 병사를 소환하는 술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나온 소환체들을 모두 녹두병사로 부릅니다. 사람처럼 생겼고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형태로 나오지만 속은 모두 식물처럼 되어 있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소환체입니다. 뭐 그렇다는 설화가 있다는 거지, 정말로 그렇게 소환을 할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전설이 많이 있습니까?"
꼬독! 꼬독! [제법 많습니다. 그리고 장군이나 술법가들이 많이 썼습니다. 여기 장군 능선에서도 그런 이유에서 녹두병사들이 몬스터로 등장한 것이 아닌가합니다. 아니면 이곳에 이런 것들이 있어서 예전부터 병사가 많이 보이니 장군에 얽힌 전설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여기가 강감찬 장군하고 관계가 있을까요? 강감찬 장군 탄생 설화가 이쪽하고 관계가 있죠?"
꼬독! 꼬독! [근처 낙성대가 강감찬 장군 태어날 때, 별이 떨어진 곳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하고, 그 장군 부친이 구미호와 사이에서 장군을 낳아서 강감찬 장군이 술법에 능하고 귀신을 부렸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죠.]
"어쩌면 여기 돌아다니는 녹두병사들이 그 때 강감찬 장군이 부렸던 것들일 수도 있겠군요. 하하하. 아, 농담입니다. 농담. 위대한 장군님을 무슨 몬스터로 취급하고 그런 거 아니니까 인상 쓰지 마십시오."
세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장서서 몬스터 영역으로 들어섰다.
뒤에는 이번에는 도일만 따르고 있다. 서대철 과장은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세진의 고집에 밀려서 경호 인원을 배치하지 못한 것이다.
녹두 병사라고 해 봐야 최하급의 몬스터에 지나지 않았다. 도일은 뒤에서 따라가며 이번 작전에서 쓰려고 일부러 챙겨서 양쪽 허리에 걸고 나온 쌍검을 매만졌다. 이번에는 한 마리라도 혼자서 잡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다.
세진은 어느 정도 몬스터 영역으로 진입한 수에 곧바로 천공기를 통해서 이면 공간으로 들어섰다.
"여긴 산이라서 그렇게 지형 변화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어휴, 네 그런 거 같습니다."
도일은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했다. 이곳에 들어오면 육성이 아니고는 대화를 주고받 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좋을까요?"
"아무래도 장군봉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가 중심일 것 같습니다. 밖에서 봐도 몬스터 영역의 중심이 장군봉이니 그럴 겁니다."
"그럼 가 보죠. 여기서 산 전체를 돌면서 몬스터를 다 찾아 죽이는 것도 어려울 것 같으니 일단 우두머리부터 박살을 내 놓고 상황을 봅시다. 혹시 우두머리를 잡고 나면 남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질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전에도 우두머리 잡고 다시 확인했을 때, 몬스터는 하나도 안 보였죠?"
세진이 시구문 토벌을 떠올리며 물었다.
"이번엔 그것도 정확하게 실험을 하긴 해야 하니, 곧바로 우두머리를 잡으러 가시죠."
"그러자고요. 그런데 이번에도 한 판 붙어 보시렵니까?"
세진이 도일에게 물었다.
"한 마리 정도는 해 보고 싶은데, 기회가 있다면 말입니다."
"무리지어 나오면 한 마리 맡아 보십시오. 나머진 제가 책임지죠."
"아, 고맙습니다. 여기 녹두병사들은 떼를 지어서 다니길 좋아한다고 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자, 갑시다. 지형을 보니 저 쪽이 장군봉이네요."
"네. 네."
세진과 도일은 거침없이 숲을 헤치고 장군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면 공간의 산에는 따로 등산로 같은 것이 없고, 나무도 더 많아서 걸음을 옮기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세진의 창이 번뜩일 때마다 나무들이 쓰러지며 길을 내 줬다.
차차차차창, 차창, 차차창.
도일의 쌍검이 요란스럽게 녹두 병사의 칼을 두드리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의 검에 녹두병사는 곳곳에 적잖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전에 광희문에서 당했던 분풀이를 확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에게 제대로 배웠는지 도일은 몸 안의 내기를 필요한 곳에 적절히 옮겨 쓰고 있었다. 특히 무기인 쌍검과 팔에 내기를 몰아서 몬스터가 내뿜는 에테르에 잠식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별다른 피해 없이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원거리에서 총으로 벌집을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원시적이고 무식한 방법이지만, 이후에 몬스터들의 등급이 올라가게 되면 저런 능력자들이 더 효과를 발위하게 될 거라고 세진은 믿고 있었다.
촤좍! 촤좍! 촥, 촥!
이젠 도일의 검을 녹두병사가 제대로 막지 못해서 검이 녹두병사의 몸을 가르고 지나가고 있었다. 녹두병사의 힘이 다한 것이다.
'끝났군.'
세진이 그렇게 생각한 것과 동시에 녹두 병사의 목이 두둥실 떠올랐다. 도일의 검이 녹두 병사의 목을 잘라낸 것이다.
"후아, 후아. 이거 쉽지 않네요."
도일이 검을 허리에 수납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해냈다는 뿌듯함이 어려 있었다.
전에는 제대로 붙어 보지도 못하고 내상을 입고 물러났었는데 이번에는 혼자 한 마리를 잡아냈으니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수고했습니다."
세진은 승화되어 사라지는 녹두병사에게서 눈을 돌려 도일을 보면서 칭찬이라고 그 말을 한 마디 해 준다. 분위기를 딱 보아하니 한 마디 해 주는 것이 저녁 반찬이 풍성해질 최고의 방법인 것 같았다. 저녁 반찬을 위해서 도일에게 빈 말을 서슴지 않는 세진이다.
"순식간에 다섯 마리를 베어 놓고 놀고 계시던 분 앞에선 창피스런 일이지만 그래도 전에 비해선 늘었으니 제 스스로는 만족합니다. 다음에는 두 마리, 그 다음에는 세 마 리. 그렇게 늘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세진님과도 나란히 서는 날도 있겠죠."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좀 어려울 것 같기는 하지만요."
세진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여기도 밤낮이 있다면 서둘러야 합니다. 전에 시구문은 영역이 좁은 편이었는데 여긴 꽤나 넓어서 말입니다."
"아, 그렇군요."
도일은 얼른 세진의 뒤를 따른다.
그렇게 장군봉을 향해 걸으면서 도일은 네 마리의 녹두 병사를 잡았고, 세진은 쉰 마리에 가까운 녹두 병사를 잡았다. 그리고 에테르 코어도 두 개를 획득했다.
"보스 등장이네요. 그런데 강감찬 장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워낙 단신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는데 저건 장군 복장도 아니고 키도 크군요."
도일이 장군봉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몬스터를 발견하고 관찰하다 입을 열었다.
"무슨 술법을 부리는 놈으로 보입니다. 저걸 학익선이라고 하던가요? 우리나라에도 저런 걸 들고 다니는 놈이 있었나요?"
"접부채 이전에는 모두 저런 부채를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있었지요. 옛 그림을 봐도 왕이나 고관들 뒤에서 커다란 부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하죠. 그런데 저 놈 좀 곤란하군요? 주변에 지키고 있는 녹두병사의 수가 자그마치 서른이나 됩니다."
"제가 유인해서 가고 나머질 세진님이 처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도일이 유인책을 내 놨지만 세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저 놈이 술법가 타입이면 어쩌면 계속해서 녹두병사를 만들어 낼 능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일직선으로 들이쳐서 저 놈의 목을 베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능한 말씀입니까?"
도일이 세진의 말에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후훗. 보면 알겠지요. 대신에 여기서 꼼짝 말고 계십시오. 저 우두머리 잡을 때까지는 도일씨가 위험에 처해도 도와줄 수가 없을 테니 만약 들켜서 싸움이라도 벌이게 되면 알아서 해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네네. 조심하죠."
도일을 여전히 짐짝 취급을 당해야 하는 상황이 못마땅한지 대답이 퉁명스럽다. 하지만 세진은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장군봉의 부족코어를 지니고 있을 몬스터를 향해 달려 나갔다.
창을 들고 달려오는 세진을 발견한 술법사 몬스터가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은 에테르 랜스 공격이었다.
줄줄이 뻗어 오는 에테르 렌스 다섯 개가 순식간에 세진에게 들이닥쳤다.
하지만 세진은 그 순간에 이미 에테르 방패를 만들어서 앞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광! 연속으로 에테르 랜스 공격이 세진의 방어막에 막혀서 굉음을 내며 흩어졌다.
멀리서 그걸 보고 있던 도일은 세진이 만든 방패는 보지 못하고, 붉은 빛이 나는 커다란 화살 다섯 개가 세진에게 쏘아져 나가다가 허공에서 폭발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세진이 무슨 방법으로 그 화살들을 처리한 것인지 궁금해 했다.
"약하다. 약해! 이건 겉모습만 에테르 렌스지 속은 텅 비었잖아. 소총 한 발의 위력도 없는 걸 뭐하러 쏘고 난리야 난리가!"
세진은 달려가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앞을 가로 막는 녹두병사들을 베어내기 시작한다.
아직 술법사 몬스터에겐 디버프도 걸지 않았다. 단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녹두병사들만 디버프를 걸고 줄줄이 베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세진이 술법사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술법사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뭐냐? 반칙이냐?"
세진이 인상을 썼다. 공중에 몇 미터 높이에 올라간 술법사를 상대하기 쉽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빌어먹을 놈! 어디 당해봐라."
세진은 곧바로 술법사의 몸에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밀어 넣고, 그것은 술법사의 이마로 집중시켰다. 녹두 병사는 흉갑 부분에 몬스터 패턴이 있지만, 술법사는 이마에 패턴이 있었다. 그것도 패턴의 크기가 매우 작았는데 작은 만큼 정교하고 또 복잡했다. 세진은 그 부분에 디버프 에테르를 밀집시킨 것이다.
역시 술법사 몬스터도 세진의 디버프 기반 에테르는 전혀 감지를 하지 못했다. 세진은 모인 에테르를 압축시킨 후에 곧바로 터트렸다.
"죽어 봐라. 녀석아!"
퍼억!
순간 술법사의 이마가 툭 터졌다.
정확하게 패턴이 있는 부분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술법사 몬스터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허공에서 추락해서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몸을 일으켜서 자세를 바로 잡으려 했고, 주변에는 남아있던 녹두병사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그냥 죽지, 뭐하러 일어나? 일어나긴?"
세진은 그런 술법사를 향해 달려들며 창을 험하게 휘둘렀다. 창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서 앞을 막아서는 녹두병사의 팔과 다리, 목, 가슴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그 끝에서 술법사가 목이 잘렸다.
"수만 믿고 설치는 놈, 거기다가 뒤에서 얼쩡 거리는 놈은 원래 맷집이 없는 법이지. 아, 난 빼고. 난 양쪽 모두 신경을 쓰거든?"
세진은 햐얀색의 코어를 들어서 품에 넣으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코어를 찾아서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이면 공간을 유지하는 코어가 느껴지지 않았다. 반경 70미터를 훌쩍 넘는 디버프 범위 안에도 코어가 없었다. 세진의 디버프 범위는 나날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 걸까? 혹시?"
세진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고,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갑자기 주변의 모습들이 요동을 치더니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마치 한 겹 꺼풀을 덮고 있다가 그 꺼풀이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 가는 듯이 주변 모습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어어?"
도일도 그 모습에 깜짝 놀랐던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면 공간이 무너진 겁니다."
꼬독! 꼬독! [정말이군요. 이게 되는 걸 보면 말입니다.]곧바로 도일의 문자가 세진에게 날아든다. 세진은 인상을 쓰면서 스마트폰을 가슴 주머니에서 꺼내서 확인한다.
꼬독! 꼬독! [어째서 이면 공간이 무너진 걸까요?]
"우두머리가 잡혔으니 그런 모양이죠."
꼬독! 꼬독! [하지만 시구문은 괜찮았지 않습니까?]
"거기하고 여긴 다른 모양이죠. 어떤 곳은 우두머리가 이면 공간까지 책임을 지는 거고, 어떤 곳은 서로 역할이 분리되어 있겠죠.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세진은 원했던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얻지 못해서 약간 짜증이 나 있었다. 그래서 그 짜증이 도일에게로 전가되고 있었다.
도일은 뭔가 세진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문자 전송을 멈췄다.
'건드려 봐야 손해다.'
도일은 이제 그런 분위기 파악에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저번처럼 외곽으로 나간다고 설치다가 남의 집 옥상으로 나가는 일은 없으니 다행이군요."
세진은 시구문에서 인식 장애를 피해서 이면 공간에서 나오다가 남의 건물 옥상으 로 나가는 바람에 빨래 걷던 여자와 마주친 기억을 떠올리며 장군봉 주변을 둘러 봤다.
도일도 그 말에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