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83화 (83/298)

< -- 떡배가 오고, 어리는 큰 사고를 쳤습니다. -- >

"저기 저는 떡배라고 합니다. 박세진씨 맞으시죠?"

"떡배?"

혼잣말처럼 되물었다.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전화를 걸 이유가 없고, 또 세진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게슈너 박과 인연이 있지 세진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인물이었다.

"네. 제가 그러니까 어떤 분과 인연이 있어서..."

세진은 그가 말하는 어떤 분이 게슈너 박이란 사실을 깨닫고서야 떡배가 세진에게 전화를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떡배는 게슈너 박이 일본 사태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게슈너 박이 벗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벗의 대변인으로 알려진 세진에게 연락을 할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누군지 알겠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까? 저는 떡배씨를 모르는데 말입니다."

"아, 저 그게 따로 다른 분에게 뭘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그런 형편이라서요. 그래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음.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제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도와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전화론 어려울 것 같고, 만나야 하는데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네. 네! 찾아뵙겠습니다. 두 시간 내로 가겠습니다. 네."

세진은 뜬금없는 떡배의 연락에 고개를 갸웃했다.

게슈너 박의 신분으로 그와 거래를 하긴 했지만 그 후로는 서로 모르는 듯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연락이 온 것이다. 그리고 떡배는 얼마나 급했던지 두 시간 후를 이야기하곤 30분이 조금 넘어서 초인종을 울렸다.

"자, 편하게 말씀을 하십시오. 여긴 누가 들어오지도 않고, 또 도청도 불가능한 곳입니다."

세진은 떡배를 3층으로 데리고 갔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3층도 벽이 모두 막혀 있어서 창이 없었다.

"저기 그러니까 제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보이는군요. 언제부터였습니까?"

"고향에 다녀온 뒤로 이런 것 같습니다."

"거기에 몬스터 영역이 있었습니까?"

"없었는데 제가 다녀온 다음날 생겼다고 합니다. 추석 지나고 어머님 묘소에 성묘  다녀 온 건데, 그 뒤로 이렇습니다."

세진은 떡배의 몸에 기이한 에너지가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김형일과는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였다.

"그 힘을 써 봤습니까?"

"네? 넵. 딱 보고도 아시는군요. 역시 찾아오길 잘 했습니다."

"써 보니 어떻던가요?"

"그러니까 설명하긴 어려운데 제가 원하는 곳으로 제 몸에 들어 있는 기운을 뽑아서 뻗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뻗은 기운을 실체화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시범을 볼 수 있을까요?"

"네. 이런 겁니다."

떡배는 세진이 시키는 대로 능력을 시연해 보였다.

세진도 떡배가 시연하는 능력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눈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다 만 디버프 기반 에테르 범위 안에 있었기에 보듯이 느끼는 것은 가능했다.

"지금 그렇게 일직선을 뻗은 것을 중간에서 변형시키는 것도 가능합니까?"

"네? 어떻게 말입니까?"

"이를 테면 방패나 벽 같은 형태로요."

"그렇게 크게는 안 되고 종발이 정도 크기는 되던데요."

"그럼 그렇게 만들어진 것으로 어느 정도나 물리적인 힘을 보입니까?"

"굉장히 강합니다. 콘크리트 벽을 뚫고 들어갈 정도로 강합니다."

"어지간한 총보다 낫다는 말이군요?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세진은 떡배를 보며 물었다.

"네?"

"그런 능력이 있으면 조용히 숨어서 살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나라에 도 움이 될 수도 있을 거고, 그 반대로 주먹 패거리를 모두 발아래에 둘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저, 그게..."

떡배는 뒷머리를 긁으며 말을 흐렸다.180이 넘는 키에 심각한 비만으로 보이는 떡배는 뒷머리를 긁기 위해서도 안간힘을 써야 할 정도였다. 뒷머리에 손이 잘 닿지 않았던 것이다.

세진은 그런 떡배의 모습에서 곰을 연상했다.

"이런 능력을 들키게 되면 어디로 끌려가서 실험을 당하다가 죽을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까. 차라리 공식적으로 어디에서 일을 하게 되면 좋은데 아시는 것처럼 저 같은 전과자들은 그런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 능력이 제법 대단한 능력이지만 그래봐야 멀리서 총질하는 것에는 당하기 어렵습니다. 어찌어찌 반항하다가 총알을 먹고 죽겠지요."

"그런데요? 저는 왜 찾아 오셨지요?"

"전에 그 게슈너 박 님도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다 보지는 못했지만 분 명 능력자고, 또 세진 님도 능력자 아닙니까. 그럼 벗이란 곳에 그런 능력자들이 많이 있다는 소리고, 저도 어쩌면 한 자리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전과자라고 차별할 것 같지도 않았고 말입니다."

"하던 일은 어떻게 하시고?"

"동생들에게 맡겼습니다. 비법 전수도 다 했으니까 알아서들 할 겁니다. 저는 완전히 은퇴한 겁니다."

"나이 50도 안 된 것 같은데 은퇴는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하하하. 제가 좀 들어 보여서 그렇지 이제 마흔 하납니다. 네."

"마흔 하나?"

세진은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었고, 전설로 알려진 신분증 브로커였던 떡배의 나이가 마흔 하나란 사실에 한 번 놀라고 딱 봐도 쉰은 되어 보이는 외모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사실 화끈한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 전에는 그저 돈이나 벌면서 그럭저럭 살았는데 이런 힘이 생기니까 뭔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들고 그래서... 그런데 생각난 분이 게슈너 박, 그분이었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같은 곳에  속해 있는 분이다 싶어서 박세진 님을 찾아 온 겁니다."

세진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뺨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는 떡배를 보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각성자를 곁에 두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떡배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극히 비밀을 요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떡배씨는 이미 노출이 된 사람입니다. 여길 찾아오고, 전화를 할 때부터 누출이 되었다고 봐야 하죠."

"네? 아. 그렇겠지요."

"그러니 앞으로 활동을 한다고 해도 노출된 상태로 해야 합니다. 신분을 드러내고 지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떡배씨는 이를테면 제게 속한 사람으로 저희 단체에 가입이 됩니다. 그걸 이해하시겠습니까?"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분이 드러난 사람을 믿고 데리고 있자면 그 사람이 절대로 배신하 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떡배씨가 우리 소속이 되려면 특별한 시술을 받아야 합니다."

"네? 시술이요?"

떡배는 시술이란 말에 깜짝 놀라서 세진을 보았다.

"어, 어떤 시술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세진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일종의 독입니다. 평소에는 절대 몸에 이상이 없지만 스스로 그것을 터뜨리거나 혹은 저희들이 표결을 통해서 작동을 시켜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면 떡배씨에게 이후는 없는 그런 독입니다."

"그러니까 잡혀서 불기 전에 자살을 하라는 용도군요. 또 배신자를 처리하기 위한 용도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뭐. 그거 별거 아니네요. 저도 제 동생들에게 심한 짓을 많이 하고 살았습니다. 원래  조직이란 것이 그런 거죠. 말단에겐 가혹하게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 제가 인정을 받고 그러면 또 대우가 달라지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 조건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사나이가 큰일을 하려면 그 정도 각오야 당연히 해야지요."

세진은 멀뚱히 떡배를 바라봤다. 심장의 박동을 살펴봐도 거짓인 것 같지는 않다. 참으로 묘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 세진이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멋지지 않습니까? 몸 안에 자살용 독을 품고 살다니 말입니다. 아주 짜릿한 인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만큼 제가 하는 일도 뭔가 대단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핫."

세진은 떡배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딘지 제정신이 아닌 부하 하나가 생길 것 같았다.

어리 공방에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떡배는 3층에서 살림을 시작했고, 김혜인 박사와 정진이 경호원, 선도일 가사도우미 까지 모두 떡배와 인사를 나눴다.

떡배의 지위는 세진의 고용인이었고, 임무는 어리 공방의 경호 업무와 세진과 함께 몬스터 사냥을 하는 일이었다.

김혜인 박사는 여전히 에르터 코쿤의 개량에 몰두하고 있고, 정진이 경호원은 그런 김혜인 박사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국정원 소속이었지만 이번 김혜인 박사 납치 미수 사건에서 국정원에 보고하지 않고 어리 공방으로 뛰어든 것에 대한 문책을 받고 국정원에서 잘렸다.

사실 그보다 더 심한 벌이 있어야 했지만, 그녀가 어리 공방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직위해제로 마무리가 되었다고 했다.

"언니 덕분에 실업자가 되었으니까 이젠 언니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거야."

정진이는 그렇게 김혜인을 압박해서 그녀와 함께 지내는 것을 허락받았다.

사실 김혜인도 정진이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둘이 함께 지내는 것은 서로가 원하는 바였다. 더구나 김혜인은 정진이에게 에르터 코쿤의 일정 지분을 주었다. 그러니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돈이 정진이의 통장에 쌓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너 그렇게 매일 먹기만 하다간 떡배아저씨처럼 된다."

김혜인은 떡배를 보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이 말을 입에 붙이고 살며 정진이를 타박했다.

어쨌거나 그녀들과 떡배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선도일은 가사도우미로서 새로운 가족인 떡배를 위해 음식의 양을 조금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별 변화가 없어서 그런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세진과 떡배, 도일 이 세사람이 몬스터 사냥을 나가게 되면 그 때는 떡배와 도일이 서로 경쟁자가 되어서 서로를 보는 눈빛에서 불꽃이 튀곤 했다.

"자자, 오늘은 이걸 시험해 봅시다."

"사냥을 나가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꼬독! 꼬독! [그거 혹시 갑옷입니까? 무슨 SF영화에 나올 것 같은 모양인데요?]

"사냥은 이걸 시험해 보고 갑니다. 그리고 이거 갑옷 맞습니다. 에테르 코어를 이용해서 몬스터의 공격을 방어하는 방어막을 형성하는 갑옷입니다."

"우와아아. 정말입니까? 그럼 저도 이제 몬스터에게 맞아도 되는 겁니까?"

떡배는 세진의 말에 반색을 했다.

그는 공격은 잘 되는 편이지만 방어에는 취약한 면이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능력은 육체 능력이 아니어서 몸을 강화하지 못했다. 그러니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 원거리에서 공격을 시작해서 다가오기 전에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상당했다.

물론 방패나 벽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떡배는 솥뚜껑 넓이의 방패도 겨우 만드는 실정이어서 몬스터의 공격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에 비해서 도일은 갑옷이 약간의 거부감을 보였다.

꼬독! 꼬독! [무겁지 않습니까? 몸놀림에 방해를 받으면 피하는 것 보다 막는 빈도가 높아지게 될 텐데 말입니다.]도일은 그게 걱정인 것이다.

"일단 써 보고 이야길 합시다. 이게 제법 좋은 물건입니다."

세진은 두 사람의 엇갈린 반응을 보며 이렇게 말했고, 갑옷은 두 사람에 의해서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리가 테멜에서 만들어 낸 갑옷은 도일과 떡배의 체격에 딱 맞춘 맞춤형이었다.

세진은 어리가 도일과 떡배의 몸에 맞는 일체형 갑옷을 만들 수 있게 된 사건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0